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골렘
나의 검이 안테이오스의 목을 쳤고.
쿠우우웅.
안테이오스의 거대한 머리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물리력만으로는 놈이 죽을 리 없었다.
거신은 기본적으론 불사의 존재였으니까.
나 또한 여태까지 싸운 거신들은 봉인을 하는 데에서 끝낸 것도 그런 이유였다.
죽일 수 없으니.
하지만 단념했던 나와는 달리.
아를렘과 포세이튼은 그 해답을 찾아내었던 모양이었다.
깊은 심해 속에서.
포세이튼이 다스리는 바다의 아래에는.
아직까지 그 누구도 발견하지도, 밝혀내지도 못한 미지의 것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존재했다.
그런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심해 강철이라는 물질이었으니.
포세이튼의 말에 따르면.
[먼 옛날. 하늘 밖에서 떨어진 돌이 바닷속에서 긴 세월을 지나게 되면......이 심해 강철이 되더군. 이 특별한 물질의 내재된 힘을 우연히 알아낸 나는, 아를렘과 함께 이것을 이용해 최강의 무기이자 동시에 최강의 감옥을 창조해내었네.]
그것이 바로 검은 천둥의 반지였다고 한다.
그들은 심해 강철을 이용해 반지를 창조하여.
먹구름을 피우는 바이칼의 정신체를 삭제해버리고, 그 힘을 봉하는 데에까지 성공하였으며.
심지어는 그 힘을 타인이 끌어 쓸 수 있도록 만들어내었으니.
그것이 심해 강철의 위력을 확인한 첫 번째 사례라 하였다.
물론 그 유용한 금속을 계속 만들어 낼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세상 일이 그리 쉬울 리가 없었다.
[나라고 그러고 싶지 않았겠나? 하지만 이 심해 강철을 모아 반지 정도의 크기로 만드는 데에만 자그마치 삼백 년이 걸렸네.]
그만큼 심해 강철은 귀하디귀한 물건이었다.
[심지어 당시에는 또다시 이만큼의 심해 강철을 모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네.]
그런 말까지 덧붙였었다.
해서 나는 되물었다.
[당시에는, 이라는 말을 붙인 걸 보니. 예상과는 달리 모으긴 모았다는 뜻인가?]
그 질문에.
포세이튼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으니.
그는 품에서 자랑스럽게 심해 강철로 만든, 새로운 반지를 꺼내어 보였다.
그것도 두 개나!
[고생 좀 했지.]
포세이튼은 그것을 나와 아를렘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고.
아를렘은 그때 받은 심해 강철 반지를 꺼내었다.
아직 사용법을 모르는 내가 할 수는 없었기에.
그녀가 먼저 나선 것이었다.
아를렘은 천천히, 내게 알려주듯 심해 강철 반지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는.
그 반지를 향해 마력을 주입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우우웅! 우우우우웅!
반지가 마력에 반응을 하며, 격하게 떨려오는 게 아닌가.
마치 살아 있어서 마력에 반응을 하는 것만 같았다.
그대로 점점 마력의 양을 늘려나가자.
심해 강철은 담금질을 하는 금속처럼 점차 붉게 변해가더니.
이내 거의 하얀 빛으로 탈바꿈하였고.
동시에 손바닥 위로 살며시 떠오르기까지 했다.
처음에는 보통의 흔한 반지처럼 보였던 그것이......
지금은 얼핏 보더라도, 신묘한 기운이 가득해 보였다.
아를렘이 살포시 안테이오스를 향해 손을 뻗자.
심해 강철 반지는 나비처럼 가벼이 날아서.
안테이오스의 위에 멈추어 섰고.
화아아아아아악!
태양과도 같은, 강렬한 빛을 뿜었다.
* * *
안테이오스는 어느새 머리를 수복하였지만.
그것도 계속해서 반복하다 보니 점점 괴로워 하는 게 눈에 보였다.
회복 속도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말이다.
이미 나로 인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안테이오스는.
불사의 능력 때문에 숨만 붙어 있는 상태였으니.
그런 그의 위로, 빛나는 반지가 떠오르자.
"서, 설마 저건......! 바이칼에게 썼던......!"
안테이오스는 그 물건을 알아보았지만, 도망치지 못한 채 눈동자만 바들바들 떨었다.
아를렘은, 내게는 보인 적 없던.
날이 날카롭게 선, 겨울의 칼날 같은 목소리를 내었다.
"그래. 그 설마 하며 떠올리는 그것이다."
"아, 아니야! 아, 안 된다고! 이, 이건 진짜 아니지! 아를렘! 당장 멈추어라! 당자아아아아아앙!"
하나 아를렘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으니.
안테이오스는 그렇게 울부짖으며.
빛을 뿜는 반지의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슈우우우욱......!
놈은 땅바닥을 붙들고 끝까지 버티고 버텼으나.
심해의 그 신비한 물질에, 포세이튼의 특수한 마법이 섞인 강대한 그 힘을 뿌리치기엔 역부족이었으니.
"으아아아아아아!"
그 마지막 단말마를 뒤로하고.
안테이오스의 거대한 몸체는, 반지 안에 집어 삼켜졌다.
안테이오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심해 강철 반지는 빛을 꺼뜨리고 추락하였으니.
땡그랑......
작은 금속제 물체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서 펼쳐진 고요.
지금까지 보였던 그 무시무시한 광경이 마치 환영이 아니었나 싶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아를렘은 조용히 저벅저벅 걸어가.
그 반지를 주워들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내게 내밀었다.
"받거라."
검은 천둥의 반지를 써봤기에 잘 알고 있었다.
저것은 단순히 안테이오스를 봉인시킨 게 아니라, 그 권능까지도 쓸 수 있도록 해준다는 사실을.
아를렘도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때문에 나는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
"내게 주는 것인가?"
아를렘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가지고 있어 봤자 쓸모가 없음이야. 반면 그대의 그 몸은, 얼마든지 거신들의 힘을 다룰 수 있지. 더불어, 바이칼의 힘도 다루어 보았지 않았나?"
뭐. 경력직이긴 하지, 내가.
아를렘이 계속 손을 뻗은 채로 서서 기다리고 있었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딱 맞게 들어오는 핏.
나는 힘껏 주먹을 꽈아악 움켜쥐었고!
"......"
아무 일도 없었다.
* * *
고요.
정적이 흐르자.
아를렘이 나를 쳐다보았다.
"힘을 한 번 테스트해보아도 좋다."
아니, 나도 그러고 싶은데.
".....어떻게?"
"음?"
"뭘 어떻게 써야 할 지 모르겠다는 게 문제인데."
검은 천둥의 반지 때와는 약간 상황이 달랐다.
그건 파오갓에서도 등장하는 아이템이었기에.
'원래 어떤 스킬을 쓸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단 말이지.'
그런데 지금 내 손에 들어온 이것은 그렇지가 않았다.
안테이오스가 쓰던 그 능력을, 어떻게 나에게 접목 시켜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내 물음을 들은 아를렘은, 이제 이해가 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파이칼 역시 거신족의 육신에 맞는 기술들이 있지만, 그걸 다 쓸 수는 없겠지. 지금 그대가 검은 천둥만을 쓰듯이."
뭐야, 다른 기술도 있었어?
몰라서 못 쓴 건데......
내 속내를 알 리가 없는 아를렘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지금 그 육신에 적합한 안테이오스의 능력이라 함은......"
고민을 하던 아를렘은.
생각도 못 한 기술을 알려주었다.
"역시, 골렘이지."
골렘이라니.
안테이오스 놈.
골렘 같은 것도 만들 수 있었던 건가?
하긴, 안테이오스 본인도 골렘처럼 생기긴 했으니까.
그런데 문득 궁금한 점이 있었다.
"트레이톤이라고, 이전에 미로아 섬에서 베르티엘과의 전투에서 파손된 후 아직 부활시키지 않은 골렘이 있다."
"음. 기억하고 있다. 내가 직접 물의 정령왕에게 내린 골렘이니까."
"그 녀석과는 다른 건가?"
"일부는 비슷할 수 있겠지만......다르긴 할 터. 그 트레이톤조차도 내가 안테이오스의 힘을 따라 만든 것에 불과할 뿐이니 말이다."
그렇구나.
안테이오스쪽이 오리지널이었던 건가.
역시 골렘처럼 생긴 놈이, 골렘도 먼저 만든 모양이었다.
아를렘은 안테이오스의 능력에 대해 조금 더 설명을 보태어 주었다.
"트레이톤과 달리, 안테이오스의 골렘은 분신과도 같은 수준이었다. 그와 똑같은 모습의 골렘을 만들 수도 있었지. 그 때문에 전쟁 당시에 적잖이 고생했던 기억이 나는구나."
"분신......"
정말로 그게 가능하다면, 꽤나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였다.
나는 그녀의 조언을 바탕으로.
안테이오스의 힘을 한 번 유도해보았다.
정확히 방향성을 잡은 채 힘을 끌어올리자.
쿠구구구구궁!
바닥에서 바웟덩어리들이 솟아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다름 아닌 안테이오스의 형상을 한 골렘이었다.
나는 속으로 감탄을 뱉었다.
딱 내가 상상한 그대로 진짜 골렘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렇다면......'
꼭 안테이오스의 모습이 아니더라도 가능한 거 아니겠는가.
나는 다른 형상을 떠올렸다.
내가 가장 익숙한.
나의 형상을!
그 순간.
안테이오스의 모습을 하고 있던 골렘의 외피가.
후두두둑 떨어지더니 점차 부피를 줄여나갔고.
이내 나는 거울을 마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모습을, 정면에서 보게 되었으니.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한, 분신 같은 골렘이었다.
이거는 꽤......
"좋은데?"
* * *
피코를 구해낸 오르헬과 가우리엘은.
안테이오스와 로한이 전투를 벌이던 방향으로 신경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한데.
어느 순간부터, 전투의 기척이 확 줄어드는 게 아닌가.
그것은 안테이오스가 모래 인간의 형상을 보인 직후.
물기둥이 솟아오르면서부터였다.
"어떻게 되어 가는 거지? 저 물기둥은, 브라더의 능력 같은데......"
"내 생각도 다르지 않다. 분명 물의 정령왕이 쓸 수 있는 권능이었다."
"그럼 뭐야? 브라더가 이긴 건가?"
"......그랬다면 좋겠지만, 판단을 내리는 데에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어 보이는군."
"하여간 매사가 그렇게 부정적이어서야, 돌 일도 안 되겠다."
"......"
서로 티격태격하고는 있다지만.
실상 둘의 마음은 하나였다.
부디 로한이 크게 다치지 않고, 승기를 거머쥐었기를.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둘은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며.
같은 생각을 하였다.
"여기선 안 되겠어."
"조금 더 접근을 해서 확인해보세. 로한 경이 도움이 필요한 것이라면. 몸을 던지기 위해서라도 가까이 가야 하지 않겠나."
"그래. 이겼으면 문제없겠지만......브라더가 위험하다면, 형님이 되어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순 없지."
그들이 조심스럽게 접근을 하던 그 순간.
쿠구구구구궁!
별안간 땅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무슨 일이 분명......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젠장! 이건 안테이오스 쪽 힘 아니야?"
"가서 확인해보세!"
둘은 은밀함을 일정 부분 포기를 하고.
조금 더 빠르게 내달렸다.
마음이 조급해진 탓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들이 그곳을 향하는 와중에도 벌어지고 있었으니.
다시 모습을 드러낸 안테이오스가, 무너지며 점점 작아지더니 다시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 것인지.
그들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무성한 수풀과 나무를 헤치고 도착한 그곳에는.
"뭐, 뭐야?......"
"이건 무슨 일이......"
안테이오스는 어디 가고.
두 명의 로한이 서 있었으니.
오르헬과 가우리엘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