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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184화 (184/194)

184화. 나중에 뭐가 되려고......

쿵......쿵......쿵......

세 거신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눈보라를 헤치며 카리앗 산을 항해 진입하고 있었다.

멀리서는 그 거대한 덩치도 형체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지독하게 시야가 나빴지만.

어느 정도 거리를 좁힌다면 그래도 보통의 인간들보다는 쉽게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나올과, 안테이오스 그리고 바루툼이었다.

물론 나올을 제외한 안테이오스와 바루툼은 골렘이기는 하였다.

우리는 마치 트로이의 목마처럼, 안테이오스와 바루툼 골렘 안에서 자리를 잡은 채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상태로 걸어온 게 반나절.

혹여나 카리앗 산의 거신들에게 들킬 우려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이었다.

그래도 뭐, 썩 나쁘지는 않았다.

일단 칼날 같은 바람도 막아주고.

의외로 보온도 잘 되니.

조금 공간이 좁은 것만 빼고는 불편함이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적들이 거신이라서 다행이다 싶었다.

덕분에 내부 공간이 이 정도는 나왔으니까.

비교적 덩치가 더 큰 안테이오스의 골렘에는 나와 가우리엘, 크뢰이튼과 그렌델 그리고 리오까지 함께 대기 중이었고.

바루툼의 형상을 한 골렘 안에는 크라우스와 두 명의 일곱 기사단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카리앗 산으로 진입하고 얼마 후.

예민한 감각을 가진 몇몇이, 이질적인 느낌을 감지하였다.

먼저 입을 연 것은 그렌델이었다.

"로한 경."

"음. 이게 바루툼이 말했던 그 결계인가 본데."

"예. 꽤나 잘 짜여진 녀석인 거 같습니다."

나는 그렌델을 돌아보며 물었다.

"뚫을 수 있나?"

그냥 박살을 내고 진입하는 것과는 달랐다.

진짜 안테이오스와 바루툼인 척해야 했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계를 파괴하는 게 아니라 통과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파괴 정도라면 나도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만.

결계를 건드리지 않고 통과를 하는 건 오로지 그렌델만이 가능했다.

나의 그 물음에.

그렌델은 잠시 결계를 살피는 듯 집중을 하더니, 이내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좋아. 그럼 시작해 봐."

"예."

그렌델은 눈을 감고 입으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였다.

그런 그녀를 두고, 나는 크뢰이튼을 쳐다보았다.

"아르테미스의 마법서를 얻으면서, 그렌델이 크게 성장을 했군. 거신족의 결계까지 뚫을 수 있게 되다니. 크로토스의 부활을 준비하며 준비한 결계일진대, 이리도 자신만만한 걸 보면 말이야."

그런데, 크뢰이튼은 조금 예상치 못한 말을 내뱉었다.

"그런 게 아닐세."

"음?"

"성장한 게 아니라. 원래부터도 이상하리만치 결계는 잘 뚫었네. 심각할 정도로."

"......"

"아마 마녀 아르테미스가 살아 돌아오더라도, 그렌델보다는 결계를 잘 뚫지 못할 것이야. 그 마법서에 적혀 있던 결계를 뚫는 방법도 그렌델의 수법보다는 뒤떨어졌다네."

스승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로.

그렌델의 결계 뚫는 실력은, 압도적인 모양이었다.

실제로 그것을 체감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렌델은 결계에 집중하고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다 됐습니다. 이제부터는 저희가 결계를 지나가도,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합니다."

크뢰이튼은 활짝 웃는 그렌델을 보며.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였다.

"저건 나중에 뭐가 되려고......에휴."

* * *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걷고, 걷고, 또 걸어 올라갔다.

골렘의 몸 안이라는 게 너무나도 다행스러울 정도로 고된 산행이었다.

때문에 유일하게 맨몸으로 이 험로를 돌파하고 있는 나올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정작 나올은 별로 크게 문제가 없는 듯, 척척 잘도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허, 허억!"

갑자기 나올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는 게 아닌가.

잔뜩 겁을 먹은 모습으로.

동시에 내 제3의 눈에도 무언가 불길한 기운이 감지되었다.

우리는 모두 발을 멈추었다.

저쪽에서 이리로 다가오고 있었기에.

골렘 안에서는 극도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나올의 모습만 보아도 알 수 있었으니.

덜덜덜덜......!

굳이 내 정도의 기감이 아니더라도, 이건 모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저 눈보라를 뚫고 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안테이오스......"

그 얼굴을 알아본 가우리엘이.

내게 작게 속삭였다.

"거신 마로도로스이네. 고통의 거신이자, 강력한 힘을 가진 상위 거신이지. 그리고 동시에 거신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놈일세."

"생긴 것도 그렇네."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붉은 눈.

그 눈이 네 개가 붙어 있으며 여기저기 뿔이 솟아 있어.

그 얼굴은, 인간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코는 마치 해골처럼 움푹 들어간 채 존재하지 않았다.

입 역시 입술이 없이 날카로운 이빨이 아무렇게나 막 뻗쳐 있었다.

다리 또한 범상치 않았는데, 염소의 것처럼 털이 수북하게 덮인 채.

역발형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발 또한 염소의 그것처럼, 발굽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만약 가우리엘의 설명이 없었더라면 영락없는 악마처럼 보였다.

그 존재가.

나올을 슬쩍 쳐다보자.

나올은 선 채로 얼어붙었다.

마로도로스는 그런 나올을 보며 가소롭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고.

"나올. 네놈이 배신을 했다는 소리가 있던데."

"아, 아니다! 나올 배신 안 했다!"

"그래?"

"그렇다. 지금도 이렇게 안테이오스랑 같이 오지 않았나."

마로도로스는 네 개의 눈을 가늘게 뜨더니.

피식 웃었다.

그리고서는 나를, 아니, 안테이오스 골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안테이오스. 하던 일은 잘 끝났나? 그룬트의 힘을 되찾아와 보겠다면서?"

혈석의 이야기로군.

안테이오스 뿐만 아니라 마로도로스 역시 혈석의 정체를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걸 알고 있는 이상, 혈석을 찾았다고 한다면 들킬 게 뻔하기에.

나는 최대한 기억 속의 안테이오스 말투를 떠올리며.

거짓말을 내뱉었다.

"실패했다."

"큭큭. 실패? 천하의 안테이오스도 못하는 게 있었군?"

"......"

둘의 사이는 별로 좋지 않은 건가?

알 수 없었다.

해서 나는 일단 침묵을 하였다.

괜히 말을 길게 끌다가는, 정체가 탄로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아직까지는 들켜선 안 되었다.

놈들이 크로토스 부활 의식을 진행하는 곳까지는 찾아 들어가야 했다.

깽판을 쳐도 거기서 쳐야지.

지금부터 막히면 곤란했다.

내가 입을 다물자, 마로도로스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실패한 건 실패한 거고. 그럼 일단 제단으로 올라가지."

"그러지. 앞장서라."

"앞장......서겠네."

마로도로스는, 우리를 향해 등지고는 다시 산의 위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

갑자기 치솟는 살기!

온 몸의 솜털이 바짝 서는 그 기운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다음 순간, 마로도로스는 상체를 휘익 돌리며 그대로 팔을 내뻗었다.

안테이오스 골렘의 복부를 향해.

그곳에는 지금 우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도망치라는 말도 하지 못하고, 얼른 내 옆에 있는 그렌델과 가우리엘을 밀쳐.

최대한 빈 공간을 만들었다.

푸우우욱!

눈 깜짝할 새에 마로도로스의 손끝이 방금 가우리엘과 그렌델이 있던 자리를 쑤셨고.

촤아악.

그들을 밀치기 위해 움직였던 내 뺨이, 놈의 손톱에 스쳤다.

단지 스치기만 했을 뿐인데도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이건......잘못 걸렸으면 목이 날아갔을 터였다.

그 공격에 안테이오스 골렘의 복부에 큰 구멍이 뚫려버렸고.

그 구멍을 통해서 마로도로스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찾았다......요 쥐새끼. 크큭!"

나는 놈을 보며 한숨을 지었다.

"하아. 너 같이 감이 좋은 거신은, 딱 질색이라니까?"

* * *

마로도로스는 양쪽 입꼬리를 쭈욱 찢어 웃었다.

"연기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안테이오스는 누가 앞장서는 걸 더럽게 싫어하거든."

"칫. 그건 몰랐네. 좀 빨리 알려주지 그랬어?"

"이것 봐라? 감히 나를 앞에 두고도 할 말 따박따박하는 걸 보니, 확실히 보통 놈은 아니로구나."

마로도로스는 나올을 슬쩍 쳐다보며 물었다.

"어디서 이런 재미있는 놈을 데려왔는지. 나중에 천천히 들어주마, 나올."

"우윽......!"

노골적인 협박에.

나올도 처음에는 주춤 물러섰다.

그러나.

"너, 너는 로한 형님 못 이긴다!"

기특하게도 나올은 뒷걸음치던 발을 멈추고는, 마로도로스에게 반박을 하기 시작하였다.

"바르바우도! 안테이오스도! 전부 로한 형님을 못 이겼다! 로한 형님은, 강하기도 하지만 너희들과 다르게 나를 신경 써 줬어! 나올도 가만히 있진 않을 거다!"

"네놈이? 후하하하하! 네놈이 감히 내게 덤비겠다고?"

"못 할까 봐? 할 수 있다!"

"잘도 하겠구나."

그에 나는 둘 사이를 끼어들었다.

"이봐, 잡신. 나랑 얘기 아직 안 끝났는데?"

"자, 잡......신? 지금 내게 그리 말한 것인가?"

"그래. 나올은 그 제단인지 뭔지 찾으러 보낼 거니까. 나랑 얘기하지?"

"누가 보내준다더냐?"

"내가."

"푸하! 푸하하하하하!"

눈사태가 일어날까 걱정이 될 정도로 크게 웃어 젖힌 마로도로스는.

겨우 숨을 고르며 다시 입을 떼었다.

"네가 뭔데?"

"글쎄. 그거까지 내가 설명해 줘야 하나?"

나는 거기까지만 대답하고는 나올을 불렀다.

"나올. 여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처음에 말했던 대로, 제단을 찾아내서 박살 내 버려라. 가라."

내가 나올을 보내려 하자.

마로도로스는 나올을 향해 눈을 희번떡 거리며 소리쳤다.

"멈추어라!"

"괜찮다. 가."

"내 분명 멈추라고 하였다, 나올."

"여긴 신경 쓰지 말고 가라, 어서."

"한 발짝이라도 움직였다가는, 내 손에 죽을 것이다. 나올."

주춤거리던 나올은.

결국 나를 믿고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흐아아아압!"

마로도로스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은 나올에게 짜증이 났는지.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나올이 뛴 방향으로 몸통을 돌렸다.

그리고는 그를 쫓으려 했으나.

나는 놈의 앞을 막아섰다.

그에 마로도로스는 분노를 하였고.

"이 자그마한 놈이! 감히 누구 앞을 막느냐!"

발바닥을 들어 나를 짓밟았다.

쿠우우우우웅!

그러나.

"......엇?"

놈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로도로스는 이상한 감각이 느껴지는 자신의 발바닥을 내려다보았고.

나는 팔 하나로 놈의 발바닥을 막아낸 채로 서 있었다.

놈의 눈과, 내 눈이 허공에서 얽혔고.

당혹스러워하는 마로도로스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나는 한 방 더 먹이기 위해.

펄럭!

검은 날개를 펼쳐 보였고.

그것을 본 마로도로스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 그 날개는......! 그룬트?......어떻게 네놈이 그룬트의 힘을......!"

"글쎄? 이놈이 내 힘을 가진 게 아니라, 내가 이놈 몸을 가진 걸 수도 있잖아? 큭큭!"

"서, 설마......! 네놈......!"

씨익.

나는 입꼬리를 비틀며, 다시 한 번 연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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