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하루 만에 토끼를 잡는 방법. (2)
*
≪냉기 저항이 +1 상승했습니다.≫
한 손에는 박도를, 다른 손에는 올가미를.
남천휘는 새하얗게 펼쳐진 눈밭을 걸었다.
하나 그가 남겨놓은 발자국은 열을 헤아리기도 전에 새로 내린 눈에 덮여 사라졌다.
≪냉기 저항이 +1 상승했습니다.≫
남천휘는 추위에 옷깃을 여미며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벌써 20개는 더 올랐겠다. 그런데 왜 이렇게 추운 거야?”
인근의 야산을 헤맨 지 두 시진 째.
토끼는 구경도 못했다.
애초에 박도와 올가미만 가지고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물이라도 가져올 걸 그랬나?’
남천휘는 시야 상단에 나열된 숫자를 보며 침음을 흘렸다.
21 : 44.
앞의 숫자 2가 한 시진을 뜻한다고 했다.
그러니 천상의 두 시간은 인세의 한 시진임 셈이다. 첫 임무의 제한시간이 눈앞에서 줄어들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조급해졌다. 그래서 다짜고짜 박도와 올가미만 챙겨서 나선 길이었다.
“하루에 토끼 열 마리를 어떻게 잡아!”
◎ 해당 지역의 토끼 개체수와 비례하는 적정 수준의 임무입니다.
난이도가 높아도 너무 높다.
마치 처음으로 검을 쥐는 사람에게 검기(劍氣)를 만들어내라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싶다.
“그렇다면 토끼 군락지 정도는 가르쳐줘야 하는 것 아니냐?”
재이는 대답 대신 기계적인 한 마디를 쏟아냈다.
≪지속적인 체력 저하로 인해 능력치가 하락합니다.≫
“상태창!”
남천휘의 짜증 섞인 한 마디와 함께 두루마리 형태의 상태창이 펼쳐졌다.
《남천휘(南天輝)》
- 소속 : 곡부남가(曲阜南家)
- 호칭 : 없음
- 별호 : 없음
- 등급 : 1
- 성향 : 조건부 선(善)
- 조화 : 균형적(68)
▼ 능력
1, 주요 수치.
근력(筋力) : 6(-4)
민첩(敏捷) : 3(-2)
체력(體力) : 6(-5)
지혜(智慧) : 3(-3)
내공(內功) : 5
2, 보조 수치.
저항 : 냉기저항(22)
‘추가 능력치를 배분하는 건 말이 안 되고······.’
튜토리얼 십 단계로 열 개의 능력치를 얻었고, 완료로 인해 열 개가 추가로 지급된 상태였다.
하나 성급하게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당장 발등에 불 떨어진 것도 아니고.
다만 눈 내리는 산을 헤매다 보니 능력치가 예상보다 많이 하락했다.
확실히 처음 산에 올라왔을 때보다 발이 무거웠다.
‘그나저나 나 엄청 약하네.’
어린 시절 추궁과혈도 받아봤고, 괜찮은 무사부에게 수련도 받지 않았던가. 한데 상태창에 나열된 능력치는 예상보다 너무 낮았다.
‘재이, 시간이 지나면 더 떨어지는 거지?’
◎ 수치가 0에 이르면 행동이 불가능합니다. 충분한 휴식과 치료 행위가 동반되지 않을 시 대상자의 사고가 정지됩니다.
남천휘는 진저리를 쳤다.
사고가 정지된다는 건 곧 죽는다는 의미리라.
‘안 되겠어. 돌아가자.’
시야 구석에 지도를 활성화시켰다.
야산의 새카만 지형 중 그가 왔던 길만 밝게 번져 있었다. 그렇기에 돌아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체력의 저하로 인해 돌아오는 시간이 두 배로 걸렸을 뿐이다.
*
남천휘는 차를 후후 불어가며 홀짝였다.
얼어붙었던 몸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그로 인해 하락했던 능력치가 복구됐다는 알림이 들렸다.
“삼공자께서 이곳에는 어쩐 일입니까?”
남천휘는 담담한 한 마디에 슬쩍 고개를 들었다.
맞은편에는 일견하기에도 진중한 표정의 삼십 대 사내가 자리했다.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단단한 바위를 연상케 하는 인상이다.
‘흐음, 신기하네.’
이름 : 조상(??)
지위 : 북풍대주(北風隊主).
이 또한 레벨 업 시스템으로 인해 새롭게 등장한 능력이다.
시선을 집중하면 상대방의 이름과 신분이 보였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예상컨대 친분이 있거나, 통성명을 했을 경우에만 나타나는 듯했다.
‘등급은 나랑 엇비슷한 경우에만 나타날 테고.’
어찌됐든 조상(曹上)은 절정의 고수로 곡부남가의 유일한 타격대를 이끌었다. 남가(南家)를 지키는 북쪽 바람이라 하여 북풍대다.
또한 그는 낭인 출신으로 쾌검(快劍)의 고수였다.
가주(家主)인 남운군에게 목숨 빚을 진 이후 십 년 동안 수하를 자처할 만큼 협사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진중한 표정만큼이나 믿을 수 있는 존재였다.
“대주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서요.”
조상은 무심한 눈동자에 이채가 스쳐갔다.
“검법을 배우고자 하십니까?”
남천휘는 슬쩍 상체를 뒤로 했다.
조상은 자신의 독문검법인 섬영검법(閃影劍法)을 아낌없이 전수하는 사람이다. 북풍대에 속한 서른 명의 무인들이 모두 섬영검을 익혔을 정도였다.
하나 남천휘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저는 중양칠도만으로도 차고 넘쳐요.”
곡부남가의 가전도법을 방패로 내세웠다.
그러자 조상은 아쉽다는 듯 한 숨을 내쉬었다.
“아쉽군요. 삼공자의 신체 조건이야 말로 섬영검법을 익히기에 최적이거늘. 기다란 손가락과 유연한 몸까지. 이거 농담 아닙니다.”
그러시겠지요.
저런 표정으로 우스갯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농담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다고 봐도 무방할 터였다.
그리고 당신이 내 능력치를 못 봐서 그래요.
민첩 수치가 겨우 5라고요.
“하하, 칭찬 감사해요.”
남천휘의 말에 조상은 표정 변화 없이 물었다.
“그럼 부탁하실 일이 뭡니까? 힘이 닿는 대로 도와드리겠습니다.”
“예전에 낭인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럼 사냥에도 조예가 깊으시겠네요?”
조상은 쓴웃음을 흘렸다.
“낭인이라고 해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수행하는 자들은 홀로 생활하며 이것저것 익히지요. 하나 저는 매검을 했습니다. 무공을 팔아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다시 무공을 익혔지요. 사냥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신 거라면 사람을 붙여드리겠습니다.”
“잘 됐네요. 부탁드릴게요.”
남천휘는 목적을 이룬 이상 자리를 길게 끌지 않았다. 한데 조상은 남천휘가 처소를 나서기 전 말을 덧붙였다.
“섬영검의 변화는 분명 중양칠도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언제든 찾아오십시오.”
남천휘는 유혹을 뿌리치며 처소를 빠져나왔다.
조상에게 붙잡혀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쏘아놓은 화살처럼 흐르고 있었다.
“하루는 불가능합니다.”
송겸은 조상이 추천한 엽사 출신의 대원이다.
그는 토끼 열 마리를 잡는 건 손쉬운 일이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그러나 하루라는 기한을 듣자마자 손사래를 쳤다.
“놈들이 다니는 길을 찾아야 하고, 미끼도 뿌려야 하며, 토굴도 막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짧게 잡아도 삼 일은 걸릴 겁니다.”
남천휘는 낙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생각해보면 하루 만에 토끼를 잡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니까.’
반면 그의 눈은 송겸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바로 송겸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이름 때문이다.
이름 : 송겸(?)
지위 : 북풍대원.
송겸은 북풍대원 중에서도 신입이다.
그런 송겸의 등급조차 확인할 수 없는 것이 남천휘의 현실이었다. 한데 조상(??)과 송겸(?)의 등급은 명백한 차이를 보였다.
‘조 대주의 등급은 두 자리고, 송겸은 한 자리라는 뜻인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줄어드는 시간으로 인해 마음은 조급하기만 했다.
*
“후우.”
눈가는 파르르 떨리고, 호흡은 거칠다.
이마를 긁적이는 손놀림은 초조함으로 인해 더욱 거세졌다. 마치 밧줄로 심장을 꽁꽁 묶은 후 옥죄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다.
남천휘의 눈동자가 슬그머니 위를 향했다.
첫 임무의 제한 시간은 어느새 한 시진도 채 남지 않은 상태였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거야. 계단도 한 번에 여러 개를 오르면 탈이 나는 법이라고. 그런데 하루에 토끼 열 마리를 잡으라는 게 말이 돼? 등급이라도 높았으면 말을 안 한다. 1레벨로 뭘 할 수 있는 건데? 보통 무공에 입문할 때도 첫 날은 뜀뛰기 정도만 하고 집에 간단 말이야.”
구시렁거리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렀다.
남천휘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으나, 결국 시간이 1 시간 단위로 떨어지는 구경해야 했다.
‘토끼가 문제야. 토끼를 잡아야 하는데······.’
그 순간 누군가 속삭이듯 말을 건넸다.
“저녁은 뭘 드시겠어요?”
남천휘는 자신도 모르게 입안에 되뇌던 한 마디를 흘렸다.
“토끼.”
그러자 의외의 대꾸가 돌아왔다.
“네. 탕으로 할까요? 구이로 할까요?”
남천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몸을 돌렸다.
소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 뭐라고 했어?”
“저녁은 토끼 고기로 하신다면서요. 그럼 주 요리는 탕과 구이 중 어느 쪽이 좋으신가요?”
남천휘는 대꾸하는 대신 눈을 끔뻑였다.
“우리 집에 토끼 있어?”
소혜는 헤죽 웃으며 말했다.
“가주께서 토끼 구이를 좋아하시잖아요. 당연히 있지요.”
분명 가주를 떠올리며 즐거워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남천휘는 질투하는 대신 가주의 미식관에 환호했다.
“토끼가 있어!”
“네.”
“그럼 나 토끼 잡을 수 있는 거야?”
소혜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글쎄요. 잡는 건 몰라도 먹는 건 확실해요.”
어째서 생각하지 못했을까.
곡부남가는 곡부에서 최고는 아니더라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부호가 아니던가. 호랑이는 없어도 토끼 정도는 차고 넘칠 터였다.
“가자!”
남천휘는 벌떡 일어나 장삼을 걸쳤다.
“해가 졌는데 어디를 가시게요?”
“어디기는! 토끼 잡으러 가야지!”
이건 꼼수다.
첫 임무의 이름은 피의 무게였다.
분명 산 중을 헤매며 힘겹게 토끼 사냥을 하도록 의도했으리라. 대자연과 인간의 사투를 구경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하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마당에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다.
‘이것도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첫 단추를 잘 못 꿰면 두 번째부터 잘 꿰면 된다는 것이 남천휘의 신조였다.
그그극-
그는 양 손에 나눠지고 있던 식도를 맞부딪쳐 음산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토끼장 안에 발을 들이고, 잠시 후 알림이 연이었다.
《토끼 사냥에 성공했습니다.(1/10)》
그리고 열 번의 알림 끝에 고대하던 한 마디가 들려왔다.
《토끼 사냥에 성공했습니다.(10/10)》
《퀘스트 ‘피의 무게’가 완료되었습니다.》
《퀘스트 보상이 지급됩니다.》
《첫 퀘스트 기념 특별 보상이 지급됩니다.》
《첫 호칭이 생성되었습니다.》
《첫 호칭 기념 특별 보상이 지급됩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재이의 기계적인 음성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뭐가 됐든 잡기만 하면 되는 거였구나.
아버지가 부자라서 참 다행이다.
아버지, 고마워요. 효도 할 게요!
남천휘는 양 팔을 늘어트린 채 깊이 호흡했다.
폐부까지 한달음에 들이친 맑은 공기로 인해 절로 폭소가 터져 나왔다.
“크크큭! 크하하하하!”
하나 토끼장 밖에 있던 소혜는 울상을 지었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 웃고 있는 삼공자를 어찌 대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히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