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156화 (156/305)

71, 주인공은 언제나 맑은 뒤 흐림. (3)

*

돌발 퀘스트는 비천무상도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비격진천도의 회수를 명했다.

퀘스트 완료 조건은 세 명 중 두 명의 죽음.

동굴을 질주하는 사이 퀘스트 목록은 1/2로 변경됐다. 공태령이 죽었을 리는 없으니 필경 천라쌍익 공후탄이 죽었음을 의미하리라.

이제 남은 건 눈앞의 한 사람뿐이다.

상제신룡 공후탁.

제 1막 강호행의 마지막 퀘스트인 ‘중간보스’의 최종단계는 ‘의천도룡’이 아니던가.

- 의로운 하늘을 대신하여 용을 베라.

모든 것이 단순해졌다.

칠십 일 넘게 남은 퀘스트 제한 시간은 무의미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놈이 죽으면 메인 퀘스트와 돌발 퀘스트는 종료될 터였다.

생각해보니 지긋지긋했다.

‘특급강호인승급체계’를 통한 ‘레벨 업 시스템’을 얻은 것이 만추(晩秋)였다. 어쩌면 즐겁고, 신났을 레벨 업 대신 몇 달 동안 산과 들을 헤매지 않았던가.

그 원흉이 바로 눈앞에 있다.

“아, 생각할수록 열 받네.”

남천휘의 혼잣말에 공후탁은 이를 갈았다.

“나만 하겠느냐.”

그는 남천휘와 대면한 이상 도주를 포기했다.

‘혈기 왕성한 놈답게 사지로 기어들어왔군.’

천라쌍익과 천위검호는 연달아 상대했던 남천휘라면 지금처럼 똑바로 마주할 수 없었으리라. 수백 명의 무인들을 등에 업고 삿대질을 하던 남천휘였다면 지금처럼 양 허리에 손을 얹지 않았을 게다. 하나 놈은 지쳐서 피를 토했고, 놈의 눈과 귀가 되어줄 무인들도 없지 않은가.

‘지금이라면 내가 도망칠 이유가 없지!’

청도문으로 갈 때 가더라도 후환이 될 놈을 처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어쩌면 저 놈은…….’

짐짓 여유로운 척 도발을 하고, 육포를 씹는 것마저 허장성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후나 다른 동료를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스릉-

공후탁은 쌍도를 뽑는 순간 내달렸다.

초옥은 크지 않았다.

그렇기에 별다른 보법의 변화 없이 정면으로 쇄도했다.

‘일단 기선을 제압하고…….’

공후탁의 쌍도에서 붉은 기운이 솟구쳤다.

초옥 전체를 날려버릴 듯한 강렬한 기파에 건초가 먼지구름처럼 일어났다.

하나 그 순간 먼지구름이 좌우로 갈렸다.

남천휘가 도를 내려치는 순간 좌우로 갈렸던 흙먼지가 와류를 그린 채 휘돌았다. 그리고 흙먼지를 휘감은 도가 공후탁을 내리찍었다.

쾅!

내력의 충돌로 인해 초옥의 지붕을 이루는 짚단이 들썩였다. 그리고 공후탁은 남천휘의 일격을 받아내지 못하고 튕겨나갔다.

“크헉!”

그는 벽에 부딪친 후에야 나뒹굴었다.

흙먼지가 안개처럼 흩뿌려진 가운데 허망한 눈빛으로 가득찬 눈을 끔뻑였다.

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뭐, 뭐야? 내가 왜…….”

현실을 부정하는 한 마디가 채 끝나기도 전에 고통이 밀려왔다. 그리고 고통이 사라지는 순간 오른팔은 마비가 된 것처럼 감각이 사라졌다.

쩔그렁.

공후탁은 자신이 떨어트린 도를 내려다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눈앞의 현실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신공부주에 올라 만인의 경외를 받던 그였다.

어제만 해도 산동성에서 손꼽히는 고수를 좌우에 대동했고, 수백 명의 무인들이 자신의 명령만 기다리지 않았던가. 그 뿐 아니라 암중에 모아놓은 수하들만 해도 천여 명에 이를 정도였다.

한데 지금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그렇기에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남천휘가 더없이 크게 느껴졌다.

‘왜? 왜?’

소인배는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의 것을 내어놓지 않는다. 주변의 것을 이용하려 하고, 그러기 위해 주변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릇이 작은 공후탁에게 있어서 작금의 상황은 천재지변과 같았다.

자신이 어찌 할 수 없는 그런 일.

그러니 멍하니 지켜볼 뿐이다.

“나, 나는…….”

남천휘는 말더듬이가 된 공후탁을 무심한 눈빛으로 내려다봤다.

그는 단상 위에 선 공후탁을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의 상황을 예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공후탁의 레벨은 160을 겨우 넘겼다.

천라쌍익이나 천위검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약했다. 그가 광목재사에게 내어준 호대와 표대의 대주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강해질 수 있음에도 강해지지 못했다. 아니 않았다가 맞으리라.’

남천휘의 주변에도 비슷한 사람이 존재했다.

아버지인 남운군이다.

그는 막대한 재산을 일궜고, 마음만 먹었다면 절정의 경지를 우습게 넘겼으리라.

하나 그는 재산을 일군 후 강해지는 것을 택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 사람에게 베풀고, 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택했다.

반면 공후탁은 같은 상황일 뿐 결과가 달랐다.

그가 무인이 되려 한 까닭은 더 많은 권세와 이권을 차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니 적당한 수준에 오른 후 수련을 등한시했으리라. 오히려 남의 것을 탐하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했겠지.

그렇기에 공후탁의 덜떨어진 모습에 놀라지 않았다.

스릉-

남천휘가 도를 들었다.

그 때 공후탁은 반격하는 대신 좌수에 쥐고 있던 도를 놨다. 그리고 손을 뻗으며 남천휘를 향해 다급하게 외쳤다.

“나는 공태령의 아비다!

남천휘는 도를 든 채 공후탁을 내려다봤다.

진심 또는 협박이 통했다고 여겼던 걸까.

공후탁이 황급히 말을 이었다.

“원한은 원한을 낳는 법이야. 친우와 원수가 되어 피의 굴레를 이어갈 셈이더냐?”

남천휘의 입매가 비틀렸다.

“무인이 되겠다고 개같은 짓거리를 반복했잖아. 한데 너는 최후의 순간 유자를 방패로 내세우는구나.”

반말로 인해 무언가 잘못됐다고 여긴 걸까.

공후탁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본능적으로 손을 움직여 도를 쥐려 했다. 하나 자신도 모르게 마비가 된 오른팔을 움직이려 한 것을 깨닫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너는 유자도, 무인도 되지 못하고, 개가 됐으니 기쁜 마음으로 비격진천도를 회수하마.”

“아, 안 돼!”

촤악!

우도가 가슴을 깊게 베고 지나갔다.

그리고 뒤이어 좌도가 심장을 꿰뚫었다.

목을 자르지 않은 건 혹시 모를 공태령에 대한 배려였다.

공후탁의 부릅뜬 눈에 맺혀있던 생기가 자취를 감췄다. 그저 벽에 기댄 채 초라하게 생을 마감한 시신만이 남았을 뿐이다.

“쯧.”

남천휘는 귓가에 울리는 알람과 눈앞을 수놓는 상태창의 변화를 마주했다. 메인 퀘스트와 돌발 퀘스트가 완료되며 쏟아지는 경험치와 보상만으로도 배가 부를 지경이다.

하나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초옥을 나섰다.

“날씨는 참 좋은데…….”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 오늘따라 무정하게 여겨졌다.

*

한 해의 마지막이 머지않았기 때문일까.

날씨는 유례없이 좋았다.

매일 같이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가 이어졌고, 사람들은 외출을 하느라 부산했다.

반면 곡부는 다른 세상인 것처럼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신공부가 문을 걸어닫은 이상 곡부의 경기는 침체된 지 오래였다.

하나 그것을 걱정스레 지켜보는 자는 많지 않았다.

이미 신공부주의 퇴출을 시작으로 그의 비위가 만천하에 알려졌다. 그렇기에 신공부는 내홍을 마무리하고, 안정화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언제고 신공부의 문이 다시 열린다면 유가의 성지로서 다시 호황을 누를 것이라 기대했다.

“호황은 개뿔.”

남천휘는 입술을 삐죽였다.

신공부주가 죽은 이후 그를 찾아온 사람만 해도 수백 명에 이르렀다. 공문십철은 물론이고,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친해지고 싶다며 접근했다.

그들의 목적은 하나였다.

이제 신공부는 남천휘를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검후와 공문십철의 압도적인 지지를 등에 업었으니 그를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 여겼다.

그러니 미리 안면을 터놓고 부스러기라도 주워 먹으려는 자들이 득실댔다.

“부스러기는 진짜 잘 뿌려줄 수 있는데.”

남천휘는 투덜거리며 육포를 언덕 아래로 흩뿌렸다.

하나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신공부의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자니 없던 화병이 생길 정도였다.

공문십철은 공후탁을 시신을 거둬 장례를 치렀다.

비록 배덕과 패륜을 저질렀지만, 유자로서 대우하겠단다. 성대하게 장례를 치룬 후 신공부주의 이름으로 저지른 죄악을 덮기 시작했다.

공부의 명예를 더럽힐 수 없다는 이유였다.

세간에 알려진 공후탁의 비위는 십분지 일이나 될까 모르겠다. 외조부인 노국장주 역시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남천휘를 설득했다. 대의를 위해, 유가에 매인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덮자고 하더라.

이쯤 되니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어차피 공후탁이 성공했어도 신공부는 오래 가지 못했을 거야.’

저런 사람들과 함께 문파를 운영했다가는 예의와 명분을 따지다가 자연스럽게 쇠락했으리라.

“신공부와 구파를 동급으로 보면 곤란하지.”

구파가 예의와 명분을 따질 수 있는 건 그만큼의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신공부처럼 명예만 지닌 곳의 외침은 공허할 뿐이다.

그러고 보면 정천칠공 중 한 명의 고향인 제연평의 처신은 훌륭했다.

천하에 손꼽히는 검협인 제룡검야의 터전이 아니던가. 하나 제룡검야의 무공은 전해지지 않았고, 제연평은 봉문 아닌 봉문을 택했다. 그 덕에 지금껏 명성을 유지하면서 세파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 이걸 계속 해야 하나?”

남천휘는 자신이 앉아 있는 언덕의 정상을 살폈다.

공부와 공림 사이에 위치한 작은 언덕이야 말로 신공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성소가 위치했다.

언덕의 정상에는 예(乂)자 형태의 표식이 존재했고, 그 앞에는 한 사람이 서있을 크기의 석판이 박혀 있었다.

공문(孔門)이라 적힌 것을 제외하면 볼품없는 석판이다. 신공부에서 이와 같은 글귀가 새겨진 석판을 헤아리면 수백 개는 발견될 터였다.

하나 이것은 달랐다.

대화동의 성목이나, 대두동의 대두상처럼 신공부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석판이 분명했다. 아마 공부가 설립됐을 때 초석으로 사용되지 않았을까 싶다.

“얼마나 남았냐?”

남천휘는 현재 표식을 깔고 앉은 채로 왼손을 석판에 대고 있었다.

◎ B 등급 공백지 ‘신공부’의 동조화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잔여 시간 : 8日14時34分)

남천휘는 입맛을 다셨다.

공후탁이 죽으면서 일시적으로 신공부는 공백지로 표시됐다. 동시에 남천휘는 공문십철의 인정을 받은 상태였다.

그 덕에 B등급 공백지로 공짜로 얻게 됐다.

남천휘는 틈틈이 시간을 날 때마다 언덕에 올라와 석판에 손을 댄 채 시간을 축냈다. 이미 남천휘는 신공부주의 자리에 관심이 없음을 표명하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남천휘가 한량처럼 시간을 축내도 뭐라 하는 이가 없었다.

‘하기는 귀찮지만, 해두면 두고두고 편할 테니…….’

남천휘가 생각했을 때 신공부는 계륵이나 마찬가지였다. 있으면 신경 쓸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없다면 지근거리에 적대세력이 위치하는 셈이다.

무엇보다 남천휘에게 있어서 곡부남가의 안위는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상황이 아니던가.

향후 재이를 따라 천하에 나가게 되었을 때 집안 사정이 불안한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결국 연말을 코앞에 두고 언덕 위에 앉아 즉묵노주를 들이키는 신세가 됐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 원단이네.”

남천휘는 불현 듯 외로움을 느꼈다.

이곳에서 마음이 맞는 자라고 해봤자 공태령과 천수련 뿐이다.

하나 공태령은 이미 신공부에서 마음이 떠난 상태였다. 그리고 공문십철로서도 공태령을 마주하는 것이 편치는 않으리라. 그렇기에 그는 일부러 신공부 외곽에서 떠날 준비에 한창이었다.

‘해결하고 싶은 일이 하나 있다는데…….’

그게 뭔지는 절대로 얘기하지 않더라.

끝까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녀석이다.

“쩝, 개똥이 녀석은 어디서 뭘 하는 건지?”

천수련을 못 본 것도 벌써 두 시진 째다.

검후 역시 신공부의 작태에 정나미가 떨어진 듯했다. 그렇기에 무림맹의 회합을 앞두고 떠날 시기를 조율하는 중이다. 천수련은 검후와 제연평 사이를 오가며 잔심부름에 열중인 듯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진짜 개똥이다!”

그래도 그렇지 두 시진 째 얼굴을 비추지 않는 건 너무 하지 않은가.

남천휘는 투덜거리다가 버릇처럼 상태창을 펼쳤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건 너뿐이로구나.”

《남천휘(南天輝)》

- 소속 : 대두동(大頭洞)

- 호칭 : 새내기 지략가.

- 별호 : 철귀협.

- 등급 : 125

- VIP : 3등급(잔여 점수 : 3160)

- 성소 포인트 : 42100

근력(筋力) : 700 민첩(敏捷) : 690

체력(體力) : 780 지혜(知慧) : 800

내공(內功) : 1950.

- 미 배분 능력치(+840)

남천휘는 소속부터 확인하던 중 미간을 찡그렸다.

일단 호칭과 별호가 변경됐다.

신공부주를 상대할 때 머리를 많이 굴렸기 때문일까. 특기 ‘지모’의 효과를 배가 시킬 수 있는 호칭이 생성됐다.

그래, 호칭은 그렇다손 치자.

‘진짜 별호 짓는 수준 하고는…….’

공문십철을 홀로 상대하고, 신공부주의 야욕을 꺾었으면 멋들어진 별호를 만들어줘도 좋지 않은가.

한데 강단 있는 귀협이라고 하여 철귀협(鐵鬼俠)이 되었다.

‘어감은 차라리 귀협이 낫다. 그나저나 벌써 해가 졌네. 돌아갈까?’

유시(酉時)가 되었으니 슬슬 배가 허했다.

게다가 낮술을 퍼마시다보니 뜨끈한 국물이 간절할 시기였다.

하난 남천휘는 엉덩이를 떼지 못했다.

시야 외곽이 총천연색으로 반짝이더니 광고하듯 창이 열렸다.

‘뭐야?’

《연말 한정 특별 행사!》

- 재이와 함께 한 한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 반나절 동안 특별 행사가 진행됩니다.

- 회회회판 소모 자수정 20% 감소.

- 회회회판 당첨 확률 20% 증가.

- 성소 포인트의 자수정 전환이 일시적으로 허가됩니다.

※ 자신의 운을 시험하는 것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세요. 어쩌면 영웅 등급의 보상품이 쏟아져나올 수도 있습니다.

“아.”

남천휘는 뭐에 홀린 사람처럼 자신도 모르게 창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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