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시간이 많이 흘렀어요
30년 후.
짹, 짹짹!
아름다운 새의 지저귐과 유달리 푸른 하늘과 달리.
스트라운 수도원에서의 아침은, 고요한 긴장감이 흘렀다.
기사들이 갑옷을 완전히 차려입은 채로 도열을 하고 있었고.
그들의 시선이 집중된 곳에는, 노련한 얼굴의 한 기사가 전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이 스트라운 수도원의 기사들을 총괄하는, 모리티 기사단장이었다.
"......라이안. 그리고 가인트까지. 총 20명에게, 현 시간부로 트롤 소탕 작전에 투입될 것을 명한다."
"명을 받듭니다!"
"명을 받듭니다!"
모리티 기사단장의 호명에, 기사들의 형형한 눈빛이 투구 안에서 빛났다.
그것만 보더라도 기사들의 기세를 읽을 수 있었다.
모리티 기사단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 위에 올라탔고.
그의 뒤로 기사들이 쭈욱 따라붙었다.
그때.
"어어, 잠깐만."
한 목소리가 그들의 출정을 멈춰 세웠으니.
기사단장은 고개를 돌리며,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확인했다.
상대방의 얼굴을 확인한 모리티 기사단장은, 당장 투구를 벗으며 말에서 내렸다.
"앤드류 총장님."
흰 머리와 검은 머리가 반반 섞인 모습에.
여유롭지만 그 여유 속에서, 은연 중의 기세가 묵직하게 느껴지는 그는.
최후의 전투에서 살아 돌아온, 전설의 일곱 기사단 중 한 명인.
아를렘 교단의 기사단 총장, 앤드류였다.
"어, 모리티. 이번에는 자네가 직접 나서는 거야?"
"예. 그렇습니다. 트롤이 나타난 곳이 민가와 매우 근접한 지역인지라, 급히 움직일 필요가 있어 직접 나서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아, 그래? 몬테드 영감이 시켰나 보네."
몬테드 교구장을 '그 영감'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마 앤드류 총장뿐이리라.
어렸을 적부터 앤드류 총장을 직접 거두고 기른 사람이 바로 몬테드 교구장이라 들었었다.
때문에 가까운 탓에 편히 말이 나오는 것이겠지.
이런 일에 이미 익숙한 모리티 기사단장은 평소와 같이 대답을 하였다.
"예. 몬테드 교구장님께서 직접 명하셨습니다."
"알겠어. 그럼 바로 출정하도록. 그런데......한 명만 빼고."
"......예?"
앤드류 총장은 손가락을 가리키며, 한 기사를 콕 집었다.
"가인트. 너 이리 와."
갑작스럽게 인원을 조정한 것에, 기사들을 이끄는 모리티 기사단장이 불만을 가질 법도 했지만.
그는 전혀 괘념치 않았다.
만일 다른 누군가가 이렇게 기사단장 앞에서 기사단의 일에 끼어든다면 분명 불같이 화를 냈을 것이었다.
그것이 설사 일국의 국왕이라 할지라도.
하나 앤드류 총장의 말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저 앤드류 총장이 직접 나설 정도라면 분명히 이유가 있으리라.
그리 생각한 까닭이었다.
모리티 기사단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럼 나머지 인원들은 예정대로 출정해도 되겠습니까?"
"한 명 빠졌는데, 임무 수행하는 데 지장 없겠나? 모리티 단장이 필요하다고 판단 된다면, 다른 인원을 찾아 추가해 주겠네."
"아닙니다. 한 명으로는 전혀 문제없습니다. 다른 이들 역시 제가 보증할 수 있을 정도의 최정예 병력입니다."
"좋군. 그럼 출정하도록."
"예! 임무 마치고 다시 뵙겠습니다."
"음."
모리티 기사단장은, 다시금 말의 위로 올라타.
기사단을 향해 소리 쳤다.
"전군. 출정한다."
큰 외침이 아닌 작은 목소리에, 오히려 위압감이 더 서리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트롤 원정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가인트 한 명만이 덩그러니 연무장에 남게 되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서.
앤드류 총장은 그런 가인트에게 소리쳤다.
"뭐하고 섰어, 이 녀석아. 냉큼 이리 와."
가인트는 터덜터덜 앤드류 총장의 앞에 섰다.
불만이 있어 보이기는 했지만......상대가 앤드류 총장이기에 말을 못하는 느낌이었다.
그런 그를 향해 앤드류 총장이 물었다.
"왜? 같이 못 가서 억울해?"
"......예."
그에 앤드류 총장이 발끝으로 가인트의 왼쪽 다리 안쪽을 툭 찼다.
그리 강하지도 않은 그 가벼운 발길질에.
툭, 휘청!
가인트의 몸이 흔들린 것이다.
만일 이것이 실전을 치르고 있는 전투 상황이었더라면, 치명적인 허점이 되었을 정도로.
숨기고 있던 것을 들킨 것에.
가인트는 깜짝 놀랐다.
"아, 알고 계셨습니까?"
"알고 있기는. 조금 전에 도열하러 걸어가는 거 보고 눈치챘다, 이 녀석아."
"......!"
역시 신과의 전쟁을 치렀던 전쟁 영웅은 다른 것인가?
'고작 그것만으로 어떻게......'
그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게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던 가인트였다.
그런데......앤드류 총장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말을 하진 않았지만.
가인트는 온몸에 소름이 쫘악 돋는 것을 느꼈다.
"너, 인마. 이 상태로 원정대에 은근슬쩍 끼어서 출정했다가, 너 때문에 누가 죽거나 다치면. 감당 될 거 같아? 그대로 검 놓게 될지도 몰라."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는 다 회복되었을 겁니다."
"되기는 개뿔. 일주일 가지고 나을 거 아니잖아. 네놈 몸 상태 하나도 제대로 파악 못 해?"
평소에는 인상을 잘 찌푸리지 않는 앤드류 총장이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리고. 가는 동안의 시간이라면 분명히 모리티 기사단장도 알아차렸을 거다. 그 친구 눈이 그렇게 우스워 보였나?"
"아, 아닙니다."
"아닌 거 아는 놈이 그래?"
"죄송합니다......"
"쯧!"
앤드류 총장은 혀를 차고는, 몸을 홱 돌려 걸어나갔다.
가인트는 그 자리에 얼어 붙어 꼼짝도 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자면......앤드류 총장의 말은 전부 옳은 것들 뿐이었으니까.
몇 걸음 더 걸어가던 앤드류 총장은, 걸음을 멈추더니.
가인트를 힐끔 돌아보며 소리쳤다.
"뭐해? 따라오지 않고."
"예?"
"곧 있으면 하인트 교황님 오신다."
"하, 하인트 교황님께서 말입니까?"
"그래. 얼굴이라도 한 번 뵈어야지."
"예, 예!"
그제서야 가인트는, 다시 미소를 지으며 앤드류 총장의 뒤를 따랐다.
* * *
똑똑똑.
"앤드류입니다."
"어, 앤드류 총장. 들어오거라."
안에서 몬테드 교구장의 목소리가 들리자.
앤드류 총장은 그의 집무실 문을 열었다.
앤드류 총장이 몬테드 교구장의 집무실에 들어섰을 때.
벌써 하인트 교황이 도착을 해 함께 차를 마시고 있었다.
하인트 교황은 앤드류 총장을 맞이하며 반갑게 웃었다.
"앤드류 경. 오랜만이지요?"
"예. 너어어어무 오랜만입니다. 자주 좀 오십시오. 바쁘신 건 알지만, 이러다가 진짜로 얼굴 잊어 먹겠습니다."
"허허허. 이게, 교황의 자리에 오르면 좀 편해질 줄 알았는데. 일이 더 많아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요."
앤드류 총장의 투정 아닌 투정에 하인트 교황은 미소를 지었고.
몬테드 교구장은 말로서 그만 그의 입을 막았다.
"시끄럽고. 어서 앉거라."
앤드류 총장은 일부러 몬테드 교구장이 들을 수 있도록 하인트 교황에게 속닥거렸다.
"하여간, 교황님. 우리 교구장님 저 까칠한 성격은 언제쯤 유해질지 모르겠습니다."
"허허허. 때가 되면 다 변합니다. 저도 그랬지요."
"언제 오려나, 그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몬테드 교구장은, 앤드류 총장의 자리 앞에 찻잔을 탁 놓았다.
"다 들린다, 이 녀석아."
"예, 예."
앤드류 총장까지 자리에 앉자, 하인트 교황은 두 사람을 스윽 훑어보았다.
"참. 저희 셋 모두 이 스트라운 교구에서 지내던 게 엊그제 같은데......시간이 많이 흘렀어요."
옛날이야기를 꺼내니, 앤드류 총장도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당시의 젊은 모습들은 다 사라지고.
이제는 하나같이 흰 머리가 없는 이가 없었다.
앤드류 총장은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하인트 교황의 말에 대답하였다.
"그땐 참 재밌었는데 말입니다. 모든 게."
"로한 경이 있어서 더 그랬지요."
"예. 신화 속 한 장면 안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진짜 신화가 되기는 했지만."
"앤드류 총장."
"예, 교황님."
"조금 전에 연무장에서 챙겨주던 그 아이 말입니다."
가인트 이야기가 나오자.
앤드류 총장은 모르는 척 되물었다.
"아, 보셨습니까?"
"예. 보았지요. 조금 다친 것 같아 보였습니다만......체격도 좋고, 기개도 있어 보이고. 훌륭한 인재 같더군요?"
한때 유명한 이단심문관이었던지라 그런지.
역시 하인트 교황의 눈은 매서웠다.
하나 지금은 앤드류 본인도 나름의 위치가 있었다.
"아무리 교황님이라고 해도, 이번엔 저도 양보 못합니다."
"허허허허. 이 나이가 되어서 설마 제자를 기르겠어요? 뺏을 생각은 없습니다?"
"......"
"단지 기회를 한번 주고 싶어서요. 우리 앤드류 총장과, 제 오랜 친목을 한층 더 돈독히 하고자."
"기회.....라니요?"
"며칠 후, 발트라스 왕국으로 로한 님께서 오신다는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오랜만의 반가운 이름이 나오자, 앤드류 총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로, 로한 경이요? 그거 진짭니까?"
"제가 설마 어느 안전이라고 앤드류 총장 앞에서 거짓을 말할까요? 위치는, 수도 올드리온이라고 합니다. 교황청의 기밀입니다만, 특별히 우리 앤드류 총장에게만 살짝 알려 드리는 겁니다."
"올드리온이라면, 리오 그 녀석이 있는 도시겠네요."
"예. 마르코라는 유명 연금술사를 잠시 만날 일이 있다시더군요."
앤드류 총장은 천장을 올려다보면서도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로한......경. 하하하하! 얼마 만에 듣는 이름인지."
"교황의 이름으로 친서를 써드릴 터이니, 그 친구와 함께 가 보시지요. 그분을 직접 뵌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공부가 될 것입니다. 특히 저런 미래가 유망한 친구에게는 더더욱이."
말해 무엇하랴.
혹여 검을 미약하게나마 배울 수 있다면, 그만한 영광도 없으리라.
더군다나 로한에게 검술을 어느 정도 배웠다던 리오 역시, 지금은 명실공히 발트라스 최강의 기사라 칭해지는 존재였다.
가르치는 것만큼은 리오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니.
그에게서도 배울 것이 많으리라.
"올드리온까지......어디 보자, 시간이 그러면......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앤드류 총장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하인트 교황이 품에서 벌써 써둔 친서를 꺼내었다.
"자,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교황님!"
그걸 받자마자, 앤드류 총장은 한걸음에 교구장 집무실을 뛰쳐나갔다.
"야! 가인트! 당장 짐 싸! 어디 박혀 있어? 이놈!"
문도 제대로 닫지 않아, 바깥에서 소리 지르는 것까지 들려주면서.
그런 앤드류 총장을 쳐다보며, 몬테드 교구장은 한숨을 지었다.
"저 녀석은 언제쯤 철이 들는지. 에휴."
"허허허허. 과거 모습을 이렇게나마 볼 수 있는 것도 좋지 않습니까? 몬테드 교구장."
"뭐, 가끔은 저도 그런 생각을 하기는 합니다."
그렇게, 앤드류 총장과 가인트는.
올드리온을 향한 여정에 첫발을 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