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몽산의 은거괴인. (4)
정확한 문양을 그려보자면 ‘Skill’이라고 적혀 있었다.
재이를 통해 천상의 언어를 어느 정도 숙지했지만, 생소한 단어의 뜻까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 무공에 내포되어 있는 기술을 의미합니다.
남천휘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그가 익힌 두 가지 무공은 엄밀히 따지자면 현존하는 무공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행군림보는 VIP 승급 기념으로 선물 받은 것이고, 비천무상도는 전대의 고수인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았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거나, 실전된 무공이었다.
그러니 정상적인 수련으로 익히는 것이 불가능했다.
무무혁명이나, ‘VR’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렇기에 내공의 우월함과 초식의 현묘함을 무기로 싸웠다.
지금까지의 적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남천휘의 스탯은 어느 정도의 레벨은 무시할 만큼 우월했기 때문이다.
하나 천위검호에게도 통할지는 예측할 수 없었다.
무려 200레벨을 넘긴 고수였다.
그렇기에 절초가 필요했다.
가장 중요한 순간 가장 위력적으로 펼칠 수 있는 초식이 있다면 좋지 않겠는가.
남천휘는 스킬을 그렇게 받아들였다.
“필살기로구나!”
남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그것을 마침내 손에 쥔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하나 재이가 언제 남천휘의 분위기를 맞춰주던가.
◎ 등록된 스킬을 확인하시겠습니까?
자식, 호응 좀 해주지.
남천휘는 불끈 쥔 주먹을 슬쩍 내린 후 고개를 끄덕였다.
《비천무상도》
- 2단계 행공(行空) 진행 중(2/3)
- 숙련도(1/100). (가치 : 1000)
- 스킬 : 질풍난무(疾風亂舞)
명칭이 좋다.
‘질풍난무, 질풍난무.’
남천휘는 몇 번이나 질풍난무라는 네 글자를 입안에 굴렸다. 하나 사내도 그렇듯 뭐든 내실이 알차야 하는 법이다.
《질풍난무》
- 도풍과 도기를 섞어 전방으로 발출합니다.
- 전방의 적을 2초 간 공격합니다.
- 1회 사용 시 내공 300을 소모합니다.
남천휘는 눈을 끔뻑였다.
‘이게 뭐라는 거냐?’
도풍과 도기를 동시에 발출하는 것이 가능한지의 의문은 뒤로 했다. 천상의 시간으로 따졌을 때 2초란 천천히 고개를 두 번 끄덕이는 순간만큼 짧았다.
무엇보다 한 번 쓸 때마다 내공 300을 소모한다면 배보다 배꼽이 큰 듯했다.
상태창을 펼쳤다.
근력(筋力) : 510. 민첩(敏捷) : 550.
체력(體力) : 600. 지혜(知慧) : 505.
내공(內功) : 1600.
- 미 배분 능력치(+240)
열흘간의 수련은 엄청난 스탯을 선사했다.
하나 질풍난무를 다섯 번 밖에 사용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딱히 강해보이지 않는데…….”
남천휘는 마뜩찮은 표정으로 오행군림보의 스킬을 살폈다.
《오행군림보》
- 4단계 대가(大家) 진행 중(4/4)
- 숙련도(1/100). (가치 : 800)
- 스킬 : 궁신탄영(弓身彈影)
잠시 어두워졌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질풍난무와 달리 궁신탄영은 유명한 보신경의 한 부류가 아니던가. 활처럼 몸을 휘었다가 튕기듯 전방으로 몸을 날리는 신법의 일종이다. 일전에 천수련이 잠시 선보였을 만큼 상승의 절기가 아니던가.
‘이건 좋다. 좋아.’
《궁신탄영》
- 빠르게 전방으로 뛰쳐나갑니다.
- 원하는 방향으로 일 장의 거리를 이동합니다.
- 1회 사용 시 내공 400을 소모합니다.
남천휘는 허공을 응시했다.
“재이야, 요즘 힘들어?”
근래에 들어 이것저것 많이도 퍼주더라.
한데 정작 살펴보면 쓸 만한 것이 드물었다.
탐지증폭제를 뽑기 위해 허비했던 자수정이 몇 개였더냐. 한데 이제는 스킬이랍시고 주는 것이 빚 좋은 개살구가 아닌가.
일부러 엿을 주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힘들면 말을 해. 대화라는 좋은 수단이 있잖니?”
아닌 말로 질풍난무와 궁신탄영을 동시에 사용하면 내공을 700이나 소모해야 했다. 스킬 연계를 두 번 하면 내공이 바닥난다는 소리가 아닌가.
하나 재이는 제 역할을 다 했다는 듯 침묵을 고수했다.
“좋아! 백문이 불여일행이니까.”
남천휘는 허공을 힐끔 바라봤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는 말을 백 번 묻는 것보다 한 번 해보는 것이 낫다고 변형을 시도한 것이다.
◎ 고사의 응용으로 인해 지혜가 +4 상승합니다.
옳지! 좋았어.
재이가 선심 쓰듯 건네준 스탯에 절로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돈은 죄가 없듯 스탯도 마찬가지였다.
“그야말로 다다익선인 거지!”
◎ 스킬을 시연하시겠습니까?(y/n)
재이가 적당히 좀 하라는 듯한 말투로 알림을 띄웠다. 하나 수락을 했음에도 달라지는 것이 없지 않은가.
“어떻게 쓰는 건데?”
◎ 스킬명을 거론하는 순간 자동으로 실행됩니다.
남천휘는 당장이라도 쌍도를 휘두를 것처럼 자세를 취했다. 하나 재이의 알림이 들려오는 순간 슬그머니 자세를 풀었다.
“말하라고?”
스킬의 소모 값을 확인했을 때보다 더 황당했다.
스승이 제자에게 무공을 가르칠 때에야 초식명을 외칠 수 있으리라. 하나 적과 생사투를 벌이는 와중에 초식명을 외친다면 미친놈 소리밖에 더 듣겠는가.
“애들끼리 전쟁놀이를 하는 것도 아닌데…….”
설마 목소리가 클수록 위력도 늘어나는 황망한 스킬은 아니겠지.
다행히 표현의 수준으로도 충분히 발동한단다.
남천휘는 한시름 놓은 사람처럼 안도의 한 숨을 내쉰 채 자세를 취했다. 상태창을 살펴보니 질풍난무와 궁신탄영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말하는 순간 실행이라.
“질풍난무.”
나직이 읊조리는 순간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단전에서 내력이 한 움큼 빠져나가는 듯하더니 쌍도의 형태를 확인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공간을 휘저었다. 도를 휘두를 때마다 바람이 일더니 이내 질풍처럼 공간을 장악했다.
그리고 바람이 와류를 만들며 휘도는 순간 도기가 예(乂)자 형태로 교차하더니 전방을 찢어발기는 것이 아닌가.
촤아아아아악!
남천휘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눈을 끔뻑였다.
쌍도와 전방을 번갈아봤다.
“이거 지금 뭐냐?”
그도 그럴 것이 남천휘는 자신의 의지로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마치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자신도 모르게 펼친 것처럼 제멋대로 몸이 움직였다.
한 마디로 귀신이 들린 듯했다
“야! 이거 뭐냐고?”
남천휘는 생경한 경험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 등록된 움직임에 따라 자동으로 실행됩니다.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마치 귀신이 빙의한 것처럼 눈으로 지켜보고, 몸으로 느끼는 것이 전부였다.
‘2초간 칼질을 스물네 번 했고, 도기는 평소보다 크고 짙었어.’
남천휘가 다시 하고자 해도 현재의 수준으로는 불가능한 움직임이었다. 그는 도기가 적중한 곳을 눈으로 확인했다. 사람의 허리만큼 굵은 관목이 사선으로 잘려 있었다.
‘하, 강력하기는 하네.’
그는 탄성을 흘렸다.
천상의 공능에 대해서는 더 이상 놀라지 않기로 마음먹지 않았던가. 한데 매번 새로운 것을 접할 때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궁신탄영, 궁신탄영, 궁신탄영.’
확실히 생각을 하거나 입안에 굴리는 것으로는 실행이 되지 않았다.
남천휘의 혀가 아랫입술을 핥았다.
놀람이 큰 만큼 기대도 커졌다.
“궁신탄영.”
그 순간 다시 한 번 기이한 감각이 온 몸을 장악했다. 내력이 뭉텅이로 빠져나가는 순간 저절로 몸이 움직였다. 오른 발을 축으로 한 바퀴 돌더니 왼발을 축으로 삼아 전방으로 튀어나갔다.
파팟!
남천휘는 절반이나 소모된 단전의 경고를 뒤로 한 채 침음을 흘렸다.
“하아, 진짜 전광석화가 따로 없네.”
마치 눈 깜빡이는 사이에 공간을 이동한 듯했다.
하지만 허공에 스킬을 펼쳐봤자, 위력을 가늠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남천휘는 입꼬리를 올렸다.
이 순간을 위해 아껴왔던 히든 모드가 있지 않은가.
메인 퀘스트 1-5의 보상으로 얻은 히든 모드 ‘철투’를 활성화했다.
◎ 철투(鐵鬪)를 실행할 장소가 등록됩니다.
- 철투 1회 시 VIP 포인트 100점이 소모됩니다.
“이곳으로 등록하자!”
《철투(鐵鬪)가 실행됩니다.》
재이의 무미건조한 한 마디를 시작으로 장관이 연출됐다.
절벽 위에 가득하던 운무(雲霧)가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안개가 자욱하게 드리워지는 순간 시계는 완전히 하얗게 변했다.
◎ 대전 상대를 선택하세요.
그 순간 인명록처럼 수많은 이름이 나열됐다.
남천휘는 목록에 존재하는 이름을 보며 탄성을 흘렸다.
“하아, 없는 사람이 없네.”
북풍대의 조상을 비롯해 조장들이 레벨 별로 정리됐다. 그 뿐 아니라 몽산에서 싸웠던 흑도와 용봉쟁투에서 레벨을 확인한 명숙과 후기지수들도 빠짐없이 적혀 있었다.
“아는 사람을 죽이는 건 좀 그렇잖아.”
제아무리 가상의 대결이라고 해도 목을 베고, 피를 봐야하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친인과 지인을 제외한 적도들 중에서 쓸 만한 상대를 골랐다.
“일룡.”
천릉곡에서 용봉삼협과 싸웠던 흑도 무리에서 가장 강했던 오룡방의 방주였다.
한데 대전 상대를 골랐음에도 변화가 없다.
여전히 안개가 자욱했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 철투 무대를 선택하세요.
- 현재 선택 가능한 무대는 용봉쟁투의 백인대, 곡부남가의 연무장, 천릉곡의 공터입니다.
가상의 적과 가상의 무대에서 싸운다더니 장소도 선택이 가능했던가.
남천휘는 놀이를 하는 기분으로 대꾸했다.
“백인대로 하자.”
일룡을 상대하려면 천릉곡을 선택하는 편이 맞을 터였다. 하나 용봉쟁투의 무대였던 백인대(百人臺)의 가상 모습이 더욱 궁금했다.
용봉쟁투의 무대였던 백인대를 선택하는 순간 안개가 바람에 휩쓸려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무대가 만들어지더니, 사방에 관객석까지 나타났다. 용봉쟁투 당시 백인대에 올라섰을 때가 절로 생각날 만큼 실감나는 광경이었다.
“하아, 사람들만 있으면 진짜 현실 같네.”
남천휘는 관중의 구현이 가능하다는 말에 손사래를 쳤다.
“야! 하지 마.”
가상의 존재가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며 웃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 철투 시작에 앞서 규칙을 전달합니다.
- 한 판 당 세 번의 대결이 진행됩니다.
- 체력을 바탕으로 한 생명력이 주어집니다.
- 생명력이 바닥나면 승패가 정해집니다.
- 패배할 때까지 적수를 선택하여 대전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남천휘가 규칙을 숙지하는 사이 시야의 테두리에 대전 형식의 표식이 새겨졌다.
“이게 생명력이군.”
시야 상단에는 자신과 일룡의 체력 상태가 막대 모양으로 표시됐다. 그리고 잠시 후 저 멀리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잔뜩 인상을 쓴 채 다가오는 건 죽은 일룡이 아닌가.
“아! 죽은 사람을 다시 보려니까 왜 이렇게 찜찜하냐?”
일룡이 무대 위에 올랐다.
“감히 오룡검귀를 우습게 여기는 것이더냐?”
놈이 대뜸 소리쳤다.
“무슨 개소리야?”
한데 잠시 생각해보니 놈과 놈의 의제들을 가리켜 오룡검귀라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놈들을 쓰러트릴 때 누군가 저렇게 외친 듯했다.
남천휘가 대꾸를 하려는 사이 허공에서 경쾌한 목소리와 함께 징이 울렸다.
- ROUND 1, FIGHT!
대충 1회전이 시작됐으니 싸우라는 뜻처럼 들렸다.
그 순간 일룡이 달려들었다.
예전에는 그래도 조금 빠른 듯했으나, 지금에 와서 보니 굼벵이처럼 느릿하기만 했다.
“좋아. 질풍난무.”
그 순간 단전에서 내력이 뭉텅이로 사라졌다.
양 손에 깃든 내력이 두 자루의 도를 타고 휘몰아친다. 그리고 광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도기가 폭발하듯 비산했다.
촤악!
두 자루의 직도를 교차하는 순간 일룡의 몸에는 예(乂)자 형태의 흔적이 길게 만들어졌다. 동시에 일룡의 생명력은 밑 빠진 항아리에서 물이 새듯 서서히 줄어들었다.
“어? 어! 어디까지 줄어 드냐?”
일룡의 생명력은 끝없이 줄어들더니 아예 자취를 감췄다. 그러더니 일룡의 몸뚱이가 도흔을 따라 네 조각으로 잘리는 것이 아닌가.
“으으.”
다행히 피와 육편이 가득한 참상만은 피했다.
일룡의 몸뚱이가 가루로 변하더니 허공으로 흩어졌기 때문이다.
- YOU, WIN!
‘너, 이겼다? 이거 반말 아니냐?’
남천휘가 투덜거리는 사이 경쾌한 목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려퍼졌다.
- ROUND 2, FIGHT!
세 번 싸워서 두 번 이기는 쪽이 승자라 했다.
그러니 한 번 더 일룡을 쓰러트리면 이번 판은 그대로 끝나는 게다. 잠시 세 번의 대결을 해볼까도 했으나, 이내 깔끔하게 마음을 접었다.
가상일지언정 일룡 따위에게 패배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 몸에서 피 나는 건 보고 싶지 않아.’
일룡은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하게 나타나더니 재차 몸을 날렸다.
이번에는 연계를 실험하고자 했다.
“궁신탄영, 질풍난무!”
그 순간 남천휘의 신형이 튕기듯 백인대의 절반을 날았다. 그리고 눈을 휘둥그레 뜬 채 경악하는 일룡의 몸에 칼침을 놔줬다.
촤악!
그야 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승패가 결정됐다.
남천휘는 다시 대기화면으로 돌아온 후 침음을 흘렸다.
“저 놈이 약한 거냐? 아니면 스킬이 강한 거냐? 이건 뭐 확인이 안 될 정도네.”
철투를 통해 원 없이 가상대결을 하려 했다.
한데 상대가 너무 허약했기에 경험치를 얻을 수나 있을까 우려됐다.
“재이야, 이게 전부냐?”
◎ 더 강한 적수가 존재합니다.
그럼 그렇지.
특급 강호인 승급 체계는 언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남천휘가 수락하는 순간 몇 개의 목록이 등장했다.
1, 레벨 ~100 : VIP 100점 소모. (쉬움).
2, 레벨 100~200 : VIP 300점 소모. (평범)
3, 레벨 200~300 : VIP 500점 소모. (어려움)
남천휘는 눈을 끔뻑였다.
“지금 돈 내라는 거냐? 그리고 방금 전에 나 이겼잖아. 일룡이 잡은 거 못 봤냐? 그런데 뭘 또 내?”
다급한 외침과 달리 재이는 느긋하기만 했다.
◎ 옆 놀이터에 진입했다고 생각하십시오.
상술도 이런 상술이 있을까 싶다.
남천휘는 상태창에서 VIP 포인트를 확인하며 이를 갈았다.
“아우! 너 장사해라. 천하제일거부는 그냥 되겠다.”
잠시 후 재이의 무미건조한 한 마디가 울렸다.
◎ VIP 포인트 300점이 입금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