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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만렙지존-71화 (71/305)

44, 용봉쟁투(龍鳳爭鬪).

44, 용봉쟁투(龍鳳爭鬪).

강호는 평화롭다.

정과 마의 다툼은 기억이 희미할 정도였다.

그러니 평화가 찾아온 것이 맞으리라.

안정만큼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미약이 어디 있으랴. 정파의 위선도, 마도의 흉악함도, 사파의 저열함도 세상이라는 솥 안에서 뒤섞였다.

물론 정파의 비율이 압도적이다.

마도는 변방으로 밀려났고, 사파는 정파의 그림자 안에서만 움직였다.

정사마(正邪魔)가 함께 어우러지는 세상.

“요즘처럼만 같으면 소원이 없겠다!”

양민들이 입버릇처럼 중얼거렸다.

양민들만 그랬다.

칼 위에서 춤을 출 때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강호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마교가 잠잠해? 사파가 숨만 껄떡이고 있어?

그럼 우리끼리 우열을 가려야지!

정파의 경쟁자는 정파가 되었다.

하나 사마외도를 대할 때처럼 다짜고짜 주먹질이나 칼질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명분과 체면, 그리고 협의지심.

이것은 상징이자, 족쇄였다.

그렇기에 수면 아래에서 점잖은 싸움을 이어갔다.

산동성의 터줏대감이라 불리는 세 방파도 마찬가지였다.

전통의 황보세가는 관부는 물론이고, 무림맹과도 끈끈한 인맥을 자랑했다. 신공부는 중원 각지에 퍼져있는 유림을 기반으로 성지를 자처할 정도였다.

세 방파 중 가장 역사가 짧은 청도문은 황보세가와 신공부에 들지 못한 낭인과 무인들을 싹쓸이했다.

그렇기에 외적으로 보면 산동성 동부 전체를 차지한 청도문의 위세가 가장 대단해보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러했다.

어쨌든 이렇게 세 방파가 알게 모르게 대립한 세월이 십 수 년이다.

한데 시간의 흐름은 모든 것을 뒤바꾸지 않던가.

고여 있던 산동강호 또한 변화를 마주했다.

바로 산동성 밖의 정파였다.

각성마다 구파오가가 자리했으니 그들에 미치지 못하는 방파들은 밖으로 눈을 돌려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눈에 띈 것이 바로 산동성이다.

풍요로운 대지에서 잉태된 물산의 거래는 상상을 초월했다.

같은 정파면서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신공부를 중심으로 삼대 방파가 힘을 모아야 한다는 의견이 빗발쳤다.

용봉쟁투(龍鳳爭鬪)는 그렇게 시작됐다.

“후기지수 백 명을 선발해서 강호의 신성으로 키운다고? 뭐 하러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하는 거야.”

남천휘는 혀를 찼다.

후기지수란 것이 키운다고 키워지던가.

그 역시 곡부남가의 돈을 통해 호도라는 별호를 얻었다. 하나 돈과 인맥으로 만든 별호는 오래 가지 않았다.

그렇기에 남천휘는 망설임 없이 서찰을 집어던졌다.

소혜는 서찰을 주운 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아! 재밌겠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남천휘의 말에 소혜는 서찰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무공과 학문, 거기에 성격과 외모까지 더해서 평가한다는데요. 합숙도 하고, 시험도 봐서 통과하는 후기지수는 삼대방파가 관리해서 강호의 신성으로 만들겠다는데요.”

쯧쯧,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애 같은 소리로다.

“바보야. 호도 일을 겪고도 그걸 믿어?”

소혜각 고개를 갸웃거렸다.

“호도요?”

“······.”

“아! 호도.”

남천휘는 소혜를 흘겨보다가 한 숨을 내쉬었다.

“거봐라. 기억도 못하잖아.”

한데 소혜는 납득한 표정이 아니다.

“그래도요. 한 명을 죽이면 살인자고, 만 명을 죽이면 영웅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곡부남가에서 소문을 내는 것과 삼대방파가 움직이는 건 규모가 다를 걸요. 또한 그에 걸맞은 행사 또한 마련할 테고요. 예를 들어서 무림대회나, 대규모 수렵제, 또는 후기지수들이 모두 모이는 연회라도 열리면 산동의 모든 사람들이 눈과 귀를 집중할 거예요.”

남천휘는 눈을 끔뻑였다.

뭔가 말도 안 되는 비유 같지만, 묘하게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너 요즘 책 뭐 보니?”

소혜는 별 것 아니라는 듯 대꾸했다.

“이아를 보고 있어요.”

맙소사! 모르겠다.

도대체 책 이름처럼 들리지도 않는 이아는 뭐란 말인가. 어머니인 안자영은 시비들에게도 학문의 길을 열어줬다. 뭐든 배우고 익히면 언제든 쓸모가 있을 거라는 의미에서였다.

‘소학보다 어려운 건가?’

아마 그럴 거다.

하지만 주인 된 입장에서 물어볼 수는 없지 않은가.

이건 자존심 문제였다.

“아! 그래? 그래도 기본이 중요해. 내 생각에는 유교의 경전을 중심으로 식견을 기르는 것이 좋을 거야. 섣불리 다른 것에 손을 대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걸?”

소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나 이내 빙긋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네! 공자님 말씀대로 할 게요.”

그리고는 서찰을 잘 접어서 탁자 위에 올려놓은 후 자리를 떴다.

남천휘는 소혜의 뒷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휴, 잘 넘겼네. 소혜가 생각보다 머리가 좋아. 그런데 소혜는 왜 아직도 레벨이 1인 거냐?”

◎ 특급 강호인 승급 체계는 오직 강호인을 대상으로 정보를 전달합니다. 그렇기에 비강호인으로 규정된 대상의 레벨은 1로 표기됩니다.

남천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서 시비나 하인들은 레벨이 없구나.”

◎ 곡부남가 자체가 강호방파로 규정되기에는 부족함이 많습니다. 하여 해당되는 부분에만 시스템이 적용된 상태입니다.

지금껏 퀘스트가 발동됐던 것을 보면 재이의 말이 옳을 듯했다.

남천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대접을 들었다.

소혜가 가져온 꿀물을 마저 마시기 위함이다.

하나 그는 대접의 바닥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대접의 바닥에는 녹빛의 가루가 남아 있었다.

“아! 약초 넣지 말라니까 또 넣었네. 어쩐지 뒷맛이 쓰더라니. 에잇, 못된 것!”

◎ 소혜의 성향은 극단적 선입니다.

조금 전 상황만 봐도 소혜는 나이보다 성숙하며, 생각이 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천휘는 미간을 좁혔다.

“말도 안 돼. 좋아, 소혜가 착한 건 인정하마. 어찌됐든 내 성질을 다 받아주고 있으니까. 그런데 생각이 깊은 건 아니지. 소혜가 사람을 얼마나 귀찮게 하는지 보고도 그러냐?”

한데 재이는 소혜를 평하다 다른 화제를 꺼내는 것이 아닌가.

◎ 이아(爾雅)는 훈고학에 속한 서적으로 유의어와 언어 해석에 필수입니다. 고문학의 필수 서적으로 유가 십삼경에 포함됩니다. 차후 고문 해독을 위해서 필수적으로 독파하기를 권합니다.

남천휘는 침묵했다.

생전 처음 듣는 ‘이아’가 유교 경전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어찌됐든 실컷 잘난 척을 했는데 헛다리를 짚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소혜는 그걸 알면서도 받아준 거고.

“흐음.”

남천휘는 침음을 흘리더니 슬쩍 직도를 쥐었다.

“강화도가 올라갈수록 외형도 변할 줄이야. 이야! 이건 내가 생각도 못했네.”

필살의 말 돌리기였다.

◎ 강화 상태에 따라 미세한 변화가 추가됩니다.

+10강 이상의 아이템은······.

남천휘는 고개를 숙였다.

소혜에 이어 재이에게도 패배했다.

못난 자신에 대한 연이은 배려에 눈물이 찔끔 솟았을 정도였다.

“너라도 건져서 다행이다.”

남천휘는 직도를 쓰다듬었다.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서라도 한 번 더 봐야겠다.

‘확인.’

《+5 강화된 수련용 직도》

- 직도 8호 (가치 : 250)

- 무기 등급 : 특수(特殊).

- 부가기능 : 집중력 10% 증가.

- 추가능력 : 절삭력 7% 증가.

- 추가능력 : 공기저항 4% 감소.

- 내구도 (230/230)

※ 도명(刀名)을 지을 수 있습니다.

남천휘는 탄성을 흘렸다.

보면 볼수록 아름답지 않은가.

실제로 도신을 햇빛에 비출 때마다 검은 빛이 희미하게 일렁이는 듯했다.

비록 목표로 했던 7강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어느 정도 만족스러웠다.

“쯧, 조금 아깝기는 해.”

남천휘는 지난 밤 두 자루의 직도를 5강까지 실패 없이 강화하는데 성공했다 그 때만 해도 10강을 염두에 뒀을 만큼 기분이 좋았다.

하나 한 번 실패하기 시작하자, 직도의 강화수치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결국 강화주문서 4장이 남았을 때 직도의 강화수치는 3이었다.

다행히 남은 네 장이 모두 성공한 덕분에 두 자루의 직도는 5강이 됐다.

어쨌든 지나고 보니 5강만 해도 어디인가 싶었다.

일단 강화로 인해 직도의 능력치가 크게 변화했기 때문이다.

3강까지는 1%와 10씩 올랐던 것이 4강부터는 2%와 20씩 증가했다.

심지어 4강부터는 추가능력이 한 개 더 붙더라.

◎ 이름을 붙여주세요.

남천휘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가 강화한 직도는 8호와 9호다.

한데 매번 소환할 때마다 숫자로 호명할 수는 없지 않은가.

‘뭐가 좋을까?’

잠시 후 남천휘는 멋쩍은 표정으로 이름을 등록했다.

《천하(天下)》《제일(第一)》

“크흠, 뭐?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그런 말도 모르냐? 일단 지르고 보는 거야.”

재이는 별 말 없이 등록됐다는 알림을 전했을 뿐이다.

“내가 창피해?”

*

이제는 조상과의 비무가 일과처럼 느껴졌다.

남천휘는 비천무상도와 오행군림보의 숙련도를 확인하며 빙긋 웃었다.

홀로 수련을 하는 것보다 조상과 비무할 때 상승폭이 엄청났다. 무엇보다 페널티로 인해 표식이 사라진 상태였다.

‘페널티가 끝나면······.’

모래주머니를 차고 뛰다가 모든 것을 벗어던진 듯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 싶다.

“한 번 더 갑시다!”

“좋습니다!”

남천휘는 버럭 일갈을 내지르는 조상을 보며 움찔했다. 과묵함의 상징이나 다름없던 사람이 성난 황소처럼 달려든다.

마치 건드려서는 안 될 무언가를 건드린 듯한.

‘아, 하지 말까?’

하나 곧이어 벼락처럼 꽂혀드는 검영은 모든 잡념을 날려버렸다.

채채채채채챙!

두 사람의 비무는 도기와 검기가 강렬하게 충돌한 직후 끝을 맺었다.

“삼공자는 참으로 특이합니다.”

운기조식 이후 조상이 건넨 첫 마디였다.

“제가 성장이 좀 빠르지요.”

조상은 남천휘의 대답에 고개를 내저었다.

“그 뜻이 아닙니다. 성장은 사람에 따라 다르니까요. 누군가의 하루가 누군가의 일 년과 같은 경우는 비일비재합니다. 그런 이들을 기재나 천재라고 하지요.”

아니야. 기재는 당신이고요.

‘나는 재이가 있을 뿐이고.’

“삼공자와 비무할 때마다 위태롭게 여겨집니다. 폭급한 초식의 흐름을 보면 몸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습니다. 한데 멀쩡하니 특이하지요. 하나 단순히 단련의 결과라고 하기에는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조금만 더 신경을 쓰시면 좋을 것 같거든요.”

체력의 배분과 내공의 효율을 뜻했다.

그리고 그것은 남천휘가 최근 매달리고 있는 화두이기도 했다.

“방법이 없을까요?”

조상은 쓴웃음을 지었다.

“수련, 그리고 경험. 이 두 가지는 어떤 불가능도 가능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아쉬워요. 제 도기와 조 대주의 검기가 부딪칠 때마다 여실히 느껴집니다.”

남천휘는 조금 전의 광경을 떠올리며 한 숨을 흘렸다. 자신의 도기는 내력을 우겨넣어 억지로 만든 것이다. 반면 조상의 검기는 깨달음과 내력의 조화로 인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결과였다.

‘도기를 펼칠 때마다 내기가 쭉쭉 빠져나가니 이거 원 안심할 수가 없네.’

하나 조상은 같은 대답을 내놓을 뿐이다.

수련과 경험.

이것만은 재이조차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였다.

오직 시간만이 해결해주리라.

“그나저나 용봉쟁투에 관한 서찰을 받으셨다고요?”

“벌써 소문이 그리 났습니까?”

조 대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게 모르게 많이 퍼져 있습니다. 산동성 내에 난다 긴다 하는 방파에는 모조리 뿌려졌다는군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강호가 유례없는 안정을 이뤘다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 완벽이란 불가능하지요. 그러니 이런 기회를 통해 후기지수를 발굴하고, 산동성의 대표로 내세우겠다는 취지는 좋습니다.”

“취지가 좋아요? 무슨 경극 배우를 뽑는 것도 아니고 강호의 이름난 무인을 억지로 만들어내겠다는 거잖아요.”

내 도기(刀氣)처럼 말이야.

“고인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무언가 변화를 주겠다는 시도가 좋다는 뜻이지요.”

남천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참석하라는 건가요?”

조상은 고개를 내저었다.

“삼공자의 강함을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용봉쟁투에는 수많은 방파의 이권이 얽히고설켰을 겁니다. 순수하게 두각을 드러내기란 불가능에 가깝겠지요. 저는 삼공자가 굳이 진창에 발을 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남천휘도 같은 생각이다.

일단 왕대만이 학관주와 같은 자들을 불러들였으니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남천휘는 수련을 통해, 또는 퀘스트를 달성함으로서 성장하는 것이 가장 빠를 터였다.

굳이 귀찮음을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남천휘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관심 없습니다. 때려 죽여도 그런 난장판에는 끼이지 않을 겁니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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