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목표 달성.
29, 목표 달성.
‘좋아! 쉬었다 가자.’
남천휘는 사위가 어둑해질 무렵 마을을 찾았다.
혈금채 반대편에 존재하는 마을이기에 지명조차 생소한 곳이다. 하나 상인들이 오가는 것으로 보아 상행의 중간 경유지인 듯했다.
그는 마을에서 가장 좋은 객잔을 찾았다.
보통 객잔은 숙식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장소였다.
“방 있나?”
주인은 남천휘의 복색을 살피며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하나 그가 내민 은자를 보는 순간 부처를 마주한 것처럼 배시시 웃으며 목패를 내줬다.
수중에 은자 오천 냥이 있다.
그렇기에 호기도 부려봤다.
“배 좀 채웁시다. 여기 괜찮은 걸로 하나씩 모조리 가져다줘요.”
주인은 졸고 있는 점소이를 대신해 직접 주방으로 향했다. 잠시 후 점소이가 하품을 해대며 건성으로 탁자를 닦았다.
평소였다면 뒤통수라도 후려쳤겠지만.
‘나는 부자니까.’
남천휘는 턱을 괸 채 창밖을 바라봤다.
이번 외출로 덕을 본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레벨 업과 실전, 거기에 영웅 등급의 활까지 얻지 않았던가.
‘정리 좀 해야겠다.’
어차피 요리가 나오려면 한 세월이다.
남천휘는 상태창과 인벤토리를 동시에 띄워놓고 유심히 살폈다.
《남천휘(南天輝)》
- 소속 : 대화동(大化洞)
- 호칭 : 신사의 품격
- 별호 : 없음
- 등급 : 19
- VIP : 1등급(잔여 점수 : 74)
- 성소 포인트 : 1500
근력(筋力) : 115. 민첩(敏捷) : 155
체력(體力) : 119. 지혜(知慧) : 155
내공(內功) : 120.
- 미 배분 능력치(+0)
‘하아.’
민첩 수치를 확인하는 순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손가락을 몇 번이나 꼼지락거렸지만, 예전의 느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후였다.
‘아쉬워.’
그렇다고 해서 영웅 등급의 활을 내내 들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무기는 도였다. 영웅 등급의 활을 얻고 나니 최소한 영웅 등급의 도를 얻어야 성에 찰듯했다.
‘진짜 돈을 모아서 하나 살까?’
하지만 곡부남가 근처의 유명한 철방에서 팔던 무기를 떠올리는 순간 입맛을 다셨다. 질 좋은 철과 유명한 장인이 만들었다는 이유로 이만 냥을 요구하지 않았던가.
당시 남천휘는 가격만 듣고 대경실색했을 정도였다.
그 때 주인과 점소이가 양 손에 접시를 들고 주방을 나섰다.
“요리 나왔습니다!”
남천휘는 잠시 창을 내렸다.
“즉묵노주같은 명주도 있나?”
점소이는 난색을 표했다.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명주를 찾으시는 거면 소흥주가 있습니다.”
이놈아, 즉묵노주는 산동성의 명물이라고.
현지인에게도 외면당하는 명주라니.
“소흥주로 줘.”
잠시 후 남천휘의 목구멍을 향 좋은 황주가 씻어줬다. 확실히 즉묵노주에 비해 무겁지 않고, 알싸한 향이 일품이다.
‘나 같아도 소흥주를 마시겠다.’
앞으로 무슨 장사를 하더라도 즉묵노주는 팔지 말아야겠다.
술 한 잔, 고기 한 점.
그러면서도 눈은 상태창과 보급창을 살폈다.
‘일단은 이십 레벨을 찍고, 중양칠도의 숙련도도 채워야 해. 히든 퀘스트를 하다보면 뭔가 나오겠지.’
지금 당장은 선조인 백파도 남추가 남긴 유산을 수습하는 것이 우선이다.
- 레벨 20 달성.
- 중양칠도의 숙련도 100 달성.
야들야들한 고기를 씹고 있음에도 입안이 쓰다.
하루아침에 이룰 수 없는 목표였기에 어쩔 수 없이 관심을 접었다.
‘새로 얻은 아이템 좀 보자.’
남천휘는 술 한 잔을 비운 후 입맛을 다셨다.
혈금채를 만난 후 몇 번의 퀘스트가 진행됐다.
당시에는 급한 마음에 확인도 하지 않고 받아뒀던 물품이다.
‘이건 산적 토벌 퀘스트로 받은 보상이네.’
《VIP 포인트 +10과 숫돌 3개가 지급됐습니다.》
‘이건 뭐였더라?’
기억이 나지 않을 때에는 시스템 상에 기록된 일람을 펼쳐 확인했다.
《VIP 포인트 +20과 적선단 2개가 지급됐습니다.》
성소 최초 발견 보상이다.
곧이어 성소 안정화 보상과 최초로 침입자를 격퇴했을 때 지급받은 보상을 확인했다.
“아.”
남천휘는 술잔을 꺾으려다 탁자에 내려놨다.
몇 번이나 눈을 끔뻑이던 그는 소리 없는 환호성을 지르며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대박!’
◎ 최초로 성소 안정화에 성공하셨습니다.
- VIP 포인트 +100.
현재 VIP 포인트는 74점이다.
보상으로 받은 30점에 지금 확인한 100점을 더하면 200이 넘었다.
‘됐어! 됐다!’
남천휘는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의 팔뚝을 쓰다듬었다.
‘고생 많았어.’
다음 보상도 기대가 됐다.
성소에 침입한 적을 최초로 격퇴하지 않았던가.
하나 무기강화주문서와 갑옷강화주문서가 각 2장씩 지급되는 순간 묘한 아쉬움에 사로잡혔다.
‘왜 쓰지를 못하니?’
울컥한 마음에 질풍뇌격궁을 강화시킬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활 자체의 숙련도나 저격 모드의 제한으로 인해 크게 끌리지 않았다. 아닌 말로 대화동이 아닌 곳에서 활을 쓴다면 열 걸음 밖의 표적도 맞출 자신이 없었다.
‘이거 즉시 발동이지?’
재이의 설명에 의하면 바르는 순간 강화가 된다니 급할 것도 없다.
‘필요할 때 바르자.’
- 무기강화주문서x5
- 갑옷강화주문서x3
- 적선단x5
- 벽선단x3
- 녹선단x2
- 축복받은 확인서x4
- 숫돌x4
예전에 확인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다.
‘뭔가 엄청 화려하기는 한데 실속은 없는 느낌?’
무인도에 갇힌 사람에게 금은보화를 안겨주면 무엇하나.
남천휘는 술잔을 기울였다.
왠지 아까보다 술맛이 썼다.
그러던 중 보급창에 생소한 물품이 보였다.
‘확인.’
◎ 최초로 영웅 등급 무기를 획득하셨습니다.
- B급 무작위 보급 상자.
- 경험치 2배 비약(秘藥) - 3일 치.
“그렇지! 이것도 있었잖아!”
오늘 확인한 것 중에서 VIP 포인트를 제외하면 가장 마음에 드는 보상이다. 지금 남천휘에게는 시간이 가장 필요했다. 그렇기에 수련의 효율을 두 배로 올릴 수 있는 비약의 존재는 금은보화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여기 술 한 병 더!”
점소이에게 은 부스러기를 건넸더니 아주 다른 사람이 됐다. 시체처럼 흐느적거리던 자가 경공이라도 익힌 무인처럼 날랬다. 잽싸게 밀봉된 술병을 가져오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꼼지락거렸다.
“나갈 때 봅시다. 내가 기억할 테니.”
쉽게 번 돈이라고 쉽게 쓸 줄 알았더냐!
‘나한테만 쉽게 쓸 거야.’
점소이는 어색하게 웃으며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가끔 시선을 마주칠 때마다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것으로 보아 간이라도 내어줄 기세였다.
새로 나온 술병의 마개를 뽑는 순간에도 시선은 ‘무작위 보급 상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건 뭐냐?’
◎ 무작위 보급상자를 활성화하시면 시스템 상에 존재하는 물품이 무작위로 지급됩니다.
남천휘는 눈을 끔뻑였다.
‘도박이네?’
◎ 뽑기입니다.
‘그러니까 도박.’
하늘도 사람 사는 세상이랑 다를 바가 없구나.
“크하!”
남천휘는 술 한 잔을 비운 후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무작위로 뽑히는 물품의 목록을 확인할 수 있을까?
◎ 정보 검색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저 레벨이라고 무시당하는 것도 이제는 익숙했다.
그래서 깔끔하게 머릿속에서 지운 채 무작위 보급 상자를 바라봤다.
‘뽑아보면 알겠지.’
한데 그 순간 낯선 시선이 느껴졌다.
객잔 안쪽에서 싸구려 화주를 마시던 녀석들이 힐끔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머리 위에 뜬 레벨만 봐도 동네 왈패들이다.
흑도는커녕 뒷골목에서 주머니나 터는 잡배였다.
‘그래도 네가 제일 낫구나.’
남천휘는 머리 위에 레벨 5라 적힌 청년을 보며 피식 웃었다.
“야! 지금 웃었냐?”
기다렸다는 듯 놈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을 마셨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수가 주는 무책임한 든든함일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남천휘는 직도를 뽑아 객잔의 바닥에 박아버렸다.
콰직!
“어, 웃었다. 왜?”
놈들은 한순간 술이 깬 듯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그럴 줄 알았다.
저들은 강호인이 아니다.
그저 치기 어린 마음에 힘자랑이나 하는 덜 자란 어른들에 불과했다.
그러니 진짜 칼을 보는 순간 주눅이 들 수밖에.
아! 그러고 보니 칼에 피가 묻었네.
그럼 더 강하게 나가야지.
“왜?”
남천휘의 날선 눈빛까지 꽂혀드니 가장 먼저 발끈하고 나섰던 청년은 시선을 피했다.
“아니야요.”
혀 꼬인 것 봐라.
“그래, 조용히 술 마셔. 사람들 괴롭히지 말고.”
훈계를 하니까 좋은 어른이라도 된 듯하다.
이래서 노인네들이 그렇게 잔소리를 하는가보다.
‘아! 막 총관을 떠올랐어.’
남천휘는 입맛을 다시며 술잔을 내려놨다.
지나친 음주는 자신과 가정을 파탄 내는 법이다.
또한 온갖 질병을 수반하니 절제하는 것이 옳다.
‘알았냐?’
◎ 기억해두겠습니다.
남천휘는 다음 날 일찍 방을 나섰다.
주인에게 목패를 돌려주고 난 후에 지난 밤 시비를 걸었던 청년들이 보였다.
“야! 할 일 없냐? 왜 아침부터 여기서 죽치고 있어.”
“있다가 할 거요.”
뭘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다면 뭘 해도 안 되기를 기원하마. 한데 그가 객잔을 나서는 순간 청년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야! 잘 참았어. 더 이상 사고 치면 안 돼.”
“나도 늙었네. 이렇게 인내심도 생기고.”
“한주먹거리도 안 돼. 잘했다. 잘했어.”
놀고들 있다.
남천휘가 다시 객잔에 들어서자 청년들은 언제 기고만장했냐는 듯 조신한 자세로 앉아서 땅을 바라봤다.
하여간 나쁜 짓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닌가 보다.
꼴을 보아하니 왈패도 아니고 그냥 백수인 듯했다.
“주인장, 쟤들 밥이나 줘요.”
청년들은 남천휘가 객잔 주인에게 은 부스러기를 건네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더니 남천휘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고개를 숙인 채 외치는 것이 아닌가.
“대형! 감사합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안 믿는다. 이놈들아.
만나서 귀찮았고, 다시는 보지 말자.
“이제 다시 일상인가.”
남천휘는 곡부에 발을 들이며 기지개를 켰다.
당분간 수련에 집중하며 자기 계발에 힘쓸 시간이다.
한데 곡부남가로 향할수록 사람들이 많다.
“저기요. 오늘 잔치라도 합니까?”
남천휘의 물음에 중년인은 잠시 눈을 끔뻑이더니 삿대질을 하며 외쳤다.
“호도다! 호도!”
‘응?’
그러자 백여 명은 족히 될법한 인원이 남천휘를 향해 몰려들었다.
“호도! 호도! 호도!”
단체로 호도라는 말 밖에 하지 못하는 저주라도 걸린 걸까.
이유를 물으니 호도(護刀)란다.
지키는 도.
“내 별호라고요?”
짤막하게 설명을 들으니 헛웃음이 절로 났다.
자신이 산적들을 소탕하고, 곡부남가의 인원들을 대피시켰단다. 그리고 악적으로 유명한 혈랑회를 홀로 남아서 막아냈다는 것이 소문의 전모였다.
‘일상은 개뿔.’
마치 자고 일어났더니 하루아침에 벼락 협객이라도 된 듯했다.
“호도! 호도! 호도! 호도!”
한데 군중의 외침은 묘한 마력을 지녔다.
남천휘는 상기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하늘을 뚫을 기세로 팔을 번쩍 들며 외쳤다.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시는가?”
호도라는 두 글자만이 세상에 가득했다.
“호도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