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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171화 (171/194)

171화. 몰랐던 것 같은데?

"가르치는 보람이 쏠쏠하겠어? 하하하하!"

포세이튼은 팔짱을 낀 채로, 아를렘과 나를 지켜보더니.

그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나와 아를렘은 이제 막 대련을 끝마친 참이었다.

아를렘은 검을 회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우는 속도가 남다르군. 육체의 문제가 아니라, 본인 자체가 가진 이해력과 정신력이 남다르기에 나온 결과이다."

나는 아를렘의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드디어 칭찬 한 번 들어보네."

지금까지 아를렘은 지독하리만치 단 한 번도 칭찬을 해 준 적이 없었다.

나름 실력이 늘어나는 것 같음에도.

그녀는 항상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물어보니.

"내 실수로군. 칭찬을 조금씩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성격상 그것이 쉽지는 않아서 말이지. 그대는 잘하고 있다. 지금까지, 항상. 지켜보고 있었다. 언제나 그대의 길은 옳았다."

예상치 못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아를렘은 처음으로 살짝 웃는 얼굴을 내게 보였다.

"멈추지 아니하라. 그대의 믿음을 믿고. 앞으로도 지켜볼 터이니."

"......그리, 하지."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칭찬받은 기분이었다.

검술이나 가볍게 칭찬받을 생각이었는데......

아를렘의 위로는, 왠지 모르게 마음 한켠을 보듬어주는 느낌이었다.

그간 내 노력이 틀리지 않았다고.

지금까지의 고생이 헛된 게 아니라고.

인정을 받는, 그런 기분.

나도 모르게 살짝 울컥한 것 같았다.

괜히 눈물까지 흘리지는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포세이튼의 성격이라면, 놀려 먹을 테니까.'

요 며칠 간.

내 실력이 늘어난 만큼, 나는 그들과 꽤나 가까워진 것 같았다.

적어도 처음에 비해서는.

괜히 울컥한 게 티가 날까 가만히 서 있는 나를 향해.

아를렘이 말을 이었다.

"옷이 많이 상했구나."

그에, 포세이튼이 또 웃으며 끼어들었다.

"하하하하! 그럴 줄 알고, 내 새 장비를 준비해두었지."

그가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기자.

누군가가 이 지하실로 더 내려왔다.

신하로 보이는 그들의 손에는, 심해 기사들과 비슷한 모습의 갑옷이 보였는데.

자세히 보면 심해 기사들이 입고 있던 갑옷보다 훨씬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물건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검은 그거면 충분할 테고. 그것보다 좋은 것도 없어. 대신 갑주를 준비했지. 어떤가? 마음에 드나?"

"썩 나쁘지는 않군."

"하여간. 아를렘이나 네 녀석이나. 말투 좀 고쳐."

"잘 입겠다."

"도검이나 활은 물론이요, 웬만한 충격까지도 갑옷이 스스로 걸러줄 것이다."

특별한 기능까지도 달린 모양인데.

꽤나 마음에 들긴 했다.

"아, 그리고. 물속에서 훨씬 빠르게 움직일 수도 있지."

수중 이동 속도 증가 옵션까지.

썩 나쁘지 않다는 말이 애석할 정도로, 갑옷은 훌륭한 물건인듯하였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어.

천천히 장착해보았다.

포세이튼의 신하들이 도와주기는 했지만, 딱히 누구의 도움 없이도 쉽게 입고 벗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내 온몸에 갑옷이 둘러지자.

그것은 처음부터 나를 위해 제작이라도 된 양.

완벽하게 딱 맞아떨어졌다.

심지어는 몸통을 돌리고, 팔을 휘두르는데에도 아무런 저항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아무것도 입지 않은 느낌이 들 정도로.

나도 모르게 은연중에 만족스러운 표정이 나왔는지.

포세이튼이 거만한 눈빛으로 다시 물었다.

"어때? 엄청나게 좋지?"

저 장난기 섞인 눈빛에 넘어가기는 싫었지만......

"좋긴 좋군."

갑옷이 워낙 좋다 보니, 차마 이번에는 거짓말로 넘기기가 애매했다.

그에 포세이튼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크게 웃었다.

"그럴 줄 알았다니까! 하하하하하!"

어쩜 저리 표정과 똑같은 말을 하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 * *

내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자.

아를렘은 살짝 웃으며, 포세이튼의 잡담을 끊어 주었다.

"이제 더 가르칠 것은 없다. 남은 것들은, 그대가 알고 있는 것들을 얼마나 유연하게 잘 이용하느냐의 차이이겠지."

"그럼, 이론적으로는 안테이오스도 이길 수 있다는 건가?"

아를렘이 끄덕였다.

"불가능하진 않지."

그에 나는 위를 쳐다보았다.

지금은 지하실의 천장만 보일 뿐이었지만......저 위에는 아직 나와 함께 하던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그럼 갈 때가 된 것 같군. 이미 시간을 너무 많이 지체했다."

태양이 보이지 않기에 시간을 짐작하기는 힘들었지만.

체감상 못해도 보름 정도의 시간은 지난 것 같았다.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 아를렘이 재미있는 소리를 해주었다.

"바깥의 시간과 이곳의 시간은 다르다."

"......뭐라고?"

"이 포세이튼의 심해에서는 시간이 더 느리게 흘러간다. 아마 위에서는 한나절 정도 지났을 터."

나는 깜짝 놀라 포세이튼을 돌아보았다.

포세이튼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한나절 정도 흘렀을 게다. 어때? 신기하지? 하하하하하!"

그의 시끄러운 웃음이 귀를 좀 거슬리게 하기는 했지만.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지금 같은 때에는 일분일초가 아쉬웠으니.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건, 내게는 희소식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우리는 지하실을 빠져나갔다.

'드디어 탈출이네.'

수련을 자진해서 한 것이기는 해도.

거의 감옥에 갇힌 수준으로 지하에서 버틴 나였기에, 엄청난 해방감이 들었다.

나는 간단히 정비를 마치고.

곧장 심해 요새를 빠져나가.

다시 수면으로 올라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아를렘은 함께하지 못했다.

"나는 확인해야 할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먼저 올라가겠는가?"

"그렇게 하지."

"곧 다시 만날 것이다."

"알겠다."

그렇게 우리는 짧은 이별을 하였고.

파앗!

나는 위를 향해, 바닥을 박찼다.

* * *

화르르르르륵! 펄럭!

완전체의 모습이 된 불사조의 불꽃은.

마치 세상을 전부 태워버릴 기세로 타올랐다.

그러나 지상의 지배자 안테이오스 역시 쉬이 물러서지는 않았으니......

불사조가 토해낸 거대한 화염 광선과.

콰아아아아아!

거대한 바위, 안테이오스의 주먹이 정면에서 부딪혔다.

퍼어어어어엉!

그에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며.

화염 광선의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크으으으윽!"

"으아! 뜨거워! 나 등에 불붙었어! 좀 꺼줘 가우리엘!"

가우리엘과 오르헬은 물론이요.

"으아아아아! 사람 살려!"

"스승님! 방벽을......!"

"지금이다! 전력으로 펼쳐라, 그렌델!"

그야말로 거인 대 괴수의 전면전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덕분에 사방이 박살이 나고 있었고.

하지만 피코를 품고 키웠던 디아즈는.

그 싸움이 괴수들의 싸움으로 보이지 않았다.

"피코......"

전생의 기억을 가진 불사조라고는 하나.

디아즈의 눈에는 아직 아기 새에 불과했으니까.

단지 지금은 모두가 위험해 처했기에 억지로 앞으로 나섰을 뿐.

그녀의 눈에는 위태로운 아기 새의 모습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구원자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상황을 한 번에 뒤엎어 줄.

유일한 구원자를.

'로한 님......!'

* * *

촤아아아아악!

포세이튼의 말대로.

이 갑옷의 효과는 굉장했다!

발을 한 번 휘저을 때마다.

마치 총알이라도 탄 듯, 몸이 튕겨져 날아갔다.

이전이었다면 두려움을 느낄 정도의 엄청난 속도로.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다 느껴지고, 다 보인다......!'

훈련의 성과가, 체감이 되었다.

이 정도 속도로는 내 감각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간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노라.

나는 그대로 해수면까지 단박에 치고 올라가.

촤아악!

바다를 뚫고 위로 떠올랐다.

속도가 속도인지라, 꽤 높이 떠오른 내 시야에.

어두운 하늘과.

이 어둠에 어울리지 않은 환한 불꽃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방향에서, 안테이오스의 힘이 느껴지고 있었다.

'저쪽이다.'

그런데......

녀석은 무언가와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

'대체 누구와......?'

저 거신에 대항할만한 존재가 있었던가?

직접 맞닥뜨려본 나이기에 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고민만 하고 있을 시간은 없어 보였다.

누군지는 몰라도, 점차 안테이오스의 기세에 눌리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불꽃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

튀어 오른 몸이 수면에 살짝 닿자마자.

타닷!

나는 그대로 수면을 밟으며, 불꽃이 시들어가는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 * *

"피코가 밀리는 거 같은데? 좀 거들어야겠어!"

오르헬은 열기 때문에 팔로 얼굴을 가린 채 소리를 쳤다.

가우리엘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어떻게 돕겠다는 건가?"

가우리엘이 그리 묻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불사조의 화염이 너무나도 강렬했던 까닭이었다.

접근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그러나 그 뜨거운 불길도, 안테이오스를 제압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물론 아무런 데미지도 없이 날뛰는 것은 아니었지만......주춤주춤 물러나는 것에 그쳤던 것이다.

상성이 너무 나빴다.

화염과 바위.

바위 쪽이 웬만한 녀석이었다면 피코의 화염이 잡아먹을 수도 있었겠지만.

안테이오스는 바위의 주인이자 군주였으니.

피코의 화염이 약하지는 않았지만, 태생적인 한계에 부딪힌 것이었다.

자신의 상황이 유리하다는 것을 깨달은 안테이오스는.

순간 그 거대한 몸을 비틀며, 화염 광선의 궤도에서 살짝 벗어나며.

쿠웅!

발을 굴러 위로 뛰어올랐다.

갑작스러운 안테이오스의 그 움직임에, 피코의 반응이 미세하게 늦었고.

그 결과는 치명적이었으니.

덥썩!

결국 안테이오스의 손에 피코의 목이 잡혀버린 것이었다.

"캬아아아아악!"

피코는 괴로운지, 소리를 지르며 화염을 더 강하게 내뿜었다.

그러나 안테이오스는 그저 비웃을 뿐이었다.

"더 해보아라, 이 미물아!"

"케헥! 케에헥!"

그 화염 광선은 더 이상 오래가지 않았고.

점점 미약해지더니.

이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나마 안테이오스의 움직임을 제약하던 공격이 사라지자.

이제 막을 막을 방법이 묘연해진 것이었다.

하지만 오르헬과 가우리엘은 피코가 죽도롤 내버려 둘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피코가 만들어 준 그 틈을 타 안테이오스를 향해 내달린 그들은.

"흐으으읍! 뒈져라 이 바위 덩어리야!"

"죽어라!"

동시에 안테이오스의 뒤통수를 향해 날아들어 손톱과 검을 휘둘렀다.

쐐애애액! 쐐액!

하나, 안테이오스는 그것조차 이미 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홱!

갑자기 고개를 돌린 그는.

"내가 모를 줄 알았느냐? 이 잡것들이!"

왼팔의 팔꿈치를 이용해 오르헬과 가우리엘을 한 방에 파리 쳐내듯, 날려버렸다.

"커헉!"

"어억......!"

콰당탕탕탕!

엄청난 먼지를 피워 올리며 그들마저 나가떨어지니.

남은 이들의 얼굴에는 절망이 서렸다.

그런데, 그때.

"내가 온 건......몰랐던 것 같은데?"

"......!"

갑자기 앞쪽 방향에서 들려온 소리에 화들짝 놀란 안테이오스가.

얼른 다시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는.

"로한 님!"

"로한 경......!"

"살아 있을 줄 알았습니다!"

어느새 로한이 날개를 펼친 채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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