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광명대전(廣明大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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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한없이 들이칠 만큼 널따란 꼭대기.
이것이 광명정(廣明頂)이라는 이름의 유래였다.
그렇기에 신공부는 대소사를 광명정에서 처리했다.
신공부의, 신공부에 의한, 신공부를 위한 모든 일이 진행되었으니 신공부주의 힘이 가장 강력했다.
한데 그 지배력에 금이 갔다.
신공부주는 여전히 대전 앞에 앉아서 여유로운 표정을 보였다. 그리고 남천휘는 일곱 걸음을 나아갔다. 이제 걸어온 거리보다 남은 거리가 짧다.
웅성거리마저 잦아들었다.
광명정에 모인 무인들은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장내의 상황은 남천휘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남천휘가 신공부주가 더 큰 지배력을 행사하며 장내를 압박한 것이다.
‘일곱 명의 동의를 얻었어.’
어쩌면 일곱 번의 혈전을 거쳤어야 했다.
하나 남천휘가 피를 본 건 네 번이 전부였다.
세 명의 수뇌부가 남천휘가 들고 나온 법규를 인정했다.
청유서원의 불계산, 그리고 노국장주.
한데 중도에서 한 명의 수뇌가 남천휘와 손을 맞대는 것으로 자신의 차례를 넘겼다.
동주림(東周林).
신공부의 동주림은 오랜 세월 공림을 관리했다.
게다가 림주가 공자의 제자 중에서도 염유의 후손이었다. 공자가 염유를 평가할 때 정사에 능통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동주림주는 조상의 재주를 그대로 이어받은 듯 정치적으로 행동했다.
“나는 피를 보는 것이 싫소. 그리하여 지금껏 부주의 뜻이라면 정도에 어긋나지 않는 한 힘을 보탰소이다. 이번 일 또한 마찬가지외다.”
동주림주 염차명은 공문십철 중 가장 연배가 높다.
그런 그가 남천휘를 지지하고 나섰으니 무인들의 동요는 어느 때보다 컸다.
“저 아이의 뜻이 정도에 어긋나지 않는 한 힘을 보태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소이까.”
신공부주를 제외하면 가장 덕망이 높은 동주림주와 노국장주가 남천휘를 인정했다. 이것은 중도(中道),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신공부주를 따랐던 무인들의 마음에 큰 파장을 남겼다.
‘그 동안 조용하고 좋았는데…….’
‘이게 다 저 놈 때문이다!’
‘그나저나 신공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반면 신공부주는 여전히 알 수 없는 표정을 유지한 채 공터를 내려다볼 뿐이다.
남천휘는 신공부주를 올려다봤다.
머리 위의 레벨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녀석의 말이 맞았네.’
신공부주의 좌우를 지키는 천라쌍익과 천위검호를 바라봤다.
두 사람의 표정은 극명하게 갈렸다.
천라쌍익은 당장이라도 목줄을 풀고 뛰쳐나올 것처럼 살기등등했다. 반면 천위검호는 남의 잔칫집에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영문 모를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남천휘의 시선은 천위검호의 곁에 잇는 공문십철의 마지막 수뇌를 바라봤다.
‘공태령의 정보에 의하면 저 자가 바로 광명문주겠군.’
광명문은 이름처럼 광명정 주변을 관리했다.
광명정에서 일어나는 대소사를 관리하니 인원과 자금의 풍요로움은 공무십철 중 수위에 꽂힐 정도였다.
하나 저 자는 신공부주의 개가 되었다.
공자는 염유를 일컬어 정사에 능하다고 평가했듯 공문십철의 장점을 나열했다.
그 중 덕행으로 인정받은 이가 바로 안회, 민자건, 염백우, 중궁이다. 염백우와 중궁의 대는 끊겼고, 당대에는 안회와 민자건의 후손만 남아 신공부에 속했다. 노국장주가 안회의 후손이었고, 광명문주는 민자건의 후예였다.
하나 광명문주인 민자는 오랜 전부터 신공부주의 수족을 자처했다. 그 대가로 광명정을 하사받고, 수많은 돈을 긁어모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거대 자금의 흐름은 신공부주와 광명문주만이 알고 있으리라.
‘쓰레기일수록 강한 조직이라니.’
저승에 있든, 하늘에 있든 공자가 땅을 치고 통곡을 하지 않을까 싶다.
스릉-
광명문주는 자신의 차례가 되었다는 듯 여유롭게 검을 뽑았다. 보석이 덕지덕지 붙은 검을 보니 반짝이는 것으로 서열을 정한다면 천하십대보검에 꼽힐 수도 있을 듯했다.
“어린 것이 광오한 꿈을 꾸었구나.”
남천휘는 미간을 좁혔다.
“꿈?”
광명문주는 선이 굵은 인상이다.
호랑이처럼 굵은 눈썹에 멋들어진 수염도 시선을 끌었다. 그가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금의(錦衣)가 햇살을 밀어내듯 번쩍거렸다.
“그래, 꿈. 헛된 꿈. 그런 망상을 깨주는 것도 어른이 해야 할 일이리라.”
남천휘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어른이라서 미안하다던 노국장주의 모습이 눈앞을 스쳤다.
‘내가 잘하는 걸까?’
그저 신공부주를 몰아내는 것으로 만족하려 했다.
그러나 저런 자들이 명숙이랍시고, 유지랍시고 떵떵거리는 꼴을 계속 봐야만 하는 건가.
모르겠다.
이야기책에 줄기차게 등장하던 멋지고, 화려한 강호를 본 적이 없다.
최소한 산동강호는 그렇지 않았다.
“그러니 그런 어른은 없어도 될 거 같아.”
광명문주는 남천휘의 서늘한 한 마디에도 망설임 없이 거리를 좁혔다. 남천휘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광명문주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체구만 보면 힘을 위주로 한 강직한 검법을 쓸 것처럼 보이지만…….’
신공부주의 개돼지를 자처하는 자다.
비장의 절초 정도는 가지고 있으리라.
‘어떤 암수일까?’
광명정에서 단순히 승패만 정해진다면 분명 여지가 남을 것이다. 여전히 신공부주를 추종하는 세력이 존재할 것이고, 두고두고 후환이 되리라.
‘단순한 승리로는 안 돼.’
남천휘는 미간을 좁혔다.
재이의 도움으로 특급 강호인 승급 체계를 진행하고 있지만, 천하에 지배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의 경배를 받으며 군림할 까닭도 없다.
애초에 다루나 물려받아서 한량처럼 지내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기꺼이 신공부주와 함께 똥밭에서 뛰어놀 생각이다. 물론 신공부주를 짓밟으면서 뛰어놀아야겠지.
‘그러니 놈들을 똥밭으로 끌어내리자.’
남천휘의 입가에 마침내 미소가 드리워졌다.
어차피 이쪽은 잃을 것이 없다.
쇄애애애액!
광명문주가 내내 빈틈을 노리다가 기습적으로 달려들었다.
말학후배, 그것도 같은 신공부에 적을 상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습을 펼치는 것에 일말의 망설임이 없다.
남천휘는 일부러 아슬아슬하게 검을 피했다.
공문십철의 수뇌부 중 이미 일곱 명을 거치지 않았던가. 한데 싸움은 네 번에 불과했다. 게다가 그 시간마저 짧았다.
남천휘는 광명정의 일이 최소한 산동성 내에 회자되기를 원했다. 그래야 신공부주의 몰락이 실감나지 않겠는가.
그걸 위해서라면 약간의 연출이 필요하리라.
‘이 연극의 끝은 똥통이다!’
남천휘는 신공부주를 힐끔 쳐다본 후 양 손으로 허리춤을 훔쳤다.
스릉-
쌍도를 뽑으며 전방을 향해 내리 그었다.
광명문주는 코웃음을 치며 뒷걸음질 쳤다. 하나 물러났던 것보다 빠르게 쇄도했다.
광명문주는 눈매가 길게 늘어졌다.
남천휘의 반응이 생각보다 느리고, 약했기 때문이다.
하나 입을 굳게 다문 것으로 보아 방심하지 않겠다는 열의가 엿보였다.
그래, 딱 그 정도가 좋아.
그게 당신의 역할이니까.
채채채채챙!
두 사람의 병장기가 요철처럼 맞물리기 시작했다.
광명문주의 레벨은 160 대였다.
반면 남천휘의 현재 레벨은 117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쪽은 신의 축복을 받지 않았던가.
통찰로 광명문주의 세세한 움직임을 살폈고, 불굴로 인해 머뭇거림이 없다. 그러니 두 사람의 공수 교환은 지금까지와 달리 현란했다.
“어어! 귀협의 무위가 저 정도였나?”
“다른 분들을 쉽게 쓰러트린 이유가 있었군.”
“광명문주가 밀리는 것 같지 않아?”
“광명문의 재화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가? 영약을 보약처럼 먹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라네. 분명 시간이 흐를수록 귀협이 밀릴 게야.”
광명정의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지금까지는 무언가 번쩍하는 순간 싸움이 끝나버렸다. 한데 이제는 공방의 흐름이 보였고, 멋들어진 초식과 화려한 검기가 빗발치며 무위를 드러냈다.
‘아낌없이 보여줘야지.’
남천휘는 무인들의 웅성거림을 들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본래 무인이라면 자신의 절기를 숨기는 법이다.
하지만 남천휘는 가감 없이 드러냈다.
비천무상도는 전진교의 비전에 남추의 도법이 섞였다. 그렇기에 정형화된 투로 대신 내공과 육신의 조화를 통해 매순간 투로가 변화하지 않던가. 초식이 없다기보다 너무 많았기에 외인이 본다고 해서 간파당할 가능성이 희박했다.
‘하지만 계속 보면 비격진천도의 원류가 비천무상도임을 저들도 부인할 수 없겠지.’
◎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 수백 명을 대상으로 꾸민 모략이 성공적으로 진행됩니다.
갑작스런 재이의 알림에도 쌍도는 기계적으로 투로를 따랐다. 이제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재이의 알림에도 놀라지 않을 만큼 성숙한 어른이 되었다.
아니면 이것도 불굴의 힘일까?
‘그래서 또 뭐 주냐?’
◎ 특기 ‘심상’과 ‘집중’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땅!
남천휘는 강하게 도를 떨쳐냈다.
그 순간 광명문주가 미간을 좁힌 채 밀려났다.
‘특기 목록!’
재이의 알림처럼 A급 특기인 심상과 집중의 레벨이 상승했다. 이제 심상은 3레벨이 되었고, 집중인 4레벨까지 오른 상태였다. 만약 회회회판에서 특기 승급권이라도 뽑으면 집중의 경우는 만(滿) 레벨도 꿈이 아니었다.
‘하지만 안 나오겠지.’
회회회판의 또 다른 이름은 폭망돌림판이니까.
한데 재이의 알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특기 ‘지모(智謀)’가 등록되었습니다.
◎ 지혜 수치의 상승폭이 소폭 증가합니다.
“어리군.”
광명문주는 남천휘의 미소를 보고 조소를 흘렸다.
마치 한 수의 이득을 보았다고 즐거워하는 것으로 여긴 듯했다.
남천휘는 특기 목록을 내린 후 만면 가득 미소를 드리웠다.
“이제 알았어?”
“뭐라?”
“당신은 일선에서 물러나는 게 좋겠어. 조금 전만 해도 나한테 어린 것이 꿈을 꾸었다며. 한데 했던 말을 또 하는 걸 보니 노망이라도 난 것 같아.”
한데 광명문주는 기름이라도 바른 것처럼 번들거리는 수염을 쓰다듬었다.
“허허, 못된 짓을 참 많이도 배웠구나. 아무리 생각해도 네 실력은 칼이 아니라 혀에서 나오는 듯해.”
남천휘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쪽도 다르지 않은 걸?”
“크하하하! 증명해보라!”
어, 그래.
남천휘는 지금까지와 달리 선수를 쳤다.
이 정도면 충분히 보여주지 않았던가.
분위기를 띄우는 것도 좋지만, 과열이라도 된다면 무슨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다.
타탓!
광명문주는 능숙하게 남천휘의 쌍도를 받아쳤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공수를 교환하며 투로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채채채채채챙!
그렇게 십여 합이 흘렀다.
광명문주의 곱게 빗어 넘겼던 머리카락은 산발이 됐고, 애지중지하던 수염은 절반이나 잘려나갔다.
‘크흑!’
그는 뒤늦게 깨달았다.
남천휘가 전력을 다하지 않았음을 말이다.
‘이대로 무릎을 꿇을 수는 없어.’
광명문주의 눈빛이 깊어졌다.
힘으로 안 된다면 암수로라도 승리를 따내야 했다.
만약 자신이 패배한다면 내년 광명문의 문주는 자신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다년 간 신공부주를 곁에서 지켜봤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버림 패가 되는 순간 버려진다.
광명문주는 검을 쥐지 않은 왼손을 쥐락펴락했다.
그 순간 소매 속에 연결된 줄을 따라 손가락 한 마디만한 주머니가 잡혔다.
칠점사의 독을 중화시켜 산공독과 섞은 무색의 비약이다. 미량이라도 흡입하는 순간 찰나간 호흡이 멈추고, 사지가 굳을 터였다. 금세 사라질 독이지만, 그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놈의 목을 벨 찰나의 시간만 벌 수 있다면…….’
그는 독을 살포할 수 있는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발을 놀렸다. 어차피 남천휘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는 와중이기에 뒷걸음질 치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잠시 후 그의 입가에 옅은 혈소가 맺혔다.
하늘이 그를 돕는 것처럼 등 뒤에서 바람이 불었다.
게다가 등 뒤는 신공부주였고, 전방에는 무인들이 모여 있지 않은가.
그 사이에 남천휘만 들어오면 계획대로였다.
독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광명정의 무인들에게만 들키지 않으면 되지 않겠는가. 신공부주는 알아도 모른 척 할 것이고, 남천휘는 이미 목이 잘린 후가 될 것이다.
그 순간 남천휘가 광명문주의 가슴을 노리며 짓쳐들었다.
위치가 너무 좋았다.
광명문주는 손발이 어지러운 척을 하며 왼손으로 독단을 튕겼다.
팟!
얇은 막이 찢기고, 소량의 분말이 허공을 날았다.
바람을 타고 남천휘를 향해 흩뿌려졌다.
한데 그 순간 남천휘의 신형은 누가 잡아당긴 것처럼 양 쪽으로 흩어지는 것이 아닌가.
궁신탄영이 펼쳐지는 순간 애매한 상황이 벌어졌다.
광명문주는 손을 뻗어 손가락을 튕긴 자세로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는 자신을 보며 눈을 끔뻑이는 광명정의 무인을 보며 탄식했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