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실전 투입
초월 스크롤.
이걸 내 눈으로, 실물을 보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파오갓에서 영구히 삭제된 아이템이기 때문이었다.
'완전히 없어져서 본편에서는 등장조차 하지 않았는데......'
데모 버전에서만 잠깐 등장했던 아이템이었기에.
이 초월 스크롤에 대해서는 크게 알려진 바조차 없었다.
나 또한 딱 한 번 사용해 본 게 전부였고.
효과는 단순명료했다.
[보유하고 있는 고유 스킬의 능력을 한 단계 초월시킵니다. 초월 고유 스킬의 능력은 랜덤으로 부여됩니다. 신중히 결정하십시오.]
당시 유저들의 반발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게임사의 상술이 뻔히 보였으니까.
초월 스크롤을 설명하는 문장에 들어간, 한 단어.
랜덤이라는 글자가 원흉이었다.
그야말로 예측을 불허하는 효과가 들어간 것이었다.
그러나 그게 언제나 유용한 방향으로 적용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일도 있었다.
격투가 캐릭터가 초월 스크롤을 사용했을 때.
마나가 존재하지 않는 격투가 클래스임에도, 격투가 고유 스킬에 마나가 회복되는 옵션이 붙어버리는 일 같은 것 말이다.
그건 오히려 기분이 나쁜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니까.
당연히 그런 망한 고유 스킬을 얻게 된 유저는,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개발사는 거기에 대한 대비책도 준비해두었으니.
[초월 해제 스크롤]
이것이었다.
초월 해제 스크롤 역시 효과는 단순했다.
[초월 스크롤의 효과를 제거합니다.]
초월 고유 스킬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초월 해제 아이템을 구매해서 다시 초월 스크롤을 쓸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패키지 게임을 팔아 놓고, 또 과금을 유도하는 것.
지금이야 DLC니, 이니 해서 패키지 게임에도 과금 요소가 들어가는 게 이상하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이미 돈을 주고 구매한 게임에 또 돈을 들이라는 과금 유도는.
유저들에게 뭇매를 맞는 행동이었다.
더군다나 게임의 핵심을 관통하는 요소인 고유 스킬이 업그레이드되는 아이템이지 않은가.
스킨 따위와는 달리, 밸런스 자체에 영향을 끼치기에
덕분에 이 아이템은 완전 폐기 처분이 되었고.
결국 권능 초월이라는 개념 자체도 파오갓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그래서 당연히 이걸 얻게 되리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손에 들어오게 되다니.'
기대하지 않은 까닭일까.
기쁨은 몇 배로 다가왔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겨우 참고 있을 정도로.
한편, 정작 이 귀한 걸 전해준 리오라는 이름의 기사는.
아직도 이게 무엇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하긴. 이게 뭔지 알게 된다면, 욕심이 날 수도 있으니. 마르코 녀석이 일부러 숨겼을 수도 있겠군.'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럴 수도 있지 않은가.
특히 초월 스크롤쯤 되는 물건이라면 더더욱.
'나는 고유 스킬이 하나가 아니라서......어떤 스킬에 쓸지 고민을 좀 해봐야겠는데? 당장 써야 하는 건 아니니까. 일단은 챙겨두고 나중에 천천히 생각 좀 해야겠어.'
기분 좋은 고민에, 나는 최대한 표정 변화를 숨기며.
초월 스크롤을 품에 넣었다.
"잘 쓰겠다고 전해주면 고맙겠군."
"전쟁이 승리로 끝나 살아 돌아간다면......그렇게 하겠습니다."
"살아 돌아갈 자신이 없나?"
나는 품 안을 정리하며, 슬쩍 그를 쳐다보았다.
리오는 의기소침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일곱 기사단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닙니다. 모르돈이 죽어서 이 자리에 있는 것뿐."
그는 자신을 낮추고 있었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달랐다.
"글쎄. 나는 네가 가장 유망해 보였는데."
나도 이제는 꽤나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으며.
보는 눈이 생기긴 했었다.
아직 아를렘 정도로 내면 깊숙한 곳에 내재된 잠재력까지는 무리더라도......
'생각보다는 면밀하게 가늠이 된단 말이지.'
그런 내 시야로 보았을 땐.
일곱 기사단들 중 가장 성장 가능성이 큰 것은 바로 내 눈앞에 선 이 기사.
리오였다.
하지만 리오는 나의 그 말조차 곧이곧대로 듣지 못하였다.
단지 말 뿐인 격려쯤으로 받아들인 듯 보였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기운이 나는군요."
그러나 단순한 격려 따위가 아니었다.
내가 허울뿐인 말을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실제로 리오는, 다른 일곱 기사들과 달리 크라우스와 나의 대련을 가장 정확히 본 유일한 사람이었다.
나와 크라우스의 대련에서, 첫 번째 합이 있던 시점.
내가 어깨 밀치기로 거리를 벌렸을 때였다.
다른 일곱 기사들은 그저 크라우스가 혼자 뒤로 물러선 것이라 보았었지만.
오로지 리오만이 제대로 내가 수를 썼다는 걸 파악했었던 것이다.
물론 어깨 밀치기라는 것까지 알아내진 못한 것 같았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그 혼잡한 상황에서 내 움직임을 어림짐작으로나마 쫓아왔다는 게 대단한 거지.'
일곱 기사들 중에서도 가장 어려 보이는 녀석인데......그 정도의 눈을 가진 것이라면.
충분히 재능이 충만하다 할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 작게나마 가르침을 줄까 싶었다.
무엇보다, 인성도 가장 괜찮아 보였고.
다른 이들이 다들 음식이나 숙소 문제로 투덜거릴 때.
홀로 가만히 있었던 게 리오였다.
어차피 아군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나도 따지고 본다면 신격인데.
이 정도 신의 자비쯤은 내려도 괜찮지 않겠나 싶었다.
'초월 스크롤 배달도 제대로 해주었고.'
해서 나는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하나 던져줘 보기로 했다.
"가장 유망해 보인다던 내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고 싶나?"
받으면 해주는 거고.
이것도 받지 않으면, 제 운이 없는 것이고.
"......"
잠시 눈동자가 떨리던 그는.
결심이 선 표정으로, 천천히 대답하였다.
"확인......시켜 주실 수 있으십니까?"
"따라와라."
그렇게 우리는.
조금 인적이 드문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 * *
이렇게 한적한 곳에서 대련을 할 생각을 하니.
디아즈를 가르치던 때가 생각이 났다.
'지금쯤 심해에서 잘 배우고 있으려나.'
그때의 디아즈처럼.
리오 역시 간절함이 가득한 얼굴로 나의 앞에 서 있었다.
그래도 그때와 달리 나는, 조금 더 성장을 한 상태였으니.
아무래도 조금 더 잘 가르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입을 떼었다.
"나를 쫓아 올 때도 그렇고. 잠행이나 은신에 재능이 있더군."
"하지만, 금방 들키지 않았습니까?"
"그건 상대가 나니까 그런 거고."
"......예?"
"다른 놈들이었다면 쉬이 알아차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 그렇습니까?"
"이것도 못 믿겠는가?"
"아, 아닙니다! 믿습니다!"
음, 믿음이 조금 과한 거 같기도 하고.
"어쨌든. 그 말인즉, 스텝을 이용한 검술에 능하다는 것이겠군."
"마, 맞습니다!"
단박에 맞춰버리니.
리오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제 시작일 뿐인데 벌써 저리 놀라면 어쩌자고......'
나는 그것을 못 본 체하며 말을 이었다.
"나쁘지 않은 접근법이다. 보통은 화려하게 검을 휘두르기 위해 상체에 집중을 하지.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을 받쳐주는 하반신이다. 크라우스의 움직임도 하체에서부터 솟아나는 것이고."
물론 얼마든지 크라우스보다 더 빠르고 치명적이게 움직이는 이들이 즐비하였다.
하나 일단 나는 지금 가르치는 입장이기에.
듣는 리오의 기준으로 이야기를 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시선에서는 크라우스가 최강자의 쪽에 속할 것이기에.
크라우스를 예시로 드는 게 더 강하게 와 닿으리라.
내 예상대로.
크라우스의 이름이 거론되자, 리오의 눈빛이 반짝반짝 거리기 시작하였다.
"나와 크라우스의 대련 당시에도, 내 발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피더군."
"헉! 알고 계셨습니까?"
"보고 나서, 뭘 느꼈나?"
"그게......잘 모르겠습니다. 너무 유려해서, 군더더기가 없다는 건 알 수 있었지만. 순간순간 놓친 부분이 너무 많았습니다. 짧은 순간에도 계속해서 움직이셔서......"
"제대로 보았다. 모든 자세에는 가장 효율적인 발놀림이 따라붙어 줘야 하지. 그것이 무게 중심을 낮추는 것일 수도 있고, 상체를 단단히 지지하는 것일 수도 있고. 예를 들어 지금 같은 순간에는......!"
나는 그에게 잘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반 템포씩 늦게 발을 움직였다.
타다닷!
그럼에도 내 속도는 이미 크라우스보다 빨랐다.
후웅.
압도적인 바람 소리와 함께 리오의 코앞에 선 나의 모습에.
그는 바짝 얼어붙어 버렸다.
"지금처럼 이렇게 간결하게 움직인다면......"
"우와......! 우와......우와아아아아!"
내 말 듣고 있는 거 맞나?
아무래도......안 듣고 있는 거 같았다.
* * *
"돼, 됐다!"
확실히 보법에 한해서, 리오의 센스는 나쁘지 않았다.
검술 쪽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이것저것 다 재능을 가지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디아즈 같은 애들이 특이한 거지.
실제로 지금 리오의 수준만 되더라도, 다른 일곱 기사단원들은 물론이요.
크라우스와도 비등할 것이리라.
고작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변화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일 터였다.
그것을 가장 절절하게 느끼는 것 또한 리오 본인이었다.
"이, 이게......내가 이렇게나 할 수 있었다고......?"
그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듯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그저 작게 웃었다.
그것은 원래 리오 본인 안에 잠들어 있던 힘이었다.
외부에서 생긴 다른 무언가가 아니라.
나는 단지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일 뿐.
그런데도 리오는 내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주군을 마주한 기사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이 은혜!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로한 경!"
"일어나라. 그럴 정도의 일은 아니니."
"로한 경께선 별일 아닐지 모르겠지만......제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은 로한 경께서 신이라고 해도 얼마든지 믿을 것입니다!"
"......"
신 맞는데......
내 입으로 나 신 맞다, 라고 하기에는 뭔가 어색했기에.
나는 말을 넘겨버렸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앞서 말했듯, 나는 네게서 더 큰 잠재력을 보았다.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고 더욱 정진한다면. 앞으로 더 높은 영역까지도 충분히 손을 뻗칠 수 있을 것이다."
"이것보다 더......높은 곳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그는 쉽사리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곧.
그 표정은 사라지고, 결의가 가득한 모습이 되었으니.
"믿겠습니다!"
"......그래......"
이상하게 광신도 같은 애가 하나 탄생한 것 같았다.
뭐, 그래도 본성은 괜찮은 애 같으니까.
다만 지금부터는 실전 경험도 중요했다.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는 걸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콰아아아아앙!
우리 숙소가 있던 방향에서 갑작스러운 폭발음이 들려오는 게 아닌가.
이어 화염까지 솟구치니.
'아무래도, 바로 실전 투입을 해야겠네.'
나는 슬쩍 리오를 쳐다보고는.
짧게 내뱉었다.
"가자!"
"예! 로한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