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78화 (78/305)

46, 지금 너는 나를 보다. (2)

*

신풍수사는 기분 좋게 내실로 들어섰다.

후기지수들은 끈에 매달린 인형처럼 의도했던 대로 반응했다. 첫 단추를 잘 꿰었으니 마지막까지 계획대로 진행하기만 하면 될 터였다.

하나 그는 수하의 보고를 듣는 순간 인상을 썼다.

생각지 못한 변수의 등장.

“당장 실무자들을 소집하게.”

용봉쟁투를 진행하기 위해 파견된 실무자들이 모였다. 각기 삼정의 장로급으로 어지간한 일은 즉석에서 처리가 가능한 자들이다.

“수사, 무슨 일이시오?”

황보세가의 장로가 입을 뗐다.

폭급한 성정을 증명하듯 직설적으로 물었다.

“인원을 늘려야겠소.”

음울한 분위기의 중년 무인이 미간을 좁혔다.

청도문의 외단주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 채 물었다.

“지금 신공부의 지분을 늘리겠다는 말씀입니까?”

신공부의 실무자는 신풍수사가 있기에 말을 아꼈다.

결국 신풍수사가 변수를 전했다.

“상부에서 한 명을 추가하라는 명이 내려왔소. 이것은 신공부뿐 아니라 삼정 모두의 합의요.”

때마침 황보세가와 청도문에서 도착한 무인들이 소식을 알렸다.

장내에는 서늘한 기운이 가득했다.

“확실히 제연평이라면 삼정도 어쩔 수 없었겠군요.”

황보세가의 말을 신공부가 받았다.

“그간 잠잠했던 제연평이 나서다니······. 설마 우승을 노리는 걸까요?”

“제연평은 자부심을 가질 뿐 자랑하지 않는 곳이외다. 우승을 노리려고 지금까지의 청백함을 포기하지 않을 거요.”

청도문은 불만을 토로했다.

“잠깐만요! 제연평은 그저 명맥만 이어가는 상징적인 곳이잖습니까? 굳이 삼정이 제연평의 눈치를 볼 필요가 있을까요?”

제연평(帝緣平)은 태산과 황보세가의 영역인 제남 사이에 위치한 작은 들판이다. 하나 관도에서 멀리 떨어졌고, 농사를 짓기에 부족함이 많은 장소였다.

그렇기에 제연평의 존재조차 아는 이가 드물었다.

하나 강호인이라면, 그것도 배분이 높은 자라면 제연평을 거론하는 순간 경의를 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제연평은 신마대전 당시 선봉에 섰던 제룡검야(帝龍劍爺)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제룡검야의 인연이 닿은 곳이라 하여 본래 이름을 지우고, 제연평이라 불렀다. 하나 제연평은 제룡검야의 죽음으로 명맥이 끊긴지 오래였고, 지금은 후손 몇 명이 남아 선조를 추억할 뿐이다.

“제연평은 무시해도 되지. 하나 제연평을 무시하는 순간 무림맹이 나설 거요. 제룡검야는 신마대전을 막아낸 정천칠공 중 한 사람임을 잊지 마시오.”

청도문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정천칠공을 선정한 것이 무림맹이다.

그러니 제룡검야를 무시하는 건 무림맹을 욕보이는 짓이 되리라.

무림맹에게 있어서 용봉쟁투란 각 지역에서 치러질 법한 흔한 무림대회 중 하나였다. 그런 대회의 참가자를 한 명 늘리는 것을 어렵게 생각할 리 만무했다.

“빌어먹을! 그럼 어쩔 수 없군요.”

신공부의 실무자가 근심 어린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미 이차 관문으로 백인검무를 준비했습니다. 한 명이 추가되면 대형에 문제가······.”

착!

신풍수사는 소리가 나게 부채를 접으며 말했다.

“안 되는 걸 되게 하기 위해서 여러분이 있는 겁니다. 노력해주세요. 아랫사람을 쥐어짜서라도 성사시키는 겁니다.”

청도문의 실무자가 슬쩍 말을 건넸다.

“그나저나 제연평의 참가자는 정말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신풍수사는 마치 변수를 즐기듯 입꼬리를 올렸다.

“제연평에서 추천한 참가자는 여아라고 하더군요. 아주 어여쁘답니다. 이제 용봉쟁투를 더 화려하게 만들어줄 꽃이 생겼어요. 그런데 무슨 걱정을 한단 말입니까?”

그는 처소를 나서며 말했다.

“용이든, 봉이든 우리가 정합니다. 용봉쟁투는 이미 끝난 거예요.”

*

남천휘는 숙소에 도착하는 순간 탄성을 내뱉었다.

신공부는 들판에 새로 전각군을 올렸다.

후기지수들은 작은 가옥을 한 채씩 차지했고, 크고 작은 연무장은 모두 스무 개로 상시 이용이 가능하단다. 그 외에 열두 시진 내내 식사가 가능했고, 한쪽에는 수천 명이 모일 수 있는 대광장까지 존재했다.

저곳이 용봉쟁투의 주 무대였다.

‘끼리끼리 노는군.’

남천휘는 마치 숙소가 정해져 있는 것처럼 자리를 잡는 후기지수들을 보며 혀를 찼다. 백여 명 중 절반은 삼정의 후계자를 중심으로 거처를 정했다.

남천휘는 저들과 달리 숙소 외곽에 자리를 잡았다.

달리 꿍꿍이가 있기 때문이다.

‘틈을 봐서 내가 그냥······.’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다가 이내 눈을 끔뻑였다.

연무장에는 이미 선객이 가득했다.

후기지수들이 저마다 재주를 뽐내며 서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데 하루아침에 준비할 수 있는 재주가 아니었다. 분명 용봉쟁투의 첫 관문에 대해서 전해 들었음이 분명했다.

‘저것들 보소.’

남천휘는 헛웃음을 지었다.

한데 후기지수들은 남천휘나 다른 경쟁자가 나타나자 하나둘씩 자리를 피했다. 저들끼리 은밀한 곳에 자리를 잡고 연습을 하려는 게다.

아주 지랄들을 하고 있다.

이제 눈치 빠른 자들은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직감한 듯했다. 그렇기에 마음이 맞거나, 동향을 찾아 구석으로 사라졌다.

지금부터라도 장기를 준비하려는 게다.

하나 남천휘로서는 가소롭기만 했다.

‘막 총관 말이 딱 맞군.’

막 총관은 술을 마시면 말이 많아졌다.

즉, 늘 수다스럽다는 뜻이다.

어찌됐든 막 총관은 술만 마시면 별의별 잡다한 야사를 들려줬다.

그 중 도박에 관한 것도 있었다.

봉을 등쳐먹을 때 가장 어려운 건 방법이 아니란다.

오히려 봉을 무대에 끌어들이는 것을 가장 어렵다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후기지수들은 이미 무대에 올라온 상태였다.

결국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삼정의 계획대로 하나둘씩 탈락할 것이 분명했다. 후계자들의 순위를 높이기 위한 계단이 되어 사라지겠지.

‘기분 더럽게 만드는 새끼들이야.’

남천휘는 미간을 좁혔다.

이제 와서 놈들의 농간에 맞춰 장기를 준비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삼정의 뒤통수를 거하게 후려치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깽판을 칠 방법은 하나야.’

우승 상품이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면 용봉쟁투는 아수라장이 되리라.

남천휘는 용봉전이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사방에 횃불과 등불이 가득했기에 주변은 대낮처럼 환했다. 하나 명숙들과 후기지수가 제멋대로 돌아다녔기에 오히려 눈에 띄지 않을 터였다.

바늘을 숨기려면 짚단 속이 아니던가.

‘맞지? 모래밭인가?’

◎ 인벤토리는 레벨을 불문하고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원하는 대답은 아니지만, 만족스러웠다.

처음 특급 강호인 승급 체계가 시작됐을 때부터 지금껏 일관되게 확신했다.

가장 큰 공능은 인벤토리의 존재임을.

그야말로 천상의 능력이 아니던가.

제아무리 인간이 한계를 벗어나도 감지해내는 것이 불가능하리라.

남천휘는 자연스럽게 용봉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일단 넣기만 하면 돼.’

문제는 두 가지다.

과연 세 가지 보물을 건드릴 수 있을지.

그리고 만지는 것만으로 소유권이 생성될지.

‘그런데 될 거 같아.’

어쨌든 저들이 용봉쟁투의 상품으로 내걸은 이상 현재 무기의 소유권은 허공에 붕 뜬 상태가 아닌가.

남천휘는 입맛을 다시며 생각했다.

‘기왕이면 세 개 다 챙기고 싶은데······.’

유산으로 다루를 상속받고, 호의호식하려던 한량의 꿈은 이처럼 끝도 없이 커졌다. 그리고 그 꿈의 쉼표를 찍어줄 용봉전이 눈앞에 나타났다.

마침표는 아니다.

아직 먹고 싶은 것도 많고, 얻고 싶은 것도 많은 나이가 아닌가.

‘어쨌든 밝아, 그리고 많아!’

남천휘는 해맑게 웃었다.

도둑질을 생각하면서 이처럼 환하게 웃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일 터였다.

일단 죄책감이 전무했다.

‘우리 할아버지 건데 뭐?’

아무래도 VR 모드에서 봤던 백파도 남추와 공야청의 관계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당시 남추는 공야청의 깨달음을 부러워하며 기꺼이 비천무상도를 전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후에도 이어졌을 것이고, 칠야와 창월도 그렇게 전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니까 내 꺼다.

다만 조용히 챙겨가려는 것뿐이야.

남천휘는 태나지 않게 걸음을 옮겼다.

이미 용봉전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가 눈에 띌 일은 없다.

“아.”

남천휘는 용봉전에 들어서는 순간 탄성을 흘렸다.

이것이야 말로 하늘이, 아니 재이가 돕는 상황이 아니던가. 단상 위에는 여전히 세 개의 무기가 금궤(金櫃)에 담겨 있었다.

게다가 주변에는 구경꾼이 즐비했다.

지키는 건 세 자리 레벨의 무인 두 명.

그들마저 좌우를 지킬 뿐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저 정도 레벨이면 기감이 활성화됐으리라.

보지 않아도 주변 인물의 움직임을 살피고, 듣지 않아도 호흡과 발소리를 느낄 터였다.

같은 절정이라고 해도 격이 달랐다.

하지만.

‘이거야말로 당장 가져가라는 신호인 거지!’

인벤토리에 물건을 넣고 빼는 속도는 이형환위를 뛰어넘는다. 오히려 신선의 술법이라는 축지와 다르지 않을 터였다.

그야말로 물건 자체가 한순간 사라지는 게다.

그러니 남천휘로서는 호위와 구경꾼의 존재가 오히려 감사했다.

저들은 기꺼이 증인이 되어주리라.

무기가 허공으로 사라졌음을.

‘만지기만 하면 돼.’

그 때 시골에서 갓 상경한 듯한 청년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가까이서 봐도 됩니까?”

무인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만져도 된다. 자네들이 쓸 무기이니 미리 감각을 느껴보는 것도 좋겠지. 다만 무기를 쥔 채 걸음을 떼는 건 불허한다.”

허, 저건 자신감이 너무 과한 걸?

고작 세 자리 레벨을 믿고, 그렇게 허술해도 되는 걸까 싶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면 훔치지 못할 것이 없지 않은가.

‘한 번 혼쭐이 나야 정신을 차리겠군.’

반면 무인의 허락이 떨어지자 후기지수들은 빙당호로 장수를 만난 것처럼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러면서도 선뜻 손을 대지 못한 채 연방 탄성을 흘렸다.

“손을 대지 않았음에도 베일 것 같아.”

“보의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것 봐!”

“쌍도가 정말 특이하게 생겼네. 손잡이의 고리는 무슨 용도일까? 설마 투척?”

남천휘는 자연스럽게 후기지수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후기지수들이 아기 새처럼 재잘거리는 사이 칠야와 창월에 손을 댔다.

그 순간 두 자루의 도가 자취를 감췄다.

그야 말로 연기처럼 사라진 것이다.

한데 예기치 못한 알림이 이어졌다.

《칠야도 모조품을 획득했습니다.》

《창월도 모조품을 획득했습니다.》

‘응? 이런 젠장!’

황급히 두 자루의 도를 뱉어냈다.

철컹.

찰나의 순간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기에 작은 파열음이 전부였다.

하나 그것만으로도 두 명의 무인은 칠야와 창월을 본 후 남천휘를 응시했다.

남천휘는 의심의 눈초리를 가볍게 받아넘겼다.

“하하, 너무 대단한 걸 만졌더니 긴장이 돼서······.”

“조심하게.”

무인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팔짱을 낀 채 다시 깊은 상념에 빠져들었다. 후기지수들은 기보를 험하게 대하는 남천휘를 보며 눈을 흘겼다.

하나 남천휘는 똥 씹은 표정으로 온갖 욕을 쏟아냈다.

물론 마음속으로만.

‘빌어먹을! 젠장! 젠장!’

무인들을 비웃었던 자신을 비웃어줬다.

등신 같은 놈.

조금만 냉정하게 생각을 했다면 이런 실수는 하지 않았으리라. 제아무리 신공부가 자만했다 해도 용봉쟁투의 우승 상품을 좌판의 생선처럼 내놓지는 않을 터였다.

‘모조품이라니.’

남천휘는 칠야도(漆夜刀)에 손을 댔다.

‘확인.’

《가품(假品) 칠야도》

- 정밀하게 제작된 A급 모조품.

- 무기 등급 : 특수.

- 부가 기능 : 절삭력 3% 증가.

- 제조원 : 무진철원(가치:140)

남천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가짜 도의 가치가 무려 140이다.

심지어 무기 등급은 특수가 아닌가.

백파도 남추의 수련용 직도보다 한 단계 아래라고 봐도 무방했다.

‘가품이 이 정도면 진짜는······.’

생각만으로도 침을 꿀꺽 삼켰다.

남천휘는 순서대로 기보(奇寶)를 확인했다.

탄성이 끊이지 않았다.

모두 A급 가품임에도 가치가 상당했고, 부가기능까지 붙어 있었다. 어느덧 감탄의 대상은 무기에서 삼정으로 변경됐다.

‘한낱 가품을 이 정도까지 만들어서 전시하다니.’

산동은 호북과 절강에 미치지 못할 뿐 중원에서 으뜸가는 물산지가 아니던가. 삼정(三鼎)은 그런 산동의 모든 재화가 집중되는 거대방파였다.

남천휘로서는 반성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껏 삼정을 내심 얕잡아봤기 때문이다.

어쩌면 평화에 젖었던 건 남천휘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후우. 할아버지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칠야와 창월을 되찾아야 하는데······.’

이제는 정말 용봉쟁투에서 우승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목표가 아닌가.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퀘스트가 발동했다.

◎ 메인 퀘스트 ‘강호행’이 활성화됩니다.

그럴 줄 알았다.

퀘스트는 뻔하지.

내일 장기자랑에서 우승하라는 거겠지?

《1-4 ‘후기지수 一百一’의 으뜸이 되어라.》

- 용봉쟁투에서 우승하세요.

※ 실패할 시 신공부와 적대하지 않는 한 남추의 유품을 회수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아주 짧고, 강렬했다.

그리고 네가 내 눈앞에 있었다면 짧고, 강렬한 한 방을 선사했겠지.

삼정이 짜놓은 무대 위에서 우승을 하라니.

‘잠깐! 그런데 왜 백한 명이야? 백 명 아니었나.’

남천휘는 용봉전의 간담회를 떠올렸다.

그가 기억하기로 후기지수의 숫자는 백 명이었다.

하나 상념은 길지 않았다.

영문을 모를 한 명의 존재보다 내일 있을 자신의 숙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승은 고사하고, 첫 관문부터 탈락 위기였다.

‘빌어먹을! 뭘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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