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3화 (3/305)

4, 하루 만에 토끼를 잡는 방법.

4, 하루 만에 토끼를 잡는 방법.

강호는 평화롭다.

사실 산동을 벗어난 적이 없어서 확신은 못하겠다.

어쨌든 남천휘가 보는 세상은 평화로웠다.

산동성은 그 자체로 물산의 생산지이자, 집결지였다. 일거리가 많으니 굶주리는 자가 없고, 일을 할 수 있으니 도둑질을 하는 자도 많지 않았다.

사람들의 하루는 너나 할 것 없이 비슷했다.

한데 남천휘의 하루는 달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단순히 바뀐 것을 넘어 천지개벽 수준으로 변해버렸다.

‘인벤.’

생소한 언어가 익숙하게 흘러나왔다.

그 순간 남천휘의 시야 좌측 하단에 손바닥만한 창이 생성됐다.

《은자1냥, 동전 20개.》

《천품육포 네 조각.》

《언젠가 전할 연서(戀書) 한 통.》

모두 남자라면 누구나 주머니 속에 넣고 있을 만큼 흔한 소지품이다. 한데 주머니를 뒤적거려 동전을 하나 꺼내는 순간 목록에 보이던 동전은 20개에서 19개로 변경됐다.

‘다시 봐도 신기해!’

남천휘는 키득거리며 동전을 만지작거렸다.

그런 그를 지켜보던 소혜는 머리카락 끝을 손가락으로 꼬았다. 그녀가 알던 삼공자와는 달리 종잡을 수 없는 낯선 사내가 보였다.

‘설마 나 때문인가?’

빨래터에서 들은 이야기가 뇌리를 스쳐갔다.

그녀는 남천휘의 등을 보며 연거푸 한숨을 내쉬다가 힘없이 돌아섰다.

남천휘는 등 뒤에 소혜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떠나든 말든 개의치 않고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모든 관심이 재이에게 집중된 상태였다.

‘어차피 뭘 해도 이상해 보일 거라면······.’

재이의 존재는 밝힐 수 없다.

하나 재이의 알림은 제멋대로 나타날 것이고, 자칫하면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 놀랄 수도 있을 터였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대놓고 중얼거리기로 했다.

처음에는 이상해 보여도 계속 보면 대수롭지 않게 여기리라.

‘무엇보다 자랑하고 싶다! 자랑하고 싶어!’

남천휘는 동전을 꼭 쥔 채 몸부림을 치며 키득거렸다. ‘인벤토리’를 줄여 부르는 ‘인벤’이라는 명령어의 위력은 단순히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가 동전을 허공으로 튕긴 후 주머니를 떠올렸다.

그러자 허공으로 솟구쳤던 동전이 자취를 감췄다.

그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주머니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이건 정말 대단한 거다!

무공의 경지가 절정을 넘어 초절정에 이르면 멀리 떨어진 물건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단다.

그것을 허공섭물(虛空攝物)이라 했다.

인벤의 위력은 허공섭물에 뒤지지 않을 터였다.

‘아니, 어쩌면 전설의 경지인 이형환위와 다를 바가 없잖아?’

이형환위는 흔히 얘기하는 축지법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흔적도 없이 공간을 접어서 이동하는 상승의 경지였다. 어쩌면 순간이동이라는 관점에서 인벤의 위력은 이형환위에 버금가지 않을까 싶다.

신능(神能).

그래, 이건 신이 준 능력이다.

그렇지 않으면 설명할 도리가 없고, 더 깊이 파고들 까닭도 없다. 십 년 전 하늘의 도움으로 살아났고, 그 때부터 시야에 이상한 것이 보이지 않았던가. 그러니 재이의 존재 또한 천상(天上)의 것일 터였다.

‘귀신이나 지옥보다는 낫잖아?’

남천휘는 긍정적으로 웃으며 주머니 속의 육포를 생각했다. 그 순간 엄지와 검지 사이에 육포 한 조각이 나타났다.

‘확인.’

《천품당에서 만든 고급 육포.》

- 은자 한 냥으로 한 장을 살 수 있는 고가의 식품으로 상질의 식감과 적당한 영양분이 포함되었다.

천품육포에 대한 설명이다.

그리고 이것이 ‘인벤’의 두 번째 공능이다.

‘뭐가 됐든 맛만 좋으면 그만이지!’

남천휘는 모든 것을 뭉뚱그려 결론을 내린 후 육포를 오물거렸다.

이제 재이는 언어를 혼용해서 사용하지 않는다.

튜토리얼 모드를 끝낸 후 남천휘에게 한 가지 혜택이 내려왔다. 특수 상황으로 인해 십일 간의 적응 기간을 받아냈다.

남천휘는 그 동안 재이가 사용하는 천상의 언어를 모조리 숙지한 후였다.

‘상태창.’

그 순간 시야의 우측에 족자가 나타났다.

그것은 저절로 스르륵 풀렸고, 엄청난 정보를 쏟아냈다.

《남천휘(南天輝)》

- 소속 : 곡부남가(曲阜南家)

- 호칭 : 없음

- 별호 : 없음

- 등급 : 1

- 성향 : 조건부 선(善)

- 조화 : 균형적(68)

▼ 능력 ▼ 장비 ▼ 성취

▼ 특기 ▼ 비책 ▼ 인맥

남천휘는 지난 며칠 동안 질리도록 봐온 상태창을 유심히 살폈다.

이름과 별호, 등급에는 이견이 없다.

재이의 모든 것은 남천휘를 중심으로 수치화됐기 때문이다.

성향도 조건부지만, 착하다니 나쁘지 않았다.

‘저 조화라는 건 대체 뭐지?’

재이는 잠시 침묵했다.

아마 천상의 언어를 이쪽 세계에 맞게 번역하고 있는 중이리라.

◎ 심신(心身)의 조화를 뜻합니다. 무공은 기본적으로 외공과 내공이 균형을 이뤘을 때 최대의 효과를 발휘합니다. 현재 대상자의 수치는 (68)로 균형적입니다.

남천휘는 탄성을 흘렸다.

곡부남가 또한 강호에 한 발을 걸치고 있었다.

그렇기에 가전 무공이 존재했고, 자식이니 당연히 그것을 익힌 상태였다.

‘그럼 50이 가장 좋은 거네?’

그렇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그리고 낮을수록 정신력이, 높을수록 체력 쪽으로 치우쳤음을 알려줬다.

수긍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곡부남가의 가전무공은 힘으로 짓누르는 패도다.

그렇기에 유연성을 기르기보다 근력 자체를 활용한 수련법이 존재했다.

제아무리 남천휘가 무공을 등한시했어도 체력 쪽에 치우친 건 당연한 결과였다.

하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성취나 균형을 논할 단계도 아니었다.

‘이제 시작이잖아!’

허공에 주먹을 불끈 쥐고 결의를 드러냈다.

하나 재이는 격려도, 호응도 하지 않았다.

남천휘는 버름한 마음에 상태창 하단을 슬그머니 살폈다.

여섯 개의 하위 목록이 존재했다.

‘크흠, 능력 개방.’

≪준비 기간에는 상세 정보 열람이 불가능합니다.(남은 시간 : 1일)≫

장비와 성취, 특기와 인맥 또한 하루가 지나야 열람이 가능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몸으로 부딪칠 걸. 재이, 내가 알아야 할 것이 더 있냐?’

◎ 제반 지식의 전이는 이미 완료되었습니다.

남천휘는 재이에게 배운 천상의 언어를 읊조리다가 히죽 웃었다. 그러고 보면 기계적인 알림과 달리 자신의 물음에 대꾸할 때에는 목소리가 조금은 부드러워진 듯했다.

한결 나아진 기분으로 되물었다.

‘레벨이 저 등급이라는 거지? 그럼 레벨을 어디까지 올려야 하는 거야?’

◎ 원하는 부분을 명확히 인지할 수 없습니다. 명확한 범주를 지정해주십시오.

‘그러니까 일대종사나 패주처럼 지존이라 불리는 절대고수들은 어느 정도야?’

◎ 판별이 불가능합니다.

남천휘는 헛웃음을 흘렸다.

이럴 거면 그냥 모른다고 했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코딱지만큼 올라왔던 호감을 손가락으로 튕겨낸 후 침상에 누웠다.

‘쩝. 됐고, 일찍 깨우기나 해.’

◎해가 뜨는 시간을 기점으로······.

남천휘는 재이의 알림을 자장가삼아 잠을 청했다.

마치 전용 시비가 생긴 듯하지 않은가.

아! 소혜도 있었지.

*

남천휘는 잠결에 머릿속에서 울린 알림에 벌떡 일어났다. 마치 귀에 대고 수십 개의 징을 친 것처럼 시끄러운 소리였다.

“야! 예고라도 해야 할 것 아냐? 누가 잠을 이렇게 무식하게 깨워?”

하나 재이는 남천휘의 기분과 상관없이 제 할 말을 기계적으로 쏟아냈다.

≪ 특급 강호인 승급 체계를 위한 레벨 업 시스템이 활성화됩니다. 대상의 근력도와 민첩성을 비롯한 수치가 업로드 됩니다.≫

≪임무를 완수할 때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보상은 난이도 별로 차등 지급됩니다.≫

≪임무는 대상자가 원활한 성장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무한 생성됩니다.≫

연습이 끝나고 실전이라는 의미였을까?

어딘가 모르게 재이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근엄했다. 그리고 잠시 후 누군지 모를 사내의 격렬하고, 호기로운 외침이 이어졌다.

≪무인에게 있어서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갈 동반자는 곧은 의와 뜨거운 협입니다. 신병이기도 고절한 무공도 협의지심 앞에서는 곁가지에 불과합니다.

자! 일어나세요.

그리고 싸우자. 승리하자.

칼을 잡자! 창을 들자! 주먹을 쥐자!

세상이 그대를 기다린다!

당신의 지존행(至尊行), 무적행(無敵行), 군림행(君臨行)의 첫 보를 내딛어라!≫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주책없게 뛰었다.

마치 징집관의 일장연설을 들은 병졸처럼 호연지기가 치솟았다. 당장이라도 세상을 발아래 꿇릴 듯한 웅심을 담아 외쳤다.

“좋아! 뭐든 다 해버리겠어! 내가 뭘 하면 되지?”

남천휘는 뭐에 홀린 것처럼 주먹을 불끈 쥔 채 침상에서 뛰쳐나왔다.

그 순간 첫 퀘스트가 하달됐다.

띠링!

≪피의 무게≫

- 토끼 10 마리를 잡으세요.

- 제한 시간 : 하루.

남천휘는 눈을 끔뻑였다.

호연지기는 안개처럼 흩어졌고, 웅심은 치솟은 것보다 빠르게 가라앉았다.

‘웬 토끼?’

◎ 초심자에게 어울리는 사냥감은 뭐니 뭐니 해도 슬라임인 것이 전통입니다. 대상 지역에서 슬라임을 발견할 수 없기에 차 순위인 토끼가 퀘스트 대상으로 지정됩니다.

남천휘는 재이의 설명에도 표정을 풀지 않았다.

‘잠깐! 슬라임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치자. 그래도 이건 아니지.’

그 때 처소 밖에서 소혜의 신바람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도련님! 눈이 와요. 첫 눈이 와요! 와아아아!”

남천휘는 이마를 긁으며 말했다.

“들었지? 지금은 겨울이라고. 한겨울에 토끼를 하루 만에 어떻게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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