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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만렙지존-143화 (143/305)

67, 신공부 탈출. (3)

마치 다른 사람과 마주한 듯한 기분.

하지만 공태령의 활기찬 모습이 싫지는 않았다.

앉으나, 서나 피곤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것보다야 낫지 않은가. 저런 녀석과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 멀쩡하던 몸이 비명을 지를 터였다.

무엇보다 땅굴이 반가웠다.

“탈출하면 뭘 할 건데?”

남천휘의 말에 공태령은 갑자기 꿈이라도 꾸는 사람처럼 몽롱한 눈빛을 보였다.

“저는……. 잘 겁니다.”

에라이! 똥물에 빠져도 피곤하다고 드러누울 놈아.

원대한 꿈은 바라지도 않았다.

하나 조부와 자신을 유운림에 가둔 신공부주에 대한 복수라도 할 줄 알았다.

공태령은 남천휘의 표정을 보더니 입꼬리를 올렸다.

“이곳을 빠져나가면 저는 자유롭습니다.”

“그러냐?”

시큰둥한 대꾸에 들뜬 한 마디가 돌아왔다.

“그가 마침내 저를 죽이려 했고, 저는 자력으로 탈출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혈육의 연도 끊어졌다고 봐야지요. 그럼 저는 공후탁이나 공태령과 같은 공가가 아니게 됩니다. 처음으로 내가 나로 살 수 있게 된 겁니다. 나는 나로 살 겁니다. 그 첫 걸음은 진정한 숙면이 되겠지요.”

지랄하고 있네.

개소리를 저렇게 늘려서 하는 것도 공자의 후손이라는 증표일 터였다.

남천휘는 관심을 끊었다.

하긴 공태령의 본명이 무엇이든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던 사이였다. 그러니 그가 이곳을 탈출하여 뭘 하든 무슨 상관일까 싶었다.

“푹 자고 일어나면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을 겁니다. 풍광 좋은 곳에 가서 술도 마실 거예요. 그러다 마음에 드는 장소를 발견하면 초옥이나 한 채 지어놓고 노래나 부르면서 살 겁니다.”

네, 네. 그러세요.

남천휘는 공태령의 말을 한 귀로 흘리다가 눈을 끔뻑였다.

“야! 그럼 은거라도 하겠다는 거야?”

공태령은 히죽 웃더니 냇가로 향했다.

그러더니 표주박에 찬 물을 한가득 떠온 후 내미는 것이 아닌가.

“정답입니다.”

“이건 뭔데? 상이냐.”

“네.”

남천휘는 헛웃음을 지었다.

사람이 바뀌어도 너무 변했다.

마치 다른 사람 같은 공태령이 건넨 냉수를 받아 마셨다.

시원했다.

“무인으로 살지는 않겠다는 거군.”

“억지로 익힌 무공이었고, 억지로 만들어낸 협의였습니다. 제 것이 아니니 굳이 끼고 살고 싶지 않네요. 혹시 모르지요. 계기라도 생긴다면 다시 도를 쥘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젊은 나이에 은거라.

모든 강호인이 특급 강호인이나 절대지경을 꿈꾸는 것은 아니리라. 그렇다고 신공부주의 죄를 공태령에게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이십 년 간 억압받던 이가 자유를 찾아 떠나겠다는 걸 어찌 막을 수 있으랴.

남천휘는 웃었다.

‘경쟁자 한 명 탈락.’

재이와 함께라면 특급 강호인은 꿈이 아니다.

그러나 억지로 익힌 무공으로 저 정도의 레벨을 달성한 놈이라면 없어져주는 게 감사할 따름이지.

남천휘는 공태령의 머리 위를 힐끔 바라봤다.

레벨만 154였다.

지금까지 그가 본 무인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고 레벨이다. 게다가 협의의 상징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협행을 이뤘겠는가.

아마 능력 수치도 동 레벨 이상일 것이다.

남천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야.’

공태령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어디 가?”

“땅 파러 가야지요.”

잘 생긴 놈이 있는 힘껏 웃는 모습이란 참으로 얄미웠다. 저 정도 외모라면 상위 5%안에 들지 않을까 싶다.

남천휘는 질투심을 뒤로 한 채 물었다.

“그래, 얼마나 더 파면 될 것 같아?”

공태령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요. 할아버지의 유서에 따르면 태산의 지류 쪽으로 향한다고 했으니…….”

야, 갑자기 웬 태산이야.

표정만 보면 오늘 당장이라도 파고 나갈 것처럼 신나했잖아.

“한 삼백 장?”

아, 진짜 육성으로 욕할 뻔했다.

범인(凡人)이 크게 한 발을 뻗으면 반 장 정도 나아간다. 그러니 앞으로 육백 보(步)를 더 파야 탈출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

“지금까지 얼마나 팠는데?”

“조부께서 오십 장 정도. 제가 십 장 정도 팠지요.”

그럼 이제 시작한 거잖아!

생각해보니 그도 그럴만 했다.

공태령의 조부는 무인이 아니라 유자였다.

강호는 평화롭고, 정파의 세상이 아니던가.

그러니 당시 신공부의 수장은 무력이 아니라 인망으로 뽑히던 시기였다. 게다가 자식에게 갇혔다면 수저를 들 힘도 없는 노인이었겠지.

오히려 오십 장을 팠다는 것 자체가 존경스러웠다.

“새끼야! 그분은 그렇다 치고, 너는 왜 십장인데?”

결국 험한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

하나 공태령은 대수롭지 않게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래, 너 점혈 당했지.

가뜩이나 호리호리한 체구에 허여멀건 한 녀석이 아니던가. 점혈 당한 상태에서 십 장이나 판 게 용하기는 하다.

“차라리 내가 파는 게 낫겠어!”

“땅굴 팔 줄 아십니까?”

남천휘는 고개를 내저었다.

공태령은 그 순간 슬쩍 고개를 돌리더니 혀를 찼다.

일견하기에도 한심하다는 표정이 아닌가.

저 놈, 본성이 드러날수록 정상이 아닌 듯했다.

‘개똥이는 약과였어. 개똥이가 정상처럼 느껴질 줄이야.’

남천휘는 호승심에 재이를 닦달했다.

‘땅굴 파는 특기는 없냐?’

◎ 땅을 파시다보면 특기가 활성화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겠지.

대신 중간에 자칫 잘못해서 매몰이라도 되면 시스템은 당연히 책임지지 않을 터였다.

남천휘는 장비를 챙기는 공태령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야, 점혈을 풀면 더 빠르겠지?”

“당연하지요. 하나 귀협은 아직 땅을 팔 자격이 없어요. 토지신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파고, 다지고, 밀어내는 일련의 과정이…….”

차라리 피곤하다고 투덜거릴 때가 나았다.

남천휘는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며 공태령을 잡아끌었다. 무공이 금제당한 녀석은 잡아당기는 대로 펄럭거리며 딸려왔다.

“왜 이러십니까?”

녀석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아무래도 점혈의 폐해가 꽤 심각한 듯했다.

남천휘는 공태령을 평상에 눕혔다.

녀석은 불안한 눈빛을 숨기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신공부주는 노국장과 곡부남가를 위험하게 만든 주적이 아닌가. 제아무리 자신이 핏줄을 부정한다고 해서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남천휘는 형형한 눈빛으로 공태령의 위아래를 훑어봤다.

해혈(解穴)을 하자.

본래 점혈이란 인체의 주요 혈도를 강제로 짓누르는 방식이다. 이 또한 심법과 마찬가지로 점혈법마다 누르는 요혈이 달랐고, 순서가 상이했다.

한 마디로 금제한 사람만 풀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어디에서나 제 3의 방법이 존재했다.

순후한 내력으로 일거에 혈도를 뚫어버리면 점혈법도 무의미할 터였다.

‘그래서 제 4의 방법으로 간다!’

남천휘는 천하제일의 고수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해혈하는 것이 가능했다.

혈인도(穴人圖).

인체의 혈도를 모형처럼 시각화하여 보여주는 공능을 익히지 않았던가.

‘스승과 자격증은 없지만…….’

대신 S급 특기인 의술을 지녔다.

게다가 3레벨이다.

이쯤 되면 어지간한 의원보다 낫지 않을까 싶다.

그런 남천휘의 결의가 느껴진 것일까.

공태령은 근심 가득한 어조로 물었다.

“왜 이러세요?”

하나 남천휘는 자신만의 상념을 이어갔다.

‘그러고 보니 날 잡아서 천성혈법도 수련을 해야 할 텐데…….’

천성혈법에는 단양자의 침구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심지어 무공의 가치는 비천무상도와 오행군림보를 뛰어넘는 3500이 아니던가. 하나 요즘만큼 바쁜 시기에 한가로이 의술을 수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후우.”

쉬고 싶다.

◎ 대상자의 기간 대비 성장…….

“닥쳐! 재이나.”

아! 오랜만에 녀석의 본명을 불러버렸다.

재이라고 할 때에는 옆집 말썽쟁이 같았건만, 재이나라고 하니 뭔가 우월한 존재를 대하는 듯했다.

‘어쨌든 닥쳐.’

기간 대비 성장 예정치는 개나 주라고.

지금은 공태령을 설득해서 혈인도를 띄우는 것이 먼저였다.

‘그런데 너 눈빛이 왜 이러냐?’

남천휘는 몸을 웅크린 채 자신을 흘겨보는 공태령을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혈인도는 대상자와 친밀한 관계일 것을 전제조건으로 삼았다. 이건 뭐 적대감을 넘어 파렴치한으로 보는 듯하지 않은가.

결국 어색한 침묵 이후에야 한 마디를 건넬 수 있었다.

“해혈하자.”

공태령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할 수 있습니까?”

억지로 무공을 배웠다면서 해혈이라는 한 마디에 투기가 흘러넘쳤다. 아마 이곳을 탈출하더라도 은거 기간이 길지는 않을 듯했다.

“당연히 할 수 있지.”

“어떻게요?”

그러게 말이다.

친밀 이상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혈인도라도 띄워야 뭐가…….’

남천휘는 눈을 끔뻑였다.

혈인도를 읊조리는 순간 누워 있는 공태령의 외형을 따라 선이 나타났다. 그리고 공태령의 외형을 빼다 박은 인체의 모형도가 등장했다.

남천휘는 헛웃음을 지었다.

“아, 우리가 친밀한 관계였구나.”

공태령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제 입장에서는 어차피 아는 사람이 몇 되지 않거든요. 어디 가서 저와 친밀하다고 하셔도 됩니다.”

그건 됐고요.

남천휘는 공태령의 말을 귓등으로 흘린 채 모형도를 응시했다.

‘어디 보자?’

공태령의 내부에는 수많은 점과 선이 그어졌다. 그가 호흡을 할 때마다 이름 모를 혈도와 혈맥이 현란하게 반응했다.

청색은 정상, 적색은 비정상이다.

공태령의 내부에는 여섯 곳의 적색이 발견됐다.

“혈도 여섯 곳을 찍혔어?”

남천휘의 물음에 공태령을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걸 어찌 아셨습니까?”

“후훗, 내가 이래봬도 의술 3레벨이야.”

공태령이 영문 모를 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남천휘는 침음을 흘렸다.

붉은 색의 농도로 혈도에 가해진 힘을 추정하는 것이 가능했다. 역시 문제는 여섯 곳의 혈도를 점혈한 순서였다.

“점혈된 순서를 알아?”

공태령은 쓴웃음을 지었다.

“천위검호는 강하더군요. 그에게 첫 혈도를 찍히는 순간부터 반응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 남천휘는 반색했다.

어찌됐든 첫 번째 혈도는 해결이 된 셈이다.

“어디였지?”

그 순간 공태령은 슬쩍 얼굴을 붉히더니 헛기침을 했다.

남천휘는 공태령 답지 않은 모습에 미간을 좁혔다.

혈인도를 계속 띄워놓는 건 어렵지 않다

다만 공태령의 상태가 변할 때마다 내부의 혈도와 혈맥은 눈이 아플 만큼 현란하게 반응했다.

“눈 아파. 어딘데?”

남천휘의 재촉에 공태령은 슬그머니 가슴 사이를 가리켰다.

“여기.”

“아! 옥당혈이네.”

옥당혈(玉堂穴)은 기경팔맥 중에서도 임맥의 기가 모이는 요혈이다. 그러니 제아무리 공태령이라고 해도 쉬이 제압당했으리라.

남천휘는 혈인도와 공태령을 한 눈에 담은 채 손가락을 뻗었다. 하나 점혈당한 공태령은 남천휘의 손가락이 가슴에 꽂혀드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 전부였다.

“엇.”

남천휘가 옥당혈을 찌르는 순간 정순한 내력이 스며들었다. 곧이어 다섯 곳의 혈도를 빠른 속도로 타격했다.

타타타타탁!

점혈법은 강도와 속도, 순서 중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 없다.

하나 남천휘는 혈인도 내의 변화를 눈으로 지켜보는 상태였다. 그렇기에 생면부지인 천위검호의 점혈법을 흉내 내는 것이 가능했다.

“흠, 어때?”

공태령은 고개를 숙였다.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 몇 번 더 하다보면 풀릴 거야.”

남천휘의 말에 공태령이 뒤늦게 고개를 들었다.

“또 만진다고요?”

하나 남천휘의 손가락은 이미 공태령의 상반신을 두드리는 중이다. 가슴 사이, 옆구리, 엉덩이 위쪽, 그리고 하복부까지 이어지는 여섯 번의 손놀림이 이어질 때마다 공태령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임마! 가만히 있어. 움직이면 혈도를 제대로 찍을 수 없잖아.”

“네, 네!”

그리고 마침내 기적처럼 혈도가 풀렸다.

“됐다!”

남천휘가 만세를 부르는 사이 공태령은 잰걸음으로 움직였다.

“어디 가?”

“굴 파러 갑니다.”

“벌써 가? 좀 쉬었다 가지. 아니면 같이 가던가.”

하나 공태령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한 명 밖에 못 들어갑니다. 안에 땅 파는 방법에 대한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을 보시든, 조부께서 남기신 것을 보시던 하세요.”

그러더니 경공까지 펼치며 땅굴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남천휘는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자식, 사내 좋아하는 버릇은 못 버렸구만.”

뒤늦게 초옥으로 향했다.

유생(儒生)의 처소였기 때문일까.

초옥의 벽면에는 서책이 가득했고, 바닥에도 낡은 책이 가득했다.

하나 남천휘는 서가의 한복판에 꽂혀 있는 책을 보며 눈을 끔뻑였다.

“어, 이거 뭐냐?”

마치 자신을 뽑아달라는 듯 빛나고 있지 않은가.

남천휘는 뭐에 홀린 사람처럼 서책을 뽑았다.

그리고 첫 장을 넘기자마자 탄성을 흘렸다.

“허, 이걸 여기서 찾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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