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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194화 (완결) (194/194)

194화. 신의 재림 (완결)

"저, 저 사람이 바로......섬광의 기사, 리오 경......!"

가인트는 처음 만나는 리오 기사단장을 향해, 동경 어린 시선을 보냈다.

갑옷으로 가려졌지만, 가인트쯤 되는 실력만 갖추어도 알 수 있었다.

늠름하지만 군더더기 하나 없는 신체에.

강인함이 잔뜩 서린 눈빛.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뒷받침하는 명성과 섬광의 기사라는 고귀한 이명까지.

무엇하나 멋져 보이지 않는 게 없었다.

그런데 그런 리오 기사단장을 향해.

앤드류 총장이 웃으며, 생각도 못 한 말을 내뱉었다.

"어이, 신입! 선배 왔다!"

그 이야기를 들은 가인트는, 깜짝 놀라 사레가 들렸다.

"케엑! 콜록, 콜록!"

그런데 또 리오 기사단장은 그걸 받아 주는 게 아닌가!

"하하하하! 오랜만입니다, 앤드류 경!"

"이 녀석아. 꼭 선배가 직접 찾아와야 얼굴을 보냐? 어? 네가 한 번 올 수도 있잖아."

"죄송합니다. 시간을 내어서라도 한 번 찾아뵈었어야 하는데. 이래저래 바빠지다 보니. 하하하."

"변명은."

"일단은 들어가시지요."

"그래, 그래."

대체 앤드류 총장은 어떤 존재일까?......

매일, 언제나 곁에 있어서 잊고 있었던 것 같았다.

저 앤드류 총장이 명성을.

이름 값을.

'그런 분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는 것이었구나.'

다시 한 번 자신의 상황을 자각한 가인트는.

오랜만에 만난 지인을 보며 히히덕거리는 앤드류 총장이, 문득 다시 보였다.

* * *

"해서, 제가 전해 듣기로는 다음 주에 로한 경께서 여기 올드리온에 도착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리오 기사단장의 설명에 앤드류 총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행히 늦진 않았네."

"예. 오늘은 여정의 여독을 푸시죠."

"어어. 우리 신입이 쉬라고 하니까, 이제 좀 쉬어야겠어."

"하하하하. 언제까지 제가 신입입니까?"

"별수 없잖아? 그때 이후로 일곱 기사단 기사들 전부 다 멀쩡히 살아있는데 말이야."

다른 기사들 역시 크로토스와의 일전에서 크고 작은 부상을 입긴 했지만.

결국은 다들 어찌어찌 살아남았고.

실제로 일곱 기사단의 구성원이 변경되지는 않았다.

애초에 일곱 기사단의 구성이 그리 쉽게 휙휙 바뀌는 직위가 아니기도 했다.

보통 그 정도 영역에 도달하는 자들이 흔치도 않을뿐더러.

이번 세대의 일곱 기사들은 그야말로 최악의 전쟁을 겪어낸 실전파들이었기에.

하나같이 나이를 먹어도 감히 젊은이들이 덤빌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대영웅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놀랍게도 가장 신입은 앤드류 총장의 말대로, 아직까지 리오 기사단장이었다.

"반박을 할 수가 없네요."

"신입 해, 그냥. 젊어 보이고 얼마나 좋아?"

"하하하하. 하긴, 이제 저희 나이쯤 되면 젊어 보이는 게 좋긴 합니다."

"그래, 그래. 간만에 이렇게 다들 얼굴 보니, 마음은 아직 예전 그대로인데. 몸만 늙었어. 징글징글하게도."

"저희 둘만 늙은 거 같지 않습니까?"

"내 말이. 그래서 더 짜증 난다니까?"

앤드류 총장과 리오 기사단장이 그녀들을 쳐다보자.

그렌델이 말했다.

"로한 경 곁에서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하위 신격에 오른 덕에 이렇게 젊음을 잃지 않게 되기는 했는데......그 30년 동안도 마냥 쉬운 일만 있지는 않았다고요. 뭣하면, 지금이라도 같이 가던가. 두 분 다. 그 정도 실력이면......당장 지옥 정리하는데도 도움은 될 거 같은데?"

그렌델의 파격적인 제안에.

앤드류 총장과 리오 기사단장은 황급히 말을 돌렸다.

"지, 지옥?......크, 크흠. 리오야. 어디서 쉬면 된다고?"

"아. 지금 바로, 제가 직접 안내 해드리겠습니다. 가시죠!"

"그래 얼른 가자, 여기 있다가는 지옥 구경하게 생겼어."

"저는 중간계가 좋습니다."

그런 그들을 보며, 그렌델이 작게 웃었다.

"하여간."

* * *

올드리온에 도착하고 나서는 정말 간만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앤드류 총장도 좀 쉬고 싶다며.

훈련도 없었고, 특별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단지 호화로운 대접을 받으며 잘 먹고 잘 쉬었다.

처음 며칠 정도는 세상에 이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거의 평생을 스트라운 수도원에서만 살아온 가인트였다.

새벽 동이 트기 전에도 강제로 눈을 떠야 했고.

조금 편하게 밤 공기를 즐기고 싶어도 잠에 들어야 했다.

더 이상 칼 같을 수 없을 정도로, 절제되고 규칙적인 삶을 살아온 것이다.

"가끔은 이렇게 수도원 밖에서 바깥바람도 쐬고, 편하게 쉬기도 해야지. 안 그래? 하하하!"

앤드류 총장의 그 말이 너무나 좋았다.

영원히 이렇게 살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그러나.

막상 사흘쯤 지나자.

'이래도 되나.'

슬슬 걱정도 올라오는 것 같고.

꿈에서 몬테드 교구장이 노려보는 것 같기도 하고.

'몸도 찌뿌드드하고......'

결국 가인트는 제 발로 연무장을 향했다.

새벽녘의 연무장은 고요했다.

오로지 새벽의 차갑고 서늘한 공기만 그를 반겼다.

사흘 만에 가만히 검을 들자.

마치 검이 자신을 반기기라도 하듯, 손에 착 달라붙었다.

가인트는 이제껏 잊고 있었던 기분을 떠올렸다.

'그래......처음 기사로서 인정을 받고 검을 받던 그때. 참 좋았었지?......'

이 검을 받고, 얼마나 기뻐 날뛰었던가.

주변에서 적당히 하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가인트는 날개라도 단 것 같은 기분을 느꼈었다.

자신의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는 기쁨.

그리고 해냈다는 성취감.

더불어 과거의 힘들었던 기억들이 한데 뒤섞이며.

그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었다.

한데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기분 좋았던 그 순간을 잊고.

지금은 그저 힘들다고, 괴롭다고 투정이나 하고 있었으니......

'앤드류 총장님이랑 같이 여행하면서, 많이 느끼네.'

아이들을 가르칠 땐, 자신의 기본기 되돌아보았고.

지금은 자신의 초심을 되돌아보고 있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다만 지금은......

'이 초심을 조금만 느끼자.'

당장의 감정을 오롯이 느끼고 싶을 뿐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정신없이 휘두르다 보니.

"헛!......"

가인트는 어느샌가 무아의 경지에, 찰나이긴 하나 발을 들이고 있었다.

물론 오래 유지하지는 못한 채 금세 다시 정신이 들었지만.

부들부들!

그의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한 단계를, 또 뛰어넘은 것이었다!

"아쉽겠군."

갑자기 한 목소리가 들리자.

가인트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는 리오 기사단장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리오 기사단장님?"

"가인트 경이라고?"

"아, 예. 그렇습니다."

"형님 말씀대로, 꽤나 재능이 있는 친구로군. 그대로 계속 정진한다면......높은 경지에 도달할 걸세."

"형님이라 하신다면......"

"앤드류 경을 말하는 것이네. 자네가 슬슬 한 꺼풀 뛰어넘을 때가 되어, 그걸 위해 이번 여정에 그대를 데리고 출발했다더군."

이 모든 게 앤드류 총장의 계산이었던 것일까?

하긴.

진정 로한 경을 만나기 위함이라면, 그저 앤드류 총장 혼자서 오는 게 더 빠르고 편했을 터였다.

'총장님께서는......내 경지까지도 다 꿰고 계셨던 것인가?'

정말이지 보면 볼수록 굉장한 사람이었다.

속으로 가인트가 놀라는 동안.

리오 기사단장이 말을 이었다.

"어쩌면 나 정도는 금방 뛰어넘을지도 모르지."

예상치도 못한 칭찬을 듣던 그때.

저 멀리서, 한 명의 기사가 달려왔다.

꽤나 높은 직위의 기사 같아 보였는데......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리오 경! 지금 당장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왜? 무슨 일인가?"

"자세한 건 일단 가시는 길이 설명하겠습니다!"

"알겠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상황을 직감한 가인트는.

리오 기사단장에게 물었다.

"저도 동행해도 되겠습니까?"

그에 리오 기사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오게."

그리고 도착한 곳에서는......

가인트에게도 익숙한 얼굴의 기사 하나가 바닥에 주저앉은 채 옆구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 옆구리에서는 연신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큰 상처를 입은 채 숨을 헐떡이는 그는.

다름 아닌, 스트라운의 기사단장.

모리티 기사단장이었다.

한데 그의 모습은 성치 않았다.

모리티 기사단장은 심각한 얼굴로 리오 기사단장을 올려다보았다.

"비정상적인 트롤들이......!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 * *

비상 상황은 순식간에 전파가 되었고.

벌써 리오 기사단장이 이끌 기사단은, 전군 전투 준비를 마친 후 도열한 상태였다.

그 후 디아즈와 그렌델은 물론이요, 앤드류 총장 역시도 무장을 한 채로 나타났다.

"뭔데? 리오."

앤드류 총장은, 해가 꽤 높이 떠올랐음에도 자고 있었는지.

아직은 약간 부은 얼굴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어진 리오 기사단장의 말에.

제아무리 앤드류 총장이라도 정신을 차리지 않을 수 없었으니.

"교단의 모리티 기사단장이 지금 응급 치료실로 실려갔습니다."

"......뭐? 그 친구가 여기 있다고? 그 친구는 트롤 원정을 나섰었는데......"

"조금 전, 큰 부상을 입은 채 저희 측 정찰병에게 발견되었다 합니다. 기절하기 직전에 몇 가지 정보를 주었습니다."

"뭔데?"

"트롤 무리를 추적하던 중, 이 근처로 유인을 당했다 합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적과 조우했다 하는데......아무래도 악마로 보였다고 했습니다."

앤드류 총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악마라니."

한동안 중간계에는 악마가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가인트 역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악마는......문헌에서 밖에 본 적이 없는데.'

아직 그 또한 악마와의 전투를 경험해 본 적은 없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지금 집합한 올드리온 기사단의 전 병력은.

매우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것은 훈련 따위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었으니.

리오 기사단장은, 단상 위에 서서 자신의 기사들을 내려다보며 입을 떼었다.

"이번 전투는, 구조가 첫 번째다. 한 점을 돌파하여, 아군을 구출하고. 다시 진영을 갖춘 뒤 탈출. 그 이후 수성전으로 전투를 이어간다."

상대가 상대이기에 수성을 하는 것이 유리하기는 했으나......

모리티 기사단장이 이끌던 병력 대부분이 숲 속에 고립이 된 상황이라 하였다.

구원 병력을 구하기 위해 단신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겨우 적진을 돌파하였다 했다.

아군이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가만히 그들이 죽는 꼴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일분일초가 급하기에, 리오 기사단장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다.

"전군, 출정한다!"

* * *

사박, 사박.

최정예로 이루어진 리오 기사단은, 많은 숫자가 이동하고 있음에도 굉장히 은밀한 기동을 뽐내었다.

함께 하고 있던 가인트마저 놀랄 정도로.

'얼마나 수련을 한 걸까?'

그렇게 진군이 계속 이루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꽈악!

최선두에 있던 리오 기사단장은, 주먹을 틀어쥐어 높게 들어 올렸다.

멈추라는 신호였다.

그에 일사불란하게 멈춰선 기사들.

리오 기사단장은 말없이 수신호로 후방의 기사들에게 앞의 상황을 전달했다.

전방에 두 기의 트롤을 발견했다는 뜻이었다.

그것이 모두 전달될 때쯤.

리오 기사단장은 수신호를 이용해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전군 돌격!'

그와 동시에 디아즈와 앤드류 총장이 튀어 나가.

촤악! 촤아아아악!

일격에 두 기의 트롤을 베어버렸다!

굉장한 실력이 아닐 수 없었다.

방금 한 단계 더 한계를 돌파한 가인트였지만.

저런 실력에는 아직도 한참 미치지 못하였으니.

막상 눈으로 보니, 그 격차를 더더욱 실감할 수 있었다.

둘의 일격에 저 거대한 괴물들이, 기우뚱거리더니.

콰아앙......!

거목이 쓰러지는 소리를 내며 엎어졌고.

그것을 신호로, 기사들이 내달렸다.

"돌파하라!"

그러자 사방에서 트롤들이 새로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쿠어어어어어!"

"크와아아아아!"

물론 예상을 했었다.

고립된 아군들을 향해 트롤들 역시 몰이를 하고 있을 테니.

크게 그물망을 좁혀들어가는 형세가 되었을 터고.

그렇다면 한점 돌파를 하는 순간, 측면에서 다른 트롤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그런데......

"좀, 많은데?"

앤드류 총장의 말대로.

트롤들의 숫자가 이상하리만치 많았다.

마치 아군이 그물망을 돌파하는 게 아니라, 저쪽이 함정을 파놓고 매복을 한 것 같은......

"매복입니다!"

가인트의 머리에 그런 생각이 딱 떠오르는 순간, 디아즈 역시 소리를 쳤다.

멍청한 트롤들을 이끄는 그 악마라는 존재가 머리를 쓴 것 같았다.

그 순간.

모리티 기사단장이 언급했던 악마 놈이, 모습을 드러내었으니.

공간이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그 괴물이 나타난 것이었다.

"후후후후. 눈치채도 늦었다, 이것들아."

그 기세가 심상치 않았으니.

"젠장."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앤드류 총장의 입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물러날 수도 없는 상황.

남은 방법은 하나였다.

"계속 돌파한다!"

자칫 전 병력을 죽음으로 이끌 수도 있는 명령이었으나.

기사들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명을 받들었으니.

"우와아아아아아!"

"돌겨어어억!"

"아군이 기다리고 있다!"

기사들이 치고 나가려던 그때.

"잠깐! 전부 멈춰!"

갑자기 그렌델이 소리를 치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크게 방벽을 펼쳤다.

우우우우웅......!

평생 본 적 없는 거대한 방어막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우르릉......콰과과가가가가가가!

하늘에서 검은 천둥에 온 주변을 휩쓸고 지나갔다.

검은 천둥은 방벽을 전혀 건들지 않았다.

단지 주변에서 튀어 오른 잔재들만 막아줄 뿐.

그걸 보면 모를 수가 없었다.

저 천둥이, 결코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누군가 만들어낸 것이란 걸.

정확히 트롤들을 전부 쓸어버렸으니 말이다.

심지어는 저 악마마저도!

"푸헉......!"

악마는, 내장이 전부 타버렸는지.

검은 연기를 토했다.

'대체 누가 저런......!'

꿈이라도 꾸는 것만 같았다.

앤드류 총장과 디아즈 경이 트롤을 일격에 처리하기만 해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는데......

이건 아예 차원이 달랐다.

상식을 벗어나는 일들이, 또다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천둥을 본 앤드류 총장과 디아즈 경, 그리고 리오 기사단장은 갑자기 긴장을 풀고 편하게 자세를 바꾸는 게 아닌가.

앤드류 총장은 심지어 검을 집어 넣어버렸다.

"이러면, 이제 걱정 없네."

그에 리오 기사단장이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오랜만에 봅니다. 이 천둥."

그들은 하나같이 미소 어린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가인트의 눈 역시 위로 올라갔다.

그곳에는......신이 있었다.

우르릉......!

천둥의 신이.

"오랜만이군. 앤드류, 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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