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55화 (55/305)

37, '제'가 함께 하겠습니다.

37, 제가 함께 하겠습니다.

“이거 진심이냐?”

재이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다만 시간만 하염없이 흐를 뿐이다.

남천휘는 발밑의 표식을 내려다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남동쪽을 가리키는 표식은 중년인이 알려준 방향과 정반대였다.

도망쳐야 하는 상황이로구나.

재이가 거짓말을 할 리 없으니 작금의 상황이 위태로운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하나 남천휘는 쉬이 발을 떼지 못했다.

그는 심호흡을 한 후 질문의 방향을 바꿨다.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 남동쪽 삼십 리 지점에 강호방파가 존재합니다.

현청과 연계하여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남천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허공을 응시했다.

마치 그곳에 재이가 있는 것처럼.

“이렇게 친절한 설명을 곁들이는 걸 보니 정말 위험한 일이구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하나 돌이켜보면 재이의 모든 행적이 그러했다.

남천휘의 성장을 위해 최소한의 정보를 제공하고, 꼭 필요한 순간에만 추가 정보를 밝혔다.

마치 가르치듯 정성껏 말이다.

“후우.”

남천휘는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여덟 명을 동시에 상대한 피로도로 인해 능력 수치는 여전히 바닥이다. 그렇기에 직도를 쥐고 있는 감각이 평소 같지 않았다.

“무섭네.”

하나 발길은 이미 북서쪽을 향했다.

◎ ‘시스템’은 퀘스트 수행을 권고합니다.

남천휘는 몸을 돌리는 대신 적선단과 벽선단을 사용했다.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단전이 묵직해지며 한결 호흡이 편해졌다.

◎ 위험 수준이 ‘주의’로 격상됐습니다.

◎ 대상자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는 확률이 증가합니다.

어째서일까?

재이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린다.

걱정해줘서 고맙다.

그런데 그렇게는 못할 것 같아.

그 순간 날카로운 신호음이 머릿속에 울렸다.

띠이이이이-

◎ 대상자의 정보가 적에게 전해졌습니다.

◎ 위기 수준이 ‘경계’로 격상됐습니다.

◎ 위험 지역에서 벗어나기를 권고합니다.

살류방의 살수가 적의 은신처에 도착한 듯했다.

이제 떼로 몰려오려나.

그러면 더 명확해지겠지.

남천휘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 ‘시스템’은 장시간 대상자의 행동 패턴을 분석한 후 최적한 된 승급 체계를 지원합니다. 현재 대상자의 행동은 감정에 치우친 행위로 차후 불이익을 수반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즉시 퇴각을 권고합니다.

자칫 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소리를 길게도 하는 구나. 평소와 다른 건 나뿐 아니라 재이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감정적이라고?

그래, 지금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건 아니지.

그런데 말이다.

“내 집중력이 어느 정도나 될까?”

의미 없는 숫자와 확률이 나열됐다.

다시 물었다.

“잡생각을 하는 수준은?”

◎ 또래 성인 남성에 비해 약 70% 높습니다.

남천휘는 실소를 흘렸다.

예상보다 높지 않은가.

아무래도 재이로 인해 혼잣말을 하고, 재이로 인해 답답함을 느끼다보니 잡생각이 더욱 늘은 듯했다.

“그래, 나는 그런 놈이야. 남보다 자질이 좋은 것도 아니고, 정의감이 투철하지도 않아. 그렇다고 노력하거나, 착한 것도 아니잖아. 대신 잡념이 많지. 솔직히 하늘이 나를 선택한 이유도 잘 모르겠다. 잡념이 많아서인가?”

다시 한 번 실소가 흘러나왔다.

“어쨌든 나는 그런 놈이야.”

남천휘가 내딛는 걸음에 속도가 더해졌다.

지금 그가 하는 말은 재이에게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처음으로 전하는 진심이었다.

“잡념이 너무 많아서 지금도 관제묘에서 봤던 녀석들의 눈빛이 기억나.”

육포 한 조각에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표정이 선연했다. 배꼽인사를 하는 모습은 어찌나 귀여웠던가. 저도 배고플 텐데 아버지에게 먼저 양보하려던 의젓한 모습은 기특하기만 했다.

◎ 인간이 흔히 보이는 평범한 반응입니다.

남천휘는 고개를 내저었다.

“맞아. 그런 광경을 처음 본 건 아니지. 평소였다면 며칠 지나지 않아 잊어버렸을 거야. 그냥 관제묘에서 화전민들을 만났던 희미한 기억만 남겠지.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하지만 내가 그냥 이곳을 떠난다면 그렇게 살 수 없어. 그들은 모두 죽을 테고, 죽은 사람의 기억은 쉬이 떨쳐낼 수 없으니까.”

◎ 대상자의 의중을 파악하기 힘듭니다.

남천휘는 마치 자신의 옆에 재이가 있는 것처럼 말을 건넸다.

“지금 그냥 도망치면 나는 평생 그 눈빛을 잊지 못할 거야. 나는 그게 싫어.”

◎ 협객행과 영웅담은 고난과 시련을 바탕으로…….

쾅!

남천휘는 대지를 굴렀다.

진흙과 눈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아니야!”

그는 불과 백 일 전만 해도 다루를 상속받은 후 적당히 놀고먹는 걸 꿈으로 여겼던 철부지가 아니었던가. 이제 와서 갑자기 협객이나 영웅 같은 거창한 흉내를 낼 생각은 없다.

쪽 팔려서라도 그렇게는 못 산다.

남천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누가 보면 내가 죽으러 가는 줄 알겠다.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노력을 하고 싶을 뿐이야. 그렇게라도 마음의 짐을 덜고 싶어. 더럽게 이기적인 생각이지 않냐? 그런데 뭐 어쩌겠어? 나는 원래 그런 놈인 걸. 그러니…….”

그 때 산등성이를 타고 십여 명의 낭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천휘는 두 자루의 직도를 나눠 쥔 채 읊조렸다.

“퀘스트는 거절한다.”

◎ 《필사의 도주》 퀘스트가 삭제됐습니다.

남천휘는 재이의 알림을 듣는 순간 마치 발목에 차고 있던 족쇄가 사라진 것처럼 후련함을 느꼈다.

돌이켜 보면 재이를 만난 이후 자신의 의지로 처음으로 행동하는 순간이 아니던가.

파팟!

남천휘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적진을 향해 돌격했다.

*

남천휘는 십여 명의 적을 마주하는 순간 확신했다.

“저 시뻘건 거 봐라!”

저들의 머리 위에 존재하는 레벨은 피로 적은 것처럼 새빨갛다. 악업(惡業) 수치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마치 낙인처럼 핏빛으로 번들거린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것만으로도 저들이 밟아온 삶의 궤적이 한순간에 느껴졌다.

그리고 저들에게 억류되어 있는 양민들의 말로 또한 눈에 훤했다.

‘결코 살려서 돌려보낼 놈들이 아니야.’

남천휘가 몽산에서 마주한 적들 중 30레벨을 넘긴 자들만 네 명이다. 게다가 눈앞에 나타난 열 명의 낭인 중에서 여섯 명이 30레벨을 넘겼다.

벌써 열 명이다.

놈들이 무엇을 도모하든 작은 일은 아닐 것이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재이에게 호언장담한 대로 지금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때였다.

쇄애애애액!

직도가 가장 먼저 접근한 낭인의 머리를 향했다.

놈은 들은 바가 있었던 듯 직접 상대하는 대신 빠른 보법을 펼치며 거리를 벌렸다. 대신 덩치가 산만한 자가 철추를 휘두르며 접근했다.

쩡!

남천휘는 뒷걸음질 치며 미간을 찡그렸다.

상대는 절정의 무위와 신력을 겸비했다. 한순간 직도를 통해 전해지는 반발력 때문에 호흡이 흐트러졌을 정도였다.

‘내구도가 한 방에 3이 떨어지네.’

이런 곳에서 저들과 엉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남천휘는 나직이 읊조렸다.

‘오감 증폭제, 시각, 청각!’

그 순간 눈과 귀를 통한 감각이 확장됐다.

◎ 신체에 과부하가 걸립니다.

- 아이템 사용에 유의하세요.

남천휘는 재이의 경고를 뒤로 한 채 거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놈은 보법을 익히진 못한 듯 피하지 않고, 맞받아치려 했다.

부우우우웅!

시각과 청각의 발달로 인해 놈의 투로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지금!’

남천휘는 머리를 노리며 꽂혀드는 철추를 피해 상체를 숙였다. 철추가 머리 위로 스쳐갔다. 그 순간 표식이 후방과 좌측, 그리고 전방을 가리켰다.

파파팟!

몸 전체를 돌렸다가 빠르게 반 바퀴 회전한 셈이다.

횡으로 휘둘러진 직도에 내력과 원심력이 더해졌다.

촤악!

거인의 배를 갈랐다.

‘얕아!’

하나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바람개비처럼 두 자루의 직도를 휘돌린 참이다. 그렇기에 두 번째 직도는 도흔을 통해 더욱더 깊이 베어버렸다.

촤아아악!

거인이 철추를 내던지고 아랫배를 감쌌다.

“끄아아아아아!”

그 순간 주저앉은 거인의 가슴팍에서 표식이 번뜩였다. 밟고 뛰는 순간 그 밑으로 검과 암기가 스쳐지나갔다.

쉬쉬쉬쉬쉬쉭!

남천휘는 낭인들을 상대하며 확신했다.

저들은 검기를 발산하고, 도기를 흩뿌린다.

하나 능력 수치는 남천휘보다 아래였다.

쾌검을 쓰는 낭인의 초식은 예상보다 느렸고, 대부를 내리치는 낭인의 힘은 받아넘기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내공은 내가 훨씬 윗줄이다!’

남천휘가 열 명을 동시에 상대할 때 저들은 차륜전을 펼쳤다. 그렇다고 쉼 없이 몰아치는 것이 아니라 두세 번의 공격 이후 숨을 고르는 것이 아닌가.

내력의 소모를 줄이기 위한 방편이다.

‘내가 더 강해!’

두 자루의 직도가 더욱 거세게 공간을 장악했다.

남추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란 변화와 속도였다.

하나 저들을 상대하기에는 충분했다.

채챙!

직도는 상대의 검을 절반이나 파고들었다.

남천휘가 직도를 비틀자, 적의 검은 파열음과 함께 깨졌다.

땅!

그 사이를 비집고 직도를 올려치는 순간 또 한 명의 적이 절명했다.

숫자가 줄어들수록 쓰러지는 속도도 빨랐다.

“이 새끼가!”

마지막으로 남은 놈은 비공회 소속의 낭인이다.

장법을 쓰는 것과 검붉은 색으로 번들거리는 손톱으로 신분을 유추했다.

녹선단을 사용하는 것도 아까웠기에.

‘후우.’

남천휘는 강하게 직도를 내리그었다.

그 순간 반대편 손은 직도를 역으로 쥐었고, 그것은 그대로 낭인의 목을 그어버렸다.

촤아아악!

어찌된 일인지 조금 전 적을 상대했을 때보다 몸이 가벼웠다.

남천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낭인들의 품을 뒤졌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에 최대한 소지품을 챙겨놓을 요량이었다.

하나 무기를 제외하면 건진 것이 전무했다.

◎ 오감증폭제의 중복 사용으로 인해 체력 회복이 시급합니다.

남천휘는 고개를 내저었다.

놈들이 화전민을 죽일 때 중얼거리지 않았던가.

관계 된 자들을 모조리 죽이겠다고.

‘지금은 가야 해.’

◎ ‘시스템’의 권고 횟수가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 최악의 경우 시스템이 재시작합니다.

- 그 순간 대상자의 모든 정보가 삭제됩니다.

이제는 경고가 아니라 숫제 협박이로구나.

하지만 최선을 다한 후에야 도망치더라도 회한이 남지 않으리라.

남천휘의 눈빛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파팟!

*

놈들의 은신처를 찾는 손쉬웠다.

아니, 애초에 남천휘가 들어오기를 기다린 듯했다.

“아.”

남천휘는 분지를 내려다보며 눈을 부릅떴다.

분지의 입구에는 수십 명의 화전민들이 묶여 있었다. 그 중에는 아이와 여인들까지 결박된 채 쓰러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때 낭인으로 보이는 자가 한 명씩 끌어낸 후 검을 내질렀다.

푹!

마치 나무를 찌르듯 무미건조한 표정이다.

중년인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옆으로 허물어졌다.

“다음.”

초로의 노인이 끌려나왔다.

푹! 푹! 푹! 푹!

그렇게 무의미한 살육이 이어졌다.

남천휘는 그 모습을 한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야! 이 미친 새끼들아!”

그 순간 좌우에서 비수를 쥔 두 명의 살수가 튀어나왔다. 살류방의 살수가 입구에서 매복하고 있었던 게다.

쉬이이이익!

각기 머리와 옆구리를 노리는 살초.

하지만 오감증폭제는 여전히 효력을 발휘했다.

남천휘가 다리를 꼬며 주저앉은 순간 두 자루의 직도가 각기 살수들의 허리뼈를 끊었다.

촤아아아악!

쓰러지는 두 명의 살수 사이로 그림자가 번뜩였다.

남천휘는 꼬았던 다리를 푸는 순간 어느새 분지 아래로 내달리는 중이다.

“멈춰라!”

◎ 대상자의 분노 수치가 90을 돌파했습니다.

노기가 가득 담긴 일갈에 적도들은 한순간 멈칫했다. 남천휘는 재빨리 적들의 사이로 파고들었다. 두엇을 쓰러트렸으나, 눈에는 화전민들만 보였다.

“이 새끼 뭐야?”

초면에 반말하는 건 봐준다.

하나 절정의 무인이라는 작자가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그것도 아버지 나이인 노인을 죽이는 건 그냥보고 넘길 수 없었다.

따당!

남천휘는 낭인의 검을 쳐낸 후 아랫배를 그어버렸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화전민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 사이에도 적은 화전민의 목을 벴다.

이번에는 기억에 선명하게 남은 아이였다.

육포를 받고 공손하게 인사를 하던 아이.

그 아이의 투명한 눈망울을 향해 낭인의 박도가 내리꽂혔다.

“안 돼!”

하나 낭인은 거침이 없다.

그 순간 묶여있던 중년인이 아이를 밀쳤다. 화전민의 수장이라던 중년인이다.

“크흑!”

낭인의 박도가 중년인의 등을 스쳤다.

남천휘는 눈에 불을 켠 채 달려들었다.

채채채채채챙!

서너 명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하나 체력 소모를 개의치 않고 모조리 죽였다.

◎ 대상자의 분노 수치가 95를 돌파했습니다.

시끄러워!

그렇게 알려주지 않아도 충분히 열 받았어.

남천휘는 화전민들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낭인들에게서 수거한 비수를 꺼내 던졌다.

“풀어주세요.”

다행히 노역을 시키기 위해 밥을 먹였나 보다.

화전민들은 겁먹은 상태에서도 서로의 포박을 풀어줬다.

한데 그 순간 화복을 입은 두 명의 노인이 나타났다. 오늘 마주한 적 중 처음으로 레벨 대신 물음표가 등장했다.

그러나 레벨이 아니더라도 느껴졌다.

저들은 강하다.

특히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질 만큼 음습한 기운을 풍겼다.

“클클! 내가 뭐랬어? 미끼를 뿌리면 달려든다니까.”

“쯧, 역시 애송이는 애송이였군. 흥미가 식었어. 처리해라!”

노인이 손을 내젓는 순간 사방에서 낭인들이 나타났다. 일견하기에도 백여 명은 족히 될 듯했다. 분지에 있는 자들을 모두 포함한다면 이백 명도 넘으리라.

“클클, 함정에 기어들어온 소감이 어떠신가?”

남천휘는 노인의 조롱에 입꼬리를 올렸다.

“알고 온 거다. 멍청하기는. 인질로 잡았으면 정말 곤란할 뻔했어. 나는 멍청한 인간을 싫어하니까 최대한 비참하게 죽여줄게.”

능글맞은 한 마디와 달리 눈빛은 더없이 서늘했다.

그 증거로 분노 수치가 증가한다는 재이의 알림이 연이었다.

“허풍을 떨려면 좀 더 느긋해야지. 됐다. 그냥 죽여라. 오늘 밤은 술이나 한 잔 하자꾸나!”

노인은 축제를 알리듯 신명난 목소리로 외쳤다

그 순간 십여 명의 무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달려들었다.

“죽여!”

그들의 살수는 남천휘와 화전민을 가리지 않았다.

그저 눈앞을 가로막는 것이 있다면 모조리 죽일 기세였다.

채채채채채채채챙!

남천휘는 오행군림보를 펼치며 적을 상대했다.

두 자루의 직도가 쉼 없이 공간을 장악했지만, 한 손으로 열 손을 막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크헉!”

낭인이 죽고, 화전민도 죽었다.

‘젠장! 방법은?’

◎ 단독 도주로가 확보됐습니다.

하나 신체가 손상될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 추정 손상도는 78%입니다.

남천휘는 직도를 내리치며 낭인을 밀어낸 후 씹어뱉듯이 읊조렸다.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는 길은 없어?’

◎ 대상자의 힘으로 가능한 수단이 전무합니다.

◎ 신체 손상도 47%의 새로운 도주로가 탐색 됐습니다. 이것은 최후통첩입니다. ‘시스템’은 더 이상 정보 제공에 협조하지 않습니다.

“으아아아!”

남천휘는 내공을 최대한 불어넣은 채 직도를 흩뿌렸다. 그 순간 두 자루의 직도가 깨지며 수백 개의 파편이 비산했다. 그것만으로도 예닐곱 명이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남천휘는 빈손으로 피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천상계는 뭐든 순리대로 이뤄지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여기는 그렇지 않아. 사람이 그래서는 안 되는 거야. 저런 새끼들을 두고 도망쳐서 무슨 특급 강호인이 되겠어? 그건 그냥 꼭두각시나 마찬가지잖아!”

어느새 음식을 차려놓고 술잔을 기울이던 노인이 비웃음을 담아 말했다.

“클클, 몰랐더냐? 네 놈들은 모두 꼭두각시다. 노부와 같은 자들이 흔들 때마다 이리저리 부딪치는 그런 하찮은 존재라고 할 수 있지.”

낭인들은 저들끼리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남천휘는 이를 갈며 외쳤다.

“닥쳐! 이 노괴야. 내가 특급 강호인은 못 되도, 너는 죽인다! 씨발! 너 하나 제대로 죽이고 지옥 가마!”

한데 광폭하던 기세가 잠시 주춤했다.

머릿속에서 울려 퍼진 기음이 원인이었다.

《삐이이이이이이.》

《대상자의 분노 수치가 100을 넘겼습니다.》

《대상자의 신체 능력이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적의 숫자가 백 명을 돌파했습니다.》

《대상자의 강렬한 염원과 순수한 분노가 새로운 경로를 개척했습니다.》

《보조 설정에 대한 접속 권한을 부여합니다.》

《한시적으로 히든 모드 ‘무쌍’이 해금됩니다.》

남천휘는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적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 사이 무쌍의 부가기능이 동시다발적으로 발현됐다.

◎대자연의 기운이 대상자에게 스며듭니다.

- 현재 적의 총원은 257명입니다.

- 능력 수치가 추가로 재조정됩니다.

- 전체 체력 대비 514% 증가.

- 전체 근력 대비 514% 증가.

- 전체 민첩 대비 514% 증가.

- 전체 지혜 대비 514% 증가.

- 전체 내공 대비 514% 증가.

◎일시적으로 특기에 걸린 제약이 해제됩니다.

※ 무쌍 발동 시간은 15분입니다.

해체 시점부터 모든 수치가 바닥까치 하락하며 탈진 상태에 접어듭니다. 지속적인 운기조식이나 영약을 흡수하지 못하는 경우 사망합니다.

단서 조항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순간 모공을 통해 스며든 기운이 단전에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남은 기운은 사지백해로 흩어지며 세맥을 채웠다.

그 뿐이 아니다.

띵- 띵- 띵- 띵- 띵- 띵- 띵-

지척에 이른 적들의 머리 위에는 생명력을 의미하는 듯한 붉은 막대까지 생겼다.

준비가 끝났음을 알리는 기계적인 알림이 들려왔다.

《지금부터 ‘무쌍난무’를 시작하세요.》

남천휘는 지체 없이 뛰쳐나가려 했다.

한데 예기치 못한 재이의 한 마디가 들려왔다.

◎ 당신의 길, ‘제’가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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