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114화 (114/305)

56, 관심법(觀心法). (3)

*

‘문파 관리’는 지금까지 발굴해냈던 히든 모드와 달리 엄청나게 복잡했다.

목록이 많은 만큼, 할 수 있는 것이 많았다.

어쩌면 곡부남가를 한순간에 성장시킬 수 있는 답안지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감정에 충실한 남천휘가 어찌나 기뻤을까. 속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을 정도였다.

한데 왕망을 마주하는 순간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와! 배신자 연기 보소.’

왕망이 너스레를 떨며 막 총관과 대화를 나눴다.

‘웃는 것 좀 보게. 저러다 뒤통수를 제대로 맞아봐야 제 위치를 확인하려나?’

그래, 그게 좋겠다.

왕망의 뒤통수를 후려치자.

기왕이면 칼로 후려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구밀복검에는 구밀복검으로 대응한다!’

남천휘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이쯤 되면 성어를 사용하여 지재를 자랑했으니 지혜 수치가 오르지 않을까 싶었던 게다.

하나 재이는 침묵했다.

남천휘는 재이를 놀리기 위해 소모된 지혜 수치를 떠올리며 투덜거렸다.

‘영악한 것!’

하긴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녀석을 어찌 속일 수 있으랴. 사람의 마음을 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질문한다면 녀석은 혈류의 움직임과 근육의 떨림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고 대꾸하겠지.

‘어!’

남천휘는 잠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순간 작은 깨달음이 뇌리를 스쳤다.

이거 왠지 탈각진체법과 흡사하지 않은가.

‘뭔가 숙련도가 올라가는 듯한 기분이야.’

그러니 울리나? 안 울리나?

안 울렸다.

재이는 마치 외출을 한 것처럼 침묵했다.

‘이 정도 깨달았으면 대충 등록시켜 줄 것이지.’

남천휘는 신경질적으로 천품육포를 씹었다.

그러던 중 재이를 불러낼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다.

‘일반적인 능력 수치와 문파 관리로 확인하는 수치는 뭐가 다른 거지?’

◎ 곡부남가 내 가장 뛰어난 사람을 기준으로 정리된 수치입니다.

남천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력은 나일 테고, 지력과 매력은?’

목록을 직접 확인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남천휘는 인명록을 다시 펼친 후 한 명씩 살폈다.

충성만 확인했을 때와 달리 제반 능력까지 꼼꼼하게 확인한 것이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 소혜(99). 시비, 8, 51, 99 소녀(內)

당황스럽다.

이 수치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남천휘는 황급히 대전을 둘러봤다.

저 멀리 시중을 들고 있는 소혜가 보였다.

그녀가 일하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다.

그래서였을까.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이 보였다.

소혜의 큰 입은 웃기 위해 있는 것처럼 항상 미소를 유지했다. 커다란 눈은 언제나 맑고, 투명했기에 마주하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녀를 보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그녀는 활력과 행복을 갑옷처럼 두르고 다녔다.

남천휘는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다.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겉으로 보이는 것도 모르고 살았네.

지금껏 눈 뜬 장님처럼 그녀를 대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후회가 막심했다.

그래도 한 번 개구리는 영원한 개구리다.

‘또 머리가 나보다 좋은 것도 비호감이야.’

소혜가 남천휘의 시선을 눈치 챘나 보다.

그녀는 배시시 웃었다.

이 녀석아, 입이 귀에 걸리겠다.

쯧, 하여간 충성 99의 힘이란.

남천휘는 소혜의 맑은 눈동자를 피해 인명록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이 놈 저 놈 가리지 않고, 흩뿌리는 매력을 어디에 쓰겠는가.

상점에서 에누리 할 때나 쓰겠지.

‘쳇! 쓸모없는 개구리 같으니라고.’

빠르게 인명록을 훑었다.

곡부남가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사람은 누가 뭐라 해도 총관인 막대통이다. 그리고 막대통의 제자이자, 미곡창고의 창고지기인 도준의 지력이 69였다.

잘하면 청출어람도 남의 일은 아니리라.

하나 그런 막대통의 지력을 71로 고정시킨 자가 누구일지 더욱더 궁금했다.

‘없네.’

인명록을 두 번이나 살폈지만, 지력이 높은 자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은둔고수라도 있을까 기대했던 남천휘로서는 아쉽기만 했다.

‘그럼 누구지? 설마 나냐?’

남천휘는 이내 눈을 깜빡였다.

곡부남가에서 속했으면서 인명록에 존재하지 않는 자는 자신이 유일했다.

그런데 그건 말이 안 되잖아.

막 총관과 대화를 할 때마다 말문이 막히기 일쑤였다. 그런 자신이 막 총관보다 지력이 높다니. 하지만 재이의 설명을 듣고 보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총관인 막대통의 지력은 상재 또는 연륜으로 인한 인간관계에 국한됐다. 반면 남천휘는 짧지만 몇 번의 강호행을 통해 강호 정세에 눈을 뜬 상태였다.

그것만으로도 이처럼 지력의 차이가 벌어졌단다.

‘곡부남가는 진짜 고인 물이었군.’

지금껏 별 다른 고난 없이 가세를 넓혔던 것이 기적인 셈이다.

그러니 의형제인 왕망이 노리는 거겠지.

밖에서 봤을 때 얼마나 먹음직스러웠을까.

어쩌면 곡부남가는 신마대전 이후 평화로운 강호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어찌됐든 써먹을만한 자가 단 한 명도 없어!’

남천휘는 침음을 흘렸다.

이래서야 곡부남가가 자립할 수 있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한세월이 걸릴 것만 같다.

‘급성장이 필요해.’

하나씩 차근차근 이루려다가는 한 세월이다.

그러니 급성장에는 급전개가 필수였다.

다행히 남천휘는 급전개를 위한 여러 장치를 지니고 있지 않은가.

‘좋았어. 일단 왕망을 처리하고, 충성도가 낮은 것들을 깡그리 걸러내는 것부터 하자.’

큰형과 막 총관이 돈은 알아서 벌어올 게다.

그러니 이제 남천휘는 고관대작처럼 돈을 쓰며 곡부남가를 강화할 요량이었다.

‘좋다. 좋아!’

남천휘는 그제야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자 눈치를 보고 있던 천수련이 슬쩍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기에 표정이 오락가락 하는 거예요?”

남천휘는 그 순간 허리에 힘이 바짝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천수련의 현재 호감도는 75가 아닌가.

하나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내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가뜩이나 왕망이 무슨 수작질을 부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아니던가. 이런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고수의 존재가 절실했다.

그러니 차를 끓일 때 물을 조절하듯 섬세하게.

그리고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듯 명확하게.

“네 생각.”

천수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남천휘의 말은 순진한 그녀라고 해도 반응할 수밖에 없을 만큼 직설적이다. 하나 그녀가 대꾸를 하기 전 남천휘의 말이 이어졌다.

“네가 얼마나 강할까 생각하고 있었어.”

“아.”

천수련은 어색하게 웃었다.

남천휘는 자신의 채찍과 당과 계책이 성공했음을 확신했다.

‘헷갈려라. 더욱더 헷갈려라.’

그렇다면 내키지 않는 부탁이라고 해도 들어주지 않을 수 없으리라.

남천휘는 자신의 머리가 정말 좋아졌음을 느끼며 만면 가득 웃음을 머금었다.

“그나저나 다음 수련은 언제로 잡을까?”

천수련은 수련 이야기가 이어지자, 시큰둥한 어조로 대꾸했다.

“내일 아침에 봐요.”

남천휘는 미간을 좁혔다.

그는 그녀의 앞에 나뒹굴고 있는 술병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가능하겠어?”

“안 될 건 뭐예요. 이미 잘 하고 있더만.”

어째 말투가 조금은 퉁명스럽다.

하나 남천휘는 모른 척했다.

호감도가 내려가도 좋았고,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필요도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아까부터 이쪽을 힐끔거리는 소혜의 시선도 신경이 쓰였다.

남천휘가 손짓을 했다.

그러자 소혜는 기다렸다는 듯 잰걸음으로 다가왔다.

“왜?”

“이거 치워도 되요?”

언제나 상상했던 것 이상을 보여주는 녀석이네.

소혜는 천수련 앞에 널브러진 술병과 접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다 먹었으니 치워도 되지. 그것 때문에 계속 눈치를 본 거야?”

“제 일이니까요. 한데 개똥, 아니 천 소저와 정담을 나누시는 것 같아서 기다렸어요.”

남천휘는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리 좀 해줘.”

“네.”

소혜는 본업을 상기시키듯 걸레로 탁자를 빠르게 훔쳤고, 빈 술병과 접시를 한데 모았다.

한데 혼자 들고 가기에는 너무 많은 걸?

남천휘는 슬쩍 엉덩이를 떼려다 다시 힘을 뺐다.

그도 그럴 것이 소혜가 비틀거리는 순간 주변에 있던 하인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내, 내가 들어줄게.”

한 마디로 개떼처럼 몰려들더라.

녀석들은 자신을 앞에 두고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이놈들아!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귀협이라는 별호가 부럽다느니, 삼공자가 최고라며 엄지를 추켜세우지 않았더냐.

결국 소혜는 걸레만 손에 쥔 채 눈을 깜빡였다.

“아, 괜찮은데.”

하인들은 한 무더기씩 짐을 진 채 소혜만 쳐다보는 형국이다. 이거 왠지 용봉쟁투에서 천수련을 쫓아다니던 후기지수들을 연상케 하는 광경이 아닌가.

‘이게 매력 99의 힘이구나.’

남천휘는 느긋하게 의자에 몸을 기댔다.

누군가는 연회에 하인과 시비를 초대한 것을 보고 예법을 운운할 수도 있다.

하나 이것이 곡부남가였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곳.

그리고 남천휘의 고향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이 지켜야 할 곳.

‘후훗, 흥겹구나.’

분위기가 고조되는 것과 달리 사람들은 하나둘씩 대전을 떠났다.

내일을 준비하기 위함이다.

왕망 또한 명숙들에게 인사를 한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숙부, 가십니까? 더 드시고 가시지요.”

남천휘의 말에 왕망은 빙긋 웃었다.

“하하하! 나야 조카들과 밤새도록 즐기고 싶지. 하나 해야 할 일이 많으니 이만 돌아가야겠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포권을 했다.

‘내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던 놈이…….’

왕망의 입매가 찰나간 비틀렸다.

남천휘는 그 순간 등허리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

처음으로 의식하지 않고 상대의 미세한 움직임을 인지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갈고 닦으면 싸움에도 응용이 가능한 거겠지.’

그는 입꼬리를 올렸다.

손날로 팔뚝을 내려치는 시늉을 하며 물었다.

“바쁘시네요. 왕풍은 괜찮지요? 그 때…….”

왕망의 눈꼬리가 떨렸다.

남천휘는 본능적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때가 멀지 않았음을.

그러니 저 자가 오랫동안 숨겨왔던 속내를 드러내는 거겠지.

“방자한 녀석인지라 아직도 바깥출입을 금지했다. 그 녀석도 너처럼 야무지면 좋을 텐데 말이야.”

“호부 밑에 견자 없다지 않습니까.”

남천휘의 말에 왕망은 표정을 굳혔다.

그가 기대한 말은 호부 밑에 견자가 없으니 왕풍도 조만간 마음을 다잡을 거라는 위안이었다. 하나 저렇게 말을 끊어버리니 호부인지, 견부인지 쉽사리 정리가 되지 않았다.

하나 그는 이내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 날 일로 마음이 많이 상했구나. 큰 사람이 된 네가 이해하거라.”

“그럼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남천휘는 그렇게 왕망을 배웅했다.

‘평소였다면 버릇이 없다고 화를 냈어야 해. 한데 그냥 받아들인 걸 보면…….’

이 자리가 불편하다는 뜻이리라.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를 드러내는 것이 걱정됐겠지.

‘그 무언가를 알아야겠어.’

남천휘는 잠시 후 노곤함을 핑계로 연회장을 벗어났다. 그리고 이내 야음을 틈 타 곡부남가의 담을 뛰어넘었다.

방향은 북풍표국이다.

*

왕망은 처소에 들어온 후 화병을 쥔 채 몇 번이나 움찔거렸다. 생각 같아서는 화병을 던지고, 탁자를 뒤집어서 화풀이를 하고 싶었다.

하나 거사가 멀지 않았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할 때가 아니던가.

“후우.”

그는 심호흡을 한 후 밖을 향해 외쳤다.

“총표두를 불러오라!”

잠시 후 삼람도 호연척이 처소로 들어섰다.

“국주, 연회는 즐거우셨나 봅니다.”

왕망의 얼굴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호탕함이 가득했다.

“자네도 함께 갔어야 했는데.”

“그러고 보니 이틀 후 손님 없이 가족들끼리 연회를 연다지요. 그 때 저도 술 한 잔 얻어 마셔야겠습니다.”

호연척은 너스레를 떨었다.

하나 왕망은 아쉬운 듯 말을 건넸다.

“내가 자네에게 말하지 못한 게 있네. 오늘 곡부남가로 가기 전 큰 의뢰가 들어왔어. 이틀 후 출발하는 상단의 호위라네. 제법 큰 곳인지라 곡부남가의 북풍대까지 빌려와야 할 판이야.”

“아! 그렇다면 제가 가야겠군요.”

“북풍대도 손을 빌려주기로 했으니 어려움은 없을 걸세. 다만 자네는 연회에 참석할 수 없을 테니 그것이 미안할 따름이야.”

호연척은 호탕하게 웃었다.

“북풍대까지 빌려올 정도면 제법 큰 의뢰가 아닙니까? 저도 적지 않은 수당을 받겠지요. 오히려 제가 국주께 감사를 해야 할 상황이 아닙니까?”

“그렇게 알아주니 고맙네.”

두 사람은 표행에 합류할 표사들을 선별하며 두런두런 대화를 나눴다. 지붕 위에서 누군가 자신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흐음, 총표두를 빼돌린다 이거지.’

인명록에 의하면 총표두 호연척은 제법 충성도가 높았다. 게다가 왕망이 표행에 합류시키는 표사들도 대부분 그러했다.

이것이야 말로 한 가지를 의미하지 않겠는가.

방해꾼을 눈앞에서 치워버리려는 게다.

‘즉 이틀 후라 이거지.’

◎ 지적 수준의 발현으로 인해 지혜 수치가 +20 증가합니다.

남천휘는 입꼬리를 올렸다.

‘자식, 일찍도 올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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