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140화 (140/305)

66, 대도(大盜). (2)

남천휘는 한 숨과 함께 천수련을 돌아봤다.

한데 그녀는 공을 던져주길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부담스럽게 왜 이래?

“안 돌아가요?”

어째 가지 않기를 바라는 듯하다.

남천휘는 검지로 천수련의 이마를 슬쩍 밀어낸 후 말했다.

“너 혼자 가야겠다.”

“왜요?”

“가야 할 곳이 있어.”

천수련은 풀죽은 아이처럼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저도 함께 갈게요.”

그건 안 되지.

이 몸은 지금부터 신공부를 털러 갈 사람이거든.

“아니야. 혼자 가는 편이 나아. 돌아가서 정리 좀 부탁해. 그리고 광목재사의 일은 당분간 비밀로 하자. 어르신들이 알면 걱정하실 거야. 그리고 신공부에서 노국장을 습격한 것도 일부러 알릴 필요는 없어.”

남천휘의 말에 천수련은 미간을 좁혔다.

“그건 왜요? 당장 신공부주의 만행을 알려야지요!”

“그걸 누가 믿는데?”

천수련은 말을 잇지 못했다.

“소림승도 산동 곡부에서는 어깨를 못 편다는 말이 있잖아. 신공부주는 사람들에게 공자의 환생처럼 대접받는다고. 섣불리 건드렸다가 역풍이라도 맞으면 노국장의 저의를 의심받을 거야.”

남천휘의 단호한 한 마디에 천수련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알았어요. 시신은 제가 처리할게요.”

생각해보니 미안하네.

천수련은 지금도 피투성이였다.

물론 그녀의 피가 아닐지라도 역한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힘든 일을 부탁해서 미안해.”

남천휘의 말에 천수련은 도리질을 쳤다.

“괜찮아요. 저 많이 해봤어요.”

안쓰럽던 마음이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어린 그녀가 뭘 어찌 하고 살았으면 시신을 처리하는 것이 능숙하단 말인가.

“하하하, 그래? 그렇구나.”

천수련은 남천휘를 떠밀 듯 손을 내저었다.

“가 봐요.”

“미안해.”

남천휘의 어색한 사과였다.

하나 천수련은 당연하다는 듯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남 소협은 괜한 일로 남을 괴롭히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러니 누군가를 위한 큰일을 하러 가는 거겠지요? 그러니 미안해하지마요. 그럼 그 누군가가 잘못된 것처럼 여겨지잖아요.”

남천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탄성을 흘렸다.

어디선가 날아온 날카로운 대침이 심장을 찌르는 것처럼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만약 자신이 미연시에 해당했다면 이런 알림이 울리지 않았을까 싶다.

- 미연시 3호의 호감도가 +30 상승했습니다.

그래, 30 정도는 오를 만큼 감동했다.

사기의 자객열전에서 말하듯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하여 죽는다고 하지 않던가.

‘내가 죽어주지는 못해도 지켜는 주마.’

남천휘는 히죽 웃다가 불현 듯 시야 상단의 퀘스트 제한 시간을 살폈다.

아, 개똥이와 말을 섞다가 얼마나 지난 거야!

미연시가 여전히 발동 중이라면 호감도가 하락했다고 할 만큼 당황스러웠다.

“알았어. 먼저 간다!”

천수련은 마치 먼 길 떠나는 서방을 배웅하듯 손을 흔들었다.

“조심히 다녀와요.”

남천휘는 콧잔등이 간질간질한 마음에 일부러 투덜거렸다

“그렇게 배웅하지 마. 놀러가는 거 아니야.”

서방님은 도둑질 하러 간다!

*

공자에 대한 흔적은 곡부에 집중적으로 퍼져 있다.

그 중 삼공(三公)이라 불리는 장소가 가장 유명했다.

공자의 무덤인 공림(孔林)과 공자의 사당인 공묘(孔廟), 그리고 공자의 저택이었던 공부다.

신공부는 공부를 포함하여 공림과 공묘까지 영역을 확장한지 오래였다. 그러니 문례당과 사례당, 공택고정을 비롯해 관천정과 수사서원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부지를 자랑했다.

곳곳에 공자의 유적이 남아 있으니 사시사철 시인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연말이었기에 들뜬 양민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축제를 벌였다.

사람이 많으면 숨어들기 좋겠다고?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저자를 포함하여 사방에 횃불이 가득했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까지 인산인해를 이뤘으니 보법을 펼치는 것이 불가능했다. 오히려 사람들을 비집고 나아가는 판국에 시간이 아까울 지경이다.

남천휘는 쉼 없이 투덜거렸다.

‘좀 비켜라! 얼씨구! 소매치기 주제에 누구를 노려봐? 아줌마, 기루 안 가요. 비키세요.’

신공부의 영역에 들어설 때까지는 거칠 것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른 걸음마다 벽선단을 먹었고, 숨이 찰 즈음에는 적선단을 복용했다.

그렇기에 예상보다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다.

하나 광목재사의 처소는 신공부 중에서 외인의 출입이 통제된 공부에 위치했다.

‘그래도 이제 슬슬 지붕이 보이네.’

동시에 사람들의 숫자도 눈에 띄게 줄었다.

제아무리 축제 분위기라고 해도 공부 앞에서 춤을 출 만큼 간담이 큰 자는 없을 터였다.

‘흐음.’

남천휘는 저자의 끝이라 할 수 있는 포목점에서 시간을 보냈다. 형형색색의 비단을 만지작거리면서도 눈은 신공부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이고! 공자의 안목이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이 비단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포목점 주인은 남천휘가 값 비싼 비단을 들출 때마다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경비가 교차되는 시간은 파악했고…….’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 무인을 찾아낼 차례였다. 일단 오감증폭제를 청각으로 사용했다. 세 번 연달아 증폭제를 사용하는 순간 온갖 잡다한 소리가 귀를 찔렀다.

‘집중! 집중!’

촉각의 방향을 담장 쪽으로 향하는 순간 묘한 소음이 연이어 들렸다.

남천휘는 포목점의 주인을 보며 히죽 웃었다.

주인은 구매의사를 밝힌 것이라 여겼는지 더욱 열성적으로 물품의 장점을 피력했다.

하나 그 사이 남천휘의 손은 신공부의 담장을 향해 육포 조각을 튕긴 후였다.

툭!

담장 너머로 날아간 육포가 나뭇가지에 적중했다.

하나 근처에 있던 무인만이 무슨 일인가 싶어 나무 주변을 살필 뿐이다.

‘그래, 외원의 담장부터 애들을 숨겨놓는 건 말이 안 되지.’

그랬다면 신공부에는 눈에 보이는 경계 무인 외에도 수백 명의 경계무인이 은신하고 있어야 할 터였다.

“걸쳐 볼 곳이 있나?”

포목점 주인은 눈을 끔뻑이며 남천휘와 비단을 번갈아봤다. 남천휘는 자신이 쥐고 있는 비단을 내려다보고는 탄성을 흘렸다.

‘아, 꽃무늬네.’

하나 이럴 때일수록 강하게 나가야 하는 법이다.

‘내 친구가 남색인데 여성 취향 정도는 괜찮잖아?’

남천휘는 슬쩍 신공부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저 안에는 그 녀석도 있을 터였다.

매 순간 피곤하다고 염불을 외는 녀석이니 분명 숙면을 취하고 있으리라.

그는 비단을 흔들며 포목점 주인에게 말했다.

“왜? 나는 걸쳐보면 안 되나?”

“아, 아닙니다. 공자께서 신수가 훤하시니 뭐든 잘 어울리실 겁니다.”

포목점 주인은 어색하게 웃으며 안쪽을 가리켰다.

“허허! 안채의 제 방에 동경이 있습니다. 문양, 아니 색을 한 번 맞춰 보시지요.”

남천휘는 비단 몇 포를 더 챙긴 후 포목점 주인에게 은자를 건넸다.

“천천히 입어볼 테니 함부로 들어오지 말게.”

포목점 주인은 은자를 챙긴 후 진저리를 쳤다.

‘쯧쯧, 내가 무슨 꼴을 당하려고 거기를 들어가겠소.’

잠시 후 야행의(夜行衣)를 걸친 남천휘가 포목점의 담을 넘어 사라졌다.

*

남은 시간은 이각(二刻).

하나 남천휘는 점차 조급함을 숨기지 못했다.

신공부는 초행이 아니던가.

반면 지도의 붉은 선은 직선으로 표시됐다. 그러니 건물이든, 벽이든 개의치 않고 일직선으로 나아가야 했다. 행여 길을 잃을까 싶어 다른 곳으로는 눈도 돌릴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속도는 당연히 느렸다.

이각이라고 해도 넉넉한 시간이 아니었다.

‘쯧, 조금만 친절하면 탈이라도 난다더냐?’

따지고 들자면 세상에서 가장 편한 도둑질이나 다름없을 터였다.

하나 남천휘가 어디 남의 사정을 따지던가.

그저 줄어드는 시간을 보며 울화통이 치밀 뿐이다.

‘금고에 별 것 없기만 해봐라.’

어차피 무적자가 된 이상 반드시 퀘스트를 수행해야 하는 신세도 아니지 않던가.

남천휘는 연방 투덜거리며 기다시피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도대체 언제 쉬냐?’

제아무리 적선단과 벽선단을 복용하고, 특기 불굴의 힘을 빌렸어도 정신적으로 지치는 건 막을 수 없는 듯했다.

힘들다기보다 귀찮음이 밀려왔다.

하나 잠입은 성공적이다.

자동으로 활성화되는 특기의 영향이었다.

‘얼추 다 온 듯한데…….’

집중이 상시 활성화됐고, 신안과 신속에 귀식까지 활용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위력을 보인 건 새로이 습득한 S급 특기 ‘통찰’이다. 경계 무인들의 반복되는 움직임을 살피며 다음 행보를 예상하며 움직이는 것이 가능했다.

한데 여전히 의아한 점은 무희의 발동이다.

‘꼭 그렇게 춤을 추듯 움직였어야 했냐?’

재이를 향해 투덜거리면서도 눈은 건물과 지도를 번갈아 살폈다.

제대로 찾아왔다.

하나 남천휘는 섣불리 발을 들이지 않았다.

신공부주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다던 광목재사의 처소였다. 한데 주변에는 쥐새끼 한 마리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조용했다.

‘살인멸구를 했을 정도면 무슨 조치라도 취했을 법한데…….’

하나 제한시간은 일각도 채 남지 않았다.

결국 남천휘는 전각과 가장 가까운 숲으로 이동했다. 전각까지의 남은 거리는 삼 장 남짓, 세 번의 궁신탄영이면 닿을 터였다. 하나 궁신탄영은 중간에 멈출 수가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숲에서 조금 더 물러섰다.

‘이쯤이면 삼 장 같은데…….’

부족하면 달빛 아래 멈춰 설 것이고, 넘치면 벽에 부딪칠 것이다.

“궁신탄영.”

나직이 읊조린 한 마디와 함께 그의 신형이 튕겨나갔다. 멈출 때마다 궁신탄영을 읊조리니 한순간 벽이 눈앞이다.

넘쳤다.

‘젠장!’

남천휘는 비천무상도법을 펼쳤다.

상대의 공격을 흘려내는 초식이다.

손으로 펼치는 순간 벽에 부딪치며 생성된 반발력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남천휘는 곧장 수직으로 몸을 띄운 후 처마를 잡고 지붕에 올랐다. 그리고 기와지붕의 허술한 부분을 벗겨낸 후 내려서는 것으로 잠입을 마무리했다.

“크흠.”

남천휘는 광목재사의 처소에 들어서자마자 미간을 찡그렸다. 기름 냄새와 오래된 책의 퀴퀴한 향이 뒤섞여 후각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아, 오감증폭제 때문인가?’

남천휘는 고개를 흔들며 오감증폭제를 해제했다.

그제야 머리가 조금은 맑아졌다.

하나 기름 냄새는 여전했다.

“미친 늙은이가 방에서 뭘 했기에…….”

남천휘는 제한 시간을 확인한 후 재빨리 광목재사의 처소를 뒤졌다.

금고의 위치를 찾는 건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남천휘가 의미 없이 아무 곳이나 헤집는 순간 갑자기 알림이 들려왔다.

◎ 광목재사의 금고를 발견했습니다.

광목재사의 침상을 들어 올렸을 때였다.

침상 밑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판자가 깔려 있었다. 그렇다면 금고의 위치는 불을 보듯 뻔했다. 가볍게 주먹을 뻗는 순간 바닥은 산산조각이 났다.

‘생각보다 큰 걸?’

남천휘는 입맛을 다시며 금고를 살폈다.

묵빛으로 번들거리는 금고의 재질은 쉽게 깰 수 없을 듯했다.

‘게다가 금고 열쇠를 줬는데 힘으로 깨버리면…….’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으리라.

하나 남천휘는 금고의 표면에 새겨진 문양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횡(橫)으로 열 개, 종(縱)으로 열 개.

손가락 한 마디만한 막대가 총 백 개였다.

슬쩍 만져보니 누르면 움직일 듯했다.

남천휘는 인피암어를 떠올린 후 입꼬리를 올렸다.

분명 검은색으로 표시된 부분을 모두 누르면 금고가 열리지 않을까 싶다.

“이야, 도둑질이 이렇게 쉬웠다니!”

남천휘는 키득거리며 인피암어를 꺼냈다.

인피에 적힌 검은 점(點)은 총 마흔세 개였다.

“대단하네. 마흔세 번을 눌러야 열리는 금고라니. 이건 도대체 누가 만들었을까?”

남천휘는 인피암어를 금고에 대려다 인상을 썼다.

갑작스레 등허리가 뜨끈했다.

‘어디서 타는 냄새 안나요?’

재이의 침묵 속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전각의 입구에서 시뻘겋게 치솟는 불기둥을 목격했다.

“불이네. 불이야.”

그 때 밖에서 누군가의 읊조림이 들려왔다.

“기름을 잔뜩 뿌려뒀으니 일각 안에 잿더미로 변할 겁니다.”

“그 어떤 것도 남기지 말게.”

남천휘는 혀를 찼다.

유가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신공부에서 이런 천인공노할 짓거리가 벌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는 금고에 인피를 가져다댄 후 막대를 누르려 했다. 하나 이내 눈을 끔뻑이며 당황스러운 한 마디를 흘렸다.

“어! 그런데 어디가 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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