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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182화 (182/194)

182화. 저건......나잖아!

"크로토스를 포기하고 나에게 붙는 게 어떤가? 과거 내 실력은 이미 잘 보았을 터. 영원히 부활하지 못할 크로토스보다야, 내가 낫지. 안 그래?"

로한이 본심을 완전히 드러내자.

바루툼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이 나를......회, 회유하는 것이냐?"

"회유? 푸훕! 악신은 협상 따윈 하지 않아. 내가 부탁하는 걸로 보여?"

얼굴 표정은 웃고 있으나, 장난 따위가 아니었다.

진짜로 그의 주변으로는 거친 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으니까.

'가우리엘이 함께 있어서 상상도 못했는데......이게 어찌 된 일인가. 설마 가우리엘도 그룬트의 편으로 넘어간 건가?'

계산이 되질 않았다.

가우리엘의 성격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바루툼의 머릿속에는 오히려 더 혼란만 가중되었다.

그러나......한 가지는 명확하였다.

'이 기운은 확실히 그룬트가 맞다.'

직접 눈으로 저 살기 가득한 눈동자와.

그룬트의 기운을 확인한 바루툼은, 더 이상의 의심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확신을 했다.

저 로한이라는 자의 실체는, 그룬트였다.

저 모습은 그저 그룬트의 새로운 껍데기일 뿐.

속 알맹이의 진정한 모습은, 다름 아닌 그 심연의 악신이었다.

'젠장! 하필 그룬트에게 사로잡힐 줄이야......'

두려웠다.

악신 그룬트의 진짜 무서운 점은, 종잡을 수 없는 그 성격이었으니까.

거신들조차도 얼마든지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졌으면서.

그 힘을 제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괴물이었다.

잘 대화를 하다가도 갑자기 수틀려서 목을 치는 일도 흔했다.

때문에 바루툼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내게 원하는 게 무엇이지?"

"내가 널 살려 둔 이유?"

"......그렇다."

"간단해. 한 가지만 딱 이야기해주면 되거든."

"......"

"지금 네놈들. 아무리 봐도, 크로토스의 부활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인 거 같은데. 그런 일을 벌이려면, 뭔가.....그런 거 있잖아."

"의식."

"그래. 부활 의식. 그런 걸 해야 할 거 아니야?"

단어도 떠올리지 못하며 대충대충 대화를 하는듯했지만.

옛날부터 그룬트는 저랬다.

모르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다 꿰고 있었다.

오히려 그룬트가 저렇게 말을 한다고 해서, 못 알아듣는 척을 한다면.

그때부터 진짜 지옥이 시작될 터였다.

때문에 바루툼은 침착하게 그의 물음에 답을 했다.

"지금 그 의식이란 걸 하고 있거나. 혹은 할 준비를 하는 중일 텐데. 그럼 모여 있을 거 아냐? 그럼 편하잖아? 여러 번 말 할 필요 없이 다 있는 곳에서 한 번만 말하면 되니까."

"무엇을......?"

바루툼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한다고?

그러나 로한, 아니, 그룬트는.

그 성격에 딱 맞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

"꿇으라고."

"......!"

* * *

바루툼은 생각도 못 한 그 말에, 당황스러웠다.

설마 적진의 한가운데로 뛰어 들어가서 일을 벌이겠다고?

제아무리 그룬트라 할지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었다.

그룬트도 신이지만, 상대인 거신들도 신이니까.

그런데......

'그룬트라면 진짜 저지를 것 같다......'

그 미친 행동을 과거에 본 적이 있던 바루툼은 그 말조차 허투루 넘길 수가 없었다.

'아니. 차라리 잘되었다. 그룬트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그냥 넘길 수는 없지. 차라리 지금 처리하는 게 나을지도......'

어차피 가우리엘도 저 그룬트의 편으로 넘어간 걸 보면.

아를렘 역시 잘못되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다면 진짜 적은, 아를렘이 아니라 저 그룬트이리라.

해서 바루툼은 로한을 유인할 작전을 구상하였다.

"좋다. 내가 직접 안내하겠다."

"오? 생각이 좀 바뀌었나?"

"그렇다. 나는 너에게 대적할 수 없으니. 네 말을 따르겠다."

"한데,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넌 여기서 못 나가. 누구 마음대로 직접 안내를 해?"

"뭐, 뭐라고? 네, 네가 안내를 하라면서?"

"어디 있는지 말을 하랬지, 언제 직접 안내를 하라고 했나?"

"미친놈이!"

바루툼은 눈을 부라리며 반항하였다.

"그걸 말하면 나를 해코지 할 게 뻔한데, 순순히 말할 것 같으냐!"

"대답 안 하면 해코지 안 할 거 같나?"

로한은 바루툼의 허벅지를 향해, 손을 찌르듯 내질렀다.

푸욱!

"끄아아아악!"

불사라고는 해도, 통각이 없는 건 아니었다.

생으로 살이 꿰뚫리니.

바루툼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만 같았다.

로한은 씨익 웃으며 다시 얼굴을 들이밀었다.

"조금 전에 말했잖나. 협상 따위 하자는 게 아니야."

"크윽......!"

잠시 눈동자를 굴린 바루툼은.

다시 입을 열었다.

"조, 좋다! 네 말을 따르겠다! 어디 있는지 말을 해 주마!"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룬트를 상대로, 섣부른 장난질은 할 수 없었기에.

있는 사실 그대로를 말 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이건, 내가 아니라 그 누가 여기 있었더라도 결국 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북쪽의 카리앗 산!"

"카리앗 산......?"

"그래! 카리앗 산이다. 그곳에서 크로토스를 부활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었다."

"오호라. 그런 게 있었나?"

대답을 들은 로한은 흥미롭다는 얼굴로 턱을 쓰다듬었다.

"하나, 나 역시 그 방법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래?"

"더불어, 내가 직접 동행하지 않는 한. 넌 그곳에 발을 들이지 못할 것이다. 거신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게 결계를 쳐두었으니까. 카리앗 산에 들어가 봤자 그저 길을 헤매다가 반대편으로 나가지겠지."

바루툼은 식은땀을 흘리며, 로한을 노려보았다.

"이것은 협박 따위가 아니다. 단지 사실 그대로 말해 준 것일 뿐이다."

"그래?"

"단언하지."

"그렇다면......이것도 안 통하려나?"

로한은 손을 들어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고.

쿵, 쿵, 쿵!

누군가가 이 동굴 안으로 점점 다가왔다.

그리고 그 존재의 얼굴을 확인한 바루툼은.

눈을 부릅뜨며 기겁을 하였다.

"마, 말도 안 돼......!"

로한이 불러들인 것은 다름 아닌.

"저건......나잖아!"

영락없는 바루툼의 모습이었으니.

그걸 본 바루툼이 놀라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나는 입을 떡 벌린 바루툼을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어때? 이래도 안 통할 것 같나?"

바루툼은, 떨리는 눈동자를 겨우겨우 로한에게 돌렸다.

'저, 저놈이......안테이오스의 힘을 어떻게......!'

* * *

겁을 잔뜩 먹은 바루툼을 그대로 내버려둔 채.

나는 가짜 바루툼과 동굴 밖으로 걸어 나왔다.

가짜 바루툼의 정체 다름 아닌, 안테이오스의 힘으로 창조한 골렘이었다.

바루툼이 기절한 사이에 만든 것이었다.

한편.

내가 나오는 걸 기다리던 가우리엘은.

가짜 바루툼의 발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동굴 밖으로 막 나오는 나와 딱 눈이 마주쳤다.

그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내게 다가왔다.

"어떻게 되었나."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공포만큼 진실에 쉽게 다가가는 법도 드물지."

"허어. 놀랍군."

미리 가짜 바루툼을 만들어 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모든 시나리오는, 계산된 것들이었다.

가우리엘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도.

어두컴컴한 동굴에 바루툼을 가둬둔 것도.

내가 로한이라는 존재가 아니라, 그룬트로 착각하게 연기한 것까지도.

"만약 나를 그룬트라고 오해하지 않았더라면, 바루툼은 끝까지 입을 다물었겠지."

가우리엘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루툼은 거신 이외의 존재는 아무리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한들 겁을 먹지 않을 성격이었다.

단 하나.

과거 거신들을 사냥했던 악신 그룬트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 허점을 노린 나는.

일부러 그룬트의 기운을 최대한 끌어올리며 그를 기만하였고.

그 작전은 보란 듯이 먹혀들어갔다.

결국 공포를 느낀 바루툼은, 우리가 원하던 정보를 내뱉었으니까.

"북쪽의 카리앗 산이라고 하더군."

"카리앗 산."

가우리엘은 그 이름을 되뇌이며, 북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 역시 그리로 고개를 돌리자.

그 끝에는 눈으로 뒤덮인 하얀 거산이 보였다.

저곳이 바로......카리앗 산이었다.

"하지만 위치 이외에는 알아낸 것이 없다. 카리앗 산도 좁지는 않으니, 정확한 장소를 알아내려면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을 터. 찜찜한 건......크로토스를 부활시키려 한다는 건 예상대로이긴 하지만, 무슨 방법을 써서 그것을 실현시킬지까지는 모른다는 것이다."

"바루툼 같은 하위 거신에겐 숨긴 모양이로군."

"그렇겠지."

가우리엘은 그곳에 시선을 둔 채.

내게 물었다.

"이제 어쩔 셈인가."

나는 잠시 생각을 하고는.

답하였다.

"일단은 바루툼을 조금 더 심문하긴 하겠지만......아마 더 나올 건 없을 것 같고......"

나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내쉬며, 말을 이었다.

"가 봐야지. 저놈도 장막 안의 진실은 모르는 듯 하니......직접 가서 알아내는 수밖에."

크로토스가 부활하는 것은......막아야 했다.

* * *

결국 바루툼은 더 이상 아무런 정보도 토해내지 못했다.

나는 살려 둘 가치가 없어진 바루툼의 목을 친 후.

동굴 안에 봉인을 시켜두었다.

더불어 안테이오스의 힘까지 일으켜, 그 동굴을 무너뜨려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게 만들어두었다.

그리고 나서야 우리는 다시 디오라지 마을로 내려왔다.

마을 곳곳에 일어났던 화재들은 전부 잡혀 있었지만.

여전히 메케한 냄새는 사방에서 몰려왔고.

멀쩡한 건물은 찾아보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부상자가 아닌 이가 없었으며.

죽은 자가 없는 집안이 존재하지가 않았다.

일곱 기사단의 기사들은, 크게 다친 자들을 제외하고는 전부 나서서 복구를 돕고 있었다.

그때 우리가 내려온 것이었다.

나와 가우리엘을 발견한 크라우스는.

일손을 잠시 멈추고 다가왔다.

"오래간만에 평화로운 마을을 보아서 잠시 잊고 있었는데......"

나는 그 말 속에 담긴 말을 이해했다.

오래간만이라.

그만큼 지금 다른 곳에서는 전방위적으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의미일 터였다.

이곳이 단지 작은 마을이라 전란의 화마가 늦게 들이닥쳤을 뿐.

"빨리 이 전쟁을 끝내야 하네. 길어졌다간......복구도 힘들어질 것이야."

나 역시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 참상은, 더 이상 지켜보기가 힘들 정도였으니까.

그럼에도 우리들을 향해서 마을 사람들은 종종 말을 걸어왔다.

"덕분에 아이를 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도와주신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요."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기사님."

그것이 오히려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마을 복구도 힘들진 데.

그들은 생선이며 음식이며, 우리들에게 가져다주기 바빴다.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빨리 마을을 떠나야겠다 싶었다.

"우리가 오히려 방해만 되는 것 같군."

가우리엘 역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에게는 그만큼 큰 힘이 된 것일세. 자네가."

"......서두르지."

"알겠네."

그렇게 우리는, 부상당한 기사들은 어쩔 수 없이 마을에 쉬도록 한 후.

카리앗 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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