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123화 (123/305)

60, 삼협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

60, 삼협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

떴다. 떠버렸다.

그래, 이제 와서 다른 히든 모드가 등장했으면 오히려 당황했으리라.

그러고 보면 좀 멋있기는 했잖아.

백 명, 아니 이백 명쯤 되었던가?

언뜻 보기에 별거 없어 보이는 숫자지만, 한데 뭉쳐놓으면 인산인해가 따로 없을 만큼 절대 다수였다.

남천휘가 그 많은 적을 홀로 처단했다.

어느 여인이 반하지 않을까 싶더라.

‘그래, 오너라!’

《상위 0.0001%의 이성에게 호감도 80%를 달성했습니다.》

100%를 요구했던 연하연과 달랐다.

첫 관문을 통과하면 호감도 제한이 80으로 하향된다더니 정말 그리 되어버렸다.

《지금부터 아름다운 인연을 시작하세요.》

한데 미연시(美緣始)라는 명칭처럼 아름다운 인연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낯간지럽지 않은가. 마치 술을 끊겠다고 선언한 막 총관과 무공을 수련해야 하는 것처럼 어색했다.

‘가족끼리는 그러는 거 아니라던데.’

그 때 재이가 재촉 하듯 알림을 울렸다.

◎ 미녀를 대상으로만 발동되는 모드입니다.

◎ 주기적인 만남과 특별한 사건을 통해 하트를 수집하세요.

◎ 수집에 실패하거나, 호감도가 하락할 시 미연시는 자동으로 해제 됩니다.

◎ 하트가 모두 충전되면 천생연분 이벤트가 발동합니다.

남천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제대로 시작한 미연시는 처음이었기 때문일까.

연하연 때와 달랐다.

주기적인 만남과 특별한 사건을 통해 뭐를 모아?

갈고리를 맞대놓은 듯한 문양을 모으란다.

‘하트?’

무엇보다 마무리를 상징하는 듯한 천생연분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남천휘가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저절로 천수련의 정보가 활성화됐다.

이름 : 천수련(♡x0)

호감 : 80

지위 : 검후의 후계자.

미모 : 갑(甲)

몸매 : 을(乙)

헉! 작고, 아담해서 을인 거냐?

돌이켜보면 연하연의 미모와 몸매는 모두 갑이었다. 하긴 늘씬한 체구에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올 곳은 나왔으니 호불호가 있을 리 없는 몸매였다.

그래도 그렇지.

‘그럼 아담한 여자를 좋아하는 게 잘못된 거냐? 물론 내가 그렇다는 건 아니야.’

그저 중원의 모든 남성을 대변하여 아쉬움을 토로했을 뿐이다.

남천휘는 천수련을 안쓰럽게 바라봤다.

앞으로 밥이라도 잘 챙겨 먹여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순간이었다.

본격적으로 미연시가 열렸다.

지이이이잉-

시야 전체에 사각의 테두리가 생성됐다.

그리고 시야 하단에 횡으로 선이 그어진다.

위쪽은 평소와 다름없는 시계였다.

하나 아래쪽은 하얗게 물들더니 백지로 변했다.

불현 듯 연하연과의 미연시가 떠올랐다.

당시 말과 속마음이 고스란히 적히는 바람에 대경실색하지 않았던가.

‘이제 시작이네.’

아니나다를까 수려한 필체의 글귀가 백지 위에 나타났다.

「남천휘 : 이제 시작이네.」

이게 속마음이고.

천수련이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듯 심호흡을 했다.

“하아.”

『천수련 : 하아.』

이게 입 밖으로 나온 말이다.

뭐든지 처음이 신기하다지만, 두 번째도 신기한 건 마찬가지였다. 한데 그러고 보니 신기한 것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당시 연하연의 몸 곳곳에는 문양이 새겨지지 않았던가. 입술과 이마, 볼, 가슴과 옆구리를 비롯해 쳐다보기조차 쉽지 않은 위치였다.

자연스럽게 연하연을 추궁과혈 했을 때가 뇌리를 스쳐갔다. 다소 민망한 위치에 생성된 표식에 손을 가져다대면 손바닥 모양으로 변헸디/

그걸 만지는 순간 두 번 다시 듣기 싫을 만큼 경박한 기음이 울렸었지.

‘찡찡이었던가?’

시야 하단에 속내가 적혔다.

마치 자신의 더러운 속마음이 까발려지는 듯하여 얼굴이 화끈했다.

괜스레 재이에게 화풀이를 하듯 외쳤다.

물론 속으로.

‘야! 표식은 어디 간 거야?’

◎ 개시 이벤트가 종료되었습니다.

◎ 이제 표식은 특별한 사건이나 천생연분 이벤트가 아니면 발생하지 않습니다.

개업 기념으로 떡을 주는 그런 방식인 거냐?

남천휘가 힐끔거리는 사이 천수련이 움직였다.

부지불식간에 그녀의 을(乙)급 몸매를 훑어보게 되었다. 그녀는 시선을 살짝 아래로 한 채 다가왔다. 그 모습이 마치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하여 남천휘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누가 저런 그녀를 보고 혈인검을 단칼에 찔러 죽이는 협녀를 떠올리겠는가.

한데 남천휘는 그녀가 다가올수록 시야 하단에 적히는 문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작은 아기 새가 처음 둥지를 벗어나듯 조심스러운 발걸음에서 그녀의 애틋한 감정이 여실히 느껴졌다.

남천휘는 낯간지러운 글귀를 보는 순간 개미가 온 몸을 기어가는 듯한 간지러움을 느꼈다.

‘저거 누가 쓰는 거냐?’

재이는 대답 대신 선택지를 내밀었다.

일전에 그랬듯 시스템이 저절로 발동하더니 시야 하단에 문가를 추가했다.

《천수련은 처음 느끼는 일체감에 좋으면서도 당황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녀를 위로해주세요.》

-> 1, 힘껏 안아준다.

-> 2, 점잖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남천휘는 미간을 좁혔다.

‘연하연 때에도 힘껏 안아준다는 선택지가 있었던 것 같은데…….’

미연시는 포옹 못하고 죽은 귀신이 만든 것일까.

어쨌든 갑자기 안아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남천휘가 2번을 선택하는 순간 추천 문구가 하단에 적혔다.

《다섯을 헤아리기 전 아래 문구를 말하세요.》

시스템 아래 적힌 추천 문구를 보는 순간 욕설이 절로 튀어나왔다.

도대체 어떤 새끼가 추천하는 거냐!

하나 문구 위의 시간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때마침 코앞까지 다가온 천수련이 고개를 들고 남천휘를 올려다봤다.

본능적으로 지금이 기회임을 깨달았다.

어색하고, 부끄러웠지만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미 퀘스트의 노예가 되어버린 몸이다.

남천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추천 문구를 건넸다.

“괜찮아요? 많이 놀랐죠? 어디 다친 덴 없어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려니 더듬는 건 물론이고, 평소와 다른 말투에 스스로도 표정을 굳혔다.

천수련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게 남천휘를 빤히 쳐다봤다.

왠지 기쁜 것보다 당황스러운 듯보이는 건 착각이겠지. 아니나다를까 잠시 후 눈을 끔뻑이던 그녀의 입매가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 순간 시야 하단에 천수련의 속내가 드러났다.

「천수련 : 나한테 왜 이러지?」

그녀의 상기됐던 안색이 제 빛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흘러나온 그녀의 대꾸는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하, 하. 괜, 찮, 아, 요.”

그 순간 시스템이 비명을 쏟아냈다.

《삐이이이이이이》

- 천수련의 호감도가 하락했습니다.

- 호감도가 기준 이상으로 하락했기에 미연시가 해제됩니다.

테두리의 붉은 선은 사라졌고, 필기를 위한 백지도 자취를 감췄다. 어디선가 불어온 겨울바람이 빈자리를 채웠다.

솨아아아아-

폐부를 스쳐간 바람이 하얀 입김으로 사라졌다.

겨울은 겨울이다.

‘춥네.’

미연시가 해제되고 특급 강호인 승급 체계로 복귀하는 순간 재이의 알림이 연이었다.

한데 오늘 따라 어딘가 모르게 재이의 무덤덤한 말투가 마음에 걸렸다. 불굴과 평정을 만렙까지 찍었을 재이가 짜증을 내는 듯했다.

한데 너무 많은 알림이 쏟아지다보니 왠지 모르게 재이가 짜증을 내는 듯했다.

‘뭐? 내가 뭐? 연애를 글로 배운 것도 모자라 이제는 시스템으로 배워야겠냐?’

억울함을 토로하는 사이에도 알림은 이어졌다.

《곡부남가가 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 메인 퀘스트 ‘1-5’가 종료됩니다.

- 곡부남가의 명성과 영향력이 증가합니다.

- 곡부남가에 대한 추종세력이 만들어집니다.

- 곡부남가의 명칭이 장원에서 무가로 변경됩니다.

- 곡부남가의 성소 등급이 D에서 C로 한 단계 상승했습니다.

메인 퀘스트가 완료됐다.

곡부남가에 대한 보상과 달리 개인 보상은 정보 수집 후 변경이 된단다.

‘하아.’

명성이 증가하고, 호칭이 생기고, 히든 모드가 또 열리면 무엇 하나. 기껏 열린 미연시를 일각도 유지하지 못한 반편이에게는 만사휴의였다.

잠시 후 돌발 퀘스트도 완료가 됐다.

자수정과 VIP 포인트가 보상으로 지급됐다.

‘하아.’

남천휘는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오늘 곡부남가에 들러붙은 마지막 악재를 떨쳐냈다.

‘문파관리’의 인명록 상에 존재하는 가솔들의 충성도는 최하 70을 넘기지 않았던가. 그러니 곡부남가는 가솔들끼리 똘똘 뭉쳐 성장하는 일만 남은 셈이다.

‘분명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텅 빈 것처럼 허전했다.

남천휘는 천수련을 힐끔 쳐다봤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딱딱한 대꾸가 뒤늦게 마음에 걸렸나 보다. 시선도 마주치지 못한 채 딴청을 피우고 있지 않은가. 이쯤 되니 상대방의 속내를 훤히 알려주던 미연시가 더욱 그리웠다.

‘괜찮아요? 많이 놀랐죠? 어디 다친 덴 없어요?’

몇 번이나 입안에서 굴려봤다.

확실히 할수록 능숙해지는 듯했다.

이제 다시 미연시가 열리면 제대로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차올랐다.

하나 미연시 대신 특기가 열렸다.

◎ 탈각진체법을 복사했습니다.

◎ 특기 ‘통찰(通察)’이 등록되었습니다.

◎ 오감과 기감이 한층 더 발달됩니다.

드디어 S급 특기를 얻었다.

천수련이 가르쳐주겠다고 했으니 정당하게 얻어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S급 특기 3개를 수집했습니다.

- 보상으로 A급 이하 특기 승급권을 지급합니다.

이번에도 예상치 못한 선물이다.

재이가 선심 쓰듯 아이템을 퍼주는 것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끝끝내 회회회판은 똥만 퍼주더라.

남천휘는 입맛을 다시며 한 번 더 천수련을 살폈다. 그녀는 죄지은 사람처럼 시선을 마주하지 못했다. 오히려 작은 발끝으로 애꿎은 흙탕물을 튀기며 눈치를 보고 있지 않은가.

이것 또한 통찰의 힘일 터였다.

스치듯 지나친 모습만으로도 그녀의 심경을 읽어내고 있지 않은가.

남천휘는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다.

“훗.”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로 등을 맞댄 채 혈투를 벌였다. 한데 긴장을 풀고 쉬어야 할 시간에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딱-

엄지와 검지 사이에 천품육포가 나타났다.

“먹을래?”

천수련은 고개를 끄덕였다.

육포를 오물거리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미소가 끊이지 않는다. 식탐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크게 베어 물고는 우걱우걱 씹는 모습은 다람쥐를 연상케 했다.

천수련도 자신의 모습이 우스웠던지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다 이내 미간을 좁히더니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가.

“혀를 씹었어요.”

미연시는 개뿔, 다 집어치워라.

남천휘는 자신도 모르게 폭소를 터트렸다.

때마침 내원 쪽에서 서산노옹이 모습을 드러냈다.

“괜찮은가? 운연각은 무사해! 한 명도 다치지 않았다네.”

남천휘는 환하게 웃었다.

이미 특기 ‘유지’를 활용해서 곡부남가 전체의 지도를 실시간으로 살폈다. 그렇기에 오십여 명의 적이 운연각 쪽으로 우회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운연각 입구에 펼쳐놓은 혼무진과 혼향진을 벗어나지 못했다. 진법 안에서 배회하다가 한명씩 움직임이 멈추더라. 어디 소속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럴 거면 왜 쳐들어왔는지 의아할 정도의 실력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남천휘가 공수를 하자, 천수련도 뒤따라 손을 모았다. 반면 서산노옹은 곡부남가 전방의 들판을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일견하기에도 이백여 명은 족히 될법한 숫자였다.

‘두 사람의 힘만으로…….’

놀라움과 부러움, 그리고 씁쓸함이 뒤이었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는 건 자연의 섭리였다. 어느덧 자신은 앞 물결이 되었음을 새삼 실감한 것이다.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벅찬 거였던가?’

그는 장탄식을 했다.

하지만 공명정대하고, 후덕한 성정답게 이내 미소를 그렸다.

“축하하네. 자네가 가문의 위기를 논했을 때만 해도 과하다 싶었던 것이 솔직한 속내였어. 한데 오히려 자네의 선견지명을 알아보지 못한 늙은이의 추태였구려.”

남천휘는 고개를 내저었다.

“어르신과 백주검께서 계셨기에 제가 나설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큰 도움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서산노옹은 겸양 어린 남천휘의 언행에 탄성을 흘렸다.

‘허허, 보면 볼수록 탐이 나. 하나 내가 품기에는 이미 너무 큰 거목이 되어버렸어. 조만간 산동을 넘어 중원 전체에 큰 이름을 떨치겠구나.’

그는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숙부라는 작자가 이런 흉악한 짓을 벌이다니! 자네 그자를 어찌 처리할 셈인가?”

남천휘의 눈빛은 또렷했다.

이미 왕망의 배신을 확신했을 때부터 결심하지 않았던가. 그가 속내를 드러내려던 순간 천수련이 침음을 흘렸다.

“잠깐만요! 누가 와요.”

남천휘는 황급히 천수련의 시선을 좇았다.

누군가 말을 타고 곡부남가를 향해 접근했다.

빠른 속도로 내달리던 준마에서 여인이 솟구쳤다.

여인은 공중에서 두 바퀴나 몸을 뒤집더니 세 사람 앞에 내려섰다. 삼십대의 미부(美婦)처럼 보였지만, 무복을 걸쳤고 허리에는 검까지 패용했다.

천수련은 자신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여인을 보며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누구지?’

그 때 그녀의 물음에 대꾸하듯 남천휘의 한 마디가 들려왔다.

“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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