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지금 너는 나를 보다. (1)
46, 지금 너는 나를 보다.
VIP보상이 자수정으로 일원화되는 건 예상했다.
하나 회회회판(回回回版)는 또 뭐란 말인가.
‘돌려돌려 돌림판?’
재이가 화답했다.
◎ 회회회판 등록을 위한 업데이트가 진행됩니다.
- 잔여시간(23:59:51)
빌어먹을! 또 기다려?
남천휘는 시야 상단에서 까맣게 물들고 있는 막대를 보며 침음을 흘렸다.
영락없이 하루를 기다려야 회회회판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그 말은 곧 초절정에 관한 정보를 얻으려면 하루를 기다려야 했다.
‘하여간 쉽게,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어.’
하나 남천휘의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퀘스트 완료 보상은 지금 이 순간 남천휘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이다.
마치 재이가 자신을 위해 노력한 듯하지 않은가.
‘재이, 아주 칭찬해.’
남천휘는 한결 편안한 표정으로 장내를 살폈다.
축복받은 확인서가 충분했다면 저들 모두의 총합 수치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랬다면 천재(天才)와 기재(奇才), 범재(凡才)를 나눌 수 있지 않겠는가.
‘아쉽네.’
남천휘는 후기지수들의 레벨을 다시 한 번 눈에 담았다.
저들의 레벨은 천차만별이다
하나 겉모습만 보면 레벨과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어수룩해 보이는 자가 70을 넘기기도 했고, 근육질의 소저가 50이기도 했다.
‘흐음, 레벨에 대해서 간략하게 다시 설명해 봐. 기왕이면 세 줄로 요약해봐.’
◎ 본래 다양한 정보를 비교하고, 분석하여 활용하는 것이 정석입니다. 대상자의 제안처럼 세 줄 요약으로 정보를 습득하면 향후 문법과 화술, 독해에 관한 능력이 저하될 우려가 있습니다. 그러니 꾸준한 독서와 토론을 통해······.
남천휘는 떼를 쓰듯 읊조렸다.
‘요즘 강호인은 다 그렇게 한단 말입니다!’
하나 재이는 냉정했다.
◎ 강호인은 그래도 되지만, 대상자는 그러면 안 됩니다. 하지만 이번만은 대상자의 상황을 고려하여 정보 요약을 실시합니다.
남천휘가 활짝 웃는 사이 시야 구석에 재이가 문구를 띄웠다.
《세 줄 요약》
1, 무공의 성취에 따라 레벨이 상승합니다.
2, 기재와 천재는 1항과 별개로 성장합니다.
3, 대상자의 현재 레벨은 51로 기간 대비 성장 예정치의 49%입니다.
남천휘는 얼굴을 구겼다.
‘성장 예정치는 어째 날이 갈수록 줄어드냐?’
하나 투덜거리는 것과 별개로 모든 면에서 납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현재 그가 확인한 강호인의 성장은 세 부류였다.
자신과 조상, 그리고 왕대만.
이 중 왕대만은 대다수의 무인과 같은 성장을 해왔다. 무공을 수련하는 만큼 레벨이 상승한다. 그 과정은 기간과 노력에 비례할 터였다.
왕대만을 비롯한 거의 모든 무인들이 이런 단계를 밟고 있을 것이다.
한데 강호는 유례 없이 평화로운 상태였다.
밥 먹고 무공만 수련하는 자들이 즐비했다.
이제 절정은 그리 놀라운 경지가 아니었다.
오죽 했으면 한 때 고수의 징표라 불렸던 절정의 무인이 추궁과혈을 통해 용돈 벌이를 하겠는가.
강호의 무위는 상향평준화가 됐다.
이제 무공 수준보다 인맥과 혈연, 그리고 화술을 통해 명성을 쌓는 시대였다.
왕대만은 이 시대가 낳은 전형적인 절정 무인의 표본이라 할 수 있으리라.
반면 조상은 달랐다.
천부적인 재능이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련, 또는 무언가를 통한 깨달음으로 성장하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시스템이 기준으로 삼은 레벨을 벗어나는 능력을 지닌 게다.
규격 외.
그렇지 않으면 설명이 불가능했다.
‘강호에는 조상과 같은 자들이 몇이나 될까?’
그런 자들이야 말로 인간의 한계라는 절정을 넘어 초절정에 발을 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 모든 강호인 중 최고는 자신이리라.
‘나는 특급 강호인이 될 사람이니까.’
◎ 특급 강호인이 되려면 육신의 단련 뿐 아니라 독서와 토론을 통해 수양을 쌓아야······.
남천휘는 입술을 삐죽이여 읊조렸다.
‘혹시 차단 기능은 없냐?’
재이의 잔소리보다 차라리 약팔이 같은 신풍수사의 연설을 듣는 편이 나을 듯했다.
남천휘는 뒤늦게 단상을 바라봤다.
‘저 사람은 지치지도 않는 건가?’
용봉쟁투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할 때 얻어낼 명성과 이득을 일각 넘게 논하고 있지 않은가.
하나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후기지수들 중 대부분은 자신이 용봉쟁투의 우승자라도 된 양 눈을 빛냈다.
‘쯧쯧.’
남천휘가 혀를 차는 사이 드디어 화제가 바뀌었다.
신풍수사는 잠시 열기를 가라앉히려는 듯 세 가지 무기를 가리켰다.
“언뜻 보면 병기를 감싼 금궤가 더 비싸 보이지?”
그의 농담에 후기지수들은 박장대소를 했다.
‘억지로 웃지 마라. 이것들아. 어차피 한 사람당 한 표밖에 행사할 수 없다잖아.’
신풍수사는 느긋하게 첫 번째 무기 앞에 섰다.
장검의 외형은 일견하기에도 고색창연하여 명검의 기운을 물씬 풍겼다.
“이것은 멸문한 보타암의 기보였던 천수검이다. 파사현정의 상징이지. 어때? 보는 것만으로 악인을 처단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그렇다는 대답이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왔다.
애들아, 아서라. 저거 주인 있어.
‘저 봐, 아주 눈이 이글이글 불타고 있잖아.’
청도문의 소문주라는 교룡검수(蛟龍劍手) 초류혁은 천수검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혓바닥만 날름거리면 아주 제대로 뱀이다.
“아직 놀라기에는 이르단다. 이 옷을 봐라!”
그는 매미 날개처럼 얇은 사의(絲衣)를 들었다.
옷의 형태가 확인되지 않을 만큼 축 늘어지는 것으로 보아 무게가 깃털 같을 터였다.
“이것이 바로 용린사로 짠 마린보의다!”
후기지수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천수검(千手劍)은 과거의 영광이 있을 뿐 실제로 파사현정의 위력이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하나 마린보의(磨鱗寶衣)는 달랐다.
용이 비늘을 갈아 만들었다는 소문을 무시하더라도 웬만한 날붙이가 뚫지 못하는 건 검증되지 않았던가. 검기조차 한두 번은 막아낼 수 있을 거라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다.
‘저건 진짜 대박이다!’
물욕이 없던 남천휘조차 욕심이 났다.
◎ 대상자의 물욕 수치는 평균 이상으로······.
차단 기능이 없다니 알아서 귓등으로 흘려야겠다.
어찌됐든 마린보의 역시 주인이 내정됐을 터였다.
바로 저 덩치가 주인이리라.
권무악(拳武岳) 황보장천.
황보세가의 소가주는 마린보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주먹을 쥐락펴락 하는 걸로 봐서는 당장이라도 단상 위에 올라가 낚아채고 싶을 터였다.
‘그럼 너는 저거겠구나.’
남천휘는 신공부의 소부주인 철면호협(鐵面豪俠) 공태령을 흘겨봤다. 그는 별호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하나 인상 자체가 호감을 불러일으킬 만큼 부드러웠다. 마치 수양이 깊은 학자가 담론을 준비하는 듯했다.
신풍수사가 쌍도 앞에 섰다.
“이건 조금 특이하지?”
후기지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검이나 보의와 달리 쌍도는 제약이 많았다. 게다가 쌍도의 외형만 봐도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지 않은가. 그렇기에 후기지수들은 지금까지와 달리 시큰둥했다.
하나 신풍수사는 진중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것은 칠야와 창월이라 불린다.”
그 말에 감정을 드러낸 건 장내에서 오직 두 사람뿐이다.
공태령과 남천휘.
다만 공태령은 뒤통수에 눈이 달리지 않은 이상 남천휘의 관심을 눈치 챌 수 없었다.
하나 남천휘는 공태령의 변화를 알아차렸다.
‘그저 우승 상품을 대하는 자세가 아닌 걸?’
분명 공태령의 자세는 초류혁이나 황보장천과 달랐다. 단순한 탐욕이 아니라 반드시 쟁취해야 하는 사명 같은 것이 느껴졌다.
‘우리 할아버지가 쓰던 건데.’
왜 저런 호랑말코 같이 냄새 나는 사내놈이 욕심을 낸단 말인가.
‘재수 없어.’
신풍수사가 칠야(漆夜)와 창월(暢月)을 꺼냈다.
“이것은 신마대전 당시 강호를 위해 희생하신 선배 고인의 유품이라네.”
신마대전(神魔大戰)이라는 말에 후기지수들을 귀를 쫑긋거렸다. 당금 강호에 평화가 찾아오게 된 계기가 바로 신마대전이다.
당시 두 명의 절대고수가 강호에 군림했다.
사파의 지배자였던 사령신(邪鈴神).
마도의 절대자였던 괴겁천마(怪劫天魔).
서로를 멸할 것처럼 싸웠던 두 사람이 어느 날 의기투합하더니 칼끝을 정파로 돌렸다.
그것이 바로 신마대전의 시작이었다.
신마대전의 초창기만 해도 정파는 끊임없이 패퇴했고, 멸망이라는 두 글자를 떠올렸다.
그 때 그들이 나타났다.
심산유곡에 은거하고 있던 기인들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제아무리 사령신과 괴겁천마라 해도 정파의 은거기인을 모두 막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게 강호에 평화가 찾아왔다.
칠야와 창월은 신마대전을 찬란하게 휘감았던 전설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그 때 공태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신풍수사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포권을 했다. 정확히는 그가 들고 있는 칠야와 창월을 향해 예를 표한 것이다.
공태령을 따르는 후기지수들이 연이어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눈치를 보던 자들마저 너나할 것 없이 포권으로 예를 표했다.
“참으로 멋진 광경이로군. 무명 선배께서 보셨다면 응당 덕담으로 화답하셨을 게야. 비단 칠야창월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네. 보타암은 신마대전으로 몰락하며 천수검을 남겼지. 마린보의도 그 당시 이름 모를 선배 고인께서 착용하셨다는 소문이 있네. 이 세가지 기물은 모두 정파의 상징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야. 그러니 모두....”
신풍수사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이내 그의 일갈이 용봉전 내에 쩌렁쩌렁 울렸다.
“응답하라! 전대의 고인과 협객의 기상이 끊이지 않았음을 만천하에 고하라! 그리고 도전하라! 영웅의 기개와 협객의 의지가 담긴 기보를 쟁취하라! 그리고 산동 강호를 이끌어라!”
구십팔 명의 후기지수들이 일어나 환호했다.
남천휘는 자신처럼 자리에 앉아 있는 혜소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흥분되지 않소?”
혜소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흐음, 어딘가 모르게 마음에 들지 않는군요.”
“어딘가 모르게?”
“다 맞는 말이기는 한데······. 그냥 찜찜합니다. 그냥 그래요. 그러는 남 소협은?”
남천휘는 앞 열을 가리켰다.
“묘하게 저 세 명을 중심으로 만세를 부르는 것 같지 않소?”
“그렇군요. 마치 벌써 우승자가 정해진 것 같은.”
혜소의 말에 남천휘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서 안하는 겁니다.”
“아하! 그렇군요. 남 소협이라면 우승도 가능할 겁니다. 약자에 대한 배려심과 선뜻 손을 내밀어주는 호의에 저는 감복한지 오래입니다.”
이봐, 그런 걸로는 우승 못해.
하나 듣기 싫은 소리는 아니었다.
“그리 쉽게 우승을 양보해도 되는 겁니까?”
“저야 참가에 의의를 뒀으니까요.”
남천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안되겠네. 그냥 홍선사로 돌아가지 말고 우리 집으로 와요. 내가 동생 찾는 걸 도와줄 테니.”
“하하, 탈락하면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
두 사람이 담소를 이어가는 와중에 신풍수사의 예기치 못한 일갈이 들려왔다.
“내일 대연무장에서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걸세.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만천하에 알릴 수 있으니 모두 힘을 내서 준비할 수 있도록! 용봉쟁투의 첫 관문이자, 표를 끌어모을 수 있는 기회란다. 모두 최선을 다하도록 하라!”
신풍수사의 외침을 끝으로 간담회가 마무리됐다.
남천휘는 헛웃음을 흘렸다.
“고금을 통틀어 이런 식의 무림대회가 있었던가?”
◎ 기록 상으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말은 자신을 소개하는 소개연이라 했다.
하나 엄밀히 따지자면 저잣거리의 광대처럼 장기를 자랑하라는 뜻이 아닌가.
그는 칠야와 창월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냥 인벤토리에 넣고 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