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이건 가르쳐 줄 수 없다
"꺄아아아아악!"
"나, 나 좀 살려줘요! 다, 다리가 벽돌에 깔렸어! 살려줘요!"
"크억......!"
"엄마! 엄마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앙!"
첫 폭발음이 들리고.
곧바로 내달린 나와 리오.
우리는 꽤나 빠르게 도착을 했지만......
이미 이 작은 항구 마을, 디오라지는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리오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얼어붙었다.
"이, 이게 대체......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러는 동안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마을의 상황을 훑었다.
이곳 역시도 쑥대밭이 되기는 했다만.
폭발의 근원지 쪽이 분명 더 큰 피해가 있을 터였다.
나는 그 근원지를 찾으려 하였다.
다행히도 마을이 그리 크지는 않았기에.
유난히 불길이 거세고 연기가 많이 피어오르는 구역이 눈에 들어왔고.
바로 그곳을 향해 발을 굴렀다.
"저쪽이다!"
"아, 예! 예!"
반 박자 늦게 리오가 내 뒤로 따라붙었다.
조금씩 리오는 뒤처지긴 했지만.
바로 어제에 비해서는 지금이 훨씬 빨랐다.
체력적으로도 밤을 새운 상태라 더 피곤할 텐데도.
'하지만 전장이라는 게, 언제나 최상의 컨디션일 때만 펼쳐지는 건 아니니까.'
원래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정작 전력을 끌어올려야 하는 순간은 언제나 최악의 타이밍에 겹치기 마련이었다.
지금 리오의 심정이 딱 그러하리라.
그럼에도 일곱 기사단의 일원인 이상.
멈출 수는 없었으니.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앞에 펼쳐진 광경은......
지옥이었다.
* * *
"제, 젠장......!"
리오의 입에서, 절망 섞인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그럴만했다.
부상자들이 즐비하던 조금 전의 마을 초입 구역과 달리.
이곳은 모조리 시체뿐이었다.
살릴 시도조차 허락하지 않는......죽음의 땅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곧이어, 우리들의 눈에는 마을을 이 지경으로 만든 근원이 들어왔다.
"전부 쓸어버려라! 한 놈도 남기지 마라!"
높은 키에, 네 개의 다리를 가진.
반인반마의 괴수.
켄타우로스들이었다.
그들은 웬만한 말보다 큰 덩치로, 사람들을 치고 지나가고.
인간은 들 수 없을 만한 기다란 창을 휘저으며.
불이 붙은 화살을 사방으로 쏘아대었다.
마을 사람들은 말발굽에 깔려 죽기도 하고.
창에 가차 없이 상체와 하체가 찢어졌으며.
화살에 맞아 죽기도 했다.
혹은 불화살이 일으킨 화마에 갇혀 처절하게 타 죽는 이들도 여럿 있었다.
그 참혹한 광경 속에서도 켄타우로스 무리들은 연신 미소를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인간 시대의 끝이 도래했다! 그 종말을, 우리가 선두에서 알리리라! 흐하하하하!"
그들은 점점 더 범위를 넓혀가며, 살생을 이어가고 있었으니.
우리가 도착하던 그 순간.
때마침 반대편에서 크라우스를 비롯한 다른 일곱 기사단의 인원들이 튀어나왔다.
가우리엘과 하인트 교구장, 그리고 몬테드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저들 역시 충분한 전력이 되긴 할 터였다.
갑자기 등장한 일곱 기사단.
그리고 나와 리오 사이에 포위된 켄타우로스 무리.
그들의 수장으로 보이는 녀석은.
잠시 우리들을 둘러보더니,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돌파하라!"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그들의 전략은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포위가 된 상태라면, 오히려 한 점으로 전력을 집중시켜 돌파를 하는 게 유효했으니.
하지만 그 방향이 실수였다.
반대편에는 크라우스와 세 명의 기사까지 총 네 명의 인원이 있었고.
이쪽에는 나와 리오 둘뿐이었다.
당연히 숫자가 적은 쪽을 돌파하는 게 일반적인 판단이기는 하나......
'숫자에만 집착할 게 아니라, 상대의 실력이 어떠한지도 파악을 한 후 병력을 움직였어야지!'
내가 있는 방향으로 몰고 들어오는 것은 큰 실수였다.
* * *
리오는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그 괴물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오자.
흠칫 놀라며 물러섰다.
그 모습을 보면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아직 실전 경험이 많이 부족하구나.'
그를 가르칠 때부터 느끼기는 했다만.....
바짝 얼어붙은 모습을 보아하니, 특히 마수에 대한 내성은 거의 바닥인 것 같았다.
'차라리 잘됐어.'
만약 내가 없는 곳에서 이런 상황에 맞닥뜨렸더라면.
최악의 경우에는 제대로 실력 발휘도 해보지 못하고 비명횡사를 했으리라.
나는 이번 기회에게 그에게 마수와 싸우는 법을 직접 보여줄 생각이었다.
백번 말로 하는 것보다야, 한 번 눈으로 보는 게 더 확실하니 말이다.
당혹스러워 하는 리오를 향해 나는 소리쳤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내 뒤로 바짝 붙어라! 마수라고 해봤자, 다를 것 없다! 저놈들은 그저 말 탄 기사라고 생각하면 그뿐이니!"
"아, 예! 예!"
물론 말에 올라탄 기사를 상대하는 게 쉬울 리는 없었다.
이곳에서 말을 타고 중무장을 한 기사는, 탱크와 다름이 없었으니까.
다만 무릇 일곱 기사단이라 함은, 비록 탱크 취급을 받는 마상 기사라 할지라도 혈혈단신으로 격파를 할 수 있어야 했다.
그쯤은 해주어야 대륙에서 가장 강한 일곱 명 안에 들어갈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도 저들은 중갑까지는 착용하지도 않은 채였다.
기껏해야 가죽으로 된 장갑들뿐.
덩치는 그 기사들보다 크긴 하지만.
이것도 극복하지 못한다면, 더 큰 괴수들에게는 대항해볼 엄두도 내지 못할 터였다.
나는 리오에게 보란 듯이 일부러 앞선 대련에서 보여준 움직임들을 해주었다.
지금 이 순간 역시도, 그에게는 배우는 시간이 될 것이었다.
지금까지 배운 것들이 어떻게 쓰이는지.
혹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흐아아아압!"
그리고 내 예상대로.
리오에게는 큰 재능이 있었다.
마치 스펀지처럼 쭉쭉 흡수하는 그 광경을 보고 있으니.
내 배가 다 부를 지경이었다.
'이런 맛에 제자 키우는 건가?'
갑자기 크뢰이튼의 심정이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어쨌든.
고작 두 명이 있는 방향으로의 돌파를 시도했음에도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자.
오히려 공격을 들어온 켄테우로스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하였다.
서로 뒤엉켜 쓰러지기도 하고, 같은 편의 창에 찔리기도 하며.
사상자가 점점 불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나와 리오를 돌파할 수 없다고 판단한 켄타우로스 우두머리는.
방향을 다시 뒤로 돌렸다.
차라리 저 네 명을 돌파하겠다는 심산이었다.
"방향을 돌린다! 후방을 재정비하고, 그쪽부터 뚫어버려라!"
다시금 켄타우로스 우두머리의 명령이 떨어지자.
그들은 진영을 가다듬으며 정신을 차리고는.
네 명의 일곱 기사단을 향해 내달렸으니.
"온다! 대비해!"
저쪽 일곱 기사단원들 중 최연장자이자 최고 실력자인 크라우스가 자연스럽게 리더의 자리를 맡게 되었다.
그러나 크라우스의 표정은 영 좋지 않았다.
거리가 꽤 멀기는 했지만.
내 눈에 순간 그의 얼굴이 들어왔다.
'대응이 불가능한 건가?'
나는 촉을 바짝 곤두세우며.
언제든 튀어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실제로 켄타우로스 하나하나의 힘은 그리 무서운 편이 아니었다.
뭐 이것도 내 기준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상태가 되어버리니.
그들은 하나의 거대한 군체의 형태로서, 생각보다는 까다롭게 변했다.
아마 크라우스는 나와 리오가 싸우는 광경을 보고서 적의 수준을 잘 파악한 것 같았다.
다른 기사들과는 달리.
다른 일곱 기사단원들의 얼굴은, 오히려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내 실력이야 아직도 잘 모르는 것 같고.
그나마 잘 알고 있는 리오가 생각보다 잘 버티니.
'리오보다 강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자신만만할 수밖에.'
그런데 크라우스를 제외한 셋 모두 똑같은 표정인 걸 보니, 아무래도 제대로 적을 파악한 이는 없는 듯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몇 초도 지나지 않아 격돌한 네 명의 기사단과 켄타우로스 무리.
창과 검이 맞부딪히자마자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 * *
크라우스는, 켄타우로스 군단이 기수를 돌리는 순간.
섬뜩해짐을 느꼈다.
'이건......위험할 수도 있겠는데?'
차라리 혼자였다면 안개를 펼치고, 그 안에서 농성을 해 볼 수도 있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평소 일곱 기사단은 한 명 한 명이 거대한 전력이기에 거의 대부분 혼자 움직이는 게 일상이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다 보니, 지금은 이쪽에만 네 명의 일곱 기사가 모여 있었던 것이다.
저들은 하나같이 협동하여 싸우는 법을 모르고 있었다.
남 말 할 처지도 아니었다.
'나부터도 잘 모른단 말이지......!'
그래도 물론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압도적인 전력만 있다면, 굳이 협동하지 않아도 되었다.
방금 전 로한이 보여준 것처럼.
그러나 그건 로한이니까 가능한 것이고.
이쪽에는 그 누구도 로한에 견줄만한 인원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런데도 근거 없는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고 있으니......
이만큼 위험한 상황도 없을 터였다.
'로한이 이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로한 역시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파악했는지.
바로 이쪽을 향해 내달리고는 있었다.
다만, 하반신이 말인 켄타우로스보다 빠르게 달린다는 건 불가능할 것이 뻔했다.
'고작 몇 초이긴 하지만......버텨야 하는데.'
수비에만 집중해야 했다.
그래서 외친 말이, 대비하라는 것이었다.
하나, 기사들 중 하나가 갑자기 아군 진영 따위는 무시 하고 앞으로 튀어 나가 버렸다.
"젠장! 막아야 한다고!"
그러는 와중에도 다른 기사 하나가, 먼저 뛰어간 기사의 뒤로 따라붙었다.
"우린 막는 것 따위는 모르오! 일곱 기사단은 악을 패퇴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까!"
"지금은 아니라고!"
크라우스의 그 목청은 공허했다.
채 말릴 틈도 없이.
먼저 튀어 나간 기사 둘과 켄타우로스 군단이 격돌을 한 것이었다.
물론 그들도 일곱 기사단이라는 명성에 맞게, 처음 몇 놈은 쓰러뜨렸다.
하나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푸욱!
최선두에 있던 기사의 옆구리에 장창이 박혔고.
"이놈들이!"
두 번째 뛰어나간 기사는, 쓰러뜨렸다고 착각했던 켄타우로스의 창에 등이 길게 베였다.
촤아아악!
피가 위로 솟구치고.
처절한 비명이 뒤를 따랐다.
"아악!"
크라우스는 미칠 지경이었다.
지금 구출하자고 뛰어들자니, 자신의 목숨도 장담할 수가 없었고.
그렇다고 그냥 버려둔다면, 눈앞에서 일곱 기사단 중 두 명이나 잃을 판이었다.
'신이시여......!'
그 때였다.
하늘이 요동친 것은.
우르르릉......
순간, 거센 천둥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콰과가가가가가가강!
눈이 화끈거릴 정도로 격렬한 벼락들이 사방으로 내려 찍혔다.
이것이야말로 신의 분노이리라!
압도적인 번개 폭풍이 켄타우로스 군단을 휩쓸고 지나간 직후.
쉬이이이익......
바닥에 널브러진 켄타우로스 군단 사이에서.
유유히 한 명의 그림자가 서 있었다.
모두 숨을 죽인 채, 그에게 집중을 하고 있었다.
곧 탄내 가득한 연기가 바람에 날려가며, 그 모습이 드러났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로, 로한 경?......."
깜짝 놀란 크라우스의 입에서, 그 이름이 튀어나왔다.
한편, 로한은.
저 뒤에 선 리오를 쳐다보며 한 마디를 내뱉었다.
"이건 가르쳐 줄 수 없다."
리오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는.
"그, 그렇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