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괴물의 침략
악마가 연상되는 검은 날개를 펼친 채 안테이오스의 앞에 떠 있는 나를 보며.
안테이오스의 놀란 얼굴이, 점차 비웃음으로 변해갔다.
"네 녀석......뭔가 했더니, 네 녀석이었나? 기억이 난다. 그 섬에서 아를렘과 함께 도망쳤던 놈이구나!"
용케도 놈은 나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아를렘에 신경이 쏠려 못 본 줄 알았는데 말이다.
하나 위협이 되는 존재라고는 생각지 않는듯하였으니.
굳이 예민하게 느끼지 않더라도, 나를 가소롭게 보고 있다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조용히 날 수 있었다면, 입을 떠벌려 들키기 전에 한 번이라도 공격할 생각을 했어야지. 이렇게 날 도발할 것이 아니라!"
안테이오스는 마지막 말과 함께 나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저런 같잖은 조언과 함께 공격을 해오는 것 같은데......
부우우우웅!
안테이오스의 주먹이 가까워지자.
바닥에 쓰러진 가우리엘과 오르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브, 브라더!"
"피, 피해야 한다!"
물론 빨랐다.
이전에는 눈으로 좇을 수조차 없어, 빠르다는 걸 제대로 느끼기조차 힘들었고.
지금 또한 만만한 볼 수 있는 속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나 역시 이전과는 달라져 있었으니.
나는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운 채로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분명히 치명적일 정도의 속도이기는 하나.
아를렘의 민첩성에 비한다면 모자람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맞선 상대들은, 이것보다 훨씬 빨랐거든.'
아를렘의 속도는,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마치 혼자 다른 시간대에서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뿐만 아니라포세이튼 역시 물속에서는 입이 떡 벌어질 수준의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그러니 그들을 상대해왔던 나로서는......
안테이오스 정도라면, 오히려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샤샥!
안테이오스의 주먹이 닿기 직전.
순간적으로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를 끌어내며, 피격 범위를 위로 벗어난 나는.
놈의 내질러진 팔 위에 우뚝 섰으니.
실전이라 조금 긴장을 했건만, 막상 전력으로 쏘아지니.
의외로 회피를 하는데 여유가 생겼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내 입가에 옅은 웃음이 걸렸다.
"글쎄? 내 생각은 조금 다른데."
그리고는 안테이오스와 눈이 마주쳤다.
"굳이 조용히 한 방 먹이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 같거든."
반면, 안테이오스의 얼굴에서는 어느샌가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크으으윽!"
* * *
오르헬은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로한의 모습에, 반쯤 넋이 나갔다.
"어떻게......하루만에......"
믿어지지가 않았다.
모든 것이 달라져 있는 것 같았다.
움직임도, 여유로움도.
심지어는 날개까지도!
어제와는 전부 변해 있었다.
'물론 전에도 여유롭기는 했는데......'
지금은 아예 다른 영역에 발을 들인 존재가 된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물씬 풍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옆에 같이 쓰러져 있던 가우리엘도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날개가......"
아무래도 가우리엘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저 날개인 모양이었다.
오르헬이 보기에도 분명 이상하긴 했다.
"네 날개랑 모양이 많이 다른데?"
"......오히려 악마의 날개와 비슷한 형상이다."
"하지만 브라더가 갑자기 어떻게 악마의 날개를 얻어?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건 고작해야 한나절 정도인데."
"나도 이해가 되질 않는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아를렘과 함께 사라진 로한이었다.
분명 그 이후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인데......
둘은 안테이오스에게 한 방 맞은 고통도 잊은 채.
멍하니 로한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둘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안테이오스의 급습을 시작으로.
녀석이 그 압도적인 주먹을 휘두른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로한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당황한 오르헬과 가우리엘은 소리를 내질렀다.
"브, 브라더!"
"피해야 한다!"
다음 순간.
오르헬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사, 사라졌다!"
안테이오스의 주먹이 닿기 직전.
로한의 모습이 홀연히 사라졌다.
정확히는 눈동자조차 그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스피드를 낸 것이었다.
가우리엘이 겨우 그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는지.
로한의 위치를 자신에게 알려주었다.
"아니! 사라진 게 아니다! 안테이오스의 팔 위에......!"
얼른 눈동자를 가우리엘이 말한 방향으로 움직이자.
웃음을 띤 얼굴의 로한이 보였다.
"이럴......수가!"
꿈이라도 꾸는 것일까?
로한은 고작 한나절 사이에 한꺼풀을 벗어던진 채.
새로운 경지에 도달한 모습으로 위풍도 당당하게 서 있었다.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일까?......
감히 쫓아갈 엄두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것은 가우리엘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은듯하였으니.
그의 낮은 중얼거림이 오르헬의 귀에 들어왔다.
"어이가 없군. 어떤 경지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음이야......"
그래.
딱 그랬다.
이제 저 싸움에 오르헬과 가우리엘이 끼어들 영역은 없었다.
* * *
그 사실을 깨달은 오르헬은.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려고 하였다.
"끄으응......!"
오르헬이 통증에 신음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가우리엘이 고개를 돌렸다.
"뭘 하려고 그러는가?"
"은혜 갚으려고."
"은혜?"
"피코."
"아......!"
잠시 저 초월적인 존재들의 전투에 정신이 빼앗겼지만.
그 직전까지 모두를 지켜준 것은 다름 아닌 피코였다.
피코는 안테이오스에게 목을 졸리다가 기절을 했는지, 다시 작아진 채로 바닥에 떨어졌었다.
오르헬은 녀석을 구하러 갈 셈이었다.
절뚝, 절뚝.
"젠장. 아직도 회복이 안 되네......"
뱀파이어 로드인 오르헬마저도.
안테이오스에게 받은 충격량은 너무 방대했기에 아직 온전히 상처들이 아물지 못했다.
그가 다리를 절자.
가우리엘도 몸을 일으켰다.
"같이 감세. 둘이서 찾으면 더 빨리 찾을 것이네."
"그래. 같이 가자고."
가우리엘 역시 옆구리를 움켜쥔 게.
갈비 뼈가 부러진 모양이었다.
그 또한 아직 회복 못 하는 중인듯했고.
그렇게 중상자 둘이서 피코를 찾아 나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 여기일세, 오르헬!"
가우리엘이 먼저 피코를 찾은 모양이었다.
오르헬은 얼른 가우리엘의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발을 옮겼다.
"어때? 괜찮아 보이나?"
오르헬의 그 물음에 대답한 것은.
피코였다.
"내가 이 정도로 죽을 줄 알고? 삐약. 어림도 없지, 삐약!"
"알아, 알아. 어림도 없지."
"아까 얼핏 본 거 같은데 주인님은......멀쩡한거지?" 삐약?"
그에 오르헬은 저 위를 올려다보며.
짧게 대답했다.
"쓸데 없는 걱정이다, 그거."
"헤헤, 삐약! 당연히 그래야지!"
* * *
느리진 않았다.
부우우우웅!
귓가를 스치는 이 폭력적인 바람 소리만 해도 그랬다.
휘이이이잉!
안테이오스의 공격 하나하나는, 전부 다 빠르면서도 간결했고.
동시에 치명적이었다.
심지어는 첫 번째 공격보다도 더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아직 못 피할 정도가 아니었다.
'보인다. 느껴진다......!'
다만 막무가내로 그 주먹을 뚫고 들어갈 수 있을 수준은 또 아니었다.
아를렘에게 그랬던 것처럼 안테이오스의 주먹은, 단지 단발성 공격이 아니라.
이어서 날아오는 암석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부 피할 수는 없겠어.'
제아무리 꽤나 성장을 했다고는 해도.
저 주먹을 직격으로 맞았다가는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었다.
죽지는 않겠지만, 전투는 힘들어질 터.
방법은 하나였다.
'큰 거 한 방을 노리게 만들어야 한다!'
동작이 큰 공격을 유도한 후.
그 타이밍을 잡고, 역으로 파고드는 것.
그것 뿐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일부러 치명타가 아닌 공격 몇 개에 상처를 내어 보였다.
대놓고 보란 듯이.
물론 실제로 펀치 이후에 날아드는 파편들까지 전부 실시간으로 다 피해낼 수는 없었다.
실제로 아직은 나보다 빠른 아를렘조차도 그 잔잔한 파편들에는 당하지 않았던가.
몇몇 개의 암석 파편들, 내 뺨을 스쳐 지나가며.
결국 피를 보게 만들었고.
데미지가 쌓인 것처럼 보여준 나는.
고의로 한 타이밍 움찔하며 빈틈을 보여주었고.
부릅!
그때를 놓치지 않은 안테이오스가 눈을 부라리며 큰 호선을 그리는 공격을 꺼내었다!
"죽어라아아아아아!"
놈은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을 하며 전력을 실은 공격을 뻗었다.
하나 나 또한 이번이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 수 있었다.
내 작전을 눈치챈다면, 안테이오스는 모험을 하지 않으려 들 테니까.
때문에 신중하게......끝까지 놈의 주먹을 눈으로 좇은 나는.
결정적인 순간에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를 일으켜.
파아아아아앙!
공기를 가르며 쏘아졌으니.
순식간에 검을 뽑으며 동시에, 그 검을 휘둘렀다.
아를렘의 검술이 내 손에 완벽하게 녹아들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반달의 섬광이 번뜩이고.
서걱.
공간이 비틀어지며 베어졌다.
* * *
공간 베기에 신검 모르테논의 힘이 더해지자.
나는 단 일격에 안테이오스의 팔 하나를 통째로 베어 버릴 수 있었다.
녀석의 거대한 팔이 몸통에서 떨어져, 바닥으로 추락을 하니.
쿠우우우웅......!
온 땅을 울리는 진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 진동보다 더 크게 흔들리는 게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안테이오스의 눈동자였다.
"어, 어억......?"
놈은 아직 자신의 상황을 온전히 인지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나 굳이 그걸 인지할 때까지 기다려 줄 필요는 없었기에.
나는 다시 검을 들었고.
그제서야 녀석의 눈동자가, 내게로 다시 돌아왔다.
"자, 잠깐! 잠깐만! 지금 나를 죽이면 안 돼! 크로토스도 아직 깨어나지 않은 지금, 날 죽인다면......! 끔찍한 놈이 찾아올 거라고!"
"허튼소리. 차라리 살려달라고 빌었어야지."
"아, 아니! 진짜다! 나와 크로토스가 살아있었기에, 차원을 먹는 괴물들이 이곳으로 오지 않았다! 이미 내 체력이 떨어지고 있으니......놈들이 올 수도 있다고! 가, 같이 막아야 해!"
코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변명을 해도, 저런 변명이라니.
약자 앞에서는 그리 당당하던 놈이.
불리해지자, 바로 설설 기는 꼴도 우스웠다.
"다음엔 조금 더 그럴듯한 변명을 찾아와라."
나의 검이 젖혀지고.
"다음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사, 살려 줘......"
그 순간.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쩌저저적, 쩌적!
안테이오스의 다리 아래에서.
진짜로 공간이 깨지듯 열려지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공간 베기의 사용자이기 때문일까.
나는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차원을......찢었다고?'
저건 공간 자체를 변형시키는 행위였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일전에 얼핏 보았던 차원 너머의 촉수가.
스멀스멀 기어나오고 있었다.
......진짜, 차원을 먹는 괴물의 침략이.
눈앞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