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용봉쟁투(龍鳳爭鬪). (2)
◎ 메인 퀘스트 ‘강호행’이 활성화됩니다.
남천휘는 표정을 굳혔다.
‘야! 불길하게 왜 이래?’
어째서 불길한 예감은 늘 빗나가지 않는 걸까.
창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예상했던 그것이 황금빛으로 일렁였다.
《1-3 후기지수가 되어라.》
- 용봉쟁투에 참석하시오.
- 시간 내에 합류하지 못하면 실패합니다.
※ 실패할시 특기 중 두 개가 무작위로 삭제됩니다.
※ 실패할시 능력치와 평판이 대폭 하락합니다.
절로 한 숨이 흘러나왔다.
메인 퀘스트면 거절이 불가능했다.
‘나한테 왜 그러는 건데? 내가 모욕감이라도 줬냐?’
기다렸다는 듯이 퀘스트를 띄웠으니 이건 빼도 박도 못하게 엿 먹이려는 수작이 분명했다.
‘기왕 줄 거면 조금만 빨리 주지 그랬냐?’
◎퀘스트 잔여 시간이 239:59:51초를 지납니다.
잔여시간은 열흘이다.
용봉쟁투에 참가를 결정하는 날짜도 열흘이리라.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신지요?”
남천휘는 조상의 물음에 흠칫 놀랐다.
“어쩌면 그 난장판에 발을 들여야 할 수도 있겠네요.”
일단 화두를 던졌다.
“네? 방금 전에는 때려죽여도 안 하신다고······.”
“크흠! 생각해 보세요. 산동강호의 모든 방파가 참석한다면서요? 곡부남가만 빠진다면 모양새가 좋지 않을 겁니다. 그러지 않아도 본가는 상단과 장원의 경계에 있잖습니까? 알게 모르게 무시도 많이 당할 테고요.”
지혜 수치에 변설까지 동원됐다.
혀가 기름을 바른 것처럼 매끄럽게 출렁였다.
조상처럼 순박하고, 우직한 사내는 금세 수긍했다.
“그도 그렇습니다. 막 총관께서 만취하셨을 때마다 아쉬움을 토로하시더군요. 거래 과정에서 떼어가는 돈이 너무 많다고요. 수수료나 보호비, 그 외에 기부금까지 내고 있지요.”
남천휘의 외조부는 노국장의 장주였다.
그나마 신공부의 공문십철에 속한 노국장으로 인해 상계의 질시와 강호의 탐욕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있다는 것이 조상의 설명이었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조 대주의 말처럼 상위권이야 저들끼리 나눠먹겠지요. 하나 중간 이상만 가도 곡부남가의 명성을 떨치는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조상은 크게 감복한 듯 탄성을 흘렸다.
“삼공자의 식견이 참으로 대단하군요. 스스로 진창에 발을 들이려 하시니 이미 대협의 풍모를 갖추신 겁니다. 소가주께서도 삼공자를 자랑스럽게 여기실 겁니다.”
그 정도로 곡부남가를 위하지는 않는데.
남천휘는 멋쩍은 웃음으로 조상의 부담스러운 눈길을 회피했다.
‘그래도 나 정도면 참가는 따 놓은 당상이잖아. 안 그래? 가볍게 바람이라도 쐬는 기분으로 다녀와야겠어.’
강호의 명숙이라는 왕대만의 레벨이 61이었다.
49 레벨이면 어깨에 힘 좀 줄 수 있으리라.
‘후훗, 어차피 꼬꼬마들이 모여서 재롱떠는 게 전부일 테지.’
남천휘는 그세 기분이 좋아진 듯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해 지기 전에 한 번 더 하시지요?”
조상은 튕기듯 몸을 일으켰다.
눈빛을 보아하니 이미 용봉쟁투에 대한 우려는 십만팔천 리 밖으로 날려 보낸 듯했다.
“이번에는 내공 없이 초식만으로 겨뤄보시지요!”
남천휘는 예기지 못한 제의에 눈을 끔뻑였다.
지금껏 조상의 쾌속한 검법을 내공의 힘으로 피하지 않았던가.
“그, 그럴까요?”
아무래도 오늘 밤 소혜의 손길이 필요할 듯했다.
*
“그렇게 하렴.”
남천휘는 소가주의 말에 눈을 끔뻑였다.
자신을 극진히 아끼는 형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용봉쟁투에 참가하려면 많은 설득이 필요할 것이라 여겼다. 하나 남천홍은 남천휘가 입을 떼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허락을 하는 것이 아닌가.
“아, 진짜 가도 돼?”
남천홍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러지 않아도 노국장에 계시는 부모님께 안부를 전하려 했다. 너도 외조부를 뵌 지 꽤 됐을 거야. 이번 기회에 가서 인사를 드리렴. 네가 변한 모습에 어른들이 놀랄 걸 생각하면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구나.”
“응, 알았어.”
남천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가주전을 나섰다.
남천홍은 동생이 떠난 후 표정을 굳혔다.
그의 손에는 서찰이 쥐어져 있었다.
신공부에서 보내온 협조 공문이다.
“합숙 후 명숙과 참관인의 투표로 공정하게 정하겠다는 말을 믿어도 될까요?”
막 총관은 술잔을 기울이며 조소를 흘렸다.
“득 될 것이 없어서 산동성에 난립한 낭인 패거리를 내버려둔 게 어디던가? 정파라고 모두 선인은 아닌 게야. 공부에 터를 잡았으니 신공부가 됐을 뿐 마교에 자리를 잡았으면 신마교라고 불렀을 걸?”
“믿지 말라는 소리군요.”
남천홍의 담담한 한 마디에 막총관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크하하! 당신의 후기지수에게 투표하라고? 세상 살다 이처럼 우스운 소리는 처음 들었네. 신공부와 황보세가, 청도문의 후기지수들이 수위권에 오를 게야. 그리고 그들의 밑을 닦아주던 놈의 자식들이 그 뒤를 따르겠지. 강호는 늘 그랬어. 단순히 몇 명의 희생과 노력으로 변하지 않는다네.”
“보내지 말았어야 했을까요?”
막 총관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보내더니 이제 와서 후회라도 되는 건가?”
남천홍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천휘가 가지 않으려 했다면 다른 핑계를 대서라도 보내고 싶습니다.”
“왜?”
남천홍의 맑은 눈동자가 기이하게 번뜩였다.
“우승할 것 같거든요.”
막 총관은 술병을 건넸다.
남천홍이 술병을 기울이는 사이 막 총관의 말이 이어졌다.
“쉽지는 않을 거야.”
하나 그 말의 저변에는 가능하다는 의중이 섞여 있지 않은가. 남천홍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술병을 돌려줬다.
“내기는 안 되겠군요.”
“그 녀석은 영웅이 될 거야.”
“저는 영웅의 형이 되겠군요.”
막 총관은 빈 병을 흔들며 빙긋 웃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 잔 더?”
*
시간이 참 빠르게 흘렀다.
그러나 남천휘의 참가 소식은 전혀 화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소가주와 막 총관, 그리고 북풍대의 배웅을 받으며 이른 아침 조용히 나섰을 뿐이다.
그런데 물안개도 남천휘를 배웅하려나보다.
“아씨! 왜 비까지 내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다를까 소혜가 울먹이고 있지 않은가.
‘이쯤 되니까 소름 돋는 걸.’
남천휘는 소혜에게 다가갔다.
“아침부터 웬 청승이야?”
“저도 함께 가여 하는데.”
그녀는 미련이 잔뜩 담긴 한 마디와 함께 보퉁이를 건넸다. 육포를 비롯해 소혜가 좋아하는 주전부리가 잔뜩 담겨 있었다. 하나 이른 아침부터 준비했을 것을 생각하니 기특하기만 했다.
남천휘는 소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건넸다.
“너무 걱정 마. 금방 돌아올 거야.”
그러나 이내 흠칫 놀라며 말을 바꿨다.
“아니!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다가 우승하면 돌아올 거다.”
한데 소혜는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
“아, 네.”
“어쨌든 무사히 돌아올게. 그러니 그만 훌쩍여.”
남천홍은 두 사람을 보며 박장대소를 했다.
“하하하! 소혜는 아버님을 뵙고 싶어서 그러는 거란다.”
아, 그런 거였냐?
고아였던 그녀가 자신을 거둬준 가주와 가모를 부모처럼 여기는 것이야 이미 알고 있던 바였다.
‘그래도 그렇지!’
남천휘는 소혜의 찹쌀떡 같은 볼을 늘리며 인상을 썼다.
“내가 꼭 성공해서 중원 곳곳에 지부를 만들 거야. 그리고 너를 저기 남해의 지부장으로 삼아주마!”
“우으으, 안 갈 거예요.”
“웃기지 마. 짐이나 싸놓고 기다려! 꼭 보낼 테다.”
유치한 신경전은 남천홍의 한 마디로 끝을 맺었다.
“두 사람이 마치 남매 같구나.”
한 집안의 삼공자와 일개 하녀를 묶어서 논하기에 적당한 표현은 아닐 터였다. 하나 남천휘도, 막 총관도, 심지어 가솔들마저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묶여 있기에 지금껏 무탈하게 지내지 않았던가. 오히려 가솔들은 남천휘의 시큰둥한 대꾸에 박장대소를 했다.
“나보고 두꺼비가 되라는 거야? 그건 사양할게!”
그렇게 헤어졌다.
마치 외출하는 사람처럼 단출한 차림으로 떠났다.
“밥이나 먹을까요?”
“반주도.”
저 멀리서 남천휘의 외침이 들렸다.
“다 들린다고!”
*
남천휘는 시야 구석에 위치한 퀘스트 잔여 시간을 확인했다.
‘충분하겠네.’
어차피 걸어가는 것도 아니고 유명한 마방의 마차를 빌려 타고 가는 길이 아닌가.
남천휘는 홀로 마차 안에 앉아서 창밖을 응시했다.
주변 풍광이 녹빛으로 뭉뚱그려진 채 흘러가니 이내 지루함을 참기 힘들었다.
‘이 기회에 아이템이나 까야겠다.’
남천휘는 인벤토리를 열었다.
- B급 보도(寶圖)x1.
- B급 무작위 보급 상자x3.
- C급 무작위 보급 상자X6
‘많이 모였네.’
그 동안 전직과 강화가 이어지다보니 신경을 쓰지 못했다. 하나 돌이켜 생각해보니 지금처럼 지루할 때가 없지 않았던가.
‘맛있는 건 제일 마지막에!’
남천휘는 ‘B급 보도’ 대신 ‘C급 무작위 상자’를 먼저 깠다.
띠링-
적선단, 적선단, 적선단, 숫돌, 숫돌.
그리고 마지막은 자수정 50개였다.
“아악! 개똥같네!”
마차 밖에서 마부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자, 괜찮으십니까?”
남천휘는 대답 대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만약 밥상이라도 있었다면 뒤엎었을 만큼 짜증이 솟구쳤다.
뭔가 새로운 것이 필요했다.
‘C급에 기대를 한 내가 바보지.’
남천휘는 호흡을 가다듬고, B급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무기강화주문서 두 장과 자수정 300개가 전부였다.
어느새 남천휘의 무릎 위에는 천하도와 제일도가 놓여 있었다.
‘할까? 말까?’
입술이 바짝 마를 때까지 고민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바르지 않는 것이 순리였다.
상식적으로 20장을 발라서 5강씩 띄우지 않았던가.
행여 실패라도 한다면 강화도는 하락한다.
한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간사했다.
‘육만 띄우면 대박인데.’
남천휘는 눈을 질끈 감고 천하도와 제일도를 집어넣었다. 견물생심이라고 계속 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강화에 도전할 것만 같았다.
“그래, 미친 짓이야.”
그러나 이내 자신도 모르게 혀로 아랫입술을 핥으며 읊조렸다.
“그래도 쪼는 맛이 있단 말이지.”
이런 게 도박을 하는 심경이 아닌가 싶다.
될 거 같거든.
아까 안 됐으면 더 될 거 같거든.
지금 남천휘의 심경이 그러했다.
“후우. 딱 열 장만 모아서 한 번 더 하자.”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지만, 지킬 수 있을는지는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나저나 자수정이 왜 이렇게 많이 나오는 걸까.
남천휘는 보급창을 보고 표정을 굳혔다.
야금야금 모으다 보니 자수정만 벌써 4000 개다.
‘너무 많이 나오니까 값어치가 없어 보여.’
하루 빨리 50레벨을 찍고, VIP를 3등급까지 올려야 자수정의 활용도가 밝혀질 터였다.
“후우.”
남천휘는 보료에 기댄 채 허공을 노려봤다.
들떴던 마음이 가라앉는 건 한순간이다.
“이제 남은 건 보도뿐이야!”
보도(寶圖).
한 마디로 보물지도다.
이것이야말로 질 수 없는 도박이 아닌가.
게다가 B급이니 어느 정도 쓸 만한 보물이 나올 터였다.
남천휘는 조심스럽게 B급 보도를 확인했다.
낡은 두루마리가 펼쳐지며 흰 빛을 흩뿌렸다.
‘좋아, 어디냐?’
시야 구석에 위치한 지도에 위치가 표시될 것이라 믿었다. 대두동도 백파도 남추의 족자에서 표기되지 않았던가.
아니나다를까 지도의 어딘가가 빨갛게 반짝였다.
동시에 퀘스트가 발동했다.
띠링-
《천릉곡의 비밀》
- 계곡의 가장 깊은 곳, 그곳에 있다.
- 하나의 삶, 그리고 하나의 삶이 교차한다.
- 서로를 스승이라, 스스로를 제자라 칭한다.
- 그곳에 있다.
※ 시간제한이 없는 퀘스트입니다.
남천휘는 눈을 끔뻑였다.
왠지 모르게 추상적인 내용의 퀘스트가 아닌가.
지도를 확인하는 순간 당황스러움은 배가 됐다.
주변은 온통 산림이었고, 그 중심부에 붉은 점이 찍혔을 뿐이다. 한데 남추의 족자를 찾아갈 때와 달리 경로가 반짝이지 않았다.
숲이 아니라 나무만 보여주는 느낌이다.
“이거 아무래도 태산이겠지?”
남천휘는 지도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워낙 가까이서 보는 듯했기에 오히려 주변 지형을 확인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정보가 더 필요할 듯했다.
‘이게 뭐기에 이런 때에 등장한 걸까?’
그가 한참을 골똘히 궁리하던 중 마부의 외침이 들려왔다.
“공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셔야 할 듯합니다.”
남천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제 공부(孔府) 외곽이 아니던가.
하나 창밖을 바라보니 마부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는 눈을 끔뻑이며 헛웃음을 흘렸다.
“뭐 이렇게 사람이 많아?”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에 말을 잇지 못했다.
빳빳하게 다려진 옷을 걸친 홍안의 청년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머니! 제가 꼭 해내겠습니다.”
온가족이 총출동한 듯 수십 명의 사람들이 청년을 격려했다. 이와 같은 광경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심지어 저쪽에는 십 수 명의 기녀를 대동한 채 실실거리는 사내도 보였다.
“우승 하시고 저희를 모른 척하시면 안 되어요.”
“저희가 응원할 게요.”
“하하하! 오라버니만 믿어라. 내가 어떻게 우리 아기 새들을 버릴 수 있겠느냐?”
그 주변에는 마치 축제가 열린 것처럼 수많은 좌판이 깔려 있었고, 호객을 하는 상인들의 외침으로 인해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이제 세 개 남았어요. 청운대협의 애장품을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용봉쟁투의 우승 부적이 은자 한 냥입니다!”
“오라버니, 힘내세요.”
“제자야, 네가 우리 사문을 일으켜야한단다!”
그 때 간사하게 생긴 사내가 마차로 다가왔다.
그는 주변을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
“공자, 용봉쟁투를 구경하러 오셨소? 내가 급한 일이 생겨서 비싸게 주고 산 자리를 되팔려고 하는데······.”
용봉쟁투의 실체를 처음으로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완전 개판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