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59화 (59/305)

39, 무적무한(無籍無限). (2)

*

곡부남가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가주와 소가주의 인망으로 인해 가족처럼 화기애애하던 장원이 아니던가.

한데 며칠 자리를 비운 사이 다른 곳이 된 듯했다.

분위기는 대지를 뚫을 만큼 가라앉았고, 식솔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졌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남천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처로 향했다.

그는 가주전에서 마주한 소문주 남천홍을 보며 표정을 굳혔다. 남천홍은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한 듯 눈 밑이 까맣다. 게다가 밥이라도 굶었는지 심하게 핼쑥했다. 예전에는 어느 방향으로나 구를 수 있었다면 지금은 옆으로만 구를 수 있을 정도의 체구였다.

‘밥 먹다가 체했나?’

남천홍은 남천휘를 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너!”

갑작스런 삿대질에 눈을 끔뻑였다.

남천휘는 황당했다.

어째서 형은 마지막까지 아껴놓은 과일을 빼앗긴 사람처럼 화를 낸단 말인가.

남천홍은 육중한 체구와 어울리지 않게 빠르게 다가왔다. 그리고 몸을 부르르 떨며 손을 올렸다. 남천휘는 부채를 방불케 하는 손바닥을 보며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내가 안 먹었어.”

남천홍은 손을 멈췄다.

‘믿어주는 건가?’

남천휘의 안도와 달리 남천홍은 인상을 썼다.

따귀라도 때릴 것처럼 치솟았던 두툼한 손이 남천휘의 어깨에 안착했다.

곧이어 남천홍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행이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남천휘는 작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뭐가 다행인데? 먹을 게 무사한 거야?’

그도 그럴 것이 지난 며칠간의 행적을 남천홍이 알고 있을 리 만무했다.

그저 외출을 했다가 돌아왔을 뿐이다.

물론 잠깐의 외출이 며칠로 늘어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건 조금 과한 반응이 아닐까 싶다.

마치 십 년 간 전장을 떠돌다 돌아온 사람을 대하는 듯하지 않은가.

남천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형.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남천홍은 대답 대신 어깨를 들썩였다.

호흡을 고르는 듯하더니 이내 막 총관을 돌아봤다.

막 총관은 이러한 상황에도 호리병을 기울이며 술을 홀짝였다. 얼굴이 불콰한 것으로 보아 남천휘의 부재를 핑계로 밤낮없이 술을 마신 듯 했다.

“노야.”

“응?”

“이제 나쁜 형 노릇은 그만 할 랍니다.”

막 총관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나 이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소가주의 뜻대로 하시게. 무림맹주도 저 싫으면 그만이지 않던가. 대신 잔치는 어떤가?”

남천휘는 눈을 끔뻑였다.

나쁜 형은 또 무슨 소리래?

그나저나 대화의 마무리가 왜 잔치냐?

막 총관은 남천휘가 반응할 사이도 없이 바깥의 시동을 불렀다.

“오늘 술과 음식을 풀어라. 삼공자가 돌아왔으니 겸사겸사 잔치나 하자꾸나. 그리고 여기는 알지?”

시동은 이미 익숙한 듯 해맑게 웃으며 대꾸했다.

“술 많이! 고기는 더 많이! 소채는 조금만!”

막 총관은 시동을 껴안으며 호탕하게 웃었다.

“아이고, 똘똘한 녀석.”

“아우! 술 냄새 나요.”

시동은 몇 단계 위의 상관을 타박하며 종종걸음으로 처소를 떠났다.

남천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저만 빼고 뭐가 막 돌아가네요? 여기 곡부남가 맞아요?”

막 총관은 술병의 주둥이를 할짝거리며 말했다.

“클클! 자세한 건 세상에서 가장 애틋한 자네 형에게 듣게.”

갑자기 형제 대면식이라고?

남천휘는 슬그머니 남천홍을 바라봤다.

한데 남천홍은 큰 짐을 내려놓은 사람처럼 홀가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그래봤자 여전히 비대한 체구로 인해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앉아봐라. 할 말이 있다.”

*

하고 싶은 말은 참 많았다.

한데 막상 속안의 말을 전하려니 쉬이 입이 떨어지지 않더라.

남천홍은 최대한 감정을 억누른 채 자신의 속내를 전했다. 남천휘가 십 년 전 납치당했을 때의 사정이 포문이었다.

“그 때 형이 심부름을 시켰던가?”

“그랬을 거야. 너 혼자 돌아다녔으니 납치를 당했지. 나랑 천익이가 함께 있었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남천휘는 쓴웃음을 흘렸다.

형의 애틋한 감정이 가슴을 쿡쿡 찌른다.

하지만 그는 그 당시의 기억이 희미했다.

사실 납치당했다는 사실조차 나중에 들었을 정도였다. 하나 그로 인해 남천홍이 얼마나 괴로워했는지는 쉬이 공감했다. 부자처럼 보이기 위해 일부러 살을 찌우고, 온갖 이권을 자신에게 집중시켜 혹시나 모를 적도의 목표를 자처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십 년을 보냈으니 속은 썩어문드러졌으리라.

“그래서 그 동안 그렇게 쌀쌀 맞았던 거야?”

“내게 있어서 너는 아직도 열 살의 어린 동생이었어. 지켜주지 못했기에 앞으로 지켜줘야 할 동생. 그렇게라도 해야 내 마음이 편했거든. 한데 너는 어느새 어른이 됐더라. 내 생각보다 큰 어른. 그리고 나보다 더 큰 어른이 됐어.”

“딱히 더 큰 것 같지는 않은데.”

남천휘가 짐짓 농을 했으나, 남천홍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 이런 재미없는 농담도 나누면서 함께 어울릴 걸 그랬구나.”

이쯤 되면 형과 마주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남천휘는 남천홍을 바라봤다.

고맙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형의 생각은 어쩌면 관제묘에서 한 번 마주쳤을 뿐인 양민들을 구한 자신과 다르지 않았다. 남천홍 역시 남천휘처럼 자신의 불편한 마음과 정면으로 마주한 것이다.

그 결과 자신의 몸을 망가트리고, 삶을 포기했다.

하나 남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저 동생과 더 빨리 속내를 터놓고 지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란다.

남천휘는 적을 상대하고, 양민을 구했기에 떳떳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고마워. 백수나 다름없는 동생을 그렇게 챙겨줬다니 전혀 몰랐네. 하지만 아직 형 생각만큼 자라지 않았을 수도 있어.”

남천홍은 그제야 조금은 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말이야. 이제는 부족한 건 함께 채우고, 넘치는 건 나눠가고 싶다. 그게 진짜 형제가 해야 할 일이잖아.”

부모자식 사이라고, 형제자매 사이라고.

눈빛만으로 통할 수는 없었던 게다.

소중할수록 말을 하고, 행동으로 보여줬어야 했다.

“한 잔 할까?”

남처휘는 남천홍이 술잔을 쥐자, 함께 미간까지 들어올렸다.

“술은?”

“즉묵노주지.”

형제는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탄성을 내뱉었다.

“좋다!”

서로를 위해 애써왔던 답답하고, 서글펐던 기억이 추억으로 변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애초에 서로 좋아서 했던 일이 아니던가.

하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영약을 형이 줬다고?”

남천휘는 북풍대주 조상이 비운고에서 꺼내왔던 약재를 떠올리며 물었다.

남천홍은 고개를 끄덕였고, 막 총관은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딴청을 피웠다.

저간의 사정이 밝혀지자, 남천휘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자신과 남천홍 사이를 막 총관이 조율했던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나도 다 알고 있었어.”

남천홍은 막 총관의 빈 잔에 술을 따랐다.

남천휘는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그럼 이 어정쩡한 삼각관계에서 노야의 역할은 뭐였습니까?”

막 총관은 조금의 미안한 기색도 없이 말을 이었다.

“내 꿈이 뭔지 아느냐?”

“곡부남가가 영원토록 떵떵 거리고, 더불어 노야는 안정적인 말년을 보내는 거라면서요.”

“노부는 그걸 위해 노력했단다.”

남천휘는 막 총관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탄성을 흘렸다.

막 총관은 지난 세월 남천홍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로 인해 곡부남가는 나날이 성장했고, 금력만은 주변에서 따를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때를 보아 가주가 소가주에게 자리를 이양하면 그가 원했던 미래가 열린다고 여겼단다.

한데 생각지도 못했던 삼공자가 재능을 만개했다는 게다.

‘물론 그 삼공자는 나고.’

재이에 대해서 알 리 없는 막 총관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유심히 지켜봤단다. 하나 남천휘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여 한 사람 몫을 할 만큼 충분한 어른이 되었다.

그 쯤 되니 다른 욕심이 생기더란다.

남천홍의 재능이 아까워진 것이다.

그는 동생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십 년 간 두 가지 일에 매진했다.

먹는 것과 공부하는 것.

그 결과 남천홍의 지식은 비대한 육체에 비례할 만큼 깊어졌다. 작은 상단의 후계자가 아니라 큰물에 나가서 놀아도 될 만큼 말이다.

막 총관은 자신의 인맥을 활용하여 무림맹 산동 지부와 총단에 추천장을 넣었다.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자! 이제 큰 아들은 세상에 나가서 천하를 경영하고, 셋째 아들은 가문을 융성하게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조합이 완성된 것이다.

막 총관의 머릿속에서만.

남천휘는 헛웃음을 지었다.

‘인생을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신데?’

막 총관은 술에 취한 듯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늙으면 욕심이 사라진다던데 나는 더 커지더군. 곡부남가를 산동제일로 만들고 싶은 욕심. 신공부와 더불어 곡부의 상징으로 만들고 싶었다.”

남천홍은 막 총관을 다독였다.

“본가를 위해 애쓰시는 마음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저희에게는 할아버지나 마찬가지인걸요.”

막 총관은 쓴웃음을 지었다.

마치 장강의 앞 물결이 뒷물결에 밀려나듯 만사에 초탈한 듯한 표정이다.

“나야 말로 너희들을 어리게 본 거였어. 내가 보살펴주고, 결정해줘야 한다고 여겼지. 내 주제도 모르고 이리 뛰고, 저리 뛴 것을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구나. 사죄의 의미로 석 잔의 술을 마시마!”

막 총관은 세 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남천휘는 경극 배우 뺨치게 진정성을 내비치는 막 총관을 향해 마음속으로나마 타박했다.

‘그냥 마시고 싶었던 것뿐이잖아!’

하나 오늘은 뭐든 용서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십 년 만에 형과 대작하는 날이 아니던가.

형이 웃는다.

에라이! 나도 웃자.

형이 마신다.

나도 허리띠 풀고 마셔야겠다.

“그럼 막내인 제가 노인 공경의 의미로 삼십 잔을 마셔 보겠습니다!”

*

하늘이 노랗다는 건 이런 기분이로구나.

남천휘는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조금이라도 손놀림이 느려지는 순간 토할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니 벌써 몇 번째 토했더라? 고수가 되면 내력을 운용하는 것만으로도 주정을 외부로 배출할 수 있단다.

정말 저렙인 것이 너무도 억울한 하루였다.

“아! 죽을 것 같아.”

엄마손은 약손이라지만,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국이다.

“공자님! 이걸 드세요. 저희 집의 비법이랍니다!”

소혜가 정체불명의 탕약을 내민다.

가볍게 무시했다.

탕약의 색만 봐도 가문의 비전은 개뿔!

그보다 고아라며?

부모님의 얼굴도 기억 못하면서 가문의 비전을 기억하는 패륜녀였단 말이더냐.

“숙취 해소에 제격이라고요!”

하긴 어린 시절 어머니가 간식으로 내어준 육포의 향을 따라 고향을 찾는 사내의 이야기도 있지 않았던가. 어쩌면 소혜도 탕약의 제조법을 통해 부모를 만날 수도 있을 터였다.

“줘봐.”

남천휘는 소혜의 간절한 눈빛에 못 이기는 척 탕약을 받아들었다.

탕약의 맛은 색에 비해 나쁘지 않았다.

좋은 것만 모아서 아무 생각 없이 끓인 맛.

재료만 있으면 아랫마을 삼식이도 제조하는 것이 가능할 듯했다.

당연하게도 숙취는 그대로였다.

“수련하러 가시게요?”

“응.”

남천휘는 근심을 숨기지 않는 소혜를 뒤로 한 채 연무장으로 향했다.

그러던 중 북풍대주 조상과 마주쳤다.

그는 수련을 하러 간다는 말에 엄지를 추켜세웠다.

역시 수련광 다운 손짓이다.

남천휘는 조상이 건네는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상은 환하게 웃으며 북풍대의 처소로 향했다.

‘뭐라고 했기에 저렇게 좋아하는 거지?’

남천휘는 미간을 좁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제대로 들어들 걸 그랬다는 후회가 일었다. 하나 인상을 쓸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리니 더 이상 생각하기를 그만뒀다.

‘보증을 서겠다고 했을 리는 없으니······.’

어찌됐든 사람의 습성은 참으로 무섭다.

수백 명의 적을 상대로 죽다 살아났고, 어제는 술독에 빠져 죽다 살아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이 드는 순간 저절로 연무장이 생각났다.

“아우! 속 쓰려.”

남천휘는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직도를 쥔 채 말을 이었다.

“박자 줘봐. 소리는 은은하게.”

자세를 취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비천무상도와 오행군림보의 적합도는 84%였다.

중양칠도보다 한참 아래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비천무상도와 오행군림보의 정도의 절예라면 84% 자체가 기적의 수치일 터였다. 아마 구파의 수장이라 불리는 화산파의 검법과 보법의 적합도도 이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나저나 오늘은 숙련도 좀 올려야 하는데.’

큰일을 겪고 나니 성장에 대한 갈증이 대단했다.

남천휘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나씩 정리하다가 불현 듯 눈을 끔뻑였다.

사위가 고즈넉했다.

개인 수련장이니 조용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창해일성소가 울리고, 바닥에는 표식이 나타나야 마땅했다.

남천휘는 뒤늦게 재이가 반응하지 않음을 눈치 채고 시큰둥한 어조로 물었다.

“너 뭐하냐? 왜 안 줘.”

◎ 페널티로 인해 무무혁명이 비활성화됐습니다.

이건 또 무슨 개똥같은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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