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152화 (152/305)

70, 어긋난 신념은 개똥과 같아. (2)

푹-

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이야기 책에서 보았을 때 칼에 맞으면 불에 달군 꼬챙이로 쑤시는 것처럼 화끈하다고 하더라. 하나 검이 어깨를 스치고 솟구치는 순간 바늘에 찔린 것처럼 따끔했다.

이 새끼들, 조사 좀 해보고 쓰지.

그러나 어깨를 비트는 순간 팔이 떨어져나갈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동시에 인두로 지지는 듯한 후끈한 기운이 들이쳤다. 마치 생살이 찢긴 자리에 뜨거운 돌이 박힌 듯했다.

하나 아프다고 징징거릴 시간에도 천위검호의 공세는 이어졌다. 신공부주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공격적으로 변했다.

‘적선단, 적선단!’

남천휘는 통찰과 불굴, 집중까지 활성화된 상태에서 쉴 새 없이 적선단을 읊조렸다. 그 뿐 아니라 벽선단과 녹선단은 물론이고, 육포까지 복용하여 배를 채웠다. 마치 어린 아이의 무릎이 까졌을 때 어머니가 요란스럽게 치료를 하듯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총동원했다.

극복, 쾌유, 그리고 완치!

이야! 검막(劍膜), 참 대단하네.

단순히 초식의 연계로 공간을 점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상대의 진퇴에 제약을 거는 모습은 마치 거미줄에 걸린 나방을 칭칭 동여매는 듯했다.

게다가 시계를 혼란하게 만드니 약자에게는 신벌처럼 옴짝달싹하지 못할 터였다. 거듭 말하지만 상대방을 거미줄에 걸린 나방처럼 만들었다.

‘만약 천위검호가 조금만 더 강했다면…….’

그가 초절정의 무인이었다면 검막 이후의 공세에 검기나 강기를 섞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랬다면 제아무리 남천휘라고 해도 큰 부상을 피할 수 없을 터였다.

하지만 아니잖아?

천위검호는 초절정의 무인이 아니었다.

그리고 저것이 그의 최상이라면 오히려 또 하나의 활로를 발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쪽은 물약이 있거든.

남천휘는 궁신탄영을 연이어 펼친 후 얻게 된 찰나간의 여유로 인벤토리를 펼쳤다.

- 적선단x152. 벽선단x134.

- 중급 적선단x44. 중급 벽선단x37.

- 고급 적선단x3. 고급 벽선단x3.

짧은 시간 동안 참 많이도 먹었구나.

수백 개에 이르렀던 회복제의 수치가 눈에 띄게 줄었다. 그래도 산처럼 쌓여 있는 회복제를 확인하는 순간 토끼탕이라도 먹은 것처럼 속이 든든했다.

쉭쉭쉭쉭쉭!

천위검호 유백하의 공세는 여전히 매서웠다.

도검창의 장점을 한 자루의 검으로 드러냈고, 여전히 위협적으로 요혈을 노렸다.

하나 남천휘는 수세에 몰린 상태에서도 끝끝내 모든 공세를 피해냈다.

‘흐음.’

지금껏 무덤덤하던 천위검호의 눈빛이 달라졌다.

‘유리검에 당했거늘 어찌 저리 멀쩡하단 말인가?’

천위검호의 독문검법인 유리검법(琉璃劍法)은 내공을 위주로 활용한다. 그렇기에 검기를 외부로 흩뿌리고, 검막으로 덧씌우는 건 모두 위장에 불과했다.

검을 통해 내력을 전달하는 것이 진짜였다.

그렇기에 지금껏 유리검에 적중당한 자는 알게 모르게 내상을 입고 서서히 수세에 몰려야 했다.

‘그랬어야만 했는데.’

천위검호는 남천휘의 신묘한 재주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검막까지 펼쳤다. 그로 인해 내상이 누적되다보면 저절로 무릎을 꿇을 것이라 예상했다.

‘한데 타격이 없어 보이는군.’

방금도 검 끝이 남천휘의 허벅지를 스치지 않았던가. 한데 남천휘는 찰나간 멈칫거렸을 뿐 이내 평소와 다름없이 움직였다. 한 번은 우연이고, 두 번은 실수라고 해도 세 번이라면 이건 잘못이다.

누구의 잘못이란 말인가?

천위검호는 잠시 멀어진 남천휘를 응시한 채 내력을 일주천했다.

내력의 흐름은 평소와 같다.

자신의 의지에 순응하는 사지육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놈에게 무언가 있는 게다.

‘무엇보다 피가 멈췄다.’

남천휘가 상처를 입은 부분의 옷은 피로 물든 후였다. 하나 더 이상 번지지 않고, 서서히 다갈색으로 변색될 뿐이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면…….’

천위검호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무인에게 호기심만큼 위험한 것이 어디 있으랴.

그는 남천휘의 재주를 궁금해 하는 대신 속전속결을 택했다. 설령 자신이 알지 못하는 회복 능력이 있다고 해도 내상의 누적은 파국을 뜻하지 않겠는가.

한 번 베서 되지 않는다면.

‘열 번을 베겠다.’

천위검호의 눈동자가 기광으로 번뜩이는 순간 유리검의 초식이 한층 더 빠르게 남천휘의 전신을 뒤덮었다.

검영에 휩싸인 남천휘는 일견하기에도 위태로워보였다. 당장이라도 피를 흩뿌리며 나뒹굴 것처럼 피하기에 급급했다.

“어머, 어쩌면 좋아.”

천수련은 발을 동동 굴렀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구나.”

무언가를 눈치챈 듯한 검후의 묘한 한 마디였다.

“여보.”

“지금은 천휘를 믿는 수밖에.”

남운군과 안자영은 손을 맞잡은 장내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맞잡은 두 손에 땀이 가득했지만, 꽉 잡은 손을 놓을 수 없었다.

“크흠.”

노국장주는 지팡이가 으스러져라 강하게 움켜쥐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

“후우.”

신공부주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여유로운 표정을 보였다. 하나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등받이에 기대고 있던 상체를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적선단.’

남천휘였다.

‘벽선단.’

또 남천휘다.

‘아! 따가워. 그러니까 적선단.’

남천휘는 검영이 쇄도하는 순간 상체를 비틀며 나직이 읊조렸다.

“궁신탄영.”

하나 그 와중에도 그의 시선은 천위검호의 모든 것을 놓치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를 탐구하듯 일거수일투족을 눈에 담았다. 지적 호기심으로 이글거리는 눈빛은 공방이 이어질수록 강렬해졌다. 그리고 간간히 칼을 맞고 상처를 입었음에도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상처가 늘어날수록 얻는 것도 많았다.

◎ 검을 다루는 고수의 움직임은 자라나는 새싹에게 있어서 최고의 영양분입니다. 상승 검법의 묘리를 오랫동안 지켜본 결과 작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 특기 ‘검수(劍手)’가 등록되었습니다.

◎ 검을 쥐었을 때 숙련도와 냉정이 증가합니다.

허허, 검을 따로 익힐 생각이 없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나중에 따로 시간을 내서 환마소혼검법을 익혀봐야겠어.’

그 순간 천위검호의 검 끝이 뱀처럼 아가리를 벌린 채 사각에서 튀어나왔다.

촤악!

검이 상박을 스쳤다.

따갑다. 화끈했다.

하지만 처음처럼 동요하지 않았다.

‘아! 이래서 애들은 맞으면서 커야 하는 건가?’

남천휘는 방금 자신을 위기에 몰아넣은 천위검호의 움직임을 통해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피를 대가로 지불하면서 천위검호의 삶을 훔치는 셈이다.

◎ 상승 검법의 묘리를 오랫동안 지켜본 결과 작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벌써 몇 번째 이어진 알림이다.

남천휘는 알림을 뒤로 한 채 천위검호를 살폈다.

정확하게는 천위검호가 검을 다루는 자세와 미세한 움직임을 받아들이는 상황이었다.

‘이거 왠지 옛날 생각도 나네?’

몽산의 대두동에서 백파도 남추의 VR을 처음 발견했을 때가 떠올랐다. 앞뒤로 돌려보고, 방향까지 바꿔서 살피며 비천무상도를 익히지 않았던가.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당시와 상황이 너무도 흡사했다.

‘어차피 시간을 내 편이야.’

남천휘는 입꼬리를 올렸다.

잠시 후 옆구리에서 피가 번져 나왔다.

‘아우, 아파.’

그래도 칼 맞는 건 여전히 아프다.

*

“지금껏 저런 싸움은 처음 보는군.”

청유서원의 원주인 불계산은 자신도 모르게 허리춤의 세검을 만지작거렸다. 이미 남천휘와 손을 맞댐으로서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던가.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위검호와 남천휘의 싸움을 보고 있자니 투기가 절로 일었다.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드는 순간 세 수를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것이 자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섞이고 싶었다.

“창과 방패의 싸움이 이렇게 현란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불계산의 읊조림에 동주림주인 염차명이 대꾸했다.

“그저 중간에 서려 했을 뿐이었는데…….”

염차명이 말끝을 흐렸지만, 뒷말을 유추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궁극적으로는 최고의 선택이 되었군.’

남천휘가 천라쌍익을 일수에 쳐내고, 천라쌍익과 호각을 이룰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어쩌면 우리는 강호사의 한 장을 목격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불계산의 말에 염차명은 침음을 흘렸다.

천위검호의 검은 수십 개의 화살처럼 쉴 새 없이 전방에 꽂혀들었다. 햇살을 튕겨내는 검신의 번쩍거림으로 인해 시계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화려함의 극치.

반면 남천휘의 몰골은 처참했다.

승기(勝機)를 놓친 이후 단 한 번도 주도권을 쥘 수없었다. 그 결과 남천휘의 상반신은 아예 피로 물들었을 정도였다.

‘지쳤을 텐데.’

공문십철의 아홉 명을 쓰러트리고, 최고수를 상대하는 중이다.

염차명은 눈을 반개했다.

제아무리 정치적으로 움직이는 그라고 해도 남천휘의 처절한 사투를 보고 있자니 마음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이권이나 욕망을 가진 자가 저렇게 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순수한 의지로 돌파하려는 청춘의 뜨거움이 가득했다.

“힘내시게.”

염차명은 자신도 모르게 읊조린 후 화들짝 놀라며 주변을 살폈다. 불계산 또한 자신과 비슷한 표정임을 확인한 후에야 전장을 바라봤다.

“누가 내 의지를 꺾을 수 있겠는가!”

때마침 터져 나온 남천휘의 일갈에 수많은 무인들이 동요했다.

“이제 한 명 남았다! 힘내시오!”

누군가의 외침이 시작이었다.

이내 노도와 같은 응원의 물결이 광명정 전체에 휘몰아쳤다.

“귀협! 귀협!”

일각쯤 지났을까.

광명정의 열기는 더욱 격렬해졌다.

남천휘가 쓰러질듯하면서도 끝끝내 버텨냈기 때문이다. 그는 이각이 지났고, 반 시진 가까이 쓰러지지 않았다.

*

“참, 지난번에 자네가 마음에 뒀던 여인은 어떻게 됐는가?”

무인의 말에 산적을 닮은 사내는 멋쩍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수염을 깎고 오라네.”

“어허! 자네가 그 수염을 어찌 길렀는데 자르라고 닦달을 해? 어! 방금 귀협이 멋있게 피했어.”

“오! 방금 몸을 뒤집으면서 물러나는 건 내공의 힘일까? 그러고 보면 귀협의 사문이 곡부남가라는게 믿어지지 않는군. 아! 맞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수염을 자를 수는 없지. 그래도 혼인은 하고 싶은데…….”

두 사람은 천위검호와 남천휘의 싸움을 보며 사담을 이어갔다.

긴장감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평범한 대화.

비단 두 사람만의 상황은 아니었다.

곳곳에서 무인들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눴고, 몇몇은 물을 마시거나 소피를 해결하기도 했다.

누군가 물통을 건네받으며 하늘을 바라봤다.

중천에 떠 있던 해가 어느덧 서산마루에 근접한 채 빛을 잃어가고 있지 않은가.

“기왕이면 해가 지기 전에 끝났으면 좋겠는데…….”

“좀 춥지 않아?”

“나한테 배자 남는 게 있어. 빌려줄까?”

“오호! 좋지.”

무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짐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는 몇 걸음 내딛은 후 슬쩍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천위검호와 남천휘가 여전히 박투를 이어가고 있었다.

‘내가 다녀오는 사이에 별 일이야 있을까?’

없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두 시진 가까이 이어진 싸움이 아닌가.

처음의 열정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무인들은 어느덧 누가 됐든 싸움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게 되었다.

‘이제 와서 앉으면 눈치 보이겠지?’

*

천위검호는 강했다.

하지만 물약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이다.

남천휘는 목을 노리며 꽂혀드는 천위검호의 검을 가볍게 피했다.

천위검호는 산발을 한 채 목욕을 한 것처럼 온 몸이 젖어 있었다. 체력과 내공을 한계까지 끌어다 썼기에 검을 휘두를 때마다 헐떡이는 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이쯤 하면 됐다.

볼 만큼 봤고, 뽑을 수 있을 만큼 뽑았다.

그리고 배울 만큼 배웠다.

‘그러니 쓰러져라!’

남천휘는 질풍난무를 펼치는 동시에 궁신탄영을 펼쳤다.

두 사람의 거리가 한순간에 좁혀진다.

텅!

남천휘는 천위검호의 검을 쳐올렸다.

이미 힘이 빠진 천위검호는 신음을 흘린 채 검을 놓쳤고, 그 사이로 남천휘의 도가 꽂혀들었다.

촤아악!

어깨에서 시작된 도흔이 옆구리까지 이어졌다.

피가 솟구치는 가운데 천위검호가 주저앉았다.

촤라라락-

남천휘는 멋들어지게 쌍도를 털어냈다.

도에 묻은 피가 흩뿌려지는 광경 또한 연출한 것처럼 멋들어졌다.

“천위검호를 쓰러트렸다!”

남천휘는 광명정의 무인들을 돌아보며 일갈을 내질렀다.

어라? 분위기가 왜 이래.

광명정의 무인들은 몰래 음식을 훔쳐 먹다가 걸린 사람처럼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더니 한 박자 늦게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끝났어.”

“끝났군. 귀협이 이겼어.”

“오호, 그렇군.”

남천휘가 원했던 열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남천휘는 물을 마시다가 사례가 들린 것처럼 콜록거리는 천수련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너, 이 개똥이! 내가 다 봤어.’

어찌됐든 분위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가라앉았다. 단순히 천위검호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저것 훔쳐 배우다보니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했다.

‘이건 좋지 않은데…….’

꺼져가는 불길을 되살려야 할 필요가 있다.

남천휘는 입꼬리를 올렸다.

땔감으로 써먹으려고 준비해놓은 비장의 한 수가 있지 않은가.

유가의 성지라면 전가의 보도나 다름없는 그것.

남천휘는 내력을 담아 일갈을 내질렀다.

“아버지를 가둬 죽이고, 자식마저 구덩이에 처넣고 명분을 쌓으려던 신공부주를 유가의 이름으로 고발한다!”

패륜(悖倫)의 물결이 들이치는 순간 광명정의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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