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무무혁명(舞舞革命). (2)
*
‘나는 강하다.’
지치지 않는 체력과 강한 근력을 가졌다.
민첩함으로 인해 균형감각까지 갖췄다.
그렇기에 뾰족한 돌이라고 해도 무섭지 않았다.
“아악!”
무섭지는 않은데 아프다.
도대체 어떤 새끼가 저런 돌을 골라서.
침을 뱉고 정확하게 얼굴을 가져다대는 순간이었다.
“아우! 내가 미쳤지.”
남천휘는 연무장에 주저앉아서 발바닥을 확인했다.
은자 석 냥을 주고 산 가죽신의 정중앙이 움푹 패여 있었다. 하필 밟아도 발바닥의 용천혈로 밟은 탓에 고통은 배가됐다.
지금은 자존심을 세울 때가 아니다.
‘돌, 다른 걸로 바꾸면 안 될까?’
이대로라면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서 군림할 판이다.
한데 기대했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 오행진보의 표식 제공 시간은 반 시진입니다.
왜? 굳이 왜?
하루 종일 수련하고 싶단 말이다!
게다가 중양칠도나 섬영검을 수련할 때에는 무기만 겨눠도 발동하지 않았던가.
‘보법은 뭐가 달라?’
아니면 잠재 수치 800짜리 무공이기 때문인가.
한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 대상자의 성장이 눈에 띄게 더딥니다.
동네 백수가 100렙 짜리 고수와 어울렸으면 제대로 출세한 셈이다. 하루아침에 조상이라도 찍어 누르기를 기대한 건가.
그러나 재이는 냉정했다.
◎ 대상자의 잠재력을 기반으로 설정한 바에 의하면 현재 성장 진행률은 60%에 불과합니다.
‘아! 내 자질이 그 정도로 뛰어났어?’
남천휘는 헛기침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래, 해보자.
고작 7 레벨로 만족할 수는 없지 않은가.
뾰족한 돌 따위야!
그는 다섯 개의 돌 사이에 섰다.
그리고 허공에 위쪽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생기는 순간 북쪽에 있는 돌을 밟았다.
‘첫 시작이 작지만 평평한 놈이라 다행이야.’
지잉-
빌어먹을 불협화음.
제대로 밟았다고 여겼거늘 보통이라는 문구가 떴다가 가루로 변해서 흩어졌다.
눈으로는 전방을 응시한 채 화살표 방향을 살펴야 했고, 다리로는 보지도 않고 돌을 밟아야 했다.
'땅을 보고 보법을 펼치는 것도 말이 안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 혼란스러웠다.
한데 구시렁거릴 사이도 없이 좌측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빛났다. 황급히 오른 발을 옮겨 돌을 밟는 순간 상체가 기울어졌다.
동그란 돌을 밟는 바람에 미끄러진 게다.
이번에는 불협화음도 아니고 소음이 들려왔다.
‘아, 귀 따가워.’
재빨리 자세를 바로 했지만, 표식 두어 개가 이미 지나간 후였다.
띠- 띠- 띠링- 띠-
점차 상체와 하체가 따로 놀기 시작했다.
결국 남천휘는 인상을 쓴 채 오행군림보의 첫 수련을 끝마쳤다.
◎ 성공률 : 56%. 정확도 : 38%
◎ 합계 등급은 ‘E’ 등급입니다.
축국(蹴鞠)도 아닌데 점수를 매기는 거냐?
어쨌든 놓친 횟수도 많았고, 제대로 밟지 못했으니 수치가 떨어지는 건 당연했다.
‘한데 저건 뭐냐?’
재이의 친절한 설명이 이어졌다.
‘A라는 것이 제일 좋고, F가 바닥이라는 거지.’
아! 못해도 이렇게까지 못했을 줄이야.
창피함을 무릅쓰고 물었다.
‘그럼 얼마나 올랐냐?’
◎ ‘E’ 등급은 숙련도가 상승하지 않습니다.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란 말인가.
남천휘는 여전히 시야에 보이는 성공률과 정확도를 보며 이를 갈았다.
하나 그의 얼굴이 이내 활짝 폈다.
점수가 높을수록 숙련도의 상승폭이 정해진단다.
불현 듯 연하연의 싸움을 지켜봤을 때가 떠올랐다.
지혜 수치가 단박에 30씩 오르지 않았던가.
만약 숙련도도 그렇게 오른다면?
‘이 정도 짜증과 고통은 감수할만하지.’
남천휘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발을 주물럭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뾰족한 돌은 아니야.”
내일부터 작고, 평평한 돌만 골라야겠다.
발을 겨우 디딜 만큼 아주 작은 돌.
그 정도 난이도면 충분하겠지.
*
소혜는 양 손을 맞잡은 채 입술을 오물거렸다.
‘이번에야 말로!’
때마침 남천휘가 재차 뛰어올랐다.
하나 그녀의 응원이 무색할 만큼 빠르게 연무장 위를 나뒹굴었다.
“아아악!”
소혜는 입을 막인 채 미간을 좁혔다.
‘아프시겠다.’
하나 남천휘는 몇 차례 엉덩이를 매만지더니 다시 자세를 바로 했다. 그리고는 제자리에서 훌쩍 뛰었다. 그리고 다리를 벌린 채 내려서자마자 미끄러지는 것이 아닌가.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조약돌 위에 내려서려다 보니 당연한 결과였다.
“악! 내 엉덩이. 젠장.”
소혜는 울상을 지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전이되는 듯했다.
한데 그녀의 기분과 달리 남천휘는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공자님.’
소혜가 알던 남천휘가 점점 사라지는 듯했다.
‘며칠 째 이게 뭐하시는 거람?’
그녀가 이른 아침부터 남천휘를 뒤따른 까닭은 따로 있었다. 바로 어느 날부터인가 남천휘의 빨랫감에 피가 묻어 나온 것이다.
특히 엉덩이 부근에 집중적으로.
‘어머! 망측해라.’
소혜는 양 볼을 감싼 채 눈을 질끈 감았다.
어찌됐든 빨랫감의 상태는 심각했다.
핏자국은 말라붙었고, 엉덩이 부근은 헤졌다.
게다가 대막이라도 다녀온 사람처럼 옷 전체에 흙먼지가 가득하지 않은가.
한데 막상 지켜보니 그럴 만 했다.
넘어지기 무섭게 일어나고, 일어나기 무섭게 넘어진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쉬지도 않고 돌 위를 뛰어다녔다.
‘앗! 스물네 번 째 넘어지셨어.’
그 사이 남천휘는 발목을 쥔 채 연무장을 데굴데굴 굴렀다.
소혜의 눈에 맺힌 물기가 당장이라도 흘러내릴 것처럼 출렁였다.
‘공자님. 왜 웃는 거예요?’
그 순간 누군가의 그녀의 허리춤을 잡아끌더니 입을 막았다.
“읍읍.”
소혜는 발버둥을 치다가 자신을 제압한 사람이 북풍대주인 조상임을 확인하고나서야 진정했다.
“대주를 뵙습니다.”
조상은 본래 감정을 쉬이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다.
기껏해야 검법을 전파할 때나 억지 웃음을 보였다.
한데 그런 사람이 잔뜩 인상을 쓴 채 노려보니 소혜로서는 절로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네가 연무장에 어인 일이냐?”
소혜는 저간의 사정을 전했다.
하나 조상의 구겨진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너도 알 텐데? 무인의 수련을 훔쳐보는 건 생사를 걸어야 하는 일이다. 한데 너는 아무렇지도 않게 삼공자의 수련을······.”
그 순간 남천휘의 비명이 울렸다.
“아아아악! 뼈 부딪쳤어.”
조상은 눈을 끔뻑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크흠, 수련이 아니더라도 윗사람을 몰래 훔쳐보는 건 좋은 일이 아니야.”
소혜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공자께 무슨 일이 생겼을까봐 걱정이 됐어요.”
조상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네 상관에게 일렀어야지.”
소혜는 거듭 고개를 숙였다.
그녀에게 있어서 북풍대주란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어려운 상관이었다.
조상은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네 뜻은 잘 알겠다. 내가 공자께 가볼 테니 돌아가거라. 다시는 연무장에 몰래 와서는 아니 될 것이야.”
소혜는 사면령이라도 받은 죄인처럼 기뻐했다.
“네!”
그 사이 남천휘가 한 번 더 나자빠졌다.
소혜는 눈물을 흘리는 약이라도 먹은 사람처럼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이제 스물여섯 번째네요.”
조상은 남천휘를 향해 다가가다가 읊조렸다.
‘스물일곱.’
그의 눈빛에는 의아함이 가득했다.
‘넘어질 때마다 웃으시는군. 이게 무슨······.’
그 사이 고통을 즐기는 괴벽이라도 생긴 걸까.
조상은 굳은 표정으로 연무장에 들어섰다.
“크흠.”
남천휘는 히죽거리다가 조상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조 대주.”
조상의 레벨은 34였다.
북풍대주라는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여전히 수련에 힘쓰는 게다.
좋은 만큼, 진지했고, 멋진 사내였다.
그래, 저 사람라면 좋은 비무 상대가 되리라.
“아! 공자, 제가 찾아온 이유는······.”
남천휘는 손사래를 쳤다.
“소혜가 지켜보는 것 봤어요. 아마 조 대주는 제가 걱정 돼서 찾아오셨겠지요.”
“아, 네. 그렇습니다.”
조상은 대꾸를 하면서도 의아했다.
‘삼공자의 눈썰미가 이렇게 좋았나?’
그 사이 남천휘는 바닥에 깔린 돌을 치웠다.
“좋은 때 오셨어요.”
“네?”
“반 시진이 지금 막 지났거든요.”
영문 모를 소리가 이어졌다.
하나 생뚱맞은 말의 최고봉은 따로 있었다.
스릉-
남천휘가 직도를 뽑았다.
“시간 괜찮으시면 논검이나 한 번 하시지요.”
조상은 옅은 미소를 보였다.
무공광이라 그런지 비무라는 말에 감정을 드러낸다.
“달포 동안 많이 변하셨을까요?”
남천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많이 변했다기보다 뭔가 하나를 추가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