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147화 (147/305)

68, 난입은 두 번째가 진짜! (2)

천응검후(天鷹劍后)의 낯빛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신공부주의 노골적인 무시에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 것이다. 용화수주공은 불가에 기반을 둔 상승심법이 아니던가.

그녀는 용화수주공을 높은 경지까지 수련했음에도 감정의 동요를 숨기지 못했다. 그만큼 쌓인 것이 많았다는 뜻이다. 그녀가 참다못해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려는 순간 창밖에서 청명한 울음이 들려왔다.

삐이이이이-

천응검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비응(飛鷹)이 그녀를 다독이듯 울어재꼈다. 게다가 때마침 열린 문을 통해 천수련까지 등장했다.

검후는 놀랍게도 한순간 평정을 되찾았다.

제자와 미물 앞에서 못난 꼴을 보일 수는 없지 않은가.

‘후우.’

그녀는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대꾸했다.

“신공부주의 호의, 감사히 받겠소.”

그 말은 곧 참관과 공증을 책임지겠다는 뜻이다.

이쯤 되니 난감한 건 신공부주였다.

당금 강호에서 검후의 위치가 어중간하다는 건 만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그녀를 자극하여 뛰쳐나가게 만들 속셈이었다.

‘쯧, 귀찮게 됐군.’

어차피 신공부의 변화는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저 검후라는 존재가 지근거리에 있는 게 꺼림칙할 따름이다.

이렇게 된 이상 속전속결이다.

“노국장주는 신공부를 떠나시오.”

“불가하오!”

신공부주가 눈을 가늘게 떴다.

“무력행사를 원하는 게요?”

“무가로 다시 태어난다고 해서 유가를 지우는 것은 아닐 터! 어찌 이리 무도한 언사를 계속 하는가?”

신공부주가 침묵을 지키는 사이 천라쌍익은 엉덩이를 들썩이는 듯했다. 명령만 떨어지면 당장이라도 노국장주의 목을 벨 기세였다.

그 때 검후가 나섰다.

“잠깐!”

신공부주가 눈을 가늘게 뜨는 사이 검후가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참관 자격으로 말하겠소. 조금 전에 말했듯 신공부의 설립은 보타암과도 관련이 있소. 현재 노국장은 신공부의 허락을 받고 터를 잡은 것이 아니외다. 공부 주변에 노국장이 들어섰을 뿐이오. 신공부의 설립은 그 후였지. 이 차이를 아시겠소?”

신공부는 공부와 공묘, 공림은 물론이고, 곡부 전체를 포함한다. 그러니 신공부가 노국장의 존폐를 결정할 자격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신공부주는 눈을 매섭게 뜨며 검후를 노려봤다.

“흐음, 그렇구려. 하나 신공부가 무가로 새롭게 시작됐으니 영역에 대한 조정은 필요하오. 노국장주가 원한다면 이전 비용과 정착할만한 땅을 알아보리다.”

쿵!

노국장주는 지팡이로 대전의 바닥을 찍으며 벌떡 일어났다.

“갈! 말도 안 되는 소리! 조상의 위패가 이곳에 있거늘 어찌 신공부의 마음대로 이전을 결정하는가!”

신공부주는 입꼬리를 올렸다.

“좋소. 그럼 이 또한 거수로 결정합시다.”

검후는 발끈하여 나서려는 제자의 손목을 잡아챘다.

[네가 나설 자리가 아니다.]

천수련은 애절한 눈빛으로 스승을 올려다봤다.

하나 검후는 오히려 천수련의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을 더했다. 명분이 저쪽에 있는 이상 섣부른 난동은 더 큰 피해를 부를 뿐이다.

[자칫 잘못하면 노국장이 화를 당할 수도 있어. 저 자는 능히 그럴 짓을 저지를만한 자다.]

천수련은 검후의 전음에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게 다 바보 똥개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제는 와도 안 바꿔줄 거야!’

평생 바보 똥개로 부를 테다.

천수련이 누군가를 원망하는 사이에도 거수는 진행됐다.

천위검호와 천라쌍익이 가장 먼저 손을 들었다.

그리고 신공부주를 따르는 수뇌도 동시에 거수했다.

이제 남은 건 중도를 표방하는 세 명의 수뇌와 노국장주만 남은 셈이다.

그 때 예기치 못한 방해꾼이 또 등장했다.

“잠깐! 잠깐! 멈춰. 가면 안 돼!”

신공부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신풍수사가 저 멀리서부터 똥마려운 표정으로 달려오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앞에 있던 자가 번뜩이는가 싶더니 대전 안에 발을 들였다.

“귀협.”

신공부 2차 난입자를 확인하는 순간 표정을 구겼다.

남천휘가 양 허리에 손을 얹은 채 으스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귀협이고 부르지 마세요.”

“그건 무슨 소리더냐?”

남천휘는 히죽 웃었다.

“당신이 억지로 만들어서 퍼트린 별호는 필요 없습니다. 나는 호도다! 지키는 도, 호도!”

신공부주가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 때 잠자코 있던 재이가 알림을 울렸다.

◎ 별호 ‘귀협’을 삭제하시겠습니까?(y/n)

※ 용봉삼협의 버프도 함께 삭제됩니다.

아니야! 이 멍청아.

남천휘는 으스대는 듯한 표정과 달리 다급히 재이를 만류했다.

‘허장성세도 모르냐? 그냥 하는 말이잖아!’

남천휘는 입꼬리를 올렸다.

어쨌든 모든 준비가 끝났다.

‘오늘 둘 중 한 명은 곡부를 떠나야 할 것이야!’

*

신공부주의 주름진 미간은 펴질 줄을 모른다.

검후의 난입보다 남천휘의 등장이 더욱 불쾌했다.

놈이 어떻게 광명정까지 뚫고 올라왔단 말인가.

아니, 그보다 유운림에 있어야 할 존재가 어째서 눈앞에 나타난 것일까?

무엇보다 녀석의 능글맞은 표정이 거슬렸다.

또한 좌우에서 투기를 드러내는 천라쌍익과 천위검호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황보세가와 자웅을 겨뤄야 할 자들이 꼴사납게 뭐하는 짓이란 말인가.

“하아.”

한순간 짜증이 밀려왔다.

이미 거수를 끝내고 신공부의 새 출발을 알려야 할 시기였다.

“호도, 호도라고? 우스운 별호군. 그래, 자네가 뭘 지킬 수 있는가?”

한데 남천휘는 검지를 펴고 좌우로 흔들었다.

“내가 뭘 지킬 것인가 보다 뭘 할 수 있는가를 궁금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방자하구나.”

“그 정도 자격은 있지.”

남천휘는 그냥 내뱉은 말이지만, 신공부주로서는 묘한 위화감에 휩싸였다. 마치 자신과 검후의 대화를 엿들은 사람처럼 반응했기 때문이다.

하나 잡념은 금세 털어버렸다.

“자격?”

남천휘는 대답 대신 품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신공부주는 남천휘가 탁자에 내려놓은 서책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개파지론.’

저것은 신공부를 설립할 당시의 기록이 수록된 서책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기 위해 요처마다 한 권씩 비치해두지 않았던가.

“이 안에 자격이 있다는 건가?”

남천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유운림에서 얻은 건 비단 공평의 서책만이 아니었다. 전대 신공부주인 공평은 유가의 전통을 잊지 않기 위하여 죽는 그 날까지 신공부의 역사를 정리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남추의 기록을 찾아낼 수 있었다.

‘몽산의 VR이 이렇게 연결이 되네.’

이미 히든 퀘스트를 통해 공야청에게 전한 비천무상도가 비격진천도로 변질됐음을 확인하지 않았던가.

한데 비격진천도를 익힌 자가 신공부주와 승천무주였다. 그 말은 곧 공야청 또한 공부의 중요인물이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계보까지 살폈다.

그 결과가 남천휘의 입을 통해 드러났다.

“초대 신공부주였던 공야수의 친제, 공야청을 기억하십니까? 각지에서 신공부를 위해 무공을 모았지만, 공야청이 전한 쌍도법은 승천문의 기틀이 되었지요.”

신공부주는 여전히 마뜩찮은 표정을 유지했다.

“네 놈이 승천문의 역사에 큰 관심을 가졌을 줄은 몰랐구나.”

자!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우리 집안 무공을 배워갔으니 어떻게 써먹는지 신경 쓰는 것이 당연하잖습니까.”

신공부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금껏 건방진 후기지수의 난장으로 여겼던 공문십철의 수뇌부는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쾅!

천라쌍익 공후탄은 대뜸 쌍도를 뽑고 달려들었다.

“네 놈의 목에 금테라도 둘렀더냐? 오늘 이 자리에서 네 놈의 요망한 혀를 뽑아버려야겠구나!”

평소였다면 200레벨을 넘긴 고수의 일갈에 긴장 정도는 했으리라.

하나 이 자리에는 중재자가 존재했다.

“멈추세요!”

동시에 검후의 신형이 잔영을 남기듯 현란하게 흩어지더니 원탁을 넘었다. 동시에 그녀의 고검(古劍)이 순백의 나신을 드러내며 쌍도를 두드렸다.

따다다다다당!

두 사람은 적당한 거리를 물러섰다.

어차피 서로를 인지하는 순간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검후는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씩씩거리는 공후탄을 뒤로 한 채 신공부주를 응시했다.

그녀의 입가에는 호기심 가득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저는 저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싶군요.”

신공부주는 자신이 뱉은 말로 인해 침묵해야 했다.

그녀에게 참관과 공증을 맡긴 건 그였기 때문이다.

“검후, 선을 넘지 마십시오.”

검후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원탁은 넘어도 선은 넘지 않습니다.”

신공부주는 검후의 농을 듣는 순간 주도권이 넘어갔음을 인정해야 했다.

반면 남천휘는 검후라는 말에 천수련을 돌아봤다.

그녀는 마치 아이들 싸움에 어른을 불러온 녀석처럼 코를 치켜세운 채 으스대는 것이 아닌가.

‘왜 저래?’

하나 지금부터 개똥이에게 일 푼의 관심도 주지 않겠다.

오늘은 신공부주의 몰락에 전력을 기울일 셈이다.

“신공부주께 묻겠습니다. 공 선배께서 비격진천도를 어찌 얻으셨다고 하던가요?”

“흥! 이미 개파지론에서 보지 않았더냐.”

남천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공 선배는 당시 전진교의 교리에 심취하여 교조의 아래 지위까지 오르셨다고 하더군요. 그러던 중 지우였던 팔진에게 쌍도법을 익히셨다지요?”

“그렇다.”

신공부주의 시큰둥한 한 마디에 남천휘는 어깨를 활짝 펴고 자랑스럽게 외쳤다.

“그 팔진이 바로 곡부남가의 시조이신 백파도입니다.”

그 순간 어디선가 비명이 들려왔다.

“진짜?”

남천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대전 밖에 있던 남운군이 남천휘의 일장연설을 듣다가 탄성을 흘린 게다.

‘아! 아버지.’

심지어 어머니는 놀랍다는 듯 아버지의 팔을 흔들며 물었다.

“진짜 비격진천도가 곡부남가의 무공이에요?”

남운군이 할 수 있는 건 뒤통수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는 것이 전부였다.

남천휘는 분위기가 더 어수선해지기 전에 물었다.

“팔진의 존성대명을 모르지는 않겠지요?”

신공부주는 침묵했다.

행여 자신의 한 마디가 몰고 올 파장을 우려한 것이다. 하나 그가 입을 다물고 있을수록 공문십철의 수뇌부는 숨을 죽였다.

게다가 대전의 문이 열려 있던 탓에 광명정 곳곳에 흩어져 있어야 할 무인들이 죄다 몰려왔다.

남천휘는 수백 명의 시선이 뒤통수에 꽂혀드는 것을 즐기며 말했다.

“남, 추.”

“틀립니까?”

신공부주는 가타부타 대꾸하지 않았다.

어차피 개파지론을 펴는 순간 진위 여부가 확인될 터였다.

‘빌어먹을! 뭐가 어디서부터 꼬인 거야?’

남천휘는 신공부주가 침묵하는 사이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이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곡부남가와 승천문, 즉 신공부가 남이 아님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이제 와서 무공을 가르쳐 준 대가를 치르라거나, 은혜를 갚으라고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것이야 말로! 조상들이 우리에 남겨준 유산을 더럽히는 짓이 아니겠습니까?”

어투가 묘했다.

비천무상도와 비격진천도의 이야기를 하는 듯하나, 결론은 유가를 등진 신공부주를 조롱하는 내용이 아닌가.

“크흑! 네 놈이 이렇게 난장을 피우는 이유가 무엇이더냐? 무엇을 원하는 게냐?”

남천휘는 신공부주의 악행을 만천하에 고하려 했다.

하나 이 자리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늘어놓는다고 해서 믿을 사람이 있을까 싶다. 신공부주는 최소한 곡부 내에서는 살아 있는 공자 취급을 받지 않던가.

결국 신공부주를 구름 위에서 진흙탕으로 끌어내려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광목재사의 비급을 필요로 하지 않았던가.

“나는 승천문의 퇴출을 건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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