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귀협(鬼俠)은 머리가 좋아. (1)
65, 귀협(鬼俠)은 머리가 좋아.
범인에게 무인이란 부러우면서도 두려운 존재였다.
사람이 하늘을 날고, 바위를 부순다며 경원시했다.
하나 강호인도 범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뛰고, 때릴 때마다 지치는 건 마찬가지였다.
검후의 제자이자, 후기지수 중에서도 손꼽히는 천수련이 그렇게 위기에 처했다. 제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머릿수에는 장사 없는 법이다.
그리고 광목재사가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는 열 명을 보내서 안 되면, 스무 명을 보냈다. 스무 명도 안 되면 백 명을 보냈고, 백 명도 안 된다면 기꺼이 천명을 사지에 밀어 넣을 사람이다.
그만큼 확실한 방법이었다.
한데 광목재사도 천위검호에게 말하지 않았던가.
세상에 완벽한 건 없다고.
초절정의 고수만 해도 밥을 먹고, 자야 하는 건 매한가지였다. 그들은 자연지기를 절정무인보다 더 빨리, 더 쉽게 받아들일 뿐이다. 먹은 만큼 소모하고, 소모하는 것만큼 채워야하는 인간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었다.
오직 입신의 경지에 이른 고수만이 완벽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절대경지라 불리는 입신의 경지는 곧 대자연과 하나가 되는 상태였다.
그러니 내공의 한계가 없어진다.
생각해 보라.
비가 오다가 힘들다고 멈추고, 바람이 불다가 지친다고 사라지더냐. 만물을 구성하는 대자연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무한했다.
절대지경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외의 조화가 깨지지 않는 이상 그들은 결코 지치지 않았다.
광목재사가 그것을 모를 리 없다.
다만 염두에 두지 않았을 뿐이다.
절대지경의 고수는 천하를 통틀어도 열 명이 채 되지 않을 게다. 한데 그런 고수의 일거수일투족은 세인의 시선을 피하기 힘들었다. 그러니 산동성에 절대지경의 고수가 없음을 알고 있는데 신경 쓸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는 언제나 완벽보다 빠른 실행을 추구했다.
그렇기에 수백 명의 수하를 이끌고 직접 나섰다.
몇 달 동안 앓던 이처럼 박혀 있던 노국장의 불타는 모습을 직접 보려 했다.
쿵!
광목재사는 지팡이로 땅을 찍었다.
그러자 수하가 구르듯이 달려와 부복했다.
“조금 전에 난입한 놈의 정체는?”
“남쪽 포위망을 뚫고 진입했습니다. 서량창 강초가 일합에 죽었답니다. 아랫것들이 확인한 바에 의하면 귀협으로 추정된답니다.”
광목재사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강초는 그가 공들여 키운 수하 중 하나가 아닌가.
조금 더 훈련을 시킨 후 대(隊)를 맡기려 했을 정도였다.
‘남천휘라면 나타날 것을 예상했다. 한데 놈이 강초를 일합에 죽일 정도로 강했던가?’
그가 남천휘의 정보를 수집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오히려 강호에 알려진 것과 달리 머리보다 몸을 쓰는 것에 능하다고 평가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천수련보다 낮게 본 것이 사실이다.
검후의 제자와 벽촌의 무지렁이를 동급에 놓고 모략을 꾸밀 수는 없지 않은가. 한데 남천휘의 무위가 생각보다 높다는 건 변수가 되기에 충분했다.
‘관건은 어느 정도냐 인데…….’
그는 노국장을 뚫어져라 노려봤다.
공문십철에 이름만 올렸을 뿐 무력은 하찮았던 장원이다. 하나 저곳으로 인해 자신의 야망이 몇 달이나 밀렸던가.
잠시 후 그가 결단을 내린 듯 말했다.
“호대와 표대를 보내라.”
수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호대와 표대는 일전에 황보세가와 대치했을 무렵 강호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저들을 섣불리 운용했다가 말이라도 새어나간다면…….”
그는 광목재사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고개를 숙였다.
“따르겠습니다.”
“내가 직접 간다.”
수하는 호대와 표대를 내보내라는 명령보다 더욱더 감정을 드러냈다.
광목재사는 암중에서 움직이는 것을 즐겼다.
목표가 파멸하는 과정을 지켜볼 뿐 절대로 나서지 않았다. 일신의 안위를 가장 중요시 여기는 자가 아니던가.
그런 그가 직접 나서겠단다.
“굳이 그러실 필요까지야.”
광목재사는 고개를 내저었다.
“오늘 일은 기필코 성공해야 해!”
노궁장만 무너지면 신공부주는 당장 회의를 소집할 것이다. 위명장과 마찬가지로 노국장의 복수를 다짐하며 흉수를 찾아내라 할 것이다.
그 때 자신은 미리 준비한 먹잇감을 슬쩍 던져주면 될 터였다. 지난 날 삼류 흑도 방파였던 벽력당을 던져준 것처럼 말이다.
그 일이 마무리되면 자연스럽게 신공부주의 연임이 결정되리라. 그렇게 신공부 전체를 차지한다면 대업의 첫 발을 내딛는 것이나 다름없다.
산동의 주인이 되어 구파일방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거대방파로 발돋움하게 될 터였다.
‘오늘을 놓칠 수 없지.’
광목재사에게는 별 것 아닌 노국장의 명운이 평생의 숙원을 이룰 수 있는가에 대한 분기점이나 마찬가지였다.
‘절대지경의 고수라도 나타나지 않는 이상 오늘 노국장에서 한 놈도 살아나갈 수 없다!’
*
절대지경의 고수는 등장하지 않았다.
하나 어쩌면 절대지경의 고수보다 더 까다로운 상대가 존재했다.
촤악!
휘대의 무인은 동료가 피를 뿌리며 쓰러지자, 자신도 모르게 주춤거렸다.
또 한 명의 동료가 질풍난무에 당했다.
남천휘가 매번 초식명을 외쳤기에 외면할 수도 없는 현실이었다. 더욱 울화가 치미는 건 알아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쌍도가 휘몰아칠 때마다 한 명씩 쓰러졌다.
‘절초를 저렇게 마구 펼쳐도 되는 거야?’
한데 남천휘에게서 지친 기색을 찾기란 요원했다.
심지어 초식의 위력조차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내 질풍난무라는 외침과 함께 세 명이 쓰러졌다.
이제 장내에 남은 건 서른 명 남짓이다.
교대주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흩어지지 마라!”
그는 공황 상태에 빠졌다.
가볍게 처리하고 술이나 진탕 마실 생각으로 난입하지 않았던가. 한데 자신과 비슷한 무위의 휘대주가 허무하게 죽는 모습을 본 순간 정신이 아찔했다.
죽이고, 약탈하고, 불을 지른 게 어디 한두 번이겠는가. 다만 이처럼 예기치 못한 상황에 처한 것이 처음일 따름이다.
그리고 그 충격은 생각보다 컸다.
“뭉쳐! 뭉쳐!”
남천휘의 질풍난무는 다수를 상대하는 초식이다.
그렇기에 처음 사용했던 질풍난무로 인해 십여 명이나 절명하지 않았던가.
하나 깊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적포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대장이 모이라고 외치는 순간 허겁지겁 모여들었다.
한데 뭉치고 나도 문제였다. 공격한 쪽이 주춤거리는 순간 오늘의 혈사는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남천휘는 엄격하고, 근엄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말했다.
“도망이라도 치려는 건가?”
나직한 한 마디에 몇몇 무인이 움찔거렸다.
광목재사의 퇴각 명령이 있기 전에는 함부로 몸을 뺄 수도 없는 상황이 아닌가.
“크흑! 이 잔인한 놈!”
교대주는 공터 한편에 널브러져 있는 휘대주의 시신을 보며 침음을 흘렸다.
반면 남천휘는 쌍도를 늘어트린 채 적포무인들을 바라봤다.
‘크하! 이래서 주인공, 주인공 하는구나!’
제아무리 ‘VR’과 ‘철투’가 현실 같아도 진짜와는 비교가 불가능했다.
VR은 지켜볼 뿐이다.
철투는 직접 움직인다고 하지만, 승리의 여운을 느낄 수 없는 구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승리하는 순간 적은 가루가 되어 흩어지지 않던가.
남는 건 시야 상단에 위치한 연승 횟수가 전부였다.
반면 현실은 달랐다.
그가 무위를 선보일 때마다 적포무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의 눈빛에 섞인 두려움과 악인을 징치한다는 쾌감은 철투에서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다.
남천휘는 이제야 비로소 자신이 강해졌음을 인지했다.
‘나를 지키고, 내 가족을 지키고...’
나아가 좋은 사람들도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는 적포무인들의 머리 위를 힐끔 쳐다봤다.
누구 한 명 빨갛지 않은 자가 없다.
어쩐지 경험치가 쭉쭉 오른다 했더니 악인만 죄다 모여 있는 셈이다.
악인은 지옥으로.
이것은 무적자로 전직한 것과 상관없이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명분일 터였다.
남천휘는 천하도로 교대주를 겨눴다.
“공수가 바뀐 것 같은데? 계속 그렇게 기다릴 건가?”
교대주는 몸을 부르르 떨 뿐 대꾸하지 못했다.
그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공격’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수하들이 어찌 될는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그렇다고 등을 보인 채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계륵과도 같은 상황에서 그저 욕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네 놈뿐 아니라 노국장의 모든 연놈들을 죽여 버리겠다! 네 놈이 접근하는 순간 우리는 산개하여 대전의 숨은 연놈들을 죽일 테다!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네 지인을 죽이고, 또 죽이겠다!”
단순히 시간을 끌기 위한 악다구니였으리라.
남천휘는 천수련을 돌아봤다.
“개똥아, 괜찮아?”
대전의 입구를 지키던 천수련은 입술을 삐죽였다.
“그 별명은 여전히 괜찮지 않아요.”
짧게나마 편히 쉬었나 보다.
평소처럼 투덜거리는 걸 보니 말이다.
남천휘는 어깨를 으쓱거린 후 호리병을 꺼냈다.
병을 흔드는 순간 찰랑거리는 소리가 미약하게 흘러나왔다.
“조금만 더 버텼다가 한 잔 해.”
“누가 술고래인 줄 아나!”
남천휘는 호리병을 던졌다.
“그래서 안 마실거야?”
천수련은 호리병의 마개를 입으로 뽑았다.
그리고 호기롭게 호리병을 기울였다.
황주가 그녀의 입가를 타고 흐르는 모양새가 어딘가 모르게 야릇했다.
“하아.”
그녀는 빈 병을 던진 후 천수검을 내질렀다.
촤아악!
검신은 오물처럼 묻어 있던 핏물을 털어낸 후 제 빛을 드러냈다.
천수련은 입꼬리를 올린 채 읊조렸다.
“하루 종일도 버틸 수 있어요.”
“그럼 됐다.”
남천휘는 그녀를 뒤로 한 채 쌍도를 소환했다.
“너희들은 안 됐고.”
파팟-
사람의 말은 사람에게만 통한다.
그러니 악인에게 통할 리가 없다.
말로 통하지 않는다면 행동으로 보여줄 뿐이다.
남천휘가 달려드는 순간 적포무인들은 교대주의 명령이 없었음에도 메뚜기떼처럼 흩어졌다.
“죽여! 죽여!”
교대주의 공허한 외침이 터져나왔다.
남천휘는 기꺼이 교대주의 부탁을 들어줬다.
촤아아악!
쌍도를 횡으로 긋고, 올려 치고, 비스듬히 내리 긋는 순간 적포무인들이 썰려나갔다. 비천무상도의 초식이 아니라 곡부남가에 전해지는 중양칠도의 칠도격을 오랜만에 실행했다. 레벨과 능력치의 차이로 인해 중양칠도마저 고절한 도법처럼 보였다.
살육이자, 학살이었다.
하나 남천휘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만약 자신이 없었다면 부모님과 천수련은 비참하게 죽었으리라.
그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온갖 감정이 휘몰아쳤다. S급 특기인 ‘불굴’이 발동하지 않았다면 놈들을 다져버렸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어!”
적포무인 중 한 명이 마침내 등을 보였다.
하나 동네 병정 놀이도 아닌데 도망치는 걸 용인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촤악!
남천휘는 손을 폈다.
천하도와 제일도가 떨어진다.
하나 그것은 손바닥과 거리가 생기는 순간 자취를 감췄다. 재차 주먹을 쥐는 순간 이미 질풍뇌격궁과 철시가 들려 있었다. 활시위를 당기는 순간 조준할 필요도 없이 놨다.
핑-
철시는 적포무인의 등을 꿰뚫고, 벽에 박혔다.
꼬치처럼 벽 중앙에 매달린 놈의 시신을 뒤로 한 채 돌아서려 했다.
그 순간 적이 구겸도를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남천휘는 질풍뇌격궁으로 구겸도를 쳐올렸다. 질풍뇌격궁의 재질은 구겸도에 비할 바가 아니다. 구겸도는 일격에 날이 상한 채 튕겨나갔다.
남천휘는 활짝 열린 놈의 가슴을 향해 철시를 찔러 넣었다.
콰직!
그리고 화살을 뽑자마자 질풍뇌격궁에 걸고 쏴버렸다.
핑-
광목재사는 손빈의 삼사법(三駟法)을 응용하여 수하들을 부렸다. 상등마는 중등마를 상대하게 하고, 중등마는 하등마를 상대하게 상황을 만들었다.
그러니 적포무인들은 자신들이 어찌할 수 없는 남천휘를 맞이하여 강호초출처럼 허우적거렸다.
푹! 푹! 푹!
남천휘는 전신처럼 날뛰며 적포무인들을 도륙했다.
그 즈음 백 명의 적을 물리쳤다는 알림이 울렸다.
하나 퀘스트 완료 알림은 들리지 않았다.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