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안 먹혔다고?
자욱한 구름 너머로.
거대한 눈동자가 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평생 느껴보지 못한 두려움이었다.
진정한 포식자를 만난, 약자의 두려움.
쿠구구구구......
하늘을 가득 덮은 그 거대한 눈동자가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구름이 요동치고, 땅이 떨었다.
"저, 저게......크로토스?......"
리오는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야말로 거신이라는 이름이 왜 탄생하였는지 알 것만 같은, 압도적인 그 크기에.
리오 뿐만 아니라 다른 일곱 기사들 또한 공포감을 느끼는 것은 다를 바 없었다.
거대한 안테아 대륙을 대표하는, 최강의 기사라고 한들 고작해야 한낱 인간에 불과하였다.
저 존재에 비한다면 그야말로 개미와 같은 존재이리라.
공포에 질린 그들을 보며.
마로도로스는 폭소하였다.
"크하하하하! 이것이 네놈들과 거신의 차이이다! 어딜 감히 주인에게 이빨을 들이미느냔 말이다! 이제 네놈들은 전부 죽은 목숨이로다!"
놈은 하늘에 보이는 거대한 존재를 향해 소리를 쳤다.
"크로토스여! 내 앞에 있는 이 미개한 놈들을 모조리......"
하지만 마로도로스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놈의 머리 위로, 크로토스의 주먹이 떨어진 까닭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얼핏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그 충격은 어마 무시하였다.
주먹 한 방에 쌓였던 눈이 폭발이라도 하듯 터졌고.
"크으으윽......!"
주변의 나무들은 착탄점을 기준으로, 전부 휩쓸려 반대로 쓰러졌다.
콰과가가가......
단 한 번의 주먹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파괴력이었다.
"이럴......수가......!"
일곱 기사단의 한 기사가, 어이없을 때 나오는 특유의 힘 빠진 호흡과 함께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다른 이들 역시 굳이 입 밖으로 그 말을 내뱉지는 않았지만.
모두 같은 심경이었다.
저게......우리의 상대였다.
얼핏 마로도로스를 짓뭉갠 그 주먹을 보니.
새끼 손가락만 해도 건장한 성인 남성의 크기는 되어 보였다.
그 규격 외의 파괴력에.
아를렘조차도 이를 갈았다.
"놈의 부활만큼은 절대적으로 막았어야 했는데......마로도로스 놈의 간계에 속아 넘어갔구나......!"
아를렘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크로토스의 눈동자가 다시금 움직이며, 이쪽을 응시하였다.
* * *
숨이 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단지 눈동자가 이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러나 아를렘은 의연하게 서서 그 눈빛을 정면으로 받아치고 있었다.
'역시, 신은 신인 건가.'
덕분에 나도 정신을 꼭 붙들고, 다리에 힘을 꽉 주었다.
그때.
크로토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이렇게 다시 만나는구나. 가증스러운 아를렘."
"분명 지독하게 봉인을 해두었건만."
"후후후후. 아를렘이여. 너는 네 그 봉인이, 진정으로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을 하는가?"
크로토스는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눈을 크게 번뜩였다.
그 모습에, 아를렘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헛소리지?"
"네 녀석의 그 사력을 다한 봉인 말이다. 과연 누가 흘린 것이겠느냐?"
"......!"
잠시 생각을 하던 아를렘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그에 옆에 서 있던 포세이튼까지 침음을 흘렸다.
"설마......"
아를렘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건, 우연히 발견한 것인데......그런데......"
크로토스는 그런 아를렘을 비웃었다.
"후후후후. 과연 우연일까?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것은 아닐까? 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네 속내를 내 모를 줄 아느냐. 그것이 설마 함정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라는 이유 때문이었겠지. 왜냐? 전황이 쉽지는 않았거든. 그런데 눈앞에 떡하니 모든 문제를 타파할 방법이 나타났으니......넌 억지로 진실에서 눈을 돌린 것이로다."
그에 포세이튼이 물었다.
"아를렘. 저 말이 사실이더냐?"
"......"
아를렘이 대답을 하지 못하자.
크로토스가 대신 말을 이었다.
"너희는 몰랐겠지만, 나 역시 당시에는 완전한 상태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 빌어먹을 그룬트라는 놈 때문이었지. 곱게 꺼졌으면 좋았으련만, 끝까지 내게 한 방을 먹이더군. 해서 나 또한 전쟁을 이어가긴 쉽지 않았음이야. 그래서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부스러기를 흘렸지. 아니나 다를까. 덥석 물더군. 후후후후."
아를렘은 다시 고개를 들어 올리며 질문을 던졌다.
"그럼 그 봉인 마법을 네놈이 흘렸다고? 네놈의 봉인 마법에 네놈이 걸렸다고?"
"그건 봉인 마법이 아니었다. 단지 내 육신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 매년 너는 천사들을 이용해 봉인석을 갈아 끼우며 봉인을 이어나갔지. 그것은 그저 더 완벽한 내 부활을 위해 마력을 불어넣는 행위에 불가하였음이니."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런 아를렘을 보며 크로토스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였다.
"그래. 그 얼굴을 보고 싶었구나. 네가 절망하는 거 얼굴을! 이날을 위해서 나는 회복이 될 때까지 참고, 또 참았다. 후하하하하하! 오늘은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는 날일지니. 경사스럽도다!"
크로토스는 완전히 짜부라진 마로도로스를 손가락으로 집어 들어 올리더니.
녀석을 자신의 입으로 던지더니.
한 입에 꿀꺽 집어삼켜 버렸다!
그리고는 다시 그 거대한 주먹을, 우리가 있는 곳을 향해 던졌다.
"피, 피해!"
크라우스의 다급한 외침에.
넋을 놓고 있던 모두가 정신을 차리며 사방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아를렘은, 날개를 크게 펼치며 오히려 크로토스의 주먹을 향해 뛰어올랐다.
쩌어어어어어엉!
허공에서 두 물체가 부딪히며.
가공할 정도의 충격파를 만들어내었다.
아직 인간의 영역에 선 일곱 기사단의 기사들은, 그것에 피를 토하며 튕겨 날아갔다.
"커헉!"
"으아아아아악!"
"귀, 귀가......!"
그렌델이 다급하게 염력으로 방호벽을 세웠고.
그녀와 함께 움직인 경험이 있었던 오르헬이나 리치몬드, 디아즈는 재빠르게 그렌델의 뒤로 숨었다.
내 옆에 있던 포세이튼 역시 눈을 이용해 물을 만들어 벽을 세워 그것을 막아내었다.
덕분에 나는 꿈쩍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다.
우리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지만.
포세이튼의 입에서는 침음이 새어 나왔다.
"아무래도, 아를렘 녀석 많이 분한 모양인데......냉철함을 잃었군."
내 눈에도 보였다.
아를렘 특유의 그 냉정함이.
지금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래도......상황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 * *
"나의 소중한 아이들이! 그 봉인 하나 때문에 얼마나 많이 죽어나갔는 줄 아느냐! 크로토스으으으으!"
크로토스의 봉인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봉인석을 교체하는 것 이외에도, 천사들조차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의 봉인을 위해 천사들은 너무나도 기꺼이 그 목숨을 내던졌다.
그런 사실을 알기에 아를렘의 화는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 간악한 거짓말에 희생된 아이들의 원한을 갚아주겠노라!"
그러나 크로토스는 그것을 비웃을 뿐이었다.
"희생이라니. 그들은 충실히 나의 부활을 위한 영양소가 되었다.
크로토스의 그 도발에 아를렘의 눈에 핏대가 솟아오르며.
"그걸 지금 말이라고......!"
"그래! 울부짖어라! 내가 원하던 게 바로 네 분노일지니!"
"나의 분노를 사게 된 걸 후회하게 해주마!"
"하하하하! 얼마든지!"
아를렘은 자신의 커다란 성검을 소환하여 크게 휘둘렀으나.
부우우우우웅!
평소답지 않은 그 공격은.
크로토스의 살갗에 닿지도 못하였다.
그럼에도 아를렘은 멈추지 않고 연격에 연격을 이어나갔다.
"죽여주마아아아아!"
후우우웅! 부우우웅! 후우웅!
그러나 그 후속타 역시, 내 눈에도 보일 정도로 허점이 가득했다.
당연하게도 그런 허접한 공격에 크로토스가 당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반격의 실마리를 내어줄 뿐이었으니.
콰아아아앙!
어느샌가 아를렘의 옆구리로, 크로토스의 주먹이 작렬하였다.
그 찰나에 아를렘 역시 엄청난 반응 속도로 검을 세워 방어를 하기는 했지만......
쿠우웅! 콰가가가가가가!
그녀는 금방 다시 몸을 일으키긴 했지만.
거의 내다 꽂히듯 바닥에 추락한 아를렘의 데미지가 적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나와 포세이튼은,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고는.
아를렘에게만 맡겨 두어서는 결단코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단순히 전력도 전력이지만, 지금의 아를렘은 오히려 평소보다도 판단력이 흐려진 채였다.
나는 포세이튼에게 작게 속삭였다.
"길을 뚫어줘."
"어떻게 하려고?"
"제깟 놈이라고 해도, 베고 또 베다 보면 결국에는 죽겠지."
내가 검을 비틀어 움켜쥐자.
포세이튼은, 내 능력을 떠올렸다.
자신의 창조차 가볍게 베어버린 나의 그 능력을.
"시도해 보아서 나쁠 건 없겠군."
"좋다. 그럼, 빈틈이 보이면 바로 움직인다."
"음!"
아를렘이 다시 날아오르고.
그녀는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크로토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계속해서 타이밍을 재고 있던 나와 포세이튼은.
동시에 소리를 쳤다.
"지금이다!"
"지금일세!"
그는 눈 안에 있던 수분을 마법으로 부리기 시작하였다.
내 앞길을 막는 눈은 치우면서.
동시에 그것들로 크로토스의 시야를 가리고.
더불어 놈의 다리까지 묶는, 엄청난 규모의 대마법을 한 번에 일으킨 것이었다.
나와 포세이튼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그렌델 역시, 마법으로 보조를 해주었다.
"흐으으으읍!"
그녀는 다시 한 번 얼음 가시를 뽑아내어.
이전에 트롤과 오우거조차 꿰뚫었던 그 방법 그대로, 크로토스를 사방에서 찔러 들어갔다.
그러나 크로토스는 그렌델의 마법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파사삭.
그녀의 얼음 가시는, 크로토스에게 닿기도 전에 가루가 나며 흩어진 것이다.
"이, 이럴 수가......!"
하나 나는 당황하지 않고.
그대로 흩날리는 얼음 가시들을 발판 삼아 내달려.
크로토스의 옆구리까지 치고 올라갔으니.
"베어 넘겨주마아아아!"
전력으로 공간째 놈의 몸통을 잘라버릴 생각이었다.
부우우우우웅!
그런데.
콰득!
이상한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크로토스의 몸통에 닿기도 전에, 공간이 이상하게 변형되는 게 보였다.
그리고는.
투웅......
"......!"
내 검은, 처음으로 아무것도 베지 못한 채 튕겨져 나와 버렸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있으리라고 상상도 하지 않았던......최악의 순간이었다.
공격이 막힌 나는, 그대로 떨어지며 바닥을 한 바퀴 구르며 착지를 하였다.
물론 몸에는 아무런 데미지도 없었다.
그 정도 착지도 못할 내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정신적인 충격은 적지 않았다.
'아, 안 먹혔다고?......공간 베기가?......'
그리고 다음 순간.
고개를 들어 올린 나는, 크로토스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하였다.
"재미있는 놈이 하나 섞여 있었구나. 후후후!"
그 서늘한 눈동자에.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