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129화 (129/305)

63, 몽산의 은거기인. (3)

*

◎ 근력이 +1 상승했습니다.

“후우, 후우.”

남천휘는 재이의 알림을 귓등으로 흘린 채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조금만 방심을 했다가는 수레와 함께 비탈길을 구를 것이 뻔했다.

◎ 체력이 +1 상승했습니다.

야! 인간적으로 이렇게 힘든데 10씩 올려주라.

남천휘는 고갯길에 오른 후에야 숨을 돌렸다.

하나 고개를 돌려 수레를 보는 순간 절로 한 숨이 흘러나왔다. 수레는 장정 둘이 끌어야 할 만큼 컸고, 그 위에 식자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아! 몽산이 코앞인데…….’

남천휘는 입맛을 다셨다.

마음만 먹으면 모든 짐을 인벤토리에 넣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산책을 나온 사람처럼 유유자적하게 몽산으로 향했으리라.

하나 시전에서 식자재를 구입한 탓에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그가 휴식을 취하는 장소 역시 유람을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런 곳에서 물품을 넣어버렸다가는 이상한 소문이 퍼질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런데 진짜 힘이 하나도 안 드네.’

지금 남천휘가 가고 있는 길은 지도에 표시된 곡부남가와 대두동의 최단거리였다. 최단거리인 붉은 선을 따라 움직이는 순간 특기 ‘운행’이 생성됐다.

성소 간의 이동 시에만 발동하는 특기였다.

그 덕에 체감이 될 만큼 체력의 소모가 적었다.

수레를 끌면서도 빈손으로 걷는 것처럼 편안했다.

다만 한시라도 빨리 몽산에 도착하고 싶은 조급함이 문제였다.

‘저쪽 고개만 넘어서면 외진 곳이니 거기서 수레를 정리하자.’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가 복면을 둘렀다.

“저쪽 고개만 넘어서면 외진 곳이니 거기서 수레를 빼앗자.”

“값비싼 옷으로 봐서 부잣집 도령 같은데 함부로 건드려도 되겠소?”

누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진짜 부자면 저 많은 짐을 혼자 나르겠냐?”

험상궂은 사내의 한 마디에 십여 명 남짓한 왈패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아.”

“씀씀이도 헤퍼 보이더라. 저기 수레에 있는 물건만 해도 은자 천 냥이야. 분명 전낭도 숨겨놨을 거야.”

“치자!”

그렇게 열 명의 왈패가 복면을 쓴 채 남천휘를 뒤따랐다. 그리고 일각 후 그들은 피투성이가 된 채 몽산으로 사라지는 남천휘의 뒷모습을 구경해야 했다.

*

솨아아아아아-

남천휘는 안개가 걷히며 등장한 소로(小路)를 지나 대두동에 발을 들였다. 그 사이 널따란 공터에는 풀이 발목까지 자랐을 만큼 무성했다.

◎ C급 성소 ‘대두동’에 발을 들였습니다.

- 특기 ‘유지’가 활성화됩니다.

그 순간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군사가 환영의 인사를 건넸다.

◎ 주우우우우우군!

“조용히 해.”

남천휘는 군사의 인사를 귓등으로 흘린 채 대두동의 상징인 대두상을 올려다봤다. VR을 통해 확인한 남추의 얼굴과 달랐지만, 묘하게도 경외감이 일었다.

‘할아버지, 저 왔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리고 절벽을 타고 올랐다.

대두상의 눈 부분에 발을 들이는 순간 단양자와 백파도가 주고받은 선문답이 그를 반겼다.

다시 한 번 예를 표한 후 돌아서서 대두동을 내려다봤다.

‘후우.’

그가 진입했던 작은 길을 제외하면 사방이 온통 깎아지를 듯한 절벽이다. 한데 안개가 자욱한 탓에 절벽 위에 구름이 드리워진 듯했다.

알아도 찾아오기 힘든 장소였다.

‘나중에 집 한 채 지어놓고…….’

남천휘는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운치가 좋아도 사방이 절벽인 대두동에서 사는 건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닐 터였다. 그는 미련을 버리고, 생각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퀘스트가 관건인데…….’

남천휘의 시스템 상 직업은 무적자(無籍者)였다.

어느 곳에도 적을 두지 않았기에 행동에 제약이 없는 직업이다.

그렇기에 퀘스트라고 해도 무시하면 그만이다.

메인 퀘스트라고 해서 다를쏘냐.

하지만 남천휘의 궁극적인 목표는 특급 강호인이 아니던가. 그리고 특급 강호인이 되기 위한 최단 경로는 퀘스트의 수행이었다.

그 결과가 메인 퀘스트인 ‘1-6, 중간보스’였다.

퀘스트 내용부터 살벌했다.

‘신공부주를 척살하라니.’

어머니를 통해 신공부가 노국장을 노린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발동하지 않았던가.

‘거물 중에서도 거물인데.’

신공부주 공후탁은 산동 강호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을 헤아릴 때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터였다.

‘심지어 공태령의 아버지잖아.’

잠시 용봉삼협의 한 사람인 공태령의 얼굴이 스쳐갔다. 척살이라는 단어는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뜻이 명확했다.

‘야.’

◎ 예! 주군, 제가 곁에 있나이다.

‘넌 빠지고, 재이 불러와.’

사위가 고요하다.

이쯤 되면 왔을까 싶어 물어봤다.

‘내가 무적자니까 퀘스트나 특기 획득에 제한이 없다고 했잖아. 그렇다면 무고한 사람이나, 가족을 위험하게 만드는 퀘스트도 발동할 수 있는 거냐?’

대답이 없다.

평소였다면 녀석을 지탄하며 그냥 넘어갔으리라.

하지만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였다.

‘대답해. 나는 무적자잖아. 그렇다면 시스템이라는 것에 휘둘리지도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

지금 이 순간만은 비밀이나, 자격이 없다는 둥의 핑계는 대지 마라.

진짜 화낼 수도 있어.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테다. 백파도 남추라면 전설상의 인물인 단양자가 극찬을 했을 만큼 대단한 사람이란 말이다.

‘그러니 그분을 욕되게 한다면 결단코…….’

◎ 특급 강호인 승급 체계는 대상자의 성장을 도와 강호의 용어인 지존의 단계에 이르는 것을 목적합니다. 만인의 경외와 추앙을 받아 지존의 자리에 오르려면 기본 수준의 도덕적 소양을 갖춰야 할 것입니다. 대상자가 살육을 통해 대살성과 같은 직업을 얻는 것은 가능하지만, 시스템 상 무의미한 살육은 권고하지 않습니다.

남천휘의 표정은 조금은 밝아졌다.

녀석 답지 않게 장문의 알림이었지만, 어찌됐든 원인이 있기에 퀘스트가 발동했다는 뜻이 아닌가.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면 굳이 강요하지 않는다는 거지?’

어차피 노국장이 얽힌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무적자는 될지언정 패륜아는 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퀘스트를 펼쳤다.

《1-6, 중간보스》

- 신공부주 공후탁을 척살하라.

- 제한 시간(98:16:45:33)

- 성공 시 전국적 명성을 얻게 됩니다.

- 성공 시 추가 스탯 +500을 지급합니다.

- 성공 시 VIP 포인트 +1000을 지급합니다.

- 성공 시 자수정 +5000개를 지급합니다.

- 성공 시 제 2막 ‘중원행’이 해금됩니다.

※ 1단계가 봉인 중입니다.(1/3)

성공 보수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칠야도와 창월도의 복원을 잠시 미뤄도 될 정도였다. 무엇보다 전국적 명성이라는 보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마침내 특급 강호인의 첫 발을 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퀘스트에 단계가 있네?’

◎ 1막의 마지막 퀘스트는 보스 레이드입니다.

- 3단계에 걸쳐 하위 퀘스트가 진행됩니다.

- 하위 퀘스트는 조건이 충족될 시 자동으로 봉인이 해제됩니다.

기다리는 수밖에 없구나.

그렇다면 결전의 그날을 위해 칼을 갈아야겠다.

“그 전에 할 일이 있지.”

할아버지의 숨결이 남아 있는 곳이니 깨끗하게 청소를 할 생각이다.

귀신이라도 나오면 조금 그렇잖아.

남천휘가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눈앞에 장정의 몸통만한 항아리가 등장했다. 항아리에 담긴 물은 강에서 퍼온 것이다.

그런 항아리가 무려 백여 개다.

‘이것까지 짊어지고 왔으면 운행이고 뭐고 간에 몸살 났겠네.’

남천휘는 새삼 인벤토리의 위대함에 경외를 표한 후 물을 사방에 끼얹었다. 그렇게 동굴 전체를 청소한 후 대두상 아래로 내려왔다.

이제 발목까지 자란 잡초를 처리할 차례였다.

딱-

기다란 장병기가 등장했다.

일부러 동네 철방이 아니라 무기를 파는 곳에서 구입한 날카로운 구겸(鉤鎌)이다.

베고, 또 베고, 썰고, 또 썰었다.

그렇게 공터를 정비한 후에야 무공총람을 펼쳤다.

《오행군림보》

- 4급 성장형.

- 숙련도(86/100). (가치 : 400)

초심, 기본, (난해), 대가.

《비천무상도》

- 3단계 성장형.

- 숙련도(90/100). (가치 : 500)

(비상), 행공, 비천.

단양자의 비전인 ‘천성혈법’은 성취도가 워낙 낮았기에 제쳐뒀다.

남천휘는 오행군림보와 비천무상도를 번갈아보며 눈을 빛냈다. 이번 수련을 통해 100레벨을 찍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고, 도법과 보법을 다음 단계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두 번째 목포였다.

숙련도를 보면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할 만해! 새해가 오기 전에 끝내 보자!”

남천휘는 수련용 직도를 모조리 꺼낸 후 자리에 앉았다. 천하도와 제일도까지 손가락 사이에 끼운 상태였다.

직도의 부가기능은 집중력 10% 증가가 아니던가.

지금부터 요긴하게 쓸 작정이다.

‘VR, 첫 번째 영상으로.’

남천휘는 백파도 남추의 수련 영상을 시청했다.

한두 번으로 끝내지 않고 수백 번이나 돌려봤다.

미심적은 부분은 멈췄다가 각도를 달리해서 살폈고, 복잡한 부분은 재생 속도를 늦춰 확인했다.

시간의 흐름은 개의치 않았다.

VR 속에서 체감하는 시간은 현실보다 느렸다.

딱-

남천휘는 눈을 뜨자마자 손가락을 튕겼다.

천하도와 제일도를 제외한 수련용 직도들이 보급창 안으로 사라졌다.

“후우.”

어둠 속에서 안광이 빛났다.

하루가 지났을지 이틀이 지났을지는 모르겠다.

하나 남천휘는 시간의 흐름을 개의치 않을 만큼 엄청난 집중력을 보였다. VR을 통해 지켜본 남추의 수련에서 깨달음의 실마리를 찾아낸 것이다.

“군사.”

◎ 예! 주군.

남천휘의 결의가 전해진 것일까.

군사 또한 경박함을 지우고, 진중하게 반응했다.

“성소 포인트 사용해서 무균실을 만들어줘.”

《무균실이 활성화됩니다.》

- 대자연의 기운이 집중됩니다.

- 몽산의 영기가 증폭되어 내력의 축적과 운영이 두 배 이상 빨라집니다.

- 일각 당 성소 포인트가 500씩 소모됩니다.

“쓰흡.”

남천휘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무균실의 영향일까?

시계가 또렷했고, 머리는 맑았으며, 손발에 활력이 가득했다.

하나 남천휘는 흥분하지 않고 읊조렸다.

‘박자 줘. 소리는 대두동이 울릴 만큼!’

어차피 혼자만의 세상이 아니던가.

오행군림보의 시작을 알리는 창해일성소가 안개를 분지 내에 울려 퍼졌다.

진짜 수련의 시작이었다.

◎ 오행군림보의 숙련도가 +1 상승했습니다.

◎ 비천무상도의 숙련도가 +1 상승했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수련이 계속됐다.

먹고, 자는 시간도 아껴가며 칼을 휘둘렀다.

당연히 경험치 상승 비약도 아낌없이 사용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돌발 퀘스트가 완료됐습니다.

◎ 꾸준한 수련으로 인해 체력 수치가 +10 증가했습니다.

무공을 수련하니 퀘스트도 연관된 것들만 줄줄이 열였다. 그 덕에 레벨도 올리고, 숙련도도 올리고, 퀘스트까지 완료했다.

온갖 알림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귓가를 스쳐갔다.

그렇게 열흘이 흘렀다.

띠링-

◎ 최초로 세 자리 레벨에 도달했습니다.

- VIP 포인트와 자수정이 지급됩니다.

◎ 오행군림보의 숙련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 비천무상도의 숙련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남천휘는 빈손이다.

지난 열흘 간 한 시도 천하도와 제일도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하나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한 이상 평정심이 흔들릴 만큼 성취감에 휩싸였다.

“아. 진짜 했네.”

그는 시야 우측의 지도를 확인했다.

지도를 확장하는 순간 몽산의 전경은 물론이고, 곡부남가와 노국장의 영역까지 한 눈에 들어왔다.

‘별 일 없는 건가?’

천수련을 뜻하는 붉은 점이 규칙적으로 반짝였다.

미연시 대상이기에 중대한 위기에 처하면 변화가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지금은 괜찮은 것이리라.

한데 그 순간 붉은 점이 노랗게 변했다.

“어! 이거 뭐야?”

남천휘는 한순간 미소를 지운 채 벌떡 일어났다.

◎ 이성의 접근이 감지되었습니다.

설마 네가 말한 중대한 위기라는 게 사내가 여인을 유혹하는 것이더냐?

◎ 미연시 모드임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참으로 하찮은 위기로구나.

하나 남천휘는 그러면서도 지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다행히 잠깐의 시간이 흐르자, 천수련의 표식이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이성의 접근이 차단됐다는 말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개똥이가 을급인데도 인기가 많네.”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며 기분 좋게 상태창을 열었다. 레벨 100이라는 수치는 보고 있기만 해도 사기가 치솟았다.

하나 남천휘의 관심은 온통 무공총람에 쏠린 상태였다. 레벨을 올리고, 스탯을 쌓아도 무공의 발현은 숙련도로 결정됐다. 게다가 앞으로 그가 상대해야 할 적수는 천위검호와 같은 자들일 것이 뻔하지 않은가.

최소 200레벨 이상의 괴물들이 존재하는 세상을 향해 칼을 겨눠야 했다.

그렇다면 우선순위는 손쉽게 정해졌다.

‘둘 다 승급하자!’

《오행군림보를 대가 단계로 승급하시겠습니까?》

《비천무상도를 행공 단계로 승급하시겠습니까?》

남천휘는 필요조건을 확인하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 VIP 천 점!”

오행군림보가 기본에서 난해로 오를 때 200점을 필요로 했다. 하여 500정도 예상했던 남천휘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두 줄의 알림이 재촉을 하듯 빤짝였다.

마치 ‘그래서 안 할 거야?’라고 유혹하는 듯했다.

귀 얇고, 마음의 가녀린 사내의 이름이 바로 남천휘였다.

“둘 다 승급.”

알림은 가루가 되어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렇게 흩어진 자리에 새롭게 정립된 무공총람이 펼쳐졌다.

남천휘는 싱글벙글 웃으며 무공총람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상태로 굳어버렸다.

오행군림보와 비천무상도의 가치는 예상했던 만큼 증가했다. 한데 도법과 보법에 생소한 문양이 등록되어 있지 않은가.

“재이야, 스킬이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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