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어이, 신입!
둥실.
예배당의 지붕 위에서 고고하게 앉아 있던 그렌델은.
마법을 이용해 가뿐하게 바닥에 내려앉았다.
그 모습을 본 가인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허, 허억! 어, 어떻게......!"
세상에 마법을 쓰는 존재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드문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그렌델처럼 무형의 마법을 쓰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었다.
보통은 불덩이를 던진다거나, 얼음 가시를 쏘곤 하지.
저런 식으로 마법을 쓰는 자는 거의 존재하지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마법을 저렇게 섬세하게 쓰는 게 가능한 건가?'
그런 의문이 들고 있을 때.
옆에서 앤드류 총장이 속닥속닥 거렸다.
"신기하지? 실은 저 친구는, 마녀거든. 조심해. 눈 마주치면 영혼 뺏긴다?"
"헉, 지, 진짭니까?"
그에 그렌델이 고운 미간을 찌푸리며 끼어들었다.
"왜 또 애한테 쓸데없는 거짓말을 합니까?"
"하하하. 들렸어?"
둘의 대화를 들은 가인트가 눈동자를 왔다갔다하더니.
"거, 거짓말이라고요?"
앤드류 총장은 입꼬리를 올리며, 끄덕였다.
"어. 근데, 마녀는 진짜고."
"지, 진짜 마녀......"
마녀.
들어는 본 적이 있었다.
각종 사이한 마법을 쓰는 존재들이라고.
그런데 그런 마녀가......예배당에 발을 들이다니.
한데, 그럼에도 앤드류 총장은 전혀 괘념치 않는듯했다.
"예전에. 로한 경과 함께 싸웠던 마녀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무서운 마녀는 아니니까, 긴장 풀어. 녀석아."
제대로 보지도 않고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걸 앤드류 총장은 단박에 간파하고는.
가인트의 등을 토닥였다.
그제서야 가인트는 당장에라도 검을 뽑을 생각을 지울 수는 있었지만......
'역시 눈은 못 보겠어......'
왠지 무서워서 눈을 마주치는 건 어려웠다.
그런 가인트를 보며 앤드류 총장은 피식 웃고는.
본론으로 돌아갔다.
"트롤들이......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
앤드류 총장이 턱을 쓰다듬자, 디아즈가 검을 회수하며 답하였다.
"아무래도 지옥에서 벌어지는 변화 때문에, 예민해진 듯 했습니다."
"지옥?"
"예. 로한 님께서 지옥 안에 심연의 죄인들을 한 번 싹 정리하신다고 지난 달쯤에 들어가셨습니다."
"......그게 가능하다고?"
어이가 없는 그 대답에.
디아즈는 작게 웃어 보였다.
"로한 님의 경지는, 저희들로써는 상상하기 힘들지 않습니까."
그렌델도 한마디를 거들었다.
"오히려 로한 경이 못하는 일을 찾는 게 더 어려울 겁니다?"
앤드류 총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너무나도 쉽게 납득을 해버리는 앤드류 총장에.
당혹스러운 것은 오히려 가인트였다.
"......"
* * *
믿을 수 없는 일이 연달아 벌어지는 탓에.
가인트가 제정신을 찾기도 힘들던 그때.
푸드드득!
독수리쯤 되어 보이는 푸른 빛의 큰 새 한 마리가, 디아즈의 곁으로 날아왔다.
입에 기절한 아이 하나를 물고서.
"헙!"
깜짝 놀란 가인트가 다시 검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 아이는 다름 아닌, 어제 그가 검술을 가르쳐주었던 아이였던 것이다.
"당장 녀석 놔 줘!"
가인트의 눈에는, 그 커다란 새가 아이를 위협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에 새는 말귀를 알아들었는지.
툭.
바닥에 아이를 놓고는.
디아즈에게 말하였다.
"이제 이 마을에 부상자는 없어."
그 광경에 가인트는 또다시 눈을 번쩍 뜰 수밖에 없었다.
"새, 새, 새가, 마, 말을......!"
그 말하는 새는 가인트를 힐끔 쳐다보더니.
"근데 저 애송이는 뭐야?"
디아즈는 그 물음에 여유로이 웃었다.
"착각을 한 거 같네. 네가 이 아이에게 해코지를 하려는 거라고."
"흥. 내가 좀 강렬하게 생기긴 했지? 이 아이도 다 치료했으니까, 금방 깨어날 거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끄으으응......!"
놀랍게도 아이는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은 피투성이인데도!
"대, 대체......"
가인트는 이제 머리가 아플 것 같았다.
이해가 되지 않는 너무 많은 정보들이 한 번에 쏟아진 까닭이었다.
한편, 앤드류 총장은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아이의 옆에 쪼그려 앉았다.
"오, 실력이 더 좋아졌는데? 흉터도 없어. 피코."
그 사이 정신을 차린 아이가, 앤드류 총장을 알아보았다.
"할아버지......?"
"정신이 좀 드나 보구나."
"으, 으응......"
아이는 상체를 일으키더니.
옷을 탈탈 털고는.
멀쩡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이상하다는 듯, 자신의 몸을 살폈다.
"부, 분명히 나......엄청 아팠었는데."
그런 아이를 향해 앤드류 총장이 웃었다.
"다 나았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정말요?"
"그럼. 이 할아버지가, 엄청 대단한 사람인 거는 알지?"
"음......네. 교구장님이 그랬어요. 엄청난 사람이라고."
"그러니까 믿어도 돼."
"알겠어요!"
곧, 그 아이의 친구들이 예배당에서 우르르 튀어나왔다.
그제서야 아이는 활짝 웃으며 친구들의 곁으로 돌아갔다.
* * *
"사상자가 하나도 없다니. 이거 대단한데?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앤드류 총장의 그 물음에, 디아즈가 대답했다.
"로한 경께서, 이쪽으로 가 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온 거고요."
"로한 경은 심연의 악마들을 잡으러 가셨다면서?"
"페가수스를 통해 알려주셨습니다."
"안 믿을 수도 없고. 참."
앤드류 총장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이제 위협은 없는 건가?"
"당장 느껴지는 건 없습니다. 로한 님도 따로 말씀하신 것도 없고. 아마 괜찮을 겁니다."
"그렇구만. 그런데......어째 둘은 안 늙고 나만 늙었네?"
앤드류 총장의 말대로.
디아즈와 그렌델은, 30년 전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로한 님께서 조금 신경을 써주셨습니다."
"부럽지?"
디아즈와 그렌델의 말을 들으니.
앤드류 총장의 입꼬리가 축 처졌다.
"크윽. 나도 로한 경을 계속 따라간다고 했어야 했나......"
물론 그때 당시에는 너무나 힘든 일들을 많이 겪었던지라.
추호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로한을 따라나선 것은 오로지 디아즈와 그렌델 뿐이었다.
그녀들 둘을 제외하고는 다들 이제 그만 편하게 좀 살고 싶어했으니 말이다.
앤드류 총장도 그렇고.
앞으로 곧 만날 리오 또한 그랬다.
30년 전의, 크로토스의 전투를 되뇌인다면......
'하, 아무리 그래도 그만 쉬고 싶긴 했어.'
아마도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똑같은 결정을 하지 않을까.
이제 나이를 먹으며 나름의 인생을 살아온 앤드류 총장은, 쓸데없는 후회는 접어두기로 했다.
나름 지금의 삶이 재미있기도 했고.
"어쨌든, 그럼 로한 경이 돌아온다는 건......사실이 아닌 건가?"
지금 심연을 다스리고 있다는 존재가 어찌 중간계로 그렇게 금방 온다는 것인가.
가인트마저도 뭔가 기운이 빠지려던 그때.
디아즈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오신다고 하셨으니, 오실 수 있으실 겁니다. 시간이 슬슬 다 되어 가니, 함께 올드리온으로 동행하시죠."
"오! 정말 오시는 거라고?"
"예. 문제없습니다."
"크으! 실망할 뻔했네!"
그렌델은, 가장 먼저 앞으로 걸어 나서며.
선두에 섰다.
"자, 자. 어서 가자고. 다들."
* * *
발트라스 왕국의 국경을 넘어.
올드리온까지 가는 길은 매우 순탄하였다.
앤드류 총장만 해도 신분이 확실하니, 문제 될 것이 없었지만.
디아즈라는 사람이 가진 저 인장은, 그야말로 만능열쇠와도 같았다.
그 어떤 두터운 관문이라도 한 방에 열렸으니.
덕분에 그들은 큰 어려움 없이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제 내일이면 수도 올드리온에 도착도 문제없어 보였다.
그렇게 코앞에 올드리온을 앞두고서.
그들 일행은 여정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가볍게 검을 휘두르며 몸을 풀고 있던 가인트와 앤드류 총장.
가인트가 움직임을 보이면, 앤드류 총장은 그걸 받아주는 식으로, 일종의 특강이 이어졌다.
그런 그들의 곁으로.
디아즈가 걸어왔다.
"앤드류 경의 제자입니까?"
앤드류 총장은 어깨를 으쓱였다.
"무슨 제자까지야. 그냥 가는 길에 심심해서 좀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지."
"나름 체격도 나쁘지 않고, 꽤 크게 될 재목인듯합니다."
"그런 말 하면 이 녀석 또 우쭐해가지고 게으름 피운다니까? 속으로만 생각해줘."
그 말에 가인트가 소심한 반항을 하였다.
"제가 또 언제 게으름을 부렸다고......"
"아니야?"
"......이제 안 그럽니다."
"과연?"
"지, 진짭니다!"
분명 중노년의 어른과 이제 막 청년티가 나기 시작하는 소년의 대화이건만.
어째선지 또래 아이들의 말싸움 같아 보이는 건, 착각일까.
디아즈는 작게 웃으며, 가인트에게 물었다.
"한데, 다리가 불편하십니까?"
"예?"
가인트는 깜짝 놀랐다.
디아즈가 나타난 이후로는 다리를 움직인 적이 없었다.
그저 서 있었을 뿐.
그런데도 또 알아본 사람이 나타난 것이었다.
'앤드류 총장님 말씀이, 저 둘도 엄청난 실력자라고 하던데......진짜구나.'
디아즈의 실력을 반신반의했던 것이.
한 번에 싹 날아가 버렸다.
"예, 예. 조금 부상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녀는 고개를 돌리더니.
"피코."
그 독수리 같은 푸른 새를 불렀다.
부른 지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어딘지 알 수도 없는 공중에서 빠른 속도로 새가 낙하하더니, 날개를 펼쳐 속도를 줄이고는 디아즈의 팔 위에 가뿐히 앉았다.
"이 밤에 무슨 일인데?"
"이 아이, 다리 좀 봐 줄 수 있어?"
"음? 어디 보자......어, 이 정도면 볼 것도 없네."
피코는 가인트의 다리를 향해 날개를 두어 번 펄럭이더니.
화르르륵!
느닷 없이 가인트의 다리에서 불꽃이 일어났다.
"우, 우와아아아악?"
깜짝 놀란 가인트는, 다급히 손을 휘저으며 불을 끄려고 하였다.
그런데도 불길은 사라지지 않았고.
잠시 후 놀랍게도 저절로 꺼져버렸다.
그리고는 피코라는 이름의 새가 한 마디를 했다.
"끝."
이라고.
녀석은 그 말을 하고서는 다시 저 밤하늘 위로 날아가 버렸다.
가인트는 어이가 없었다.
'끝은 무슨......'
그런 생각을 하던 순간.
디아즈가 물었다.
"이제 괜찮을 겁니다. 부상."
그제서야 가인트는, 자신의 다리 상태를 다시 점검했다.
그는 자신의 감각을 순간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로 그 부상에 아무런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방금 불꽃이 일어난 부위도 정확히 상처가 있던 위치였다.
그 불꽃을 일으킨 게 그 새이고, 그 불꽃이 상처를 낫게 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마을에서 트롤에게 당했던 부상자들도......저 새가 치료한 거구나!'
이제서야 머릿속에서 모든 것들이 정리가 되는 가인트였다.
그냥 말할 줄 아는, 좀 큰 앵무새 같은 놈인 줄로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굉장한 녀석이었네......'
로한이라는 사람과 관련된 모든 것들은, 하나같이 상식을 초월하는 것 같았다.
놀라움으로 가득한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
그들은 예정대로 올드리온에 도착을 하였으니.
가장 앞서서 그들 일행을 반긴 것은 다름 아닌 발트라스의 검왕, 일곱 기사 리오였다.
앤드류 총장은 그를 보며 말 위에서 손을 들어 올렸다.
"어이, 신입! 선배 왔다!"
"하하하하! 오랜만입니다! 앤드류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