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98화 (98/305)

50, 정상결전(頂上決戰). (2)

낭인들은 공태령의 기세에 밀려 주춤거렸다.

하나 배후에 위치했던 오룡방의 방도들은 오히려 투기를 일깨웠다.

오룡방은 오룡검귀를 수장으로 한 조직이다.

다섯 명은 의형제로 십수 년 동안 강호를 종횡했다.

“형님, 저거 공태령이잖습니까.”

“그렇지? 어디서 봤나 했더니······.”

“후훗, 원후봉을 이잡듯이 뒤질 생각에 골치가 아팠는데 잘 됐군요.”

“제 발로 기어들어오다니.”

오룡방의 방주인 일룡이 읊조렸다.

“청사당과 낭야당의 당주들부터 불러. 그리고 무슨 짓을 해서라도 공태령의 힘을 빼놓으라고 하게.”

어차피 저들이 공태령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사당은 그저 칼받이에 불과했다.

일룡은 곤륜산인의 명령을 떠올리며 아랫입술을 핥았다.

‘공태령이 죽으면 청도문이 산동제일로 올라설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는 의제들이 낭인들 사이로 사라지자, 심호흡을 했다. 오늘은 산동강호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언제부터 애송이한테 주눅 드는 병신들이 낭인 행세를 했었느냐? 뭐해! 죽여!”

일룡의 일갈이 천릉곡을 전쟁터로 만들었다.

*

남천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눈앞에서 악귀처럼 날뛰는 녀석을 보라.

저런 놈의 별호가 철면호협(鐵面豪俠)이다.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저건 왜 저렇게 발악을 하는 거야?’

나쁜 놈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는 건 확실했다.

게다가 녀석의 꼴을 보면 좋지 않은 기억의 강도가 상당할 것으로 짐작됐다.

‘아우, 얽히지 말아야지.’

어찌됐든 공태령으로 인해 길이 열렸다.

남천휘와 천수련이 천릉곡에 발을 들이는 순간 사방에서 칼이 날아들었다.

쉭쉭쉭쉭쉭!

남천휘는 적의 공세를 손쉽게 벗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낭야당의 무인들은 30레벨을 겨우 넘겼고, 청사당이라고 해도 50을 넘지 못했다.

그렇기에 손등으로 도를 밀어내고, 대부의 면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터텅!

그것만으로도 녀석들은 비명을 지르며 병장기를 놓쳤다. 하나 퀘스트 조건은 충족되지 않았다. 아마 단순한 제압이 아니라 천성혈법을 통해 상대를 무력화했어야 했나 보다.

그 때 예기치 못한 쇳소리가 연이었다.

채채채채채챙!

흡사 서너 명이 동시에 싸우는 듯했다.

남천휘는 고개를 돌렸다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아!’

천수련은 언제 뛰어왔냐는 듯 느긋한 걸음으로 적진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는 위협이 되는 공격만 절묘하게 걷어내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은 산책을 나온 것처럼 여유로웠다.

그녀가 재차 검을 휘젓는 순간 십여 개의 검영이 번뜩였다. 그것만으로도 세 명의 적이 쓰러졌고, 십여 명의 적이 물러났다.

그녀는 강했다.

그러고 보면 남천휘가 아는 사람 중에서 유일하게 전음을 사용하는 고수가 아니던가.

“공 소협과 합류해야 해요.”

천수련의 담담한 한 마디였다.

안정된 호흡이 그녀의 성취를 증명했다.

‘마냥 평화로운 곳에서 자란 건 아니었나?’

그녀의 기세나 투로만 봐도 한두 번 실전을 거침 솜씨가 아니었다. 오히려 공태령의 난폭한 싸움법이 초심자를 연상케 했다.

물론 효과는 후자가 더 확실했다.

“뭐, 뭐야? 이거 미친놈이잖아!”

낭인은 소속 없이 강호를 떠도는 자들이다.

한때 유협이라 불리며 협객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으나, 작금에 이르러서는 그저 흑도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그런 자들에게 불굴의 의지와 뜨거운 투기를 바라는 건 애초부터 무리였다.

타탓!

그 순간 공태령이 절묘한 보법을 펼치며 낭인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스스로 포위망에 갇힌 듯 보였으나, 오히려 적을 간격 안에 끌어들인 셈이다.

촤아아악!

두 자루의 패도가 사방을 난도질했다.

그 순간 낭인들 사이에서 수맥이 터진 것처럼 피가 솟구쳤고, 예닐곱 명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세 자리 레벨의 공격은 그들에게 재해나 다름없었다. 벼락처럼 무언가 번뜩이는 순간 동료가 피를 쏟으며 쓰러지니 사기는 바닥을 쳤다.

“후우, 후우.”

공태령은 낭인들의 피를 온몸에 뒤집어쓴 채 숨을 몰아쉬었다. 그럴 때마다 뜨거운 핏물이 만들어낸 열기로 공간에 일렁였다.

그 모습은 살귀와 다르지 않았다.

남천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공태령을 응시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태령이 아니라 그가 펼친 도법을 살핀 셈이다.

‘확실히 공야청으로부터 비천무상도가 전해지기는 한 것 같아.’

그러나 제대로 전해진 것은 아닌 듯했다.

백파도 남추의 비천무상도(飛天無常刀)는 그 명칭처럼 도가의 음유함과 속세의 파괴력이 겸비됐다. 그렇기에 봄바람처럼 스며들었고, 벼락처럼 강렬하지 않던가.

강건함과 유려함의 조화.

이것이 바로 비천무상도의 묘의였다.

한데 공태령의 도법은 패도(覇刀)의 극의를 쫓는 것처럼 격렬했다.

‘할아버지가 공야청에게 허투루 전했을 리가 없지.’

가상현실 속에서 보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지음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할아버지의 독문병기인 칠야와 창월까지 맡겼다면 결과는 뻔했다.

신공부에 변화가 생긴 것이리라.

‘그리고 저 놈의 이중적인 모습도 가문 내부의 문제겠지?’

남천휘는 나직이 한 숨을 흘렸다.

‘우리 집은 진짜 화목한 거였어.’

큰형과 소원했던 과정까지 추억으로 남지 않았던가.

“처단이다!”

공태령의 눈썹이 역팔자를 그렸다.

“죽어!”

남천휘는 낭인을 쓰러트릴 때마다 악담을 내뱉는 공태령을 보며 진저리를 쳤다.

‘으으.’

이러다 꿈에 나올라.

악귀 같은 공태령보다 선녀의 검무를 방불케 하는 천수련을 살펴보는 것이 나을 터였다.

‘그런데 나 이렇게 여유로워도 되는 거야?’

그러면 안 된다는 듯 사타구니 아래에서 검 끝이 치솟았다.

꼽추 낭인이 살금살금 잰걸음으로 다가와 검을 쳐올린 게다. 남천휘는 자세를 살짝 낮추는 동시에 손등으로 큰 원을 그렸다.

“핫!”

특기 ‘금나’가 발동하는 순간 손등이 적의 검신을 휘감았다. 그리고 손등으로 검신을 쳐내는 순간 꼽추 낭인의 놀란 얼굴이 훤히 보였다.

발로 차버리면 편했겠지만.

“찻!”

퀘스트를 위해서라도 자세를 한껏 낮춘 채 꼽추 낭인의 목울대를 후려쳤다.

“크헉!”

희한했다.

분명 아혈을 찔렀거늘 어째서 비명을 내지르는 걸까. 어찌됐든 나자빠지는 놈의 머리 위로 ‘+1’이 떠올랐다.

낭야당(3/10)를 확인하는 사이 머리 위에서 악에 받친 외침이 들렸다. 남천휘가 자세를 낮춘 사이 두 명의 낭인이 좌우에서 칼을 내리친 게다.

이럴 때 쓰려고 오행군림보를 익혔단다.

스스스슥-

남천휘는 자세를 낮춘 상태에서도 하체의 힘만으로 뒷걸음질 쳤다. 한순간 목표를 잃은 적의 등이 훤히 드러났다.

‘자! 명문혈과 대추혈이 어디였더라?’

남천휘는 혈도의 위치를 확인한 후 손을 뻗었다.

멋들어지게 지풍이라도 날리면 좋았겠지만, 그럴 실력이 없으니 있는 힘껏 찌르는 것이 전부였다.

콰직!

남천휘는 피 묻은 손가락을 보며 인상을 썼다.

누가 보면 장사로 의심할 만큼 힘 조절이 힘들었다. 그만큼 점혈에 대한 숙련도가 낮다는 증거이리라.

“후우. 이건 또 언제 올리냐?”

남천휘는 숨을 몰아쉬며 허리를 폈다.

잠시 사방을 경계했거늘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닌가. 오직 쓰러진 적만이 어물전 생선처럼 널브러져 있을 뿐이다.

남천휘는 그때 큰 깨달음을 얻었다.

아! 여유로워도 되는 구나.

공태령과 천수련은 청사당과 낭야당을 거침없이 몰아냈다. 두 사람이 출수할 때마다 한 명씩 여지없이 쓰러졌다.

마치 늑대가 양떼에 파고들어 날뛰는 듯했다.

‘호랑이로 표현하는 건 좀 자존심 상하니까.’

남천휘는 헛기침을 하던 중 눈을 가늘게 떴다.

멀리서 지켜보니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보였다.

공태령은 여전했다.

그는 악의 멸절을 사명으로 삼은 사람처럼 피투성이였다. 멋있거나, 품격 있는 싸움은 아니다. 오히려 뒷골목 왈패들의 패싸움처럼 치열했다.

반면 천수련의 싸움법은 지켜볼수록 위화감이 느껴졌다.

‘저게 왜 저렇게 되지?’

천수련이 검을 내지른다.

그 순간 적은 천수련의 검이 있는 방향을 공격했다.

당연히 막혔다.

천수련이 나아간다.

그 순간 적은 천수련이 있는 곳으로 달려들었다.

당연히 적은 쓰러졌다.

마치 두 사람이 합을 맞춘 것처럼 공방이 절묘하게 맞물린다. 혹여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는 사이라고 의심할 만큼 자연스러웠다.

하나 여지없이 적은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마치 적이 어떻게 움직일지, 어떻게 공격할지 다 알고 있는 사람 같아.’

남천휘는 적을 상대하기보다 천수련의 공방을 지켜봤다. 분명 적의 미세한 움직임과 호흡을 통해 예측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 순간 재이의 알림이 울렸다.

띠링-

◎ S급 특기 ‘통찰’을 목격했습니다.

- 소유자와의 친분을 통해 습득이 가능합니다.

남천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특기는 천지만물을 뜻하듯 다양했다.

그 중 A등급만 해도 두어 단계 윗줄의 고수를 상대할 때 도움을 주지 않던가.

한데 그런 남천휘에게도 S등급의 특기는 ‘불굴’과 ‘의술’이 전부였다.

불굴의 위대함은 따로 설명이 필요 없으리라. 또한 의술은 하나의 직업군을 포함할 만큼 대단한 특기가 아닌가.

‘세 번째 S등급이다.’

남천휘는 마른 입술을 축였다.

천수련만 지켜봐도 통찰의 대단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만약 저것을 자신이 익힌다면 그 효용은 무궁무진할 터였다.

‘어맛! 저건 꼭 익혀야해.’

만약 사람이 없다면 무릎이라도 꿇었을 만큼.

‘아! 그 정도로 절실하지는 않은데······.’

남천휘는 일인이역을 하듯 쉼없이 중얼거렸다.

그 만큼 타인을 통해 특기를 얻을 수 있다는 설정은 충격적이었다.

그러고 보면 무인에게는 늘 숨겨둔 한 수가 있지 않은가.

앞으로도 고수를 만나면 이런 방식으로 상대의 비전을 훔쳐배울 길이 열린 게다.

‘이런 건 미리미리 말해주면 좋겠지만, 네가 그럴 리가 없지.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나를 사지로 밀어넣는 것뿐이잖아!’

남천휘가 매서운 눈초리로 허공을 노려봤다.

띠링-

◎ 퀘스트 ‘섬멸전’이 달성 직전입니다.

◎ 퀘스트 ‘전설의 고향’이 실패 직전입니다.

이건 또 무슨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더냐?

남천휘는 전설의 고향을 달성하기 위한 조건을 확인했다.

《전설의 고향(庫向)》

- 오룡방(0/5) 청사당(10/10), 낭야당(10/10)

오룡방은 왜 한 명도 못 쓰러트린 걸까.

남천휘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멍하니 전방을 응시했다. 그 와중에도 공태령은 미친놈처럼 날뛰며 칼질을 했고, 천수련은 비무를 위해 합을 맞춘 것처럼 적을 쓰러트렸다.

한데 저들이 쓰러트리는 적은 복색이 달랐다.

‘황의네. 황의야. 똥색 옷을 입고 있잖아!’

남천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오룡방도들이 뒤늦게 혈전에 끼어든 것이다.

그러니 공태령과 천수련을 구경하던 남천휘는 저들에게 손도 대지 못한 상황이었다.

“자, 잠깐.”

남천휘가 더듬거리며 중얼거렸다.

그 사이 오룡방도들은 뒤늦게 등장한 것이 무색할만큼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일견하기에도 수장으로 보이는 다섯 명의 무인이 전부였다.

공태령과 천수련이 잠시 숨을 골랐다.

만만치 않은 적수라 여긴 듯했다.

그 때 남천휘의 일갈이 천릉곡을 찢어발길 듯한 기세로 울려 퍼졌다.

“내, 내가 때릴 거야!”

어찌나 서슬이 시퍼랬는지 공태령과 천수련이 적을 앞에 두고 돌아보기까지 했다.

“남 소협. 저들은 만만찮은 상대입니다.”

남천휘는 공태령의 만류에 적의 레벨을 살폈다.

네 명은 70레벨 전후였고, 오룡방주로 보이는 자는 84레벨이나 됐다.

하나 남천휘는 오연한 자세로 적을 노려봤다.

“악인에게 유불리를 따지지 않는 건 협객의 기본이 아닌가?”

공태령은 말을 잇지 못했다.

참 설득하기 쉬운 놈이다.

천수련만이 입술을 삐죽였다.

“누가 뭐래요? 함께 싸우자는 거지.”

역시 눈치 빠른 녀석이야.

남천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천수련을 향해 일갈을 내질렀다.

“안 돼! 내가 아는 적만 다섯 무리다. 한데 이곳에는 고작 셋만 있었지. 다른 놈들이 우리의 동료를 노리고 있어. 나는 너희들 덕분에 힘을 비축했잖아. 그러니 내가 해결한다.”

공태령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

동시에 호감도가 올랐다는 알림이 울렸다.

남천휘는 움찔 하며 인상을 쓰려다 겨우 표정을 수습했다.

‘젠장! 호감도 오를수록 찜찜하다니.’

한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천수련의 호감도까지 오르는 것이 아닌가. 얼굴은 시큰둥하면서 마음은 벌써 홀라당 넘어온 듯했다.

예전이었다면 기겁을 했겠지.

하나 통찰을 얻어배우려면 천수련과 가까이 지낼 필요가 있었다.

“쉬고 있어. 내가 정말 위험해보이면 도와줘.”

혹시 몰라서 빠져나갈 구멍은 만들었다.

퀘스트가 아무리 중요해도 목숨을 걸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

“감히 오룡검귀를 우습게 여기는 것이더냐?”

레벨이 제일 낮은 놈이 소리쳤다.

겁먹은 개가 먼저 짖는 법이란다.

남천휘는 손가락을 쥐락펴락 하며 읊조렸다.

“와라! 이 쓰레기들아!”

남천휘는 오룡검귀의 수장이자, 오룡방주인 일룡의 회음부를 올려친 후에야 대자로 널브러졌다.

핏물이 등짝을 적셨고,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새끼들! 더럽게 끈질기네.’

하나 남천휘의 입매는 호선을 그렸다.

재이가 퀘스트 완료를 알리는 알림과 함께 보상 품목을 연이어 띄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만찮은 적을 이겼기 때문일까.

레벨까지 급상승했다.

‘하아, 이대로 푹 쉬고 싶다.’

한데 공태령이 눈을 감으려던 남천휘를 잡아끌었다.

“아! 왜?”

“적이 더 있다고 하셨지요. 지금쯤 후기지수들이 원후봉 정상 인근에 도달했을 겁니다. 어서 가서 알려야 해요. 여차하면 다시 싸워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지 마. 조금만 쉬었다가 가면 안 되겠니?

호각이나, 폭죽, 명적 같은 건 없니?

“다른 방법이 없어요. 어서 가요!”

천수련은 마치 남천휘의 마음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처럼 말했다.

공태령은 저 멀리 보이는 원후봉을 보며 읊조렸다.

“정상으로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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