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광명대전(廣明大戰). (1)
69, 광명대전(廣明大戰).
남천휘의 일갈이 광명정 위를 휘돌았다.
신공부주의 얼굴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사색이 됐다. 잠시 후 공문십철의 수뇌부들에게서 시작된 소요는 이내 광명정 전체에 퍼졌다.
“이게 무슨 소리야?”
“공문십철에서 승천문이 빠진다면…….”
더듬거리던 자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공문십철에서 승천문이 빠진다면 부주인 공후탁 또한 신공부 소속이 아니게 된다. 그 말인즉슨 남천휘가 신공부주 공후탁을 몰아내겠다는 뜻이 아닌가.
“저게 무슨 망발이야?”
“저, 저 놈이 미쳤나?”
남천휘의 요구는 승천문의 퇴출 유무와 달리 수백 명의 무인들을 동요하게 만들었다. 한 마디로 신공부 전체와 싸우겠다는 소리가 아닌가.
공교롭게도 남천휘의 목표가 그것이었다.
“크하하하하하!”
신공부주는 잠깐의 침묵이 무색할 만큼 광소를 터트렸다. 마치 어른이 아이의 농담에 웃어주듯 여유로운 광경이었다.
하나 천라쌍익과 천위검호를 비롯한 몇몇 수족은 등허리에 오한이 이는 듯했다.
‘그가 분노한다.’
아니나다를까 광소를 멈춘 신공부주의 눈동자는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이글거렸다.
“어린놈이 작은 별호를 얻더니 미치기라도 한 게냐? 네가 하는 말뜻은 알고 있기나 하더냐?”
“…….”’
남천휘는 대꾸 없이 신공부주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 순간 신공부주의 무복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솨아아아-
청석에 깔려 있던 모래가 흩날리며 와류를 그렸다.
“감히 승천문을 퇴출하겠다고?”
남천휘는 강렬한 기파를 마주하고도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입꼬리를 올린 채 대꾸했다.
“그래, 법규. 너희들이 좋아하고, 너희들이 얽매이는 법규로 승천문을 쫓아낼 계획이다.”
“뭐라?”
남천휘는 코웃음을 쳤다.
“흥!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당신은 광목재사의 아홉 번째 계획을 실행 중인 듯하군.”
천라쌍익은 자신도 모르게 신공부주의 눈치를 봤다.
남천휘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긴급 대회의를 통한 졸속 처리.
이것이 광목재사의 아홉 번째 계획이었다.
‘저 놈이 그걸 어떻게?’
불현 듯 광목재사가 포로로 잡혔다던 수하의 보고가 떠올랐다.
꽈드득-
천라쌍익은 이를 갈며 분노를 삭였다.
그렇다면 광목재사가 모든 걸 자백했다는 뜻이 아닌가.
하나 신공부주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 어떤 모략에도 지금껏 쌓아온 세월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신공부의 어떤 법규도 승천문을 쫓아낼 수 없다!”
남천휘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천천히 대전의 계단을 내려갔다.
그가 나아갈수록 광명정에 모여 있던 무인들이 물러서며 공간을 만들었다.
“과연 그럴까?”
남천휘가 광명정 중앙에 선 채 외쳤다.
신공부주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대전의 입구에 섰다. 자연스럽게 위에서 남천휘를 내려다보는 모양새를 취했다.
“재주가 있다면 부려보아라. 하나 네 목을 걸어야 할 것이다.”
무인들은 광명정을 가득 채운 칼바람에 신공부주의 기운까지 더해지니 오한이 이는 듯했다.
잠시 후 공문십철의 수뇌부가 신공부주를 따라 밖으로 나섰다. 그러자 광명정에 모여 있던 무인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주인을 찾아 흩어졌다.
쉬이이이이이이잉-
흙먼지를 동반한 바람이 두어 차례 불었다.
그러자 광명정에는 세 무리가 대치를 했다.
신공부주를 중심으로 여섯 방파의 무인이 뭉쳤다.
그리고 십여 장을 격하고 노국장의 인원이 자리했다.
수백 대 십여 명 남짓한 대치였다.
그리고 좌측에는 중도를 표방하던 세 방파의 무리가 모여 있었다.
“자! 언제까지 나를 기다리게 할 셈이더냐? 세의 우열을 목격하니 두려운 게냐?”
“법규.”
“그래, 네가 무기로 삼은 그 법규가 무엇이더냐?”
남천휘가 외쳤다.
“법규! 법규! 법규! 법규! 신공부의 뿌리이자, 뼈대인 법규에 의거하여 공문십철에게 묻겠다!”
공문십철의 수뇌부는 된서리라도 맞을까 우려하며 남천휘를 바라봤다.
천라쌍익은 그 모습조차 불쾌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버릇없는 후기지수라 여겼다.
한데 저들은 어느 순간부터 남천휘를 공문십철과 대등한 존재로 인정한 듯했다.
‘쯧, 여기서 남추의 이름이 튀어나올 줄이야.’
하나 개파지론에서 언급했던 팔진(八眞) 남추가 곡부남가의 시조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애초에 전진교의 교조인 왕중양은 일곱 명의 제자를 거둬 칠진이라 칭했다. 그렇기에 개파지론을 읽으면서도 팔진이란 가상의 존재일 것이라 여기지 않았던가.
옛 이야기라고 해서 무시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이번 일만 끝내면 가장 먼저 곡부남가를 강호에서 없애버릴 것이야!’
천라쌍익 공후탄이 살기를 가다듬는 사이에 마침내 남천휘의 입이 열렸다.
“신공부의 법규를 제정한 공막이 이르길 유자의 신념은 천년노송과 같고, 한설적매와 마찬가지라 했다.”
크하, 문구 좋고!
천년노송(千年老松)에 한설적매(寒雪赤梅)라.
이러다 시도 지을 수 있겠는 걸?
“하여 끝끝내 굽힐 수 없는 의지가 있다면 공문십철의 다른 아홉을 설득하라 하였다.”
수뇌부들은 서로를 보며 영문 모를 표정을 지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할 뿐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법규(法規)였다.
반면 신공부주의 얼굴에는 한설이라도 내린 것처럼 서늘한 기세가 느껴졌다. 서늘함은 당장이라도 살기로 변하여 남천휘를 갈가리 찢어발길 것처럼 날카로웠다.
‘설마 광목재사의 열 번 째 계획인가?’
아니나다를까 남천휘는 그 어느 때보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하나 신공부 역시 강호에 속했으니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칼을 들어 증명해야 할 것이다.”
수뇌부들의 웅성거림이 짙어졌다.
법규를 제정한 공막은 뼛속까지 유가의 교리를 따르던 유자가 아니던가.
한데 그가 칼을 들라 했다니 놀라는 것이 당연했다.
남천휘의 이어진 말이 그들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정녕 유자가 세운 신념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면 칼을 맞댈 뿐 누구도 피를 보려 하지 않으리라!”
그제야 수뇌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막이 이러한 법규를 만든 까닭은 무가의 흉내를 내야 한다는 압박 때문이었으리라. 그렇기에 요식 행위나 다름없는 법규를 만들어 놓았을 터였다.
“나는 오늘 그 법규에 의거하여 승천문의 퇴출을 공문십철에게 묻고자 한다!”
수뇌부의 눈매가 불쾌함이 드리워진다.
이것은 요식행위가 아니다.
공문십철 중 신공부주의 뜻을 거역할 자가 몇이나 될까. 결국 생사를 염두에 두고 싸워야 하는 혈전을 예고한 셈이다.
수뇌부들이 어느 쪽에 붙을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보라.
신공부주 좌우에는 천라쌍익과 천위검호가 호위처럼 서있지 않은가. 애초에 계란으로 바위치기였고, 사마귀가 수레를 막아선 꼴이다.
‘정녕 신공부주와 척을 지려 함인가?’
‘아니면 적당히 거래를 하여 이득을 얻어내려는 것인가?’
신공부주는 남천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쯧쯧, 어리석은 놈. 방자한 놈. 광목재사의 열 번째 계획을 내가 몰랐을 성 싶더냐? 힘으로 억누르려 했다면 수 년 전 신공부를 일통했으리라. 하나 그렇게 되면 천하의 유자를 등지게 된다. 나는 방향을 틀 뿐, 길 밖으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어. 유가의 껍데기만큼 훌륭한 명분이 어디 있을까? 하나 너는 그것을 모르는 구나. 어린놈이 잔망스럽게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지.’
그는 남천휘를 어떻게 요리할지 잠시 생각했다.
한데 그 순간 남천휘의 일갈이 광풍을 타고 광명정 전체에 쩌렁쩌렁 울렸다.
“쫄리면 뒈지시던가.”
신공부주는 웃었다.
무공을 익힌 자라면 본능적으로 깨달았으리라.
살기가 충천했음을.
‘그래, 차라리 잘 됐다. 어차피 무가로의 새출발은 결정된 것이나 다름 없지 않은가.’
이 기회를 활용하여 신공부의 무위를 자랑하고자 했다. 겸사겸사 노국장주의 일가까지 처리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리라.
신공부주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수하가 황급히 대전 안으로 향했다.
잠시 후 그가 상석에 놓여 있던 의자를 꺼내왔다.
신공부주는 고풍스러운 의자에 비스듬히 누운 채 한 마디를 건넸다.
“어디 네 신념이 얼마나 강한지 보자꾸나.”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공문십철의 무리에서 한 명의 청년이 뛰쳐나왔다.
공문십철 중 초림당(楚林堂)의 장제자 이명방이었다.
그는 나이 제한에 걸려 용봉쟁투에 참석할 수 없었던 후기지수 중 한 명이다. 그러니 남천휘가 용봉쟁투를 통해 귀협이라는 별호를 얻었을 때 얼마나 배가 아팠을까.
“네 이 놈! 작은 명성을 얻었다고 눈에 뵈는 게 없더냐!”
이명방은 장검을 휘돌리며 접근했다.
두 다리가 보이지 않을 만큼 현란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장검에 빛이 어렸다. 검기가 번뜩이는 순간 장검의 끝이 남천휘의 가슴으로 쇄도했다.
쇄애애액!
남천휘는 여전히 신공부주를 응시하다가 가볍게 상체를 비틀었다. 어깨를 젖히는 순간 검기가 드리워진 검이 스쳐갔다. 그리고 남천휘는 어깨를 젖힌 것보다 빠르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애들은 빠져!”
그 순간 남천휘의 주먹이 이명방의 안면에 꽂혀들었다.
빠각!
정면으로 후려친 주먹을 아래로 끌어내리는 순간 이명방은 뒤로 튕겨나가는 대신 머리부터 땅바닥에 내리꽂혔다.
뻑!
그래도 간헐적으로 꿈틀거리는 것으로 보아 절명한 건 아닌 듯했다.
남천휘는 초림당주를 보며 물었다.
“아직 시작이라고 안 했는데 재도전하시겠습니까?”
초림당주는 전광석화처럼 펼쳐진 박투를 떠올리며 헛기침을 했다.
“크흠! 크흠! 크흠!”
남천휘는 이명방의 뒷목을 잡은 채 초림당주에게 집어던졌다. 그는 여전히 신공부주를 응시한 채 크게 한 걸음 내딛었다.
그걸로 끝이다.
분명 다음 상대를 기다린다는 무언의 시위였다.
물론 무언의 시위 와중에도 적선단과 벽선단을 복용하여 능력 수치를 조절했다.
한데 다음 상대는 예상 외로 중도 세력에서 나왔다.
“나는 청유서원의 불계산이라 하네.”
조금 전과 달리 눈빛에 힘이 가득했다.
‘어쩌면…….’
불계산은 허리에 세검(細劍)을 차고 있음에도 뽑지 않았다. 그저 무방비한 상태로 다가와 남천휘 앞에 자리했다.
그가 손을 편 채로 내밀었다.
남천휘 역시 손을 펴고 그의 손등에 자신의 손등을 가져다 댔다.
그 때 불계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졌네. 그대의 신념을 알지 못하나, 그대의 말은 고여 있던 내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네.”
남천휘는 예를 갖춰 손을 모았다.
“감사합니다.”
불계산은 노국장주에게 눈인사를 한 후 자리로 향했다.
“자네, 지금 무엇하는 겐가?”
“유자로서 응대했을 뿐이외다.”
신공부에서 유자라는 말만큼 전가의 보도가 어디 있으랴. 불계산을 몰아붙이던 중년인은 앓는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남천휘는 잊고 있던 것을 떠올린 듯 몸을 돌렸다. 곧장 외조부인 노국장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불계산이 그랬던 것처럼 손을 내밀었다.
노국장주는 노구를 무릅쓰고 몸을 일으켰다.
손등을 맞대는 순간 담담한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네가 그 누구의 예상보다 대견하게 컸지만, 나로서는 미안할 따름이다.”
“아닙니다.”
“옳고, 곧은 것을 전해야 하는 것이 어른의 사명이다. 그렇지 못한 것을 다시 한 번 사과한다. 그리고 부탁한다.”
노국장주는 손을 모은 채 외손주에게 고개를 숙였다.
남천휘는 돌아섰다.
‘외조부에게 인사까지 받았는데…….’
실패하면 패륜아라고 지탄받을 것이 분명했다.
그는 불계산과 마주했던 자리에 선 후 크게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 순간 천라쌍익이 코웃음을 치더니 계단을 내려오려 했다.
그 때 남천휘가 검지를 펴고 좌우로 흔들었다.
“당신은 나중에 합시다.”
공후탄은 조소를 흘렸다.
“클클, 왜 내가 두려우냐?”
남천휘는 손가락을 튕겨 육포를 소환했다.
육포를 질겅이는 가운데 대수롭지 않은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맛있는 건 나중에 먹어야지.”
그것도 먹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더더욱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남천휘는 시야 상단에 떠있는 ‘중간보스’의 두 번째 단계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 일곱 남았네.’
그리고 정확히 일각 후 네 번의 비명이 이어졌을 무렵 퀘스트 목록의 수치는 다음과 같았다.
《1-6-2, 장무기무기(壯武起武技)》
- 노국장주의 생존.(1/1)
- 공문십철의 대표를 모두 쓰러트리시오.(7/10)
- 성공 시 3단계 봉인이 자동으로 해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