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확장판 무무혁명.
31, 확장판 무무혁명.
- 초심을 빙자한 가혹행위, 1일 차.
조상은 아무래도 싸우고 싶어서 끼어든 것이 분명했다. 두 명을 상대로도 힘든 싸움은 세 명이 되는 순간 승패의 의미가 없어졌다.
남천휘는 생전 처음 탈골을 경험했다.
그리고 레벨은 오르지 않았다.
- 초심을 빙자한 가혹행위, 4일 차.
신년원단이 이십일 남짓으로 다가왔다.
웅도 녀석이 서찰을 보냈다. 연말에 숙부가 운영하는 다관에서 열두 종류의 차를 골고루 맛보겠단다. 그 날이 기다려진다며 한껏 자랑을 늘어놓았다.
‘친구야, 나는 열두 개의 멍이 생겼단다.’
물론 생채기에 불과했지만, 검상(劍傷)의 숫자는 멍 자국의 세 배 이상이었다.
그래도 두 사람만 상대할 때의 동선(動線)을 새로이 정립했다. 조금씩이나마 두 사람을 한 눈에 담는 것이 가능해졌다.
- 초심을 빙자한 가혹행위, 7일차.
양 조장의 칼이 느리다.
아니, 내가 너무 빠른 걸까?
어쨌든 너무 빨리 반응했더니 오히려 검에 찔렸다.
하마터면 팔뚝에 구멍이 날 뻔했다. 그래도 보법의 숙련도가 상승했기에 애써 괜찮은 척 억지웃음을 지었다.
이제 레벨은 23이다.
한데 어째서 홍춘이와 양방언의 레벨이 더 빨리 오르는 걸까.
죽 쒀서 개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 초심을 빙자한 가혹행위, 10일차.
양방언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둔탁한 소리가 난 것으로 보아 엉덩잇살이 터진 듯했다.
삼일 전 검상에 대한 복수라고 단정 짓지 말자.
그저 기회가 보였을 때 전력을 다했을 뿐이다.
양방언은 웃으며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누가 봐도 억지웃음이었다.
날씨가 좋았기 때문일까. 기분이 좋았다.
소혜가 잠을 설쳤는지 아침부터 비가 오더라.
아! 드디어 홍춘이의 레벨을 따라잡았다.
이제 내가 곡부남가의 삼인자다!
- 초심을 빙자한 가혹행위, 13일차.
드디어 홍춘이와 양방언을 상대로 승리했다.
승패가 결정되는 순간 두 사람은 연무장 위에 널브러진 채 헐떡였다.
전력을 다했다는 증거이리라.
그래서 더 기뻤다.
하나 기다렸다는 듯 조상이 합류했다.
마치 생사대적을 대하듯 몰아치는 검세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는 그 사이 38레벨을 달성했다. 내 성장이 무공광의 열정을 자극했나 보다.
빌어먹을, 열정.
덕분에 피를 철철 흘리며 돌아와야 했다.
그래도 중양칠도의 숙련도는 97, 오행군림보의 숙련도는 98에 이르렀다.
실전을 방불케 하는 비무.
그 효과는 확실했다.
- 초심을 빙자한 가혹행위, 16일차.
새해가 삼일 앞으로 다가왔다.
해가 바뀌면 중평산장과의 계약이 다시 추진될 것이고, 학관으로의 입관도 준비해야 했다.
그 전에 목표를 이루고 싶었다.
‘이제 삼 레벨 남았다.’
*
“히잉.”
소혜는 울상을 한 채 남천휘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손길이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살점이 뜯기는 것처럼 욱신거렸다.
“아악! 야, 살살해.”
“상처가 너무 많은 걸요. 어머! 이건 흉터가 남겠어요. 어쩜 좋아. 매일 같이 상처가 늘어나니까 이제 어디에 금창약을 발라야 할지도 헷갈려요.”
남천휘는 인상을 쓰면서 말을 이었다.
“안전한 수련은 도움이 안 돼.”
하나 소혜는 납득한 표정이 아니다.
속내를 드러내듯 금창약을 듬뿍 펴 바르며 투덜거리기 일쑤였다.
‘아껴 써라. 이것아!’
유명한 의방에서 한 상자에 열 냥씩 주고 구입한 금창약이 아니던가.
하나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효과는 확실했다.
피륙의 상처는 빠르게 아물었고, 욱신거림 또한 잦아들었다.
남천휘는 상태창을 펼쳤다.
《남천휘(南天輝)》
- 소속 : 대화동(大化洞)
- 호칭 : 수련충(修練蟲).
- 별호 : 호도(護刀).
- 등급 : 27
- VIP : 1등급(잔여 점수 : 246)
- 성소 포인트 : 1500
- 냉기 저항 : 85
근력(筋力) : 190. 민첩(敏捷) : 185
체력(體力) : 185. 지혜(知慧) : 155
내공(內功) : 180.
- 미 배분 능력치(+0)
이십 일 남짓한 시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일단 새로운 호칭이 생겼다.
단순한 벌레처럼 주구장창 수련만 하다 보니 희한한 호칭이 생성됐다.
- 수련을 할 때 집중력이 5% 상승합니다.
호칭명은 별로였지만, 효력은 끝내줬다.
또한 매일 같이 수련을 하던 중 소소한 퀘스트가 십여 개 이상 생성됐다. 그로 인해 VIP 포인트와 추가 스텟을 얻을 수 있었다.
남천휘는 다섯 개의 능력 수치를 헤아리다가 입꼬리를 올렸다.
‘조만간 천을 넘기겠네.’
그 즈음이면 뭐라도 하나 더 주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였을까.
요즘 들어 부쩍 상대방의 스텟이 궁금했다.
예를 들어 조상이 지닌 능력 수치를 상세히 알 수 있다면 성장의 지침으로 삼을 수 있으리라.
‘아무래도 특기 쪽에서 뭔가 나올 것 같은데······.’
현재 남천휘가 지닌 특기는 여섯 개다.
(도수)(불패)(불굴)(신안)(무희)(변설)
이 중 두 개의 특기가 변화했다.
잠을 청할 때에도 직도를 쥐고 살았더니 도수(刀手)의 등급이 올랐다. 처음으로 특기에도 레벨이 붙어 있음을 깨달았다.
도수(刀手) LV:2
- 도를 쥐었을 때 투기와 열정이 증가합니다.
- 도를 다루는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두 번째로 성장한 것은 예상 외로 신안이다.
신안(神眼) LV:2
- 상대의 레벨 확인 범위가 증가합니다.
- 무공과 무공의 적합도를 파악합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남천휘가 무공 창을 열고 심법과 도법을 한데 묶었다. 그러자 삼황내문과 중양칠도의 적합도는 48%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반면 중양칠도와 오행군림보의 적합도는 88%였다.
“삼공자, 조 대주가 찾아왔어요.”
남천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조상이라면 가주전과 근무지를 제외하면 늘 연무장에서 살지 않았던가. 그런 사람이 찾아왔다면 평범한 용건일 리 만무했다.
그는 소혜가 차를 내올 때까지 진득하게 기다렸다.
쉽지 않은 이야기를 꺼내려는 듯했다.
“아까 비무는 어떠셨습니까?”
남천휘는 표정을 굳혔다.
조상과 비무했던 기억이 떠오른 게다.
절로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걸요.”
조상은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연무장이 아니면 석불처럼 진중한 사내였다.
“삼공자의 잠재력은 충분합니다. 한데 마음이 몸을 따르지 못하는 듯하더군요.”
내공을 오롯이 발현하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역시 무공광이다.
남천휘의 머릿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처럼 정확하게 문제점을 짚었다.
‘역시 내공인가.’
현재 남천휘의 내공 수치는 180이다.
대부분 스텟으로 올린 수치였다.
이제 운기조식을 통해서는 내력이 늘지 않았다.
가치 20의 삼황내문은 한계에 이른 것이다.
결국 남천휘는 단전에 품은 내공을 원하는 만큼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다. 어쩌면 가장 시급한 문제는 레벨이나 숙련도가 아니라 쓸 만한 심법의 유무였다.
아니나다를까 조상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삼황내문은 단전의 토대를 안정적으로 마련하는 좋은 심법입니다.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은 힘들지요. 이 기회에 심법과 도법을 새로 익히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남천휘는 쓴웃음을 흘렸다.
곡부남가에는 삼황내문 외에도 심법이 존재했다.
노군입산부(老君入山符).
도가의 일맥에서 흘러나온 심법으로 가주인 남운군과 소가주인 남천홍이 익혔다.
하나 남천휘는 노군입산부를 익힐 생각이 전무했다.
이미 중양칠도와 오행군림보를 대입하여 적합도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38로는 익혀봤자 큰 도움이 안 돼.’
삼황내문보다 효율성이 떨어졌다.
그렇다고 곡부남가의 상승도법으로 알려진 파격도(波激刀)나 진위십이도식(鎭威十二刀式)를 익힐 수도 없는 노릇이다.
두 개의 도법 모두 중양칠도보다 유명했다.
심지어 실제로 확인한 가치 또한 중양칠도보다 높았다. 하지만 현재 남천휘의 무공 체계는 가치 추정 800의 오행군림보가 중심이 되어야 했다.
오행군림보와의 적합도는 각기 65와 44.
그렇기에 포기했다.
같은 이유로 조상의 섬영검도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오행군림보와 섬영검의 적합도는 68이다.
재이의 설명에 의하면 궁합이 나쁘지는 않단다.
그러니 북풍대의 조장들이 자신과 수련하며 급격한 성장을 이뤘으리라. 그들은 딱히 가르쳐주지 않아도 오행군림보의 형을 따라했다.
‘하지만 중양칠도와 보법의 적합도는 88이야. 이걸 포기할 수는 없지.’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VIP 상자나 무작위 상자에서 새로운 무공이 뽑히기를 기다리는 편이 나았다.
‘파격도는 차후에 익혀둬도 괜찮겠지만.’
남천휘는 속내를 숨긴 채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차후에 생각한 바가 있습니다.”
조상은 탄성을 흘리더니 말을 덧붙였다.
“지난 날 보법을 전해주신 귀인께서 해법이라도 주셨나요?”
남천휘는 피식 웃었다.
줬다기보다는 주기를 기다릴 뿐이다.
“글쎄요.”
조상은 깊이 캐묻지 않았다.
제아무리 친밀한 사이라고 해도 무공에 관한 건 말을 아낄수록 좋은 법이다.
“제가 주제넘게 나섰군요.”
남천휘는 진심을 담아 말을 건넸다.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조상은 볼일을 끝내자마자 자리를 뜨려했다.
“급한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차라도 마저 드시고 가시지요.”
남천휘의 말에 조상은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방금 좋은 수련법이 생각났거든요.”
그 얘기를 하면서 볼을 붉히는 이유가 뭔데?
다음 날 남천휘는 열일곱 명의 북풍대원과 마주했다. 그들은 남천휘를 둘러싼 채 북풍대주인 조상의 명령을 기다렸다.
‘이건 뭐지?’
조상의 밝은 표정을 보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스쳐갔다. 아니나다를까 재이가 불길함에 불길함을 더했다.
띠링-
《17대 1》
- 17대 1은 자신의 강함을 증명할 수 있는 최고의 조합입니다. 상대를 모두 쓰러트린 후 자신의 강함을 북풍대 내에서 증명하세요.
싫어! 하기 싫다고.
천하에 알리는 것도 아니고 북풍대 내에서 알려진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데? 사내놈들에게 인기 있고 싶지 않단 말이다.
재이는 자신의 할 말만 이어갔다.
◎승리 시 다음과 같은 보상이 지급됩니다.
- C급 무작위 보급 상자.
- 특기 1회 승급권.
◎패배 시 다음과 같은 불이익이 주어집니다.
- 1일 강제 휴식권.
- 3일 동안 내공 운용 불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라는 건가?
역시 언제나 그렇듯 승낙의 유무는 개의치 않는 녀석이다. 하나 이번만은 남천휘도 반드시 퀘스트를 달성하고 싶었다.
‘특기 1회 승급권이라니.’
이미 도수와 신안이 레벨 2가 됐다.
그로 인해 공능이 확장되거나, 추가되지 않았던가.
3 레벨을 만들어도 좋고, 새로운 걸 2 레벨로 만들어도 좋으리라.
‘뭐가 됐든 일단 이기면 되는 거잖아?’
남천휘는 히죽 웃으며 직도를 뽑았다.
스릉-
그가 자세를 취하는 순간 열일곱 명의 무인들이 자세를 바로했다. 그들 역시 지금껏 남천휘의 비무와 성장을 지켜보지 않았던가.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었다.
그들이 기억하는 예전의 한량은 어디에도 없다.
당당한 기수식을 보며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그 때 남천휘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살살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