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나도 데려가 주시오
나를 본 오르헬은, 벙찐 얼굴로 중얼거렸다.
너무 놀라니, 오히려 큰 소리도 나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왜, 왜, 왜, 브, 브라더가 두, 둘이야?"
얼마나 놀랐는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왜가 저만큼이나 많이 나오니 말이다.
나와, 내 모습을 한 분신 골렘은.
동시에 그를 쳐다보았다.
그 광경에 오르헬은 또 한 번 놀랐으니.
"허억! 두, 둘 다 움직인다!"
그와 거의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 가우리엘도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이건......설마, 골, 렘?"
그래도 가우리엘 쪽은, 과거에도 안테이오스와 맞서 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조금은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휘둥그레진 눈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골렘이......"
그때쯤이 되자.
오르헬과 가우리엘을 제외한 다른 인원들도 속속들이 전투태세를 갖춘 채로 이곳에 집결하였다.
끝가지 결사 항전을 할 각오가, 내게도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어 있으니.
그들 역시 혼란에 빠져 눈만 끔뻑 끔뻑거릴 뿐이었다.
한편, 오르헬과 같이 가장 먼저 도착했던 가우리엘 역시도 크게 놀라 굳어 있다가.
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아를렘을 발견하였는데.
"아, 아를렘 님!"
가우리엘이 목소리를 내자, 그제서야 오르헬도 아를렘을 발견한듯하였다.
오르헬은 나를 가리키며 아를렘에게 물었다.
"이, 이게 대체 어찌 된 영문이오?"
나한테 물어도 되는데.
뭔가 똑같이 생긴 골렘과 함께 서 있으니, 말을 걸기 껄끄러웠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아를렘은 친절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안테이오스는 이제 없어졌고......저것은 안테이오스의 힘을, 로한이 이용한 것이다."
"그 말은......로한이 안테이오스를 이겼다는 거 맞지?"
"그렇다. 잘 해결 되었다."
오르헬은 그럴 줄 알았다면서 주먹을 허공에 휘두르다가.
갈비뼈가 나간 상태였는지 옆구리를 부여잡고 뒹굴었다.
그래도 입은 웃고 있었다.
"하하하하! 브라더도 멀쩡히 살아 돌아왔고! 죽은 녀석도 없고. 이 정도면 만족이지! 아픈 거야 나으니까!"
그런데 오르헬을 보는 그녀의 눈빛이 조금은 달랐다.
마치......안쓰러움이 섞인, 아이를 보는 부모의 얼굴이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니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일이 있었다.
'오르헬이, 원래는 천사였다고 했던 거 같은데......'
혹여 아를렘은 알지 않을까.
여태까지는 워낙 정신없이 많은 일들이 연달아 터져 사사로운 것들은 묻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약간의 여유 정도는 있었다.
그리고 저 표정.
저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심해 요새에서 그녀와 어느 정도 함께 시간을 보낸 나였다.
과거였다면, 저 미묘한 차이를 놓쳤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에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아를렘에게 물었다.
"오르헬을......알고 있는 모양이로군."
느닷없는 그 질문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브, 브라더. 지금 그게 무슨......"
오르헬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를렘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하고 있다. 오르헬."
"......!"
* * *
오르헬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나를......알고 계신다고?"
그래, 그럴 것 같더라니.
내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오르헬이 과거 대천사를 따르던 존재라면.
아를렘도 알고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었다.
아를렘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대는, 여전히 기억을 잃었는가?"
그녀의 물음에.
오르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어디까지, 기억을 하고 있는가?"
"아무것도."
"그랬군."
그에 아를렘은, 과거의 오르헬에 대한 이야기 꺼내었다.
"그대는, 자랑스러운 천사였다. 그리고 유일하게 마신 오르쿠스가 직접 창조한 천사였지."
"......? 마신이 나를......창조했다고?"
이건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였다.
마신이 천사를 창조했으리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마신이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의아해하는 우리들을 향해.
아를렘이 질문을 던졌다.
하나 그 간단한 질문에 쉬이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물론 머릿속으로는 각자의 대답이 있긴 했다.
마신이라는 이름에서부터 오는 느낌이 있지 않은가.
솔직히 말하자면.
좋은 방향으로의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모두의 얼굴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보였기에.
아를렘은 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대들의 생각과 마신은 조금 다르다네. 마신 오르쿠스는, 우리 삼 남매 중에서도 가장 먼저 태어난 존재였지. 힘은 내가 강했지만......마음이 가장 강했던 것은 오르쿠스였다. 그는 자진해서, 지옥을 도맡기로 하였다. 지독한 죄인들이, 이 중간계로 올라와 이 땅의 존재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해."
가우리엘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렇다면......마신이 지옥에 있었던 것은......"
그리고 그 중얼거림에, 아를렘이 답했다.
"희생이었지."
"그런......!"
이제 아를렘의 시선은, 다시 오르헬에게 향했다.
"그리고 그대가, 오르쿠스의 유일한 유산이다."
"내......가......?"
"오르쿠스는 스스로 지옥에 갇혀 그곳을 지키는 대신, 그대를 중간계에 보내었다. 그것으로 오르쿠스는 마음의 답답함을 조금이라도 풀어보려 한 것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는 지옥에 있는 게 아닌가?"
"그랬지. 그대가 지옥이 아닌 다른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다는 사실 그것 하나만으로 버틴 것이다. 그리고 그대가 이곳에 있기에 마음을 다잡고 지옥을 지킨 것이고."
"......"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오르헬은.
한참이 지난 후에야 다시 말문을 열었다.
"나를 왜......창조한 것이지? 그의 피조물이라면, 만든 이유도 있을 것이 아닌가."
"창조했다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그대는 오르쿠스의 아들이다. 일을 시키기 위해 만든 골렘과는 다른."
"그러니까. 그게 왜 필요했느냐 묻는 것이오."
"글쎄. 나도 모르지.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오르쿠스는, 그대를 아꼈음이야."
오르헬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자.
아를렘은 그 이후의 이야기를 이었다.
"아직 우리 삼 남매가 거신족에게 승기를 잡기 전. 전쟁이 이어지던 당시, 천사였던 그대는, 거신들과의 전쟁에서 죽음에 이를 수 있는 큰 상처를 입었고. 악신 그룬트의 힘으로 새로운 삶을 얻게 되었다. 그 대가가 바로, 과거의 기억이었지."
"그래서 내가 아무런 기억이 없었던 건가......"
"그 대가의 가장 큰 희생양은 오르쿠스였다. 자신은 온전히 기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르헬 그대는 오르쿠스를 완전히 잊어버렸으니까. 그것이 악신 그룬트의 힘을 이용해 죽음을 극복한 대가였다."
자신의 과거를 알게 된 오르헬은.
복잡한 표정이 되었다.
아마 생각을 정리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릴 테지.
해서 아를렘은 잠시 그를 내버려두고.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디아즈였다.
"거기, 불사조를 들고 있는 아이야."
갑자기 아를렘이 자신을 거론하자.
디아즈는 깜짝 놀랐다.
* * *
"저, 저를 부르신 겁니까?"
"그렇단다."
"마, 말씀하십시오."
디아즈는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겨우겨우 대답을 하였다.
아를렘은 그녀가 긴장한 것을 풀어주려는 듯.
살짝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힘을 원하지는 않느냐?"
"힘......이라고요? 물론 원합니다. 간절히. 하지만......지금 이런 신들의 영역에서, 고작 필멸자인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예?"
"네가 무엇을 할 수 있다면? 그래도 그저 낙담만 한 채 가만히 있겠느냐?"
"그건......"
아를렘은 진중한 눈빛으로 디아즈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직 모르는듯하지만. 내게는 보인단다. 너는 원석 같은 아이로구나. 필멸자로서는 드물 정도로."
"제가......말입니까?"
"너와 로한의 동의만 있다면, 내가 한번 가르쳐보고 싶은데. 어떠하느냐?"
그에 디아즈의 눈동자가 내게로 돌아왔다.
'그래. 아직 디아즈에게 잠재력이 더 있었을 수도 있겠구나.'
디아즈의 잠재력은, 파오갓을 통틀어서도 손에 꼽히는 수준이었다.
그래고 내가 디아즈에게 가르쳐 준 것은, 전부 미래의 디아즈가 해낸 것들뿐이었고.
디아즈에게는 특별해 보였겠지만, 결국은 그녀 혼자서도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는 뜻이었다.
덕분에 빠르게 성장하기는 했지만......
'혼자서 익힌 것들의 한계를 돌파하지는 못하겠지.'
끝이 명확한 성장.
분명 지금의 한계로서는, 크로토스와의 결전에서는......솔직히 방해만 될 것이었다.
그리고 디아즈 또한 그 사실을 모르지 않을 터.
한데, 아를렘의 눈에는 뭔가 다른 게 보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뭔가 두려웠던 것일까?
디아즈는 쉽사리 답을 하지 못했다.
그에 내가 고개를 작게 끄덕여주었다.
아를렘은, 믿어도 된다고.
그 끄덕임을 본 디아즈는, 조금이나마 용기가 솟아난 것 같았다.
그녀는 심지를 굳힌 표정으로 아를렘을 마주 보았으니.
"해보겠습니다!"
아를렘은 웃는 얼굴로 화답을 하였다.
"잘 생각하였다."
"그럼......지금 여기서 바로......"
"아니. 네게 검술을 가르쳐 줄 곳은, 심해이다."
"심해......라고요?"
"로한도 갔다 온 곳이지."
설마 디아즈도 심해 요새로 데려갈 생각인 건가?
그런데 거기는......
"디아즈는 나와 달리 물속에서 호흡이 불가능하다."
"알고 있다. 그리고 당연히 방법도 있고. 원래라면 그대에게도 물속에서 호흡을 할 수 있는 마법을 걸어줄 심산이었다만. 내 예상이 빗나간 탓에, 필요가 없었지."
아, 그런 게 있었다고 듣긴 들은 거 같네.
한편.
내가 갔던 곳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디아즈의 눈동자는 조금 더 반짝거렸다.
"그곳에서라면......훨씬 더 강해질 수 있는 겁니까?"
"충분히."
그때였다.
오르헬이 나선 것은.
"잠깐!"
그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움직였고.
오르헬은 당당하게 아를렘에게 할 말을 했다.
"나도 데려가 주시오."
"그대도?"
"내가 마신의 후손이라면서? 그럼 키워볼 가치는 있는 거 아니오? 충분히 전력감이 될 거라 생각하는데."
"......장담할 수는 없음이야."
"그래도."
오르헬은 나를 돌아보며, 허락을 구하였다.
"괜찮지? 브라더."
나야 마다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편한 대로."
"고마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저, 저도요!"
큰 부상을 입은 채 크뢰이튼의 부축을 받고 있던 앤드류도 나섰던 것이다.
"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그들 전부를 스윽 훑어 본 아를렘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대들의 바람. 이루어주겠노라."
그렇게 그들이 사라진 지 어느덧 6개월이 흘렀고.
세상은 전쟁의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나 아직 아를렘과 오르헬, 디아즈 그리고 앤드류는 돌아오지 않았었다.
대신......
여태 보이지 않았던 가우리엘의 부관, 몬테드가.
나와 가우리엘의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으니.
"가우리엘 님. 일곱 기사단. 지금, 도착하였습니다!"
스트라운 수도원의 하인트 주교와.
새로운 일곱 기사단과 함께.
"오랜만이지요? 로한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