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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178화 (178/194)

178화. 유용하게 쓰시길

크라우스는 이제 검을 약간 비스듬하게.

그리고 조금 더 느슨하게 쥐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일곱 기사단원들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진심으로 하려는 것 같은데......?"

"크라우스 경이 그 정도로 할 정도라고? 우리들 중 그 누구도 크라우스의 저 모습을 끌어낸 사람이 없잖아."

"고작 한 번 공방이 오간 것뿐인데, 크라우스 경이 너무 상대를 과대평가하는 게 아니겠는가."

아직은 반신반의.

하나 그 중 한 명만은 생각이 달랐으니.

그는 발트라스 왕국의 기사였다.

다름 아닌, 로한의 손에 죽은 모르돈이 있던 그 발트라스 왕국.

그곳에서 새로이 발탁된 기사였던 것이다.

'반인반수 중에서도 백수의 왕 사자의 권능을 쓸 수 있던 일곱 기사단 모르돈. 그 모르돈조차 제대로 손도 써보지 못하고 저 로한이라는 자에게 압살을 당했다고 했다. 그저 뜬소문이라고만 생각했지만......만약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자신은 모르돈보다도 약자에 속했다.

그러니 발트라스 왕국의 대표가 되지 못해, 일곱 기사단에 들지 못했던 것이고.

한데 모르돈이 죽고 나자.

그 기회가 자신에게 찾아왔고.

지금은 이렇게 일곱 기사단의 일원이 된 채였다.

덕분에 신의 권능이라 불리우는 능력도 하나 손에 넣게 될 수 있었다.

'운이 좋았다.'

만약 모르돈이 죽지 않고 계속 남아 있었더라면.

자신에게는 영영 이런 기회가 오지 않았으리라.

물론 그건 그거고.

모르돈과 로한의 결전에 관한 소문은, 크게 신뢰하지 않았던 그였다.

그 로한이라는 자도, 어쩌다가 자신처럼 운이 좋아서 모르돈을 이긴 게 아닐까.

언제나 소문은 크게 부풀려지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만큼 모르돈은 거산과도 같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의 실력자였다.

자신 또한 모르돈과 맞붙어 본 적이 있었기에 장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크라우스와 로한의 첫 번째 공방이 끝난 직후.

그의 생각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크라우스는 다시 한 번 공격에 나섰다.

'이번에야말로 눈 똑바로 뜨고 제대로 확인을 하겠어. 과연 첫 공방이 운이었는지......진짜인지.'

타다다닷!

로한과 크라우스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 * *

크라우스를 보며, 나는 한 가지를 더 배웠다.

'조심해야겠네.'

상대방의 전력을 알지도 못하고 이렇게 치고 들어오는 건.

목숨을 건 도박과 다름없다는 걸 깨달은 까닭이었다.

지금이야 그저 대련이니, 특별히 살의를 띄지 않았지만.

만약 이게 실전이고, 내가 저 크라우스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죽였다.'

멀리 갈 것까지도 없었다.

굳이 공간 베기를 뺀다 하더라도, 내 손에 쥐어진 신검 모르테논의 힘이라면.

칼날이 닿지 않는 원거리도 벨 수 있었다.

화살 만큼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창 정도의 사거리는 되었으니.

이미 크라우스의 목은 하늘로 솟구쳤으리라.

일단은 벌써 한 수는 봐준 택이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크라우스는, 그래도 나쁘지 않은 속도로 검이 닿을 거리까지 거리를 좁혔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그 속도를 검에 실어.

두 번째 공격을 시작하였다.

첫 번째와는 확연히 달랐다.

직선적이고 정직한 공격이 아니라, 이런 속도를 유지하면서도 허초가 섞여 있었던 것이다.

'상체 공격은......가짜다!'

그 와중에 교묘하게, 자신의 권능인 안개까지 섞어.

은근슬쩍 시야까지 가리니.

대응하기 꽤나 까다로운 콤비네이션인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는 진짜 크라우스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순간이라 할 수 있었다.

나는 반 걸음 정도 물러서며 일단은 그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난 후.

휘이익......!

크라우스의 일격이 한 번 지나간 것을 제3의 눈을 이용해 감지해냈다.

일반적이라면 이제 나의 턴이 돌아와야 했지만.

크라우스는 그리 호락호락하게 내게 기회를 넘기지 않았다.

검격이 채 끝나기도 전에, 크라우스는 내 무릎을 가격하기 위해 바로 발을 뻗었던 것이다.

전투화 끝에서 작게 반짝이는 게 보이는 걸로 봐선.

날카롭게 날을 세운 강철이 바닥면에 붙어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내게 선택지를 강요하고 있었다.

피하면 재차 공격 기회가 넘어가고.

피하지 않고 타격을 받는다면, 그 충격으로 또 이어지는 크라우스의 후속타를 피하기 힘들 것이었다.

'크라우스가 준비해둔 것들 중 그 어떤 걸 선택해도 내겐 불리하네.'

이게 바로 고수와 하수의 차이였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끝까지 끌어다 쓰는 걸로도 모자라서.

스스로 기회를 창출하는 것.

크라우스는 그 경지에 닿을 정도의 감각과 지혜를 가지고 있는 존재였다.

거기다가 그 계산을 실행할 수 있는 육체적 능력까지.

가히 영리한 전투 방법이라 할 수 있었다.

역시 머리가 좋으면 몸이 편해지는 법이니까.

다만......몸이 좋으면, 머리가 편해지기도 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크라우스의 이 설계를 피하기 위해 골머리를 썩혀야 했겠지만.

나는 그의 발길질보다 더 빠르게 내 발을 움직여.

휘리릭!

날아드는 크라우스의 발등을, 발바닥으로 밟아 버린 것이었다.

꾸우욱......!

먼저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허공에서 발을 밟혀버린 크라우스는 굉장히 당혹스러운 얼굴을 하였고.

내 검은 이미 그의 목전에 자리를 잡았으니.

처억.

대련은 끝이 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크, 크라우스 경이......"

"저자가 이렇게도 무력하게 패배를 했다고? 이런 있을 수 없는 일이!"

"코앞에서 두 눈으로 보았는데도 믿을 수가 없군......"

그리고 발트라스의 기사 역시 떨리는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그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소문이......진짜인 것 같네......"

* * *

"예상은 했는데 말이지. 어후."

내가 검을 치우자.

크라우스는 털썩 주저앉으며 자신의 목을 쓰다듬었다.

마지막 순간에는 적잖이 살기를 실었기에.

아마 얼핏 죽음을 느꼈을 터였다.

그럼에도 크라우스는 만족스러운, 혹은 후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막상 상대를 해보니, 아주 그냥 차원이 다르네. 같은 일곱 기사단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지경이야."

나는 그에 고개를 저었다.

"일전에 만났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성장하지 않았나."

"그러니까 더 기운 빠지는 거 아니겠나? 그렇게 죽어라 성장을 했는데.....이 지경이니 말이지."

나는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는 않고.

그저 그가 일어설 수 있도록 손을 내밀었다.

크라우스는 내가 내민 손을 붙잡고는, 다시 일어섰다.

"뭐, 한 가지는 확실하네. 이런 친구가 아군이라면......질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군. 하하하하!"

그렇게 대련이 마무리되자.

가우리엘과 하인트 교구장은 자리를 떠났고.

일곱 기사단의 기사들은, 여전히 대련장에 남아서.

나와 크라우스의 대련을 복기하기 시작하였다.

크라우스 역시도 그곳에 남아 있었고.

나는 조용히 검을 거두고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들은 이미 육체적 수련만으로는 더 강해질 수 없는 경지에 닿은 이들이었다.

이제부터는 깨달음의 영역일 터.

나는 멀리서 그들이 한 꺼풀을 탈피하여, 나비처럼 날아오르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런데......

샤샥.

한 그림자가 나를 쫓고 있었다.

다름 아닌 일곱 기사단의 기사 중 하나가.

다른 일곱 기사들은 대련장에 모여 분석을 하기 바빴는데.

지금 내 뒤를 쫓는 자는, 그쪽에는 관심이 없던 모양이었다.

나는 말 없이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살의가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데......따로 할 말이 있는 것인가.'

그렇게 잠시 걸어서.

아무도 없는 곳에 도착한 나는.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이쯤이면, 다른 사람들에게 보일 일은 없을 것이다."

한 마디 말을 내뱉자.

어둠 속에서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완전히 기척을 숨겨 내가 자신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어림도 없지.'

곧이어.

"실례가 많았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타인들의 시선은 좀 피하고 싶어 이리 조심히 따라왔습니다. 저는 발트라스 왕국에서 추대된 일곱 기사입니다. 리오라고 합니다."

그는 결국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드러내었다.

* * *

"발트라스 왕국이라면......"

나도 떠오르는 게 있었다.

모르돈이었던가?

사자의 모습으로 변신을 하면서, 디아즈를 노렸던 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오랜만인데도 잊지 않고 있는 내 기억력에 살짝 감탄을 하며.

나는 내 앞에 나타난 리오라는 이름의 기사를 쳐다보았다.

아마 내 손에 의해 모르돈 놈이 죽고, 새로운 일곱 기사가 된 것이 바로 저자인듯하였다.

혹시나 같은 왕국의 기사를 죽여 불만이 있어 쫓아온 건가 싶었는데......

그는 조금 다른 방향의 이야기를 꺼내었다.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모르돈은, 저의, 아니 저희 마을의 원수였습니다. 일곱 기사단이라는 직위를 가지고 약탈과 살인을 일삼았던 악질이었습니다. 그의 손에 저희 아버지 역시 돌아가셨고."

이거, 내가 알던 것보다도 훨씬 쓰레기였네.

조금 귀찮기는 했지만.

그런 쓰레기는 잘 청소했다 싶은 기분이 들었다.

"이 은혜. 언젠가는 꼭 갚겠습니다."

누군가를 돕겠다는 마음으로 벌인 일은 아니었는데......

굳이 은혜를 갚겠다니.

거절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큰 기대가 되는 건 아니다만.

그래도 뭐 언젠가는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나는 작게 끄덕이는 걸로 그 부분에 대한 대답을 대신하고는.

다시 물었다.

"그 말이 하고 싶어 여기까지 쫓아온 건가?"

"아닙니다. 지금까지는 제 사설이었고. 실은, 부탁받은 일이 하나가 있습니다. 왕실 연금술사에게."

"왕실......연금술사라고?"

그래.

발트라스는 연금술 대국이었다.

거기서 연금술사와의 인연도 있었고.

"마르코라는 왕실 연금술사입니다만. 알고 계십니까?"

"음."

마르코라면, 당시 내가 도움을 주었던 녀석이었다.

미래에 꽤 거물이 될 연금술사이기에 우연인 척하며 일부러 친분을 쌓았던 게 생각이 났다.

그쪽에 쌓아둔 인연도, 까먹고 있었는데.

마르코는 날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원래 재능이야 충만한 녀석이니......왕실에서 전폭적인 지지까지 받으면서 성장했다면. 지금쯤이면 적잖이 실력을 쌓았으려나.'

그 이름이 나오니 살짝 기대가 되었다.

마르코 정도의 연금술사라면, 어느 정도 쓸만한 물건이 나올 법도 했으니까.

기사 리오는, 품을 뒤지더니 무언가를 꺼내어 내밀었다.

'이게......뭐지?'

그것은 귀해 보이는 천으로 둘둘 감겨 있었는데.

그는 직접 왼손을 이용해 그것을 풀어주었다.

"로한 경께서 유용하게 쓰시길 바란다고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그것을 본 나는.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속으로는 크게 놀라고 있었다.

이게 마르코의 손에서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까닭이었다.

'이건......초월 스크롤......!'

이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이미 강력한 고유 스킬을, 더 강력하게 업그레이드시켜주는 아주 귀한 아이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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