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2화 (2/305)

3, 사용지침단계.

3, 사용지침단계.

《튜토리얼 모드, 즉 사용지침단계가 개방됩니다.》

남천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갑자기 허공에서 연기가 뭉쳐들더니 사람의 형상을 취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여인의 기계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귀신이냐?”

대답은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놀란 마음에 저절로 튀어나온 한 마디였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여인은 제 할 말에만 열중했다.

《대상자는 현재 ‘재이나’의 사용지침단계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사용지침단계를 수행함으로써 기본 조작과 방향성, 그리고 추가 보상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수행하시겠습니까?》

‘재이나? 이름하고는······.’

재이(災異)는 재앙이 되는 괴상한 일을 뜻한다.

그리고 지금껏 여인이 해온 짓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 어울리는 이름은 없을 터였다.

이번에도 시간제한을 알리는 듯한 알림이 연속해서 들려왔다.

하나 남천휘는 예전처럼 놀라는 대신 눈을 가늘게 뜨고 여인을 살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충격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쨌든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는 것만으로도 한결 마음이 편했다.

오히려 호기심이 물씬 피어올랐다.

“야! 어차피 시간 지나면 네 마음대로 시작할 거잖아. 안 그래?”

이번에도 대답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대상자의 성장을 위한 최적의 결정입니다.》

남천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전과 달리 말이 통하는 듯하지 않은가.

“오호! 내 위주인 거냐? 내가 갑이고, 네가 을이네. 그럼 네 이름부터 고치자. 부르기 어려우니까 그냥 재이다. 알았냐?”

《설정 변경이 완료됐습니다.》

이것 봐라?

“춤 춰봐.”

《현재 실행 가능 목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남천휘는 히죽 웃었다.

어찌됐든 재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됐다는 건 확실했다. 그리고 현재라는 단서가 붙은 것으로 보아 차후에 무언가 시킬 수 있음이 밝혀졌다.

“하하, 재밌네.”

손을 뻗어 안개처럼 뭉쳐있는 재이를 눌렀다.

그 순간 재이가 안개처럼 흩어졌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답답하거나,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리라.

하나 그보다 더 큰 호기심이 수많은 감정과 우려를 가볍게 짓눌렀다. 사실 지난 십 년 간 답답함과 두두려움을 그림자처럼 달고 살았다.

그렇기에 지금은 오히려 후련했다.

“너 정체가 뭐냐?”

《현재 튜토리얼 모드를 담당하는······.》

똑같은 말이 반복됐다.

남천휘는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어차피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되잖아. 설마 네가 남천익보다 나를 더 괴롭히지는 않겠지?’

그는 매번 형들에게 꿈도 희망도 없는 삶이라고 혼쭐나기 일쑤였다. 특히 둘째 형인 남천익이 유독 심했다. 하나 남천휘는 그럴 때마다 자신의 성격을 낙천(樂天)이라고 포장했다.

한 번 사는 인생 적당히 즐기다 가면 되는 게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오늘이었고, 내일도 마찬가지인 삶이었으리라. 한데 그런 평범한 인생에 무언가 변화가 시작됐다.

남천휘는 호기심 가득한 눈을 반짝였다.

“사용지침단계라고 했지? 그럼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거냐? 좋아! 해보자.”

《튜토리얼 모드 1단계가 시작됩니다.》

‘투토리얼? 그건 또 뭐냐?’

◎ 사용자가 수행할 수 있는 동작과 상태를 비롯해 원활한 퀘스트 진행을 통해 특급 강호인으로 승급할 수있게 되는 체계를 반복 연습하는 단계로······.

남천휘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이마를 짚었다.

모르는 단어, 심지어 발음하기도 어려웠다.

“됐고! 지금부터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혼용해서 설명하도록 해. 내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설정 변경이 완료됐습니다.》

재이의 형상은 기계적인 음성을 남긴 채 흩어졌다.

말이 통한다는 게 이렇게 뿌듯할 줄이야.

재이가 사라진 자리에는 샛노란 화살표가 나타나 반짝거렸다.

‘오라고?’

남천휘는 들뜬 마음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렇게 십여 걸음을 갔을 때였다.

화살표는 어느새 좌측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발길을 돌려 다시 십여 걸음을 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방향이 우측으로 바뀌었다.

남천휘는 미간을 찡그린 채 우측으로 발끝을 돌렸다.

“야! 잠깐!”

아니나다를까 이번에는 후방을 향했다.

“지금 나한테 걸음마 연습시키는 거냐?”

갓난아기가 아니고, 방향치가 아니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닌가.

놀림을 받았다는 생각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하나 짜증을 분출하기 직전 시야 상단에 한 줄의 문구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1단계 통과로 인한 추가능력치 부여.(1/10)》

남천휘는 동시에 척추를 타고 흐르는 찌릿함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동시에 잠시나마 목욕을 한 것처럼 상쾌함이 느껴졌다.

‘어! 이게 뭐였지?’

왠지 낯설지 않았다.

그 순간 옛 추억이 책장을 넘기듯 펼쳐졌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큰돈을 주고 고수를 초빙한 적이 있었다. 당시 고수는 삼형제의 몸을 주물러 노폐물을 빼준 적이 있지 않던가.

지금의 감각은 그 때의 상쾌함과 같았다.

‘이거 추궁과혈이잖아!’

남천휘는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몸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아마 운기조식을 하면 평상시보다 내력의 운용이 원활할 터였다.

“하하하.”

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동시에 튜토리얼의 목적을 깨우쳤다.

단계를 통과할 때마다 보상을 주는 것이 분명했다.

‘의뢰 같은 거로구나.’

곡부남가는 몇 개의 다루와 객잔, 그리고 상단과 표국을 한 곳씩 운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표국에 의뢰를 하고, 대금을 치르는 모습이 익숙했다.

자, 계산해보자.

‘사용지침단계’를 모두 완수하면 10번의 보상이 지급될 터였다. 보통 절정 고수가 추궁과혈을 해주는 가격은 회당 은자 서른 냥이다. 단순한 계산만으로도 은자 삼백 냥에 해당하는 보상이 아닌가.

‘최고다! 좋아! 다음은 뭐지?’

그나마 짓눌려 있던 우려는 가루가 되어 어디론가 사라졌다. 잔뜩 신이 난 남천휘의 말에 호응하듯 재이의 알림이 들려왔다.

《튜토리얼 모드 2단계가 시작됩니다.》

남천휘는 호기롭게 외친 것이 무색할 만큼 눈을 휘둥그레 떴다.

허공에 선이 그어졌다.

이윽고 그것은 네모가 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 크고 작은 표식이 새겨졌다.

마치 지도와 같았다.

‘이거 우리 집 구조도잖아!’

‘이런 게 가능한가?’라는 의문보다 ‘이런 것도 할 줄 알아?’ 라는 놀라움이 더 컸다.

애초에 존재부터 불가해(不可解)가 아니던가.

고민은 남천휘와 어울리지 않았다.

“흐음.”

한데 구조도가 조금 이상했다.

어느 부분은 상세했고, 어느 부분은 대충 그려져 있었다. 심지어 검게 칠해져서 내용물을 알아볼 수 없는 부분도 존재했다.

‘여기가 내 방이고······.’

남천휘는 구조도의 차이점을 금세 알아차렸다.

자신의 처소는 후원의 나무 위치까지 정확한 반면 부모님이나 형들의 처소는 그리다 만듯했다. 게다가 평소 관심이 없던 연무장이나 외원 쪽은 아예 까맣게 물든 상태였다.

‘아!’

뒤늦게 재이가 자신의 기억을 토대로 정보를 수집했다는 알림이 떠올랐다.

남천휘는 연무장 쪽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2단계의 목적은 뻔했다.

검은 부분을 드러내면 보상을 받을 수 있으리라.

‘나 좀 똑똑한 듯.’

하나 의기양양했던 것도 잠시였다.

한 시진 가까이 외원을 돌아다녔어도 검게 물든 부분은 밝아질 줄을 몰랐다.

“아! 진 빠진다.”

남천휘는 처소에 돌아오자마자 의자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여전히 반투명하게 떠올라 있는 구조도를 향해 신경질적으로 손을 내저었다. 하나 안개처럼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들 뿐이다.

‘단순히 간다고 되는 게 아닌 건가?’

남천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탁자 위에 쌓여 있는 서책을 꺼냈다. 그것은 아버지인 남운군이 몇 년 전 정리한 곡부남가의 계보도(系譜圖)였다. 그는 계보도 뒷장에 그려진 구조도를 펼쳐보았다.

‘확실히 재이 쪽이 낫군.’

사실상 서책이 유출될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완벽한 구조도가 있을 리 만무했다.

남천휘는 별 생각 없이 책장을 넘기던 중 눈을 휘둥그레 떴다. 곡부남가의 건물 중 양선각에 대한 내용을 읽었을 때였다. 양선각은 양곡을 쌓아놓는 창고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다.

한데 양선각의 건립시기와 건립목적을 확인한 순간 검게 물들었던 구조도의 한 부분이 밝게 변하는 것이 아닌가.

“엇!”

남천휘는 자세를 바로하고 계보도를 읽었다.

그가 계보도를 세 번이나 정독한 후 덮었을 때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이런 식이었냐?’

흐릿했던 구조도의 상당 부분이 밝아졌다.

아무래도 단순히 거쳐 가는 것보다 건물에 대한 이해가 우선시되어야 하는 듯했다.

해법을 찾았으니 임무 완수는 식은 죽 먹기였다.

남천휘는 내원과 외원을 순차적으로 탐방했다.

그리고 평소 인사만 나눴거나, 데면데면한 식솔들과 대화를 나눴다. 시답지 않은 대화였음에도 지도는 밝아졌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이제 남천휘의 머릿속에는 완성된 곡부남가의 구조도가 새겨졌다. 최소한 눈을 감고 걸어도 부딪치지 않을 정도의 정확도를 자신했다.

그리고 기다렸던 알림이 울렸다.

《2단계 통과로 인한 추가능력치 부여.(2/10)》

쾌감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짜릿함이 전신을 휘저었다.

《튜토리얼 모드 3단계가 시작됩니다.》

그 후로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튜토리얼은 연습 무대였다.

남천휘는 3단계 완료를 위해 곡부남가의 재정을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4단계 완료를 위해 하루 종일 목검을 휘두르며 체력을 소진시켰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쉭! 쉭! 쉭!

직도(直刀)가 매섭게 허공을 갈랐다.

남천휘는 튜토리얼 10단계를 완수하기 위해 가전무공을 수련하는 중이다. 그리고 해가 질 무렵 기다렸던 재이의 기계적인 음성이 들려왔다.

《10단계 통과로 인한 추가능력치 부여.(10/10)》

온몸을 짜릿하게 만드는 보상이 이어졌다.

그리고 남천휘의 기분 좋은 미소에 화답하듯 재이의 목소리가 뇌리를 가득 채웠다.

《튜토리얼 모드가 종료되었습니다.》

《추가 보상이 지급되었습니다.》

《안정적인 승급을 위해 상태창이 공개됩니다.》

《특급 강호인 승급 체계를 위한 레벨 업 시스템이 기본 설정 모드로 실행됩니다.》

《실행하시겠습니까?》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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