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126화 (126/305)

62, 알박기

62, 알박기.

◎ 특급 강호인 승급 체계의 1막인 ‘강호행’의 마지막 퀘스트가 발동됐습니다. 하급 강호인의 딱지를 떼고 중급 강호인으로서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세요.

휴, 다행이다.

마지막 퀘스트라고 해서 아예 없어지는 줄 착각해버렸다. 하나 안도의 한 숨을 쉴 사이도 없이 울화가 치밀었다.

‘잠깐! 하급 강호인이라고?’

레벨이 낮은 걸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래도 그렇지.

‘내가 지금 산동에서 제일 잘나가는 후기지수인데 말이야! 하급이 말이야? 방구야?’

◎ ‘1-6 중간보스’ 퀘스트 내용을 확인하세요.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흘려버리는 것을 가리켜 마이동풍이라고 한다.

‘네가 그렇다고! 내 말 안 들려? 좋아! 그렇다면 나도 퀘스트 내용을 확인하지 않겠다!’

메인퀘스트 강호행의 1-5를 완료한 게 불과 한 시진 전이다. 심지어 1-5의 완료 보상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니 남천휘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소도 이렇게 일 시키지는 않겠다.’

마치 죽을 때까지 퀘스트만 수행하다가 세상을 하직할 것만 같은 불안한 예감을 어찌 하란 말인가.

‘인간적으로 연애를 하거나, 돈 자랑을 할 시간 정도는 줘야 하지 않겠냐?’

불 같이 타올랐던 분노가 서서히 누그러졌다.

대답 없는 하소연이 이어질수록 공허하기만 했다.

마치 재이는 가고 없는 데 홀로 남아 구시렁거리는 듯한 기분이다.

“뭐해요? 앉지 않고.”

천수련은 마치 제집인 양 자연스럽게 손짓을 했다.

‘다 싫다.’

남천휘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안자영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녀석, 한데 벌써부터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근심할 필요는 없단다. 신공부주가 지금 당장 달려오는 것도 아니지 않더냐. 그러니 곡구 전체에 위명이 자자한 귀협답게 어깨 좀 펴거라.”

어머니, 신공부주와는 관계가 없답니다.

그나저나 신공부주 이름이 뭐라고 했었지요?

‘아! 공후탁.’

남천휘는 퀘스트 조건을 확인한 후에야 신공부의 부주가 공후탁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후탁이가 뭐?

하나 안자영의 말이 이어질수록 심드렁했던 남천휘는 자세를 바로 했다.

‘이거 완전 복마전이네.’

*

공자에게 열 명의 제자인 공문십철이 존재하듯 신공부에도 열 개의 방파인 공문십철이 존재했다.

다만 공부의 영역이 공가(孔家)의 것이었다면 무문(武門)으로 새로 태어난 신공부는 모두의 것이었다.

‘그렇겠지. 공자가 공문십철을 가르쳐 유가를 이뤘지만, 신공부는 각지에 퍼져 있는 제자들이 보내온 비급으로 만들어졌잖아.’

가르침이 아래로 향했을 때에는 일인천하가 가능하다. 하지만 가르침이 위로 향했을 때에는 독재가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신공부주는 십 년마다 바뀐다.

공문십철의 수장들이 각지의 의견을 수렴하여 십 년마다 새로운 신공부주를 뽑는 게다.

“공후탁의 임기가 이제 백 일 정도 남았다.”

남천휘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됐든 알게 뭐란 말인가.

어차피 그놈이 그놈일 터.

‘그렇다고 노국장이 될 리도 없잖아.’

하나 안자영의 말이 이어지는 순간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공후탁은 물러날 의지가 없다.”

남천휘는 침음을 흘렸다.

십 년의 임기가 아닌 영원한 권세를 노린다는 뜻이 아닌가.

“엄밀히 따지자면 승천문 자체를 공문십철에서 독립시키려 한다고 봐야겠지. 그러니 승천문을 신공부의 주인으로 삼고, 공문십철을 장로원으로 삼을 생각이란다.”

과거의 영광으로 회귀.

하나 공후탁이 바라는 건 유림(儒林)의 공부가 아니라 무림(武林)의 신공부일 터였다.

“그게 되요?”

안자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가능하다. 공문십철의 대표자들이 모두 회합에 참가한 상태에서 여섯 표를 얻는다면 부칙을 바꾸는 것이 가능해.”

신공부 내에서 승천문의 위상은 하늘과 같았다.

200레벨을 돌파한 천위검호가 스스로 수하를 자처할 정도였다.

“제가 들었던 승천문의 권세만 해도 여섯 표는 금방 얻을 수 있겠는 걸요. 한데 아직까지 바뀌지 않은 이유가 뭔가요?”

안자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 부부가 이번 겨울을 노국장에서 보낸 이유가 무엇이더냐?”

남천휘는 이내 탄성을 흘렸다.

처음 가주와 가모가 자리를 비웠을 때에는 단순히 외유를 나선 줄 알았다. 하나 가주와 가모가 노국장에서 겨울을 보내는 이유는 따로 있지 않은가.

바로 외조부의 노쇠함이 원인이었다.

“설마 드러누우셨나요?”

안자영은 미간을 좁혔다.

“와병이라는 좋은 말도 있지 않니.”

남천휘는 딴청을 피웠다.

‘엄마 지력이 얼마더라?’

하나 이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등짝은 남아나지 않으리라. 천수관음의 재림을 증명하듯 수많은 손자국을 새긴 채 후끈함에 몸서리치겠지.

안자영은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공후탁이 매번 부칙을 바꾸기 위해 회합을 열고 있지만, 네 외조부께는 와병을 핑계로 불참하면서 시간을 끌고 있는 형국이란다.”

신공부의 회합은 전원참석을 전제로 삼았다.

그러니 외조부가 참석하지 않는 한 회합은 개최 자체가 불가능했다.

남천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공후탁이 계속 부주를 맡으면 안 되는 건가요?”

따지고 보면 그렇지 않은가.

어떤 방식으로 구성이 됐든 신공부의 뿌리는 공자(孔子)였고, 공가(孔家)였다.

“네 외조부께서는 공후탁을 좋게 보지 않으신다. 그가 부주에 임명된 후 신공부는 분명 성장했다. 하나 그 성장은 승천문과 승천문을 따르는 수족들에게만 해당하는 과실이었어. 비단 노국장만의 문제가 아니란다. 공문십철에 속한 노국장을 대놓고 무시할 정도면 외부의 중소방파들은 어찌 대하겠느냐? 지난 십 년 간 수많은 방파가 부침을 겪었다. 하나 외부에 알려진 바가 전무해. 그저 평화로운 세상이 왔다고 알려졌을 뿐이야. 공후탁, 그 자는 의혹이 너무 많아.”

남천휘의 뇌리에 용봉쟁투를 위해 불러들였던 명숙들이 스쳐갔다. 그들은 신공부를 비롯한 삼정에 아첨하고, 콩고물이라도 얻어먹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것만 봐도 삼정과 중소방파의 관계가 어떠할지 여실히 느껴졌다.

안자영이 말을 이었다.

“이제 공후탁이 회합을 열 수 있는 기회는 오직 한 번뿐이다. 시기 상의 문제로 인해 두 번은 열 수 없어. 하나 이대로 회합을 열어봤자,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지.”

남천휘는 침음을 흘렸다.

“설마 대놓고 외조부를 노리는 겁니까?”

안자영의 눈가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아직까지는 명백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단다. 하나 전례가 있기에 마냥 마음을 놓고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란다.”

남천휘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안자영은 말을 이었다.

“십 년 전에도 공후탁의 부주 취임을 반대하는 세력이 존재했다. 공문십철 중 위명장이었다.”

공문십철 중 자공의 후손들이 모인 방파가 바로 위명장(魏明莊)이다. 그러니 연혁으로만 따졌을 때 노국장이나 진조문에 비견될 만큼 오래된 방파였다.

“한데 어느 날 벽력당이라 자칭하는 흑도 세력이 위명장의 모든 것을 불태웠지. 장주를 비롯해 모두 죽었단다.”

남천휘는 등허리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

‘뭐가 이리 비슷해?’

안자영 역시 오늘 일을 통해 어렴풋이 짐작하는 바가 있을 터였다.

“후우, 신공부는 총력을 다해 벽력당을 말살했다. 하나 이미 멸문한 위명장을 되돌리는 건 불가능했어. 그 때 위명장을 대신해 공문십철에 꼽히게 된 방파가 바로 천위장이란다.”

남천휘는 천위검호의 서늘한 눈빛을 떠올리며 한 숨을 내쉬었다.

‘너무 딱딱 맞아떨어지니 무섭지도 않네.’

그는 입맛을 다시며 말을 건넸다.

“만약 놈들이 위명장을 불태웠다면 노국장 또한 그런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렇지.”

“그럼 그냥 나오시면 안 될까요? 어차피 노국장은 신공부의 일에서 손을 뗀지 오래잖아요. 신공부와 얽혀봤자 득 될 것도 없으니 그냥 이 기회에 손 털고 나오시지요.”

안자영은 한 숨을 흘렸다.

“나라고 그걸 모르겠느냐? 이미 신공부주는 떠오르는 해와 같고, 노국장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진 여명과 같다. 네 외조부가 시간을 끌어봤자, 아무 것도 달리지지 않을 거야. 신공부주는 상왕을 자처해서라도 신공부를 좌지우지하려 하겠지. 하나 네 외조부의 성격 상 이대로 물러나실 리가 있겠느냐?”

남천휘는 기억조차 희미한 외조부를 떠올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황제가 출사를 권했을 때에도 이치에 맞지 않다며 콧방귀를 뀐 사람이 바로 외조부였다. 어머니와 달리 학식이 대단한 외조부는 불같은 성정과 대쪽 같은 신념으로 유명했다.

오죽 했으면 염죽대선생이라 불릴까.

‘불타는 대나무 큰 선생이라니.’

그랬기에 한량으로 살아왔던 남천휘는 외조부가 무서웠다. 일부러 노국장 쪽으로는 발길조차 돌리지 않고 살아오지 않았던가.

남천휘는 천수련을 바라봤다.

그녀는 이 자리에 함께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 듯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얘는 왜 여기 있는 건데요? 이건 집안일이니 오히려 큰형을 부르셨어야지요.”

이 여자는 내 여자가 아니다.

‘왜 말을 못하냐고?’

괜스레 긁어 부스럼을 만들까 걱정이 됐다.

“내가 도움을 청했다.”

남천휘는 눈을 끔뻑였다.

그 말인즉슨 신공부의 보이지 않는 위협에 대비하려고 천수련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말이 아닌가.

“네?”

어불성설이다.

제아무리 천수련이 동년배에 비해 고강한 무위를 지녔다고 하나, 후기지수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아닌 말로 천위검호가 야심한 밤에 뛰어들면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지금껏 잠자코 있던 천수련이 입을 열었다.

“제가 아닌 제 사문에 도움을 청하셨어요.”

남천휘는 그제야 개안을 하는 듯했다.

“아! 검후. 검후의 제자가 머무는 곳에서 혈사가 일어난다면…….”

“그래, 비난은 신공부의 몫이지. 이미 노국장에는 각계각층의 명사들을 초빙해놓은 상황이란다. 시인묵객이나 유불도의 고명한 현인들이 지금도 바둑을 두거나, 시를 지으며 시간을 보내고 계신단다.”

“무인은 일부러 배제하셨겠네요?”

“네 외조부의 말씀에 의하면 지금은 약할수록 강한 상황이라 하셨다. 오히려 신공부로서는 노국장을 지켜야 하는 상황인 게지.”

안자영은 천수련을 향해 미안한 마음을 내비쳤다.

“본래 제연평에 도움을 청했단다. 아무래도 수련이는 아직 어리고, 연약한 여아가 아니더냐.”

딸처럼 부르지 말아주실래요.

그리고 저 아이는 한 방에 한 명씩 저승으로 보내는 개똥이랍니다.

천수련은 수련이라는 호칭에 뭐가 그리 좋은지 입꼬리를 실룩거렸다.

“제룡검야를 배출한 제연평은 아직도 봉문 중이랍니다. 그렇기에 제게 제연평의 의지를 증명하는 명패를 맡기셨지요.”

그녀가 검지와 중지를 펴고 말했다.

“그러니 저는 보타암과 제연평, 두 곳의 대표나 마찬가지랍니다.”

얼씨구, 개똥이 주제에 거들먹거리는 거냐?

남천휘는 그러던 중 눈을 끔뻑였다.

“잠깐! 그러면 너도 노국장으로 가는 거야?”

천수련은 금세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도와드리기로 마음먹은 이상 그래야만 할 것 같아요.”

그래, 그렇겠지.

협의(俠義)라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칼을 휘두를 녀석이 아니던가.

한데 이렇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나 수련하러 갔을 때 우리 집은 누가 지키고?’

남천휘는 굳은 표정으로 눈알을 굴렸다.

마치 백년대계를 세웠거늘 첫 걸음부터 나자빠진 듯했다.

이후의 대화는 별 다를 것이 없었다.

그녀가 노국장으로 향하는 건 싸우기 위함이 아니었고, 신공부 또한 섣불리 건드릴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노국장이 원하는 건 한 가지다.

대치(對峙).

그렇기에 오랜만에 만난 모자의 대화가 이어졌고, 천수련과 석별의 정을 나누는 것이 전부였다.

“하루 정도는 괜찮을 게야. 그러니 내일은 집안을 정리하고, 모레 출발하도록 하마.”

*

남천휘는 처소에 들어서자마자 한 숨을 내쉬었다.

100레벨을 찍으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다른 방책을 강구해야 할 때였다.

‘곡부남가에서 수련을 할까?’

그러나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그가 곡부남가를 떠나려는 이유는 오롯이 ‘VR’ 때문이다. 대두동에서 수련을 한다면 VR의 영상을 통해 백파도 남추의 비천무상도법을 원하는 만큼 돌려보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다고 곡부남가를 그냥 두고 떠날 수도 없고.’

그 때 재이의 알림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 알림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시발점이 되었다.

남천휘는 눈을 빛냈다.

“재이야! 내게는 너밖에 없구나. 사랑한다!”

천수련은 남천휘의 처소 밖으로 흘러나온 외침에 미간을 좁혔다.

‘재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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