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강철(鋼鐵)의 접촉술사.
42, 강철(鋼鐵)의 접촉술사.
남천휘는 눈을 끔뻑였다.
그 뿐 아니라 웅도를 비롯한 스무 명의 예비 관도들도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내가 잘못 들은 거냐?”
관도들이 웅성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저들은 연말부터 입관을 준비했다.
한데 학관의 교육 과정을 알려준다는 소집일에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특히 웅도의 충격은 더했다.
그는 하늘이 무너진 사람처럼 실의에 빠졌다.
남천휘는 어처구니가 없을 뿐 실망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특급 강호인을 꿈꾸지 않았던가. 한가롭게 학관에서 경전이나 외고 있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하나 의구심마저 떨쳐낼 수는 없었다.
학관에 문제가 생겨서 폐관을 한다면 미리 알려줄 수도 있는 노릇이 아닌가. 소집일에 맞춰서 폐관을 논한다는 건 예의가 아니다.
‘그냥 엿이나 먹으라는 거잖아.’
요즘 들어 자신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자들이 너무 많다. 울화통이 터질 때마다 느끼지만, 이래서 싸움이 나는구나 싶을 정도였다.
‘흥! 어차피 폐관이라며?’
여차하면 정문 정도는 부숴버려야겠다.
참으면 병 된다잖아. 안 그래?
“조용!”
그 때 뒷짐을 지고 있던 노문사가 일갈을 내질렀다.
“학문을 수양하겠다고 모인 자들이 어찌 이리 경망스러운가.”
남천휘는 미간을 좁혔다.
똥 싼 놈이 성질을 낸다더니, 바로 그 꼴이 아닌가.
하나 관도들은 노문사의 호통에 입을 닫았다.
유가의 경전을 배우기 위해 모인 자들답게 예법을 중시하는 게다.
‘어라? 그러고 보니 노문사는 파계승이잖아. 그런데 왜 불경을 안 가르치고······.’
입관 원서를 쓸 때부터 느꼈지만, 학관주는 땡중의 냄새가 났다. 고기 냄새와 향내가 섞여있다고 하면 정확하리라. 하기는 제대로 된 작자였다면 이런 식으로 예비 관도들을 대우하지 않았을 터였다.
“크흠! 다시 말하마. 풍천학관은 오늘 부로 문을 닫는다. 너희들에게 미리 알리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는 사정이 있다.”
노문사는 독경(讀經)이라도 하는 것처럼 감정 없는 설명을 늘어놓았다.
‘사과는 언제 하는 거야?’
남천휘는 오만상을 지었다.
그 사이 노문사가 목소리를 높였다.
“나 스스로 무례함을 알고, 명성이 더럽혀짐을 모르지 않아. 하나 유자라면 진창임을 알면서도 기꺼이 발을 들여야 할 때가 있다. 그 때가 지금이다. 너희들도 알고 있을 것이야. 그간 평온했던 산동성에 악적들이 들끓고 있다. 혈랑회와 흑살당, 비공회와 같은 마적과 토비가 양민을 해하지 않았던가.”
예비 관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이미 곳곳에 난립한 흑도 세력의 행패는 암암리에 알려진 상태였다. 그들은 왈패 집단이라고 무시하기에는 강했고, 흑도 세력이라고 칭하기에는 미약했다. 게다가 주거도 일정치 않으니 토벌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한 마디로 파리처럼 골치 아픈 종자였다.
하나 남천휘는 홀로 인상을 썼다.
‘얼씨구, 돌아가는 꼴이 이상하네.’
2레벨 변설의 공능일까.
일견 타당해 보이는 노문사의 연설에 쉬이 공감할 수 없었다.
‘저 인간이 대의와 명분을 들먹이면서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고 있잖아.’
그럴 시간에 진심을 담아 사과나 해라.
순진한 애들의 학구열을 짓밟은 괘씸한 늙은이야.
“한데 드디어 신공부가 칼을 빼들었다!”
예비 관도들은 신공부(新孔府)를 거론하는 순간 화색이 돌았다. 유자는 공자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당연한 결과이리라.
노문사는 여세를 몰아 자신의 얼굴에 금칠을 해대기 시작했다.
“신공부와 황보세가, 그리고 청도문까지 힘을 합쳐 악적에게 천형을 내리고자 한다. 하여 내게 손을 내밀었으니 어찌 잡지 않을 수 있을까. 일평생 일궈놓은 터전을 버려두고 나는 신공부로 간다. 그렇기에 그대들을 받아줄 수가 없다. 그것만은 미안하게 생각한다!”
산동성의 거대방파라 할 수 있는 세 곳이 힘을 합쳤단다. 유생들은 당장이라도 흑도가 섬멸된 것처럼 박수갈채를 보냈다.
하나 남천휘의 표정은 더없이 어두웠다.
‘끝까지 사과는 안 하네.’
노문사의 근엄한 표정을 보아하니 사과는 고사하고, 오히려 칭송을 받으며 떠날 기세가 아닌가.
“언제고 내가 돌아왔을 때 우리의 인연이 계속 되기를 바란다!”
지랄 염병하고 자빠졌네.
저거 완전 사기꾼이 아닌가?
한데 관도들은 진짜 노문사를 배웅할 것처럼 환호성을 질렀다.
멍청한 놈들.
분위기에 휩쓸려서 가장 중요한 걸 잊었구나.
남천휘가 짜증난 김에 손을 번쩍 들었다.
“관주! 영전을 축하드립니다.”
노문사는 미간을 좁혔다.
영전(榮轉)이라 함은 더 좋은 직위로 올라가는 것을 뜻했다.
‘저 놈이 비아냥거리는 건가?’
하나 분위기를 한껏 띄워놨는데 굳이 재를 뿌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고맙네.”
“그런데 말입니다. 학관 폐쇄는 납득을 했으니 이제 돌아가 보려 합니다. 한데 입관이 확정됐을 때 납부했던 학비는 어디서 돌려받으면 됩니까?”
예비 관도는 입관을 위해 은자 열 냥을 납부한 상태였다.
한데 노문사는 그것을 거론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관도가 먼저 요구할 수도 없었다. 유자로서 돈을 밝힌다는 오명을 쓰고 싶지 않은 게다.
그러나 남천휘는 개의치 않았다.
“어디서 받으면 되나요?”
한껏 달아올랐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듯했다.
노문사의 굳은 표정은 쉬이 풀리지 않았다.
아마 관도들의 학비를 전별금으로 생각했나 보다.
‘그랬으면 쓰레기지.’
남천휘는 노문사의 뜨거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무공을 익힌 그가 시선을 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결국 노문사가 눈썹을 파르르 떨며 시선을 돌렸다.
“크흠.”
그러자 노문사를 따라 나섰던 학자가 눈치를 보더니 대뜸 남천휘를 향해 호통을 쳤다.
“갈! 정명한 정신과 청백한 신체로 배움을 갈구해야 할 유자가 어찌 이런 상황에서 금전을 논하는가! 천박하다!”
하나 이미 마음이 떠난 남천휘가 누군지도 모를 학자의 말에 휘둘릴 리 만무했다.
“그쪽이나 닥치시오! 관주께서 생각하신 바가 있거늘 어째서 알지도 못하고 나서는 거요! 나는 곡부남가의 삼남인 남천휘입니다. 사실 은자 열 냥 정도는 육포 값이라고 생각해도 그만입니다. 한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없는 살림에 쥐어짜다시피 모은 사람도 있을 거고, 빌려서 납부한 사람도 있을 거요. 관주께서 예비 관도들의 사정을 모를 리 없잖소. 뭐라고? 천박하다고. 사람이 먹고 자는 일이야 말로 생의 근본이외다. 선현들께서 말씀하시길 만백성의 배를 불리고, 바르게 이끌 수 있다면 족하다 하셨소. 그런데 천박해? 당신은 지금 관주를 모욕하는 거요!”
에헴! 이 몸의 지혜 수치가 300을 넘겼다.
어디서 이름도 없는 학자 나부랭이가 혀를 놀려.
남천휘는 분기탱천한 표정으로 노문사를 바라봤다.
“관주, 그렇지 않습니까?”
노문사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그러나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여 헛웃음을 지었다.
“허허, 그렇지. 크흠! 어디 학비를 돌려받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말해보시게.”
남천휘는 미간을 좁혔다.
저 자는 끝까지 관도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구질구질한 늙은이 같으니라고.
아니나다를까 관도들은 섣불리 손을 들지 못했다.
저들의 복색만 봐도 부유하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설이는 꼴을 보니 속에서 천불이 났다.
‘아! 이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
그저 관주의 뻔뻔함이 싫었기에 나선 길이 아니던가. 한데 그 때 잠자코 있던 웅도가 손을 번쩍 들더니 말했다.
실의에 빠졌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후였다.
“돌려받겠소. 아무래도 관주는 내가 찾던 스승이 아닌 듯합니다.”
노문사는 자존심이 상한 듯했다.
“뭐라?”
하나 웅도는 단호했다.
“돌려받겠다고 했소.”
뭐든 처음이 중요한 게다.
웅도가 물꼬를 트는 순간 여기저기서 관도들이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하나 끝끝내 서너 명은 손은 들지 않더라.
자존심 때문에 집안을 말아먹을 놈이 아닌가.
결국 노문사는 전낭을 풀고 학비를 돌려줄 수밖에 없었다.
띠링-
◎ 변설을 적극 활용하여 상황을 반전했습니다.
- 축복받은 무기강화 주문서가 지급됩니다.
얼씨구! 지화자! 좋구나!
집안을 말아먹을 놈들은 기억에서 지워버리자.
잠시 후 남천휘는 은자 열 냥을 손에 쥔 채 학관을 나섰다. 하나 보급창에 쟁여 놓은 축복받은 무기강화주문서를 어떻게 사용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축복받은 주문서라니!’
뭔지 모르겠지만, 명칭만 봐도 좋아보였다.
학관도 폐쇄되고, 돈도 돌려받고, 주문서까지 얻었으니 일석삼조가 아니겠는가.
*
남천휘는 웅도와 헤어진 후 인벤토리를 살폈다.
‘축복받은 확인서처럼 이것도 다른 효능이 있는 건가?’
재이는 예전과 달리 순순히 아이템의 효능에 관하여 설명했다. 확실히 무적자로 전직한 이후 정보 습득이 편해졌다.
왠지 더 느슨해졌다고나 할까.
‘어쨌든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네.’
재이의 설명에 의하면 강화주문서를 사용할 때마다 절삭력과 공격력이 상승한단다.
기본 구조는 이러했다.
- +3강까지는 자동 강화.
- +4강부터는 강화 실패 시 수치 하락.
- +7강부터는 강화 실패 시 파괴.
- +10강부터는 강화 불가.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도 골치가 아팠다.
즉, 3강 무기에 강화주문서를 발랐을 때 운이 좋으면 4강이 되고, 운이 나쁘면 2강이 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힘들게 7강까지 올려도 8강에 도전하는 순간 ‘무기 파괴’를 감수해야 했다.
그조차 ‘+10’이 끝이다.
축복받은 강화 주문서는 말 그대로 강화 시 축복을 내려준다. 그 결과 4강에서 7강 사이에 수치가 하락하지 않는다. 또한 7강부터 10강 사이의 강화 도전 시 하락할지언정 파괴를 방지해줬다.
심지어 ‘+11강’부터는 축복받은 강화주문서와 몇 가지 특수 재료가 조합됐을 때 도전이 가능했다.
‘발라볼까?’
현재 남천휘가 지닌 무기강화주문서는 열네 장이다. 몇 장 발라서 실패한다고 해도 크게 염려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나 수련용 직도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가치 180의 직도가 세간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도 알 수 없지 않은가. 실제로 조상을 비롯한 북풍대는 철방에서 일괄구매 장검을 사용했다.
해서 가치가 30에 불과하더라.
‘말까?’
견물생심이라더니 바로 이짝이다.
없을 때에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막상 무기와 주문서가 쌓여 있으니 성패(成敗)를 떠나 저지르고 싶어졌다.
“아!”
남천휘는 걸음을 멈췄다.
저 멀리 철방이 줄지어 자리한 철장로(鐵匠路)가 보였다. 철장로에서 제일 유명한 곳이라면 보검도 팔지 않을까 싶다.
‘제일 큰 곳으로 가보자.’
지금껏 병장기에 욕심을 내지 않았기에 철장로는 초행이다.
“무슨 철방이 이렇게 좋아?”
대부분 영세한 철방이기에 쇠 냄새와 후끈한 기운이 넘실거렸다. 하나 크고, 유명한 곳은 하나의 장원을 방불케 했다.
남천휘는 가장 큰 철방 앞에 섰다.
무진철원(無盡鐵院).
무기를 팔되 결코 닳아 없어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으로 유명하단다. 이런 곳이라면 보도(寶刀)라 불릴 병장기도 있으리라.
“이쪽으로 오시지요.”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접객은 훌륭했다.
아리따운 시비가 내온 차를 마시다보니 인상 좋은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기를 사러 오셨다고요?”
“네. 도를 볼 수 있을까요?”
그 순간 중년인의 눈동자가 남천휘의 위아래를 훑었다.
‘비단 옷에 책 보퉁이라. 부잣집 도련님께서 장난감을 사고 싶은가 보군.’
하나 그는 접객의 달인이 아니던가.
속내를 숨긴 채 점잖게 설명을 이어갔다.
“가격대를 말씀해주신다면 원하시는 물건을 찾기 쉬울 겁니다.”
남천휘가 원하는 건 비교였다.
가치 180의 수련용 직도가 세상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제일 비싼 걸로!”
중년인은 실소를 터트릴 뻔했다.
무조건 비싼 물건을 찾는 건 철부지나 졸부들이 하는 천박한 행위였다. 직접 사용할 병장기였다면 손잡이의 형태와 날의 상태까지 거론해야 마땅했다. 심지어 치수와 무게를 적어오는 자들도 있지 않던가.
‘쯧, 장식용 도나 보여줘야겠군.’
그는 수하를 일러 중상급 도를 가져오라 일렀다.
잠시 후 스무 자루의 도가 두 사람 앞에 나열됐다.
“만져도 됩니까?”
“날카로우니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남천휘는 빙긋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그러더니 칼을 뽑기는커녕 지나가면서 도갑만 슬쩍슬쩍 만지는 것이 아닌가.
중년인은 심호흡을 했다.
‘클클, 고기나 과일을 고르는 것도 아닌데 만져본다고 알 리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