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67화 (67/305)

42, 강철(鋼鐵)의 접촉술사. (2)

물건의 가치는 용도와 방식으로 결정되는 듯했다.

명인이 만든 공예품은 미적인 기준으로 가치가 정해질 것이고, 장인이 만든 생필품은 용도에 따라 가치가 정해지리라. 그런 의미에서 눈앞의 상품은 이도저도 아니었다. 화려하게 장식을 해놨지만, 본래의 용도는 무기가 아니던가.

‘30, 40, 55, 27, 제일 높은 게 60이라.’

남천휘는 실망을 감추지 않았다.

“이게 전부인가요?”

중년인은 미간을 좁혔다.

도를 뽑지도 않고, 스쳐갔으니 눈 몇 번 깜빡할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어허, 지금 뭐하자는 거지?’

단순한 부잣집 공자의 변덕이라면 어울려줄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나 중년인은 말을 아낀 채 남천휘를 바라봤다.

그는 접객 생활만 이십 년 째다.

남천휘의 눈빛은 진지하기만 했다.

변덕이나 장난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가 놓친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리라.

“원하시는 부류가 있으신가요?”

표정과 말투는 여전했다.

여기서 속내를 드러내면 자신이 사람을 몰라봤음을 드러내는 꼴이다.

남천휘 또한 여전했다.

“제일 비싼 거요.”

물건의 가격은 품질로 매겨진다.

중년인은 점원을 불러 늘어놓은 도를 치웠다.

“당연히 있습니다. 하나 진열된 물건이 아니기에 구매 의사가 있는지 확인을 해야 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자금력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기분 나쁠 것도 없다.

곡부남가의 재력은 둘째 치고, 남천휘는 이곳이 초행이지 않던가.

남천휘는 소매 속에서 손가락을 튕겼다.

철그럭.

그렇게 보여준 금액이 육천 냥이다.

“곡부남가의 남천휘라고 합니다. 제가 제대로 된 시세를 몰라서 일단 이 정도만 가져왔습니다.”

거짓말이지만, 알게 뭐란 말인가.

중년인은 곡부남가라는 말에 안도한 듯했다. 게다가 남천휘가 내놓은 은자와 전표를 확인하고는 미소마저 지었다.

“어디서 많이 뵈었다 했더니 호도 남 소협이셨군요. 무진철원에 오신 걸 다시 한 번 환영합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남천휘는 중년인을 뒤따르며 탄성을 흘렸다.

‘아직 호도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니. 당신 좋은 사람이구나.’

지난 번 남천홍과 술을 마실 때 호도의 탄생 비화에 관하여 어렴풋이 전해 들었다. 돈으로 만든 별호다보니 시일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잊히는 것이 당연했다.

하나 장사꾼의 기억력은 범인과 다른가보다.

“여기는 무진철원의 별채입니다.”

별채의 경계는 매우 삼엄했다.

언뜻 보이는 호위 무인의 레벨만 해도 20을 넘길 정도였다.

그러고 보면 강호의 무인은 참 많다.

특히 북풍대 수준의 무인은 차고 넘칠 터였다.

‘슬슬 뭐라도 해야겠는 걸.’

북풍대의 수준을 끌어올리든, 외부에서 고수라도 초빙해야 할 판국이다.

“별채에는 삼천 냥에서 만 냥 사이의 병장기를 모아놓았습니다. 부디 소협께 어울리는 도가 있기를 저도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남천휘는 기대감에 부푼 채 별채에 발을 들였다.

“만져 봐도 됩니까?”

“물품을 훼손하지 않는 정도라면 괜찮습니다.”

중년인은 날에 베일 것을 걱정하지 않았다.

어찌됐든 상대는 혈랑회와 맞서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은 협객이 아니던가. 비록 곡부남가의 공작으로 부풀려졌다고는 하나 애초에 없는 일도 아니었다.

“그럼 어디.”

남천휘는 진열된 병장기를 하나씩 만졌다.

‘이번에도 뽑지 않는군. 그나저나 도를 쓴다고 알려졌는데 검이나 창까지 만지는군.’

중년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하나 남천휘는 이랑도나 과(戈)처럼 생소한 병장기까지 꼼꼼하게 살폈다.

‘이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실감이 드네.’

무기의 가치는 천차만별이다.

하나 가치와 가격은 비례하지 않았다.

어떤 무기의 가치는 75지만, 칠천 냥의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한데 100짜리 무기임에도 육천 냥에 팔리는 것이 존재했다. 어쩌면 시스템의 ‘확인’ 기능은 신안과 더불어 최고의 기능이 아닐까 싶다.

‘아! 이러면 기껏 시간을 낸 보람이 없는데.’

남천휘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거의 모든 무기가 대두동의 직도보다 낮은 가치를 지녔다. 기껏 발견한 200과 170의 병장기를 발견했지만, 사용할 수 없는 검과 구절편이었다.

‘검이 구천 냥이라.’

조상에게 어울릴 법한 세검(細劍)이다.

언제고 큰돈이 생기면 선물로 사줘도 좋을 듯했다.

중년인은 남천휘의 속내를 눈치 채고, 슬그머니 물었다.

“마음에 차는 물건이 없으신가요?”

“제가 찾는 건 없군요. 더 좋은 무기를 볼 수 있을까요?”

남천휘의 말에 중년인은 난색을 표했다.

“신분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아무래도 구매력을 증명하셔야 하다 보니······.”

육천 냥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소리다.

남천휘는 깔끔하게 물러섰다.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것도 중년인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부탁은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 터였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다음에 다시 오신다면 성심성의껏 준비를 해놓겠습니다.”

중년인은 끝까지 상대방을 기분 좋게 만들어줬다.

그렇기에 감사를 표하고자 했다.

남천휘는 한쪽에 놓인 도를 다시 쓰다듬었다.

환도의 가격은 팔천 냥이다.

물건 자체는 겉으로 봤을 때 아무 이상이 없어 보였다.

하나 가치와 내구도가 문제다.

《보석으로 치장한 환도》

- 화려한 장식과 예리함을 겸비한 환도.

- 무게 중심을 잡아줍니다.

- 염화철방 제작(내구도 20/20)

- 가격 : 은자 8000냥.

애초에 내구도 20은 낮아도 너무 낮았다.

이 방에 있는 병장기는 물론이고, 처음에 가져왔던 것들보다 낮을 정도였다.

“저 물건 말인데요.”

남천휘는 슬그머니 도를 뽑았다.

뽑지도 않고 불량품이라고 주장했다가는 미친놈 소리밖에 더 듣겠는가.

잠시 살펴본 후 탄성을 흘렸다.

‘확실히 눈으로 봐서는 아무 것도 모르겠네.’

“표정을 보아하니 마음에 드시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중년인은 접객을 책임질 만큼 눈썰미가 대단했다.

“네, 내구도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군요.”

남천휘의 말에 중년인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라고요? 그럴 리가요. 본 원에 납품되는 무기는 철저한 보증과 감수를 거쳐 관리되고 있습니다. 불량품이 섞일 리가 없지요.”

철방에서 파는 무기에 수천 냥을 지급할 수 있는 까닭은 믿기 때문이다. 즉 신뢰를 잃는다는 건 모든 걸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중년인은 남천휘의 의견을 흰소리로 치부할 수 없었다.

‘철부지 도련님은 아닌 것 같은데······.’

만에 하나 사실일 경우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아찔했다. 그는 무진철원의 제일규칙을 떠올렸다.

- 최고의 가격에 최상의 물품을 제공한다.

결국 그는 선택을 남에게 미뤘다.

“정말 불량품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네.”

“그럼 공증 담당을 불러오겠습니다.”

남천휘는 중년인이 무인을 불러 귓속말을 하는 광경을 물끄러미 지켜봤다.

‘조금 귀찮아지려고 한다.’

한데 그 순간 지루함을 날려버리는 경쾌한 알림이 울렸다.

《우정 또한 닳아 없어지지 않으리》

- 무진철원의 수뇌부와 인연을 맺으세요.

무진철원의 이름을 차용한 듯한 퀘스트 명칭이다.

‘돌발 퀘스트 치고는 너무 어렵지 않냐?’

뜬금없이 수뇌부와 인연을 맺으라니.

남천휘는 잠시 후 씩씩거리며 등장한 공증 담당을 보며 퀘스트 포기를 신중하게 고민했다.

‘저 사람하고는 못 친해져. 때려 죽여도 안 돼.’

아니나다를까 공증원으로 보이는 노인은 접객원과 말투부터 달랐다.

“무기가 불량이라고? 그쪽 공자께서 본원의 물건을 의심하신 겁니까?”

남천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제 와서 꽁무니를 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칫하면 중원삼대철방에 손꼽히는 무진철원에서 난동을 부린 파락호로 소문날 터였다.

“네.”

노인은 미간을 좁힌 채 물었다.

“공자께서는 야장에 조예가 깊으신가요?”

“아닙니다.”

“한데 본 원의 무기가 불량품이라고 주장하는 겁니까? 지금 본 원에 시비를 걸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계신 겁니까? 도대체 그 물건을 트집 잡는 근거가 뭡니까?”

남천휘는 어깨를 으쓱였다.

“감입니다.”

노인은 예상치 못한 대답에 인상을 썼다.

“뭐라고?”

접객원조차 한순간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건가?’

하나 남천휘는 당당하게 말을 이었다.

“저는 만져보면 압니다.”

이게 무슨 정신 나간 소리 같겠냐만 사실인 걸 어쩌겠는가. 더 설명하고 싶어도 설명할 도리가 없다.

그냥 만지니까 보였습니다.

마치 범죄자의 변명처럼 느껴졌지만, 별 도리가 없지 않은가.

역시 노인은 납득하지 못한 듯했다.

“허허, 더 이상 대화할 가치를 못 느끼겠군. 바쁜 사람 오라 가라 했으니 마무리는 그쪽에 맡기겠소.”

남천휘는 도갑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거 염화철방에서 만들었군요.”

노인이 걸음을 멈췄다.

그는 이곳에 오기 전 물품의 정보를 확인한 후였다.

“그걸 어떻게?”

남천휘는 검지를 펴고 흔들었다.

“그건 영업비밀이고요. 어쨌든 이 환도는 내구도가 너무 낮네요.”

“말도 안 돼! 무진철원에 들어오는 모든 병장기는 노부가 감수를 했소. 강도가 떨어지다니? 공자는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거요?”

이쯤 되면 뒤통수가 간질거렸다.

길 가다가 맞는 사람을 도와줬더니 포두가 와서 며칠 동안 귀찮게 하는 상황과 뭐가 다른가.

“믿기 싫으면 마시오. 이것만 그런 거면 내가 말을 안 하지. 저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천휘는 빠르게 몇 개의 병장기를 가리켰다.

모두 가치와 내구도가 비정상적으로 낮았다.

“엇! 그러고 보니 죄다 염화철방 물건이네.”

노인은 인상을 썼다.

주름진 눈매 사이로 얼핏 보이는 눈동자가 심하게 떨렸다.

‘이거 뭔가 있구만.’

한데 그 순간 별채 밖에서 화복을 입은 노인이 잰걸음으로 들어섰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불량품이 한두 개가 아니라고? 이 놈! 누구의 사주를 받고 온 것이더냐? 염화철방을 모함하는 걸로 봐서는 경쟁 철방에서 수작을 부린 건가?”

이건 또 뭐야?

접객원이 지부장이라며 인사를 한다.

남천휘는 헛웃음을 흘렸다.

요즘 들어 만난 어른 중 제대로 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어째 막 총관이 제일 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일 지경이 아닌가.

‘이 나라의 과거는 참으로 암울했겠구나.’

노인은 든든한 뒷배가 생겨서인지 호통을 쳤다.

“곡부남가의 삼남이라고 해서 쓸 만한 소리를 하려나 했더니······.”

지부장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소가주라면 모를까, 삼남이라면 그저 백면서생이 아니던가? 곡부남가의 가주는 오랫동안 외유를 나섰다는데 집안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나 알고 있을지 모르겠군. 그리고 자네! 자네는 손님을 가려 받아야지. 아무나 이곳까지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해?”

접객원을 탓하는 모습까지 어쩜 저리도 밉살스러운지 모르겠다.

아니지.

이건 밉살스러운 경지를 넘어섰다.

‘아버지가 집안은 내팽개친 건 사실이지. 그래도 네가 그러면 안 되지!’

남천휘는 짜증 섞인 눈초리로 두 사람을 노려봤다.

그리고 주변에 놓인 도를 한 자루 가리켰다.

“저건 여기서 가장 저렴한 무기겠지요?”

남천휘는 삼천 냥짜리 도를 들고 염화철방의 병장기 옆에 놨다.

“두 개를 부딪치면 어느 쪽이 상하겠습니까?”

공증을 책임지는 노인이 호언장담을 했다.

“당연히 삼천 냥 짜리가 상하겠지. 내가 직접 감수를 봤거늘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스릉-

남천휘가 다짜고짜 삼천 냥짜리 도를 뽑았다.

“뭐, 뭐하는 거야?”

지부장과 노인이 주춤거렸다.

“말로는 뭘 못할까요. 직접 시험해봅시다.”

“이 놈! 미쳤느냐? 그게 얼마짜리인데!”

쩔그렁.

남천휘는 은자 주머니를 내려놨다.

“다섯 번 안에 염화철방의 환도가 부러진다는데 내 돈 사천 냥과 재이를 걸겠다. 쫄리면 이제라도 사과하시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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