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41화 (41/305)

29, 목표 달성. (2)

*

형형색색의 꽃비가 내렸다.

당과를 받은 동네 아이들이 산과 들에서 꺾어온 꽃잎이다.

군중의 외침은 개선장군을 대하는 듯했다.

행진이 끝난 후 기다리고 있을 술과 고기가 만들어낸 환호성이다.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낸 주인공은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좋구나.”

남천홍은 동생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군중을 헤치며 대과에 급제한 사람처럼 손을 흔드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그때 누군가 등 뒤에 섰다.

“오셨습니까. 노야.”

막 총관은 조심스럽게 다가오다가 박장대소를 했다.

“크하하, 내가 오는 건 어찌 알고? 이렇게 귀가 밝아서야 암습은 불가능하겠군.”

남천홍은 피식 웃으며 육포를 입안에 우겨넣었다.

손바닥만한 육포로 입안을 가득 채운 후에야 말을 덧붙였다.

“살수로 전향하시려면 지금부터라도 술을 끊으세요. 술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클클, 이건 이제 내 정체성 문제라고. 이제 와서 술을 끊으면 사람들이 욕할 게야. 다 늙어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술까지 끊느냐며 말이지.”

“그래도 건강을 생각하셔야지요.”

막대통은 피식 웃으며 술병을 흔들었다.

“이 나이쯤 되니 바라는 건 하나밖에 남지 않았어. 내 말년을 보낼 이곳이 더욱더 안전하고, 융성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지. 그런 면에서 이번 계획은 마음에 들어. 천휘의 별호를 퍼트리고, 협객으로 띄운다면 더불어 곡부남가의 명성도 올라가겠지.”

남천홍은 눈을 끔뻑였다.

“아! 그런가요?”

막대통은 어리둥절해하는 남천홍을 보며 다시 한 번 박장대소를 했다.

“크하하! 설마 그런 생각도 없이 이런 일을 벌인 겐가?”

“그냥 천휘가 용기를 냈다고 생각하니 뭐라도 해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가볍게 시작한 일이었다.

남천홍은 남천휘가 혈랑회를 상대하기 위해 남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북풍대를 급파하여 마중을 보냈다. 그리고 친분이 있는 상인들과 양민들에게 저간의 사정을 알렸다.

그 후부터는 일사천리로 소문이 퍼져나갔다.

소문이 적당히 퍼졌을 무렵 곡부남가의 이름으로 연회를 알렸다.

술과 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잔치.

상인과 무인, 양민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렇기에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저렇듯 저자로 나가 꽃을 뿌리고, 별호를 연호했다.

그저 동생의 노고를 조금이나마 위로하기 위한 선물이었다.

막 총관은 남천홍을 보며 표정을 굳혔다.

말로는 우연히 얻어걸린 것처럼 말하지만, 속내를 누가 알겠는가.

실제로 남천홍은 장사에 대한 경험 없이도 수많은 거래와 상행을 성사시켰다. 가히 천부적인 재능이 아닐까 싶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막 총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가 생각하는 남천홍은 일개 상인으로 끝날 존재가 아니었다.

‘어쩌면 저 두툼한 등 속에 날개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지.’

그는 남천홍과 저 멀리 보이는 남천휘를 한 눈에 담았다. 작은 재주가 있는 돼지와 내일이 보이지 않는 백수라 여겼던 두 사람이다. 하나 두 사람은 어쩌면 천하에 손꼽힐 기재가 될지도 모르겠다.

‘허허, 이러면 나가린데.’

그래서였을까.

지나가는 듯한 말투에 뼈가 섞였다.

“클클, 그저 동생 기분을 좋게 해주려고 은자 천 냥이나 뿌린 겐가?”

남천홍은 막대통의 농담에 뒤통수를 긁적였다.

“겸사겸사 마을 사람들도 배불리 먹고 하루 즐기는 거지요. 제가 너무 과했나요?”

막 총관은 더 몰아붙이지 않았다.

어차피 밥 먹는 걸 제외하면 늘 적정선을 찾는 소가주가 아니던가.

“그렇지 않아. 홍 조장도 그렇고, 상단에서 보낸 오용도 천휘를 칭찬하더군. 어쨌든 혈랑회가 쫓아오는 와중에 천휘가 홀로 남은 건 사실이니까. 우리는 그저 바람이 불 때 부채질을 해준 정도라네. 아! 그나저나 알지? 이번 일로 갑자기 동생을 챙기기 시작하면 내외의 이목이 집중될 게야.”

남천홍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네. 혹여 천휘를 노리는 자가 있을 수도 있지요. 저 아이가 홀로 설 때까지 저도 조심하겠습니다. 이번 일은 노야께서 주관하신 걸로 합시다. 부탁 좀 드릴게요.”

막대통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수락했다.

“내가 생색은 또 잘 내지. 걱정 마시게.”

“저는 눈에 띄기 전에 내려가렵니다.”

남천홍은 누각을 내려갔다가 멈칫했다.

“참! 혈랑회가 나타났다는 건 누군가 의뢰를 했다는 뜻이겠지요?”

“그렇지요.”

소가주의 눈빛이 그답지 않게 서늘한 기운을 흘렸다. 한순간 분노와 살기로 점철된 눈빛이 번들거릴 때마다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본가를 노리는 자가 있다면 용납할 수 없습니다.”

뒷말에 남천휘가 위험할 뻔 했으니 더더욱 그러하다는 말은 생략됐으리라.

막대통은 표정을 굳힌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찾아보겠네.”

그제야 남천홍의 표정이 풀린다.

한순간 평소의 그로 돌아오는 모습조차 낯설기는 매한가지였다.

“부탁드릴 게요. 어차피 중평산장과의 계약도 다시 추진해야 하니까요.”

막대통은 다시 한 번 확답했다.

“어차피 계약 조건을 조절하고 싶었어. 이 기회에 계약서를 다시 한 번 살펴보고 결정을 내리도록 하지. 걱정 마시게.”

그제야 남천홍은 누각을 내려갔다. 아마 다시 처소에 틀어박혀 평소대로 행동할 터였다.

아마 동생이 기뻐할 모습을 떠올리며 평소보다 기분 좋게 과식을 하지 않을까 싶다.

막대통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누각 너머에 펼쳐진 연회를 응시했다.

“내 계획이 어긋나는 건 좋지 않은데······. 방해꾼은 용납할 수 없지.”

그는 나직이 읊조리다가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북풍대의 대주인 조상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총관, 연회를 주관하실 시간입니다.”

“아! 벌써 시간이 그리 됐는가.”

“삼공자가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습니다.”

막 총관은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다가 계단 앞에서 한 마디를 건넸다.

“들었는가?”

조상은 평소와 다름 없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네?”

“아닐세. 자네도 함께 가지!”

누각은 이내 인기척이 사라졌고, 겨울바람만 간혹 창을 통해 스며들었다. 하나 이곳을 지나친 세 명 중 밝은 표정으로 내려가는 자가 없더라.

*

‘뭔가 잊고 있는 것 같아.’

남천휘는 허공을 노려보며 이마를 긁적였다.

한동안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떠올린 게다. 한데 아무리 기억을 돌이켜봐도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

“맙소사! 언제부터 그랬던 거지?”

그는 눈을 끔뻑이며 주변을 살폈다.

소혜는 자리끼를 갈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무슨 꿈이라도 꾸셨어요?”

이 녀석아, 나는 졸은 게 아니야.

깊고, 넓으며 훌륭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

하지만 지금은 소혜의 실수를 바로잡는 것보다 중요한 문제가 존재했다.

“소혜야.”

남천휘의 부리부리한 눈빛에 소혜는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부담스러워.’

하나 남천휘는 소혜의 어깨를 잡고 자신을 보게 만들었다.

“잘 들어. 내 별호가 뭐지?”

소혜는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말했다.

“음, 호도!”

남천휘의 굳은 표정은 폭우를 맞이한 산기슭처럼 허물어졌다.

망설였지? 망설였어!

방금 생각이 나지 않아서 ‘음’이라고 뜸을 들였어.

실의에 빠진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그래, 호도. 나는 지키는 도, 호도지.”

남천휘는 보료에 몸을 묻었다.

‘맙소사! 며칠 전만 해도 마주치는 사람마다 호도라고 부르며 포권을 했었는데······.’

마치 그 시절이 꿈이었던 것처럼 호도라는 별호는 철저하게 잊혀졌다. 애초에 그날 모인 사람들이 곡부남가의 연회를 고대했으리라. 겸사겸사 자신의 협행을 듣고, 환호성을 내지른 것이다.

협객은 자기희생과 배려의 상징이 아닌가.

그런 사람이 근처에 있으면 명성만으로도 안정감을 느끼는 것이 양민이다.

‘그래도 그렇지.’

최소한 그 날 먹고 마신 술과 고기가 소화될 때까지라도 호도를 기억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 인기의 덧없음이여.

남천휘의 눈매가 더욱 가늘어졌다.

소혜는 빨랫감을 추스르며 연방 호도라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마치 입에 익지 않은 낯선 단어를 대하는 듯했다.

‘못된 것!’

하나 저러는 것 또한 자신이 재차 물었을 때 자연스럽게 대꾸하기 위한 노력이리라.

그래서 진심을 담아 중얼거렸다.

“다 나가. 혼자 있을 거야.”

소혜는 주변에 누가 있는지 두리번거리다가 배시시 웃었다.

“네.”

뭐가 됐든 맞춰주려는 녀석의 마음이 엿보였다.

그래서 더 서글펐다.

한데 그 마음도 모르고 소혜는 볼일이 끝났다며 숙소를 떠났다.

‘아! 소혜도 없고, 군사도 없고.’

남천휘는 한 숨을 내쉬며 상태창 이곳저곳을 만지작거렸다. 이제는 천상의 언어도 해석이 가능했기에 한참동안 쓸데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말이야. 혈랑회의 무인들을 처리했잖아. 왜 20레벨이 되지 않은 거지?’

앞자리 숫자가 바뀔 때에는 더 많은 경험치가 요구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쓸데없이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는 녀석이다.

‘30레벨이면 절정이니까 그러려니 하지. 20레벨이 뭐라고 그런 제약을 걸어!’

이게 말이야, 방구야.

그러던 중 보급창의 상자를 발견했다.

- B급 무작위 보급 상자.

영웅 등급 무기를 최초로 획득한 보상품목이다.

이름만 들어도 뭔가 대단한 것이 튀어나올 것 같은 기운이 물씬 풍겼다.

그래서 좋은 날을 잡아 향이라도 피우려 했다.

상제께 기원이라도 한 후 개봉하면 조금이라도 좋은 것이 나오지 않겠는가.

‘그냥 까자.’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

하지만 너무 심심했다.

남천휘는 보급 상자가 위치한 부분을 튕겼다.

‘확인.’

지이이이이잉-

기음을 듣는 순간 맥이 풀린다.

VIP 상자를 열었을 때와는 시각 효과나 효과음의 차이가 명백하게 느껴졌다.

분명 오행군림보에 미치지 못한 보상품이리라.

그 순간 허공에 낡은 두루마리가 생성됐다.

그리고 그것은 천천히 펼쳐지며 산과 들이 그려진 지도가 되었다.

띠링-

◎ B급 보도(寶圖)를 획득했습니다.

보도라면 보물지도가 아닌가.

일전 혈금채의 부채주가 채주 몰래 숨겨뒀던 지도가 떠올랐다.

‘보물!’

남천휘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보물이란 나이와 성별을 떠나 사람을 흥분시키는 희대의 마물이 아니던가.

‘확인!’

그러나 남천휘의 환희는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 ‘축복받은 확인서’가 필요합니다.

- 레벨 제한으로 인해 해독이 불가능합니다.

참고로 레벨 제한은 30이다.

‘저렙은 보물도 찾지 말라는 거냐!’

남천휘는 천상의 법도에 인간을 차별하는 규칙이라도 있냐며 몇 번이나 따졌다.

하나 이번에도 재이는 번복하지 않았다.

“젠장!”

상제께 향이라도 한 다발 피워드릴 걸.

후회가 막심했다.

하나 어쩌겠는가.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법이다. 자신이 인간임을 확인한 남천휘는 연무장으로 향했다.

이렇게 된 이상 전력으로 레벨 업이다.

남천휘의 짜증 섞인 일갈이 연무장을 맴돌았다.

“박자 내놔라!”

일단 20레벨을 찍고, 도법과 보법의 숙련도 100을 찍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오랜만에 연무장을 중심으로 피어오른 먼지구름은 며칠 동안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첫 번째 목표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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