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여기서 볼 줄은 몰랐네
스트라운 교구에서 발트라스 왕국까지는, 한 번에 주파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라고 하기는 힘들었다.
때문에 앤드류 총장과 성기사 가인트는.
중간에 작은 마을 하나를 거치며, 휴식과 재보급을 준비했다.
이제 아를렘 교단은 이전보다도 더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기에.
어디서든 교단의 사람이 머물 곳은 찾기 수월하였다.
이 작은 마을에서조차 아를렘 교단의 예배당을 찾기가 이렇게 쉽지 않은가.
덕분에 앤드류 총장과 가인트는 예배당에서 하루를 묵을 수 있게 되었다.
당연히 앤드류 총장쯤 되는 인물이 직접 나타나니.
예배당에서도 환영을 금치 않았다.
앤드류 총장은 예배당의 목사와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그러는 사이 가인트는 천천히 예배당을 둘러보았다.
한쪽에서는,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진행 중이었다.
문득 어렸을 적 자신이 생각난 가인트는.
그곳에서 발을 멈춰 세웠다.
"그래서 로한 님과 아를렘 님은, 사악한 무리들을 해치우심에. 세상에 다시 축복이 내려앉았으니, 우리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그분들의 뜻에 따라 약자를 도우며 살아야 된답니다."
"네에!"
"네에!"
"선생님, 배고파요!"
"하하하하하. 쟤는 맨날 배고프데."
"대신 나는 많이 먹고 크고 강한 기사가 될 거니까!"
가인트가 멍하니 교실을 쳐다보자.
어느샌가 앤드류 총장이 그의 뒤에 서 있었다.
"뭐 하고 있어? 너도 배고프냐?"
"참, 총장님도. 제가 애도 아니고."
꼬르르륵.
하필 타이밍 좋게 가인트의 배에서, 밥 시간이 되었다는 알림을 해주고 있었다.
그에 앤드류 총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가자. 밥 먹으러."
"예......"
그들이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
가인트는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앤드류 총장님."
"왜? 반찬 묻지 마. 나도 몰라."
"아니, 그게 아니라요."
"그럼 뭔데?"
"그......로한이라는 분. 진짜 실존 인물이에요?"
앤드류 총장은 뒤를 힐끔 쳐다보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왜? 못 믿겠어?"
"아무래도......너무 허황된 이야기처럼 들리니까......"
"그럼 내가 로한 경이랑 함께 싸웠다는 것도 못 믿는 거겠네?"
"아뇨. 그게 아니라."
"네가 믿든 믿지 않든. 존재하는 사람은 존재하는 거야. 의심스러우면 가서 직접 만나보면 되겠네. 우리가 왜 이러고 있는지, 잊은 건 아니겠지?"
"예. 올드리온에 가서 로한 님을 만나러 간다고......"
"그래. 네 눈으로 직접 확인해. 간단하잖아?"
너무나도 쉽게 대답을 해버리는 앤드류 총장에.
가인트는 반박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식사를 끝마친 후.
가인트는 멍하니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그때.
우르르르르!
한 무리의 아이들이 몰려오더니.
가인트에게 말을 걸었다.
"형아, 형아! 형아가 진짜 교단의 성기사야?"
"진짜로? 진짜로?"
가인트는 어린아이들에게 면역이 없었기에.
조금 당황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 맞긴 맞는데."
"그러면, 그러면! 우리 검술 좀 알려줘!"
"우리도 기사가 될 거거든!"
그러고 보니 아이들은 하나같이 손에 목검이랍시고, 나무 작대기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그 모습이 퍽이나 귀엽긴 했다.
그에 가인트는 무릎을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읏차. 그럼 어디, 실력 한 번 보여 줘?"
"와아! 와아!"
"신난다아아아!"
가인트는 아이들의 한가운데 서서.
검을 쥐는 법부터 천천히 일러주기 시작했다.
"아니, 여기를 이렇게 잡아야지. 어어, 그래! 잘하네? 이야, 금방 기사가 되겠는데?"
그렇게 예배당에서의 하루가 흘러갔다.
* * *
앤드류 총장과 가인트는 다음날이 되자 빠르게 준비를 마치고 출발하였다.
목사는 더 쉬다 가라고 했지만.
"저희도 일정이 있는지라. 마음만 받겠습니다, 목사님."
"총장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더 붙잡을 수가 없겠네요. 허허허. 언제든 또 오셔도 환영합니다."
"꼭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앤드류 총장과 가인트는, 기분 좋은 인연을 만든 후.
마을을 벗어났다.
이제 목적지까지 벌써 절반은 지났고.
아직 시간은 충분했기에.
둘은 말을 천천히 말을 몰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꼬맹이들 가르쳐주면서, 꽤 많이 배웠지?"
"그것도 보셨습니까?"
"이 녀석아. 내 경지쯤 올라오면, 뒤통수에도 눈이 달리는 법이다."
"에이,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어허? 이것 보게? 못 믿어?"
앤드류 총장에 미간을 찌푸리자.
가인트는 슬며시 웃었다.
저게 진심으로 짜증을 내는 게 아니라.
단지 장난이라는 걸 알기에.
진짜 화를 내는 앤드류 총장의 모습은 사뭇 달랐으니 말이다.
어쨌든.
"예, 뭐. 의외로 많이 배웠습니다. 아이들에게 기본기를 가르치다 보니, 저 스스로 놓치고 있던 기본기들을 다시 되뇌게 되었습니다."
"그래. 기본기라는 게, 알고는 있더라도 막상 그 위에 차곡차곡 다른 기술과 잔재주들이 쌓이면 놓치기 마련이다. 그런데 저렇듯 이제 막 시작하는 아이들을 가르칠 땐, 또 그 기본기라는 걸 놓치지 않게 섬세히 알려주게 되거든. 그때서야 깨닫는 거지. '아, 이건 내가 알고 있는데도 정작 신경을 쓰지 못했구나.' 하고 말이야."
가인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랬습니다. 그 녀석들에게 대충 가르쳐 줄 순 없으니. 하나하나 짚어줬는데......정작 저는 못하고 있더라고요."
"일전에 다친 곳을 보니, 그것 역시 기본을 대충해서 다친 것 같던데?"
"......예. 지금 생각해보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알면 됐어."
가인트가 이미 알아들은 듯하자.
앤드류 총장은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고, 말을 멈추었다.
그것이 또 존경스러운 부분이었다.
가인트는 그런 앤드류 총장의 등을 보며, 다시 물었다.
"총장님은......예전부터 그러셨습니까?"
"음? 뭘?"
"언뜻 보면 쉽게 쉽게, 대충대충 하시는 거 같은데. 실은 정말 세세하게 모든 것을 꿰뚫고 계시지 않습니까. 당장 얼마 전 트롤 섬멸 출정식 때만 해도 바로 제가 다친 걸 알아보셨고......원래 그런 성격을 타고나신 겁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그렇게 되고 싶은데......타고난 성격이 그렇지 못해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타고났었느냐고?"
"예."
앤드류 총장은 이번에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쉽게 쉽게, 대충 대충. 이건 타고난 거 맞고. 어렸을 때는 너보다 더했으면 더 했지. 더 섬세하진 못했어."
"......에이. 너무 겸손하신 거 아닙니까?"
"이게 겸손이었으면, 몬테드 교구장님이 매번 나를 그렇게 혼내실까."
"몬테드 교구장님이야 워낙 기준이 높으시니까 그러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니지. 몬테드 교구장님은 알거든. 내 성격을."
"......"
앤드류 총장이 제 입으로 직접 말을 함에도, 가인트는 쉬이 믿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게.
앤드류 총장이 어떤 존재이던가?
세계 최고의 기사를 꼽으라면 항상 거론되는 것이 앤드류 총장이었다.
그 아래로는 섬광의 기사 리오, 죽음의 안개 크라우스 등등 갑론을박이 있을지언정.
앤드류 총장이 최강이라는 것에는 반발이 없었다는 소리였다.
가인트 자신이야 꽤나 오래 그를 보아 와서 조금 익숙해지기는 했다만.
'그래도 앤드류 총장님인데......'
그 와중에도 또 앤드류 총장은 자신의 생각을 다 꿰뚫은 듯.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인데?"
"......아무래도......"
이것만 봐도 어찌 믿겠는가.
저렇게 관찰력이 대단한 사람이, 섬세하지 않다니.
그때였다.
퍼어어어엉!
저 뒤쪽에서 불길한 폭발음이 들려온 것은.
앤드류 총장과 가인트는 재빠르게 고개를 뒤로 돌렸다.
뒤에서는, 시커먼 연기가 연신 피어오르는 게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 위치는 하필.
"일롬 마을......!"
방금 그들이 빠져나온 곳이었다.
앤드류 총장은 다급히 말의 기수를 돌렸고.
가인트도 그를 따랐다.
"가자!"
"예!"
가인트의 머리에, 어젯밤에 검술을 가르쳐주었던 아이들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 * *
"꺄아아아아악!"
"사, 살려 줘요!"
마을에 초입에 들어서자.
교단의 예배당이 있던 중심부 쪽에서 큰 화재가 일어난 것이 보였다.
앤드류 총장은, 더 이상 말로는 빠르게 진입할 수 없을 거라 판단을 하고 말에서 뛰어내렸고.
가인트 역시 같이 말에서 내려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두근! 두근!
자신의 호흡 소리와 심장 소리가 미칠 듯이 크게 들렸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다.
'한 명이라도......!'
사실 모두 살리고 싶었다.
그러나 불가능할 것이라는 현실이, 눈앞을 너무나도 크게 가로막고 있었다.
적이 누군지도 모른 체 이렇게 뛰어들어가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이었다.
아무런 정보 없는, 대비도 없는 이런 전투는 교본에서도 피하라고 되어 있을 지경이었으니.
그러나 앤드류 총장도, 가인트도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지금 누가 앞에 나타나서 교본 이야기를 들먹인다면.
교본 따위, 개나 줘 버리라고 할 테니까.
예배당에 가까워지자.
전투의 소리가 들려왔다.
"꾸에에에에엑!"
무언가 비명을 질렀다.
사람은 아니었다.
하나 가인트는 그게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와 달리 백전노장인 앤드류 총장은, 단순히 그 소리만 듣고도 적을 파악해냈다.
"트롤이다! 트롤과의 전투를 상정해 두어라!"
"트, 트롤 말입니까? 예!"
트롤 원정대에서 제외되었건만.
결국 다시 트롤과 싸우게 될 줄이야.
이미 트롤에 대해서는 공부를 마친 가인트였다.
'다행이다. 트롤이 적이라면, 구출은 오히려 쉬울 수도 있겠어.'
고작 이 인원으로 트롤에 정면 승부를 건다는 건,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지금 이렇게 발을 멈추지 않는 것도 미친 짓이었고.
그러나 놈들의 둔함을 잘만 이용한다면.
구조 작전 정도는 해낼 수 있으리라!
트롤들이 민첩한 편은 아니었으니.
'한데, 대체 누가 트롤과 싸우고 있는 거지?'
트롤의 비명이 들렸다는 소리는.
트롤이 공격을 한 게 아니라 받았다는 뜻인데......
이 마을에 그만한 전력이 있었던가?
머릿속에서는 물음표가 늘어만 갔다.
'가서 직접 보면 알겠지!'
아마 마을의 자경단 같은 존재들이 용감하게 트롤과 전투를 벌이는 게 아닐까 싶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빨리 가야 하는 건 변함이 없었다.
이런 소규모 마을의 자경단 수준이야, 농민이랑 크게 다를 바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예배당을 도착한 가인트는.
촤아아아아아악!
위로 솟구치는 트롤의 피를 보며.
"이, 이게......"
넋이 빠진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앤드류 총장은 약간 맥 빠진 듯, 웃음을 지었다.
그런 그를 보며.
트롤을 처치한 두 젊은 여인이 손을 들어 보였다.
한 명은, 어떻게 올라갔는지.
예배당의 지붕 위에 걸터앉아 있었고.
"앤드류. 너무 늦게 온 거 아닙니까?"
또 한 명은 검을 들고 트롤의 멱을 딴 채였다.
"오랜만이네요. 앤드류 경."
그녀들을 향해, 앤드류 총장이 미소를 지었다.
"디아즈 경, 그렌델. 그대들을 여기서 볼 줄은 몰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