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39화 (39/305)

28, 누구냐? 너! (2)

*

혈랑회의 부회주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이를 갈았다.

거친 호흡보다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손이 더 수치스러웠다.

‘그만 떨어라! 이 병신 같은 손아.’

그는 주변에 흩어져 있는 대나무 파편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암중의 적이 쏜 죽창을 두들긴 후유증이 너무 심했다. 심지어 검기를 사용했음에도 반발력은 여전히 몸 안을 휘돌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죽창을 튕길 때의 감각이다.

손끝을 저릿하게 만든 것은 분명 뇌기(雷氣)였다.

‘누구지? 누가 이런 엄청난 신공을 보인 거지?’

이제 중요한 건 고수의 정체였다.

그는 땅에 박힌 죽창을 살피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끝이 파였어? 그럼 투창은 아니겠군.’

애초에 그런 고수였다면 굳이 죽창을 던지는 대신 직접 나타나서 처리했으리라.

저것은 분명 활에 걸어서 쏜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남천휘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곡부남가의 가솔일 리가 없어. 의뢰인이 전한 정보는 정확했어. 곡부남가와 관련된 사람들 중 궁술을 익힌 자는 없다!’

강호인이 사용하는 병장기 중 활은 그리 각광받는 무기가 아니었다. 제아무리 궁술의 조예가 깊어도 내력을 담아 쏘는 것에는 한계가 존재했다. 그렇기에 활은 곁가지로 익히고, 대부분 도검(刀劍)을 수련하지 않던가.

‘누가 됐든 엄청난 고수임이 틀림없어!’

부회주는 이제야 멀쩡해진 손을 쥐락펴락하며 이를 갈았다.

‘칠호와 구호까지 일격에 죽을 줄이야.’

죽창에 당한 다섯 명 중 두 명은 절정의 경지를 밟은 무인이다. 이런 곳에서 대나무에 꽂힌 채 절명하기에는 아까운 고수였다.

‘향후 문주 앞에서 어찌 고개를 들 수 있으랴.’

부회주는 손을 쥐락펴락 하며 적의 기척을 살피려 했다.

하나 위치와 거리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죽창은 산채 쪽에서 날아왔다.

문제는 거리였다.

‘삼십 장? 오십 장?’

도무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궁술로 명성을 쌓은 고수들의 별호를 생각했다.

대략 산동성 주변에서 활약했던 자들만 셋이다.

‘수십 년 전 행방불명된 신궁천무자라면······.’

하나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신궁천무자는 당대에도 초절정의 무위를 자랑했다.

그런 자가 수십 년 만에 돌아왔다면 자신은 죽창의 형상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절명했으리라.

‘화우혈궁은 당연히 아니겠지.’

화우혈궁(火雨血弓)은 이백여 명의 화우대와 늘 함께 움직였다.

그렇다면 남은 건 일점홍이다.

‘하나 일점홍도 아니야. 일점홍은 짧은 화살을 사용하는 살수가 아니던가. 죽창은 말도 안 돼.’

결국 적의 정체를 추론하는데 실패했다.

부회주는 품에서 두 개의 명적을 꺼내들었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혈랑회주를 불러들이는 것이 전부였다.

“모두 경계를 늦추지 마라! 회주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가 입구를 막아야 해.”

살아남은 수하들이 결의를 드러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막겠습니다!”

부회주는 명적을 쏘아 올렸다.

삐이이이이이이-

‘회주께 알려야 한다.’

산동성에 초절정으로 추정되는 궁귀(弓鬼)가 나타났음을 말이다.

*

“해서 회주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혈랑회주는 무심한 얼굴로 손을 들었다

그의 손은 부회주의 뺨을 강하게 후려쳤다.

쫙!

입술 안쪽이 터지고, 이빨이 깨질 정도의 일격이다.

하지만 부회주는 신음조차 흘리지 않은 채 자세를 바로 했다.

“너는 두 가지 실수를 했다.”

회주는 재차 손을 휘둘렀다.

쫙!

“첫 째는 네가 혈금채로 향하는 순간 내게 알렸어야 했어. 곡부남가의 행렬은 수십 명, 우리가 따라간다고 해서 전면전을 펼칠 수는 없었다. 그러니 혈금채로 향하는 자가 누구였든 본대와 빠르게 합류했어야 했어.”

부회주는 여전히 침묵했다.

이유를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쫙!

“두 번째는 죽창이 날아왔을 때 진퇴를 결정해야 했다. 너의 느슨한 결심 때문에 다섯 명이 죽었어. 내 말에 이의가 있느냐?”

“없습니다.”

혈랑회주는 뒷짐을 진 채 말을 이었다.

“문주께서 우리를 문파 밖으로 내보낸 이유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는 부회주를 비롯해 수하들을 시야에 담았다.

“혈랑회의 존재 이유가 무엇이더냐?”

“산동일통입니다!”

“그래, 우리는 문주께서 산동성을 일통할 때 앞장서야 할 칼이다. 그렇기에 몇 년 동안 사지와 험로를 찾아다녔다. 우리보다 강한 자는 많을 게다. 하나 우리만큼 잘 쳐들어가고, 잘 죽이는 자들은 많지 않아. 그렇기에 우리는 늘 배우고, 경험해야 한다. 알겠느냐?”

“존명!”

혈랑회주는 적의 공세가 그쳤음에도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가장 약한 수하 다섯을 불러 산채로 향하게 했다.

“가라.‘

“존명!”

저들은 동료의 죽음을 목도했음에도 망설임 없이 내달렸다.

혈랑회주는 수하들의 신호를 기다리다가 부회주를 향해 물었다.

“아프냐?”

“괜찮습니다.”

“나도 아프다. 너와 죽은 놈들 모두 함께 문주의 대업을 이루고 싶었다. 죽은 녀석들의 몫까지 함께 하자.”

부회주는 감격하여 눈시울을 붉혔다.

“따르겠습니다!”

삐이이-

잠시 후 들려온 낮고, 불쾌한 호각 소리.

산채에 아무도 없다는 정보였다.

회주의 눈빛에 짜증이 담겼고, 이내 무덤덤한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돌입.”

수하 중 한 명이 다가와 부복했다.

“아무도 없습니다.”

회주는 침음을 흘리더니 재차 명을 내렸다.

“우리가 왔을 때와 달라진 것을 찾아내라.”

일각 후 뜻밖의 정보가 수집됐다.

창고의 죽창이 사라졌다.

역시 의문의 적이 쏘아낸 죽창은 산채의 것이다.

또한 처마 밑에 있던 작은 공간도 발견됐다.

책 한 권이 겨우 들어갈만한 공간이다.

‘설마 비급이라도 숨겨져 있었던 걸까?’

혈랑회주는 처마 밑을 올려다보며 미간을 좁혔다.

어쩌면 자신들이 발견할 수도 있었던 장소가 아닌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쉬움은 배가 됐다. 하나 비밀공간은 두 개나 더 나타났다.

“뭐라고?”

가산 뒤와 채주의 의자 밑에서 비밀공간이 발견됐다. 혈랑회의 무인 중 냄새에 민감한 자가 한참동안 코를 벌름거렸다.

“낡은 종이와 특수한 먹물 냄새가 납니다. 이곳에 은자나 전표가 있었던 듯합니다.”

돈 따위는 상관없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상부에서 분기마다 비밀리에 지원금이 청부형식으로 전달됐기 때문이다.

하나 두 번째 공간이 문제였다.

“쇠 냄새가 납니다.”

혈랑회주는 눈을 가늘게 떴다.

기다란 공간.

장병기를 넣어놨으리라.

하나 검이나 도 한 자루를 넣기에는 꽤 넓은 공간이다. 전후사정을 따져봤을 때 의문의 적이 사용한 철궁으로 짐작됐다.

‘그래서 죽창을 날린 건가?’

이 정도 크기의 철궁이라면 죽창이라서 날린 것이 아니라 죽창 밖에 날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뒷짐을 진 채 삼면을 두른 절벽을 올려다봤다.

그러던 중 채주의 처소 지붕에서 도약한 흔적을 발견했다.

“이리로 탈출했군.”

이제 남은 문제는 하나였다.

‘이곳으로 온 자는 분명 남천휘일 것이야.’

이번 의뢰의 변수는 남천휘다.

본래 소가주인 남천홍이 왔어야 할 것을 삼남인 남천휘가 동행하지 않았던가.

‘소가주는 욕심이 많은 자야. 동생을 위해 이렇게 좋은 기회를 포기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동생 쪽에서 억지를 써서라도 동행한 걸까?’

그렇다면 전후사정이 맞아떨어진다.

‘처음부터 혈금채가 목표였어. 이곳에 숨겨진 철궁과 비급을 노렸군.’

하나 남천휘가 철궁과 비급을 얻었다고 해서 그만한 무위를 보일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렇다면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는 뜻인가?’

혈랑회주는 인상을 썼다.

강호에는 실력의 삼 푼을 숨기라는 격언이 존재했다. 강호의 잔혹함과 강호인의 음험함을 주의하라는 뜻이다.

‘그래도 그 정도의 무위를 지금껏 숨겼을 리가······.’

오히려 이쯤 되니 다른 가설이 떠올랐다.

혈랑회가 쫓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별 생각 없이 행렬을 떠났고, 우연히 혈금채에 도착한 거지. 그리고 우연히 철궁과 비급을 찾으러 온 누군가와 친분을 맺고, 함께 도망쳤다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개소리지.’

한데 부회주라는 놈이 다가와 얼토당토않은 의견을 내놨다.

“혹시 놈은 돈을 찾으러 왔다가······.”

쫙!

이번에는 감정이 실린 따귀였다.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고, 넋이라도 나간 게냐? 더 아프게 해줘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부회주는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혈랑회주는 손을 내저었다.

웅혼한 내력이 흘러나오며 부회주를 일으켰다.

“됐다. 그 동안 일이 너무 쉽게 풀렸던 게야. 너는 수하들을 이끌고 지금 당장 곡부남가로 가라. 주변에 대기하며 동향을 살피고, 남천휘의 귀가를 기다려라.”

“존명! 회주께서는 어찌하실 요량인지요?”

혈랑회주는 입꼬리를 올린 채 절벽 위를 응시했다.

“내가 직접 놈을 쫓겠다.”

*

남천휘는 산길을 내려오며 연방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저격 모드가 해제됐고, 질풍뇌격궁도 인벤토리 안에 넣은 상태다.

그렇기에 능력 수치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까 그 감각이 벌써부터 그립네.’

민첩 수치가 천을 넘기니 아주 다른 세상이더라.

근력과 체력, 내공과 지혜가 천을 넘긴다면 그 또한 다른 세상이리라. 하나 오늘 내일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지혜 500을 넘긴 오 선생도 북풍상단의 상인이 아니던가. 대학자나 어딘가의 군사라도 하려면 세 자리 수치로는 어림도 없다는 뜻이겠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재이야, 지금 내 수준이면 어느 정도냐?’

◎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하아, 냉담하기가 아주 북해빙궁 급이야.’

대화동을 벗어나는 순간 군사가 아닌 재이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마주한 재이의 냉정한 한 마디가 더욱 서늘하게 가슴을 찔렀다.

‘특급 강호인은 고사하고 등급조차 없는 신세로구나.’

남천휘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한데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는 순간 헛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있음에도 오행군림보의 표식을 따라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처구니가 없네.’

북풍대주인 조상이 무공광이고, 총관인 막대통이 주취광이라면 자신은 보법광이라도 된 듯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공 목록을 열었다.

《삼황내문》

- 숙련도(100/100). (가치 :20)

《중양칠도》

- 숙련도(94/100). (가치 :20)

《오행군림보》

- 4급 성장형 (기본 단계 진행 중)

- 숙련도(92/100). (가치 : 200)

‘역시 삼황내문은 쓰레기였어.’

숙련도 100이 됐지만, 아무 변화가 없다.

아무래도 쓸 만한 심법을 구하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할 듯했다.

중양칠도의 숙련도는 선조인 남추의 족자와 연계된 히든 퀘스트의 선결조건이다. 며칠 동안 제대로 도법 수련을 하지 않았더니 숙련도가 멈춘 상태였다.

‘훗, 그래도 보법 숙련도 한 개가 올랐네. 재이야, 보법을 난해 단계로 올리려면 VIP 점수가 얼마나 필요하지?’

제발 1단계처럼 100점만 필요하기를.

제발, 제발, 압도적 제발!

◎ VIP 등급 상승에 200점이 필요합니다.

◎ 오행군림보의 난해단계로 승급하기 위해서 200점이 필요합니다.

‘에라이! 빌어먹을 장사꾼아. 인간적인 도리나 에누리는 없는 거냐?’

재이는 똑같은 말만 반복했다.

◎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불현 듯 어색한 말투였을지언정 군사가 그리웠다.

‘그래도 그 놈은 내 편이라도 들었지.’

제갈량을 잃은 유비의 심경이 이럴까 싶다.

‘아! 유비가 먼저 죽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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