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쓸어버려라
리오는, 머리의 통증도 잊은 채 멍하니 앤드류를 올려다보았다.
"다, 당신이 일곱 기사단의 폭염의 기사, 앤드류......?"
앤드류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그에 답하였다.
"크으. 그 별호 오랜만이네. 내가 그래도 그 정도 이름 값이 있기는 하지?"
그는 그대로 검을 뽑아들어 리오의 머리통을 붙잡은 거신의 어깨에 검을 박아 넣었다.
푸욱!
"끄아아아악!"
거신은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다른 손을 휘둘러 앤드류에게 날렸다.
그러나 그 날렵한 앤드류의 움직임을 쫓기에는 반 박자 정도 느렸다.
휘릭.
이미 앤드류는 거신의 어깨에서 벗어나.
바닥에 안착을 했고.
그 직후.
파팟!
다시 몸을 날려, 이번에는 거신의 옆구리를 그었다.
촤아아아악!
거신의 선혈이 눈 밭 위로 뿌려졌고.
"으윽!"
이제 거신은 손에 쥐고 있던 리오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
녀석을 쥔 채로는, 앤드류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양손이 자유로워진 거신은.
이를 갈며, 두 주먹을 머리 위에서 부딪혔다.
그러자.
번쩍!
놈의 두 손에는, 존재하지 않던 황금빛의 도끼 두 자루가 생겨났다.
두 자루의 도끼를 쥔 거신은 목 근육을 풀며 눈을 크게 떴다.
"사냥의 거신, 이 투후카 님의 사냥감이 된 것을 영광으로 알아라!"
"글쎄? 도끼가 두 개나 있는 게, 누가 봐도 나무꾼의 신 아니야?"
"사냥감 주제에 혀가 길구나. 네놈의 사지가 이 도끼에 잘리고 나서도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을까?"
"모르지. 네 사지가 멀쩡하지 않게 될 수도 있잖아? 사냥을 하다 보면 사냥감에게 먹히는 날도 올 수 있고 그런 거 아니겠어?"
"내 사전에 그런 일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사냥의 거신 투후카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앤드류를 항해 내달렸다.
여전히 놈의 어깨에서는 피가 흘렀지만.
야만 전사처럼 전혀 개의치 않고, 달려들었다.
그 모습이 충분히 위압감을 들게 만들었다.
지켜보고 있는 리오조차 살이 떨릴 정도로.
그러나.
"이제 새 사전 필요하겠네!"
앤드류는 그 압박감을 전혀 느끼지라도 않는 듯.
여전히 여유로운 얼굴로, 가벼운 몸놀림을 유지하며.
오히려 투후카를 요리하고 있었다.
* * *
'앤드류 경도 빠르긴 한데......'
투후카도 결단코 느리다고 표할 정도는 아니었다.
의외로 전반적인 속도는, 앤드류와 투후카 둘 다 비슷한 수준이었다.
투후카 역시 절대로 느리다고는 할 수 없었기에, 저걸 능가하는 건 쉽지 않기도 했고.
그럼에도 투후카는 앤드류에게 닿지 못했다.
제3 자의 입장에서 그 전투를 지켜보니, 리오의 눈에는 이유가 조금 보이고 있었다.
'절묘하게 공격이 들어오는 순간에만 급속도로 가속을 해서 피하시는구나......!'
앤드류의 움직임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반면 투후카는 비슷한 속도를 가졌음에도 잡스러운 동작이 너무 많았다.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아도, 지금 어느 쪽의 마음이 더 조급한지 단면적으로 보여지는 부분이었다.
'첫 기습으로 어깨를 찌른 게 유효했구나. 그리고 앤드류 경은 그걸 알고 이용하고 있고. 대단하다......'
로한이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 스타일이라고 한다면.
앤드류는 전투를 말 그대로 가지고 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자였다.
지금 이 순간조차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
하지만 이 모든 게 철저한 계산 하에 움직인다는 게 또 놀라운 부분이었다.
직접 상대하고 있는 투후카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리오의 눈에는 보였다.
"사냥꾼 아저씨. 그래 가지고는 토끼 한 마리도 못 잡겠는데?"
"이 쥐새끼 같은 놈이!"
투후카의 출혈은 멈추지 않았고.
바닥이 피로 흥건해지면 해질수록, 그의 체력은 빠르게 깎여 나갔다.
마침내 그 움직임 자체가 앤드류보다 느려지는 순간이 도래하였다.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투후카는.
필사의 공격을 감행하였다.
"흐아아아아!"
그러나 그것은 최악의 자충수였으니.
지금의 저 공격은, 리오조차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수준이 낮아져 있었다.
리오도 발견한 빈틈을 놓칠 리 없는 앤드류는.
"폭염 난무라고. 새로운 기술인데, 들어는 봤어?"
촤좌자자자자작!
엄청난 검격을 일순간에 퍼부었고.
둘의 몸이 교차되며 지나치는 그 순간.
퍼퍼펑! 퍼퍼퍼펑! 퍼어어어엉!
앤드류의 이명처럼.
폭염이 검로를 따라 폭발을 일으켰다.
"꺼어억......!"
투후카의 몸에서는 탄 내와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고.
쉬이이익......
결국 놈의 무릎이 꺾이며, 털썩 쓰러졌다.
리오는 저도 모르게 감탄을 하였다.
"이럴......수가......!"
그에 앤드류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어이, 신입. 내 이름을 듣고 바로 알아보는 걸 보니, 날 아는 거 같은데......그래, 내 어떤 영웅담을 들어 봤길래 나를 아는 거야?"
앤드류는 가슴을 쫘악 펴며 물어왔다.
그러자 리오는 주춤주춤 입을 열었다가.
"그, 그게. 로한 경에게 들었습니다만......"
끝까지 말을 않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덕분에 더 궁금해진 앤드류는 얼굴을 들이밀었다.
"로한 경이? 어? 뭔데? 뭐라고 했는데? 후후!"
"그......"
"그래, 그래. 편하게 말해."
칭찬 들을 준비가 잔뜩 된 앤드류를 향해.
거짓말을 못하는 리오는 사실 그대로를 말해 버렸다.
"그, 그게......엄청나게 까부는, 원숭이 같은 녀석이라고......"
"......"
* * *
마로도로스는 확실히 강적이었다.
'까다롭긴 하네.'
안테이오스의 골렘 속에서 숨어들어왔을 때부터 눈치를 챈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는 굉장히 의심이 많은 성격이었다.
스스로 높은 경지에 존재하는 상위 거신임에도, 안테이오스와는 달리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경계심은 전투 내내 이어졌다.
덕분에 마로도로스는, 적 중에서는 유일하게 숨이 붙은 채로 내 검격의 사정거리를 파악한 존재가 되었다.
놀라운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네놈......그룬트가 아니로구나!"
마로도로스는 심지어 내 정체까지 간파를 해낸 것이었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바뀔 건 없었다.
"용케 알아낸 것 같기는 한데......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다."
"달라지는 게 없기는. 많지."
마로도로스는 기분 나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네놈이 그룬트라면, 겁을 먹고 나오지 못할 놈들이......지금은 나올 수 있게 되었거든!"
그 말을 기점으로.
쿠구구구구......!
바닥이 이상하게 흔들리는가 싶더니.
퉁, 퉁, 퉁!
사방에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고.
후두두둑......
그 아래로 눈이 떨어지며, 바닥 아래에 숨겨져 있던 그 지독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옥......!"
악마들이 득실득실거리는 지옥이었다.
그 구멍을 통해 악마 놈들이 기어 올라오는 게 보였다.
당연하게도, 지금 이 타이밍에 잡졸 같은 악마들이 기어 올라올 리는 없었다.
지금 구덩이를 타고 올라온 놈들은 하나같이 지옥의 군단장급은 될 법한 놈들이었다.
"그룬트라면, 골치가 좀 아팠는데 말이지. 네놈이 그룬트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면, 이 악마들이 얼마든지 싸울 수 있거든!"
마로도로스는 히죽 웃어 보였다.
"이 전쟁에서 활약을 하면 내가 직접 새로운 군단장으로 만들어준다고 약속했으니......아마 목숨 걸고 덤빌 거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악마들이 나를 향해 포효를 했다.
"캬아아아아!"
"크르르르르르!"
"꺄아아아우우우우!"
온갖 기괴한 모습의 악마들이 내 앞을 가로막았고.
매복해 있던 하위 거신들 역시 적지 않은 숫자가 튀어나와 퇴로를 막았다.
마로도로스는 뱀과 같이 끝이 갈라진 혀를 날름거리며.
나를 비웃었다.
"이것까진 몰랐겠지? 크크크큭!"
솔직히 한 방 먹긴 했었다.
트롤과 하위 거신까지는 눈치를 챘건만.
지옥과 연결되는 통로까지 마련해두었을 줄은 상상도 못한 까닭이었다.
당황한 것은 나뿐만이 아닌듯하였다.
저 멀리서 돌파를 하고 있던, 가우리엘을 필두로 한 인원들 역시도 갑자기 들이닥친 악마와 몬스터들에 갇혀버린 것이었다.
리오 역시 한 거신에게 머리가 붙잡히는 게 보였다.
'제법이네......!'
마로도로스 특유의 성격 덕분에 전장의 상황은 조금 피곤하게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나 혼자서 전부 지키면서 싸우기는 쉽지 않겠......'
그때였다.
내 제3의 눈에 또 다른 기운이 감지된 것은.
이것은 악마 놈들과는 정반대의 기운이었다.
그리고 그 기운의 정체를 파악한 나는, 나를 비웃고 있는 마로도로스를 향해 마주 웃을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내가 미소를 보이자.
마로도로스는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죽을 때가 되니, 이게 정신을 놓았나......뭐가 좋아서 실실거리느냐."
"첫 번째는. 그래도 명색이 신이라는 작자가. 얼마나 급했으면, 악마를 꼬드겼을까 싶어서."
"......"
마로도로스의 인상이 조금은 찌푸려졌다.
나는 멈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두 번째는. 그 옹졸한 수마저도 이제 곧 실패할 게 눈에 선해서."
"실패? 설마 네놈 혼자서 이 많은 병력을 쓸어버리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아니지. 그건 안 되지. 그룬트라 하더라도 이 정도라면 꼬리를 말고 도망쳐야 할 판이니까."
"누가 혼자라던가?"
나는 검을 쥔 손을 들어 올려, 마치 피뢰침처럼 세웠다.
그리고.
우르르릉......콰과가가가가강!
검은 번개의 폭풍을 일으켰다.
그렌델처럼 조용히 깰 수는 없을지라도.
이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
그러자 하늘을 덮고 있던 거신족의 결계에 금이 갔고.
쩌저적......쩌적!
그 빈틈을 통해 하늘에서 빛을 타고 익숙한 얼굴들이 내려앉았다.
쾅! 콰아아앙! 콰아아앙!
그들은 바닥에 도착하면서부터 트롤과 악마들을 뭉개며 등장을 했다.
간만에 보는 오르헬이 손가락을 풀며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내었고.
뚜두둑!
"어이, 브라더! 내가 왔다!"
이어서 리치몬드가.
"로한 형님. 저희 필요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하하하하!"
그리고 디아즈와 아를렘이.
"로한 님.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우리가 돌아왔도다."
빛의 기둥에서 나타났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빛의 기둥은, 마치 폭우처럼 끝도 없이 하늘에서 쏟아졌으니.
파아아아아앗!
카리앗 산 전체가 빛으로 뒤덮였고.
그 안에서 일전에 본 적이 있던 기사들이 더 나타났다.
그들은 다름 아닌 심해의 기사들이었다.
더불어 눈에 익은 얼굴이 하나 더 있었으니.
포세이튼이었다.
"오랜만의 지상이로군. 그리고, 오랜만에 보는 얼굴도 있네. 마로도로스."
순식간에 하늘에서 쏟아져 내 뒤를 꽉 채운 전사들에.
마로도로스가 이빨을 드러내며 인상을 사납게 찌푸렸고.
나는 놈을 노려보며.
목소리를 크게 키워 모든 병력들을 집중시켰고.
"모조리!"
팔을 앞으로 뻗으며, 명령을 내렸다.
"쓸어버려라."
그에 거신과 악마들을 향해.
심해의 기사들이 강렬한 기세로 달려나갔다.
"우와아아아아아!"
"돌겨어어어억!"
"와아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