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가벼이 넘어갈 생각은 말아라!
"이게......무슨 일이지?"
다음 날.
지하로 내려온 포세이튼과 아를렘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쐐애애애액! 쐐애애액! 쐐액!
지하실 전체를, 무수한 숫자의 얼음 가시들이 미친듯한 속도로 휘감으며 날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들을 자세히 살핀 포세이튼은.
곧 그 얼음 가시들의 정체를 알아내었다.
"이건......물의 정령왕이 가진 권능일진데. 로한 그 친구의 짓인가?"
"그런 것 같군."
심지어는 소음이 너무 커, 제대로 대화조차 힘든 지경이었다.
바로 옆에 있는 서로 대화하기도 힘들 진대.
저 안에 있을 로한에게 말을 걸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터였다.
결론은 저 얼음 가시들을 뚫고 나가야 한다는 건데......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따끔하기는 하겠는데?"
이 물속에서는 절대자인 포세이튼마저도 그렇게 표현을 할 정도였다.
아를렘 역시 저 얼음 가시 장막을 뚫고 가는 게 가능은 할 테지만, 포세이튼보다는 더 힘이 들 것이 자명했다.
해서 앞으로 나선 것은 포세이튼이었다.
"내가 먼저 뚫고 가지."
"알겠다."
포세이튼은 주먹을 꽈아악 움켜쥐고는.
회전하는 얼음 가시들을 향해 강하게 휘둘렀다.
쿠우웅!
마치 벽을 치는듯한 소음이 들려오며.
공간 자체가 일그러진 듯, 얼음 가시들이 산산조각이 나며 흩날렸다.
물론 전부 다 일격에 소멸시키진 못했기에.
포세이튼과 아를렘은 그 틈새가 메꾸어지기 전에 얼른 몸을 날렸다.
그런데.
그 소용돌이의 내부로 들어선 포세이튼과 아를렘은.
들어오기 전보다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로한이 날아드는 그 얼음 가시들을 막고 피하며, 수련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가 만든 공격을 스스로 막아내며.
그는 점점 더 속도를 올리고 있었다.
"우리에게 한 방 먹이려고 아주 밤새 이를 갈은 모양인데?"
"......한 방 정도는 먹을지도 모르겠군."
무아의 경지에 들어선 로한을 쳐다보던 둘은.
잠시 그에게 시간을 주기로 한 채, 조용히 지켜보기로 했다.
* * *
'감각이......뒤섞이는 느낌이다.'
굉장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시각이 곧 촉각이고.
촉각이 곧 시각이었다.
보고 있지 않은 곳의 움직임도, 피부를 통해 알 수 있었고.
직접 눈으로 보고 있는 것들은 마치 시간이 느려지기라도 한 듯.
슬로우 모션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살면서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그러나......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 경험에 빠져들고 있는 것 같았다.
시간 감각이 흐려질 정도로.
날이 새었다는 건.
포세이튼과 아를렘의 등장으로 알게 되었다.
비록 그쪽을 주시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지금 이 공간에 있는 모든 것들이 내 시야 안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들의 손가락 움직임 하나.
심지어는 눈동자가 돌아가는 것까지 모조리 나는 느낄 수가 있었다.
이제야 말로 진정 신의 경지에 한 발 올라선 기분이었다.
아마 안테이오스와 아를렘 또한 이런 시야를 가지고 있었으리라.
그리고 저기 저 포세이튼도.
무아의 영역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
습득을 했다 판단한 나는.
이제 그만 얼음 가시들을 멈춰 세웠다.
그러자.
후두두둑.
일순간 회오리치던 고밀도 얼음 가시들이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덕분에 이제는 아를렘과 포세이튼의 모습이 온전히 드러났다.
포세이튼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먼저 입을 열었다
"몸은 잘 풀었나?"
나 역시 슬며시 웃었다.
"이제 준비 운동은 다 한 것 같군."
"그래, 그래야지. 그럼 본 운동을 시작해야겠구만."
"본 운동?"
"맨손 체조는 거기까지 하고. 이제는 무기를 써 봐야겠지. 허리에 검은 달고 다니던데, 어디 실력 한 번 봐 볼까?"
포세이튼이 팔을 한 번 휘두르자.
어느샌가 그의 손에는, 금빛의 삼지창이 쥐어져 있었다.
나 역시 검을 뽑아들며.
그에게 물었다.
"그 창. 베어도 괜찮나?"
"이걸? 하하하하하! 이걸 베겠다고?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나도 아를렘처럼 그렇게 농담이 많은 편은 아니라서."
"얼마든지! 벨 수 있으면 베어 보거라!"
그는 창을 크게 빙글빙글 돌리며 자세를 취했다.
잘 모르는 내가 보더라도, 그의 움직임에는 군더더기가 없어 보였다.
반면 포세이튼이 나를 보는 시선은 정반대였다.
"본능인 건지, 뭔지. 기본적인 자세는 잡을 줄 아는 것 같은데......제대로 배우지는 않았구만?"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하나 사실이었기에 나는 딱히 토를 달지 않았다.
"제대로 배웠던, 아니던. 싸움만 잘하면 되지! 자. 들어오너라."
포세이튼은 특별히 편견을 가지지 않고.
대련을 시작하였다.
선공권을 나에게 넘긴 것 같았기에.
나는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
포세이튼에게 있어서 나는, 이제 막 진정한 신격에 올라선.
신출내기로 보일 테니까.
다만 그렇다고 해서 대충할 생각은 없었기에.
"흐읍!"
전력으로 바닥을 박차고 나아가.
물살을 가르며, 동시에 공간도 갈랐으니.
서걱!
"......음?......어?"
일격에 삼지창이 잘린 포세이튼의 눈동자가.
진동을 하였다.
* * *
털썩.
"허억, 허억! 허억!"
선공은 나쁘지 않았다.
그럼에도......이번 역시 먼저 주저앉은 것은 내 쪽이었다.
포세이튼의 대응은, 한마디로 하자면 그야말로 연륜 그 자체였다.
첫 공격에 삼지창의 머리 부분이 날아갔으나.
포세이튼은 잠시 당황할 뿐.
금방 다시 냉정을 되찾고는, 창의 봉 부분만을 이용하여 나를 몰아붙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창을 슬쩍슬쩍 내어주며, 내가 삼지창을 자를 수 있도록 들이밀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일종의 테스트였던 것 같았다.
내 공격이 막을 수 있는 공격인지.
아니면 확실히 피해야 하는 공격인 건지.
그것을 가늠하기 위한 전략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금방 내 전력이 들통 난 나는.
그 이후부터는 일방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여태껏 상대했던 그 누구도 이만큼 냉정한 상대는 없었다.
'보통은 일격에 베여버리면......허둥지둥하기 마련이었으니까.'
그러나 포세이튼은 달랐다.
그말은 곧, 안테이오스 역시 다를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내게 강력한 카드가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나.
포세이튼처럼 노련하게 그 카드를 쓸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면......
결국은 안테이오스와의 격전에서도 바닥에 누워있는 건, 지금처럼 내 쪽일 터였다.
단지 그때는, 지금과 달리 숨이 붙어있지도 않을 것이었다.
분했다.
지금껏 많은 능력들을 얻어왔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언제나 공간 베기라는 히든카드가 존재하고 있었다.
어떤 순간에는, 혹여나 하는 대비책으로 끝까지 숨기고 있었던 적도 있었고.
어떤 순간에는, 공간 베기를 쓰지 않더라도 성장한 스스로에게 감탄하기도 했었다.
그만큼 내게 공간 베기는, 가장 처음 얻은 스킬임과 동시에 가장 믿을 수 있는 버팀목이었다.
그런데 그 공간 베기의 무용함을 이렇게 전면으로 맞닥뜨리니......
분했다.
아직도 나약한 내가.
포세이튼은 분해하는 나를 내려다보며 말을 내뱉었다.
"차라리 잘되었다. 실전에서는 언제든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는 법. 그걸 미리 깨달았다는 것 자체가 큰 무기이로다."
맞는 말이었다.
단순히 공간 베기만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적도 있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만날 수 있다는 것도.
그러나 지금까지는 없었다.
해서 방심했던 것이다.
공간 베기만 쓴다면, 언제든 승리할 수 있다고.
건방지게도.
내가 너무 처져 있었는지.
포세이튼은 일부러 기운이 나도록 칭찬을 보태었다.
"그래도 내 삼지창을 자른 건 네가 처음이다. 거신 놈들에게조차 한 번도 부러뜨려지거나 잘린 적은 없었는데 말이지."
어설픈 위로이기는 하나.
도움이 되긴 했다.
내가 다시 몸을 일으키자.
포세이튼은, 흥미가 오르는 소리를 해주었다.
"검을 쓸 줄도 모르는데 그 정도라면, 제대로 된 검술을 배우면 어찌 될까?
"검......술?"
"그래. 제대로 한 번 배워보지 않겠는가. 꽤 재미있을걸?"
"네가 가르쳐 주는 건가?"
"아니."
"그럼......?"
포세이튼은 고개를 돌려.
"이번에는 아를렘이다. 그녀의 검술은, 더하고 뺄 것 없이 완벽하니까."
아를렘을 향했다.
* * *
콰아아아아앙!
안테이오스의 주먹질을.
가우리엘은 검을 세워 들고 막아내었다.
검에 어깨까지 붙이며 맞서보았지만.
"크으으윽!"
튕겨져 날아가는 것을 피할 순 없었다.
쿠당탕탕!
바닥을 몇 번이나 구른 후에야.
가우리엘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퉷!"
구르는 동안 입안을 가득 메운 흙이 씹혔다.
그것을 뱉어내자.
핏물이 섞인 침이 나왔다.
아무래도 내상이 꽤나 큰 것 같았다.
'도망쳐야 한다......!'
당장으로서는 안테이오스를 상대할 파훼법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나마 오르헬과 리치몬드.
그리고 마그마로스와 크뢰이튼까지 전부 나서서 번갈아가며 녀석의 시선을 끌고는 있었지만.
부우웅! 퍽! 휘이이익! 빠아아악!
주먹이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제대로 회피도 하지 못한 채 나가떨어지기 바빴다.
이미 그들 역시 몇 차례 데미지를 먹은 상태였으니.
이 이상 길게 버티는 것조차 쉽지는 않아 보였다.
'온몸이 쑤시는군. 성한 곳이 하나도 없어......'
때마침 한 방을 얻어 맞고 날아온 오르헬도 핏물을 뱉으며 짜증 섞인 소리를 내었다.
"퉤! 산만한 놈이 더럽게 빠르네!"
그들이 이리도 격렬히 맞서는 것은.
다른 동료들 때문이었다.
디아즈와 그렌델, 그리고 앤드류.
그들의 실력으로 안테이오스에 대항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반대편으로 시선을 끌며 싸우고 있던 것인데.
"어딜 도망가려고 하느냐!"
안테이오스는 굳이 그들까지 놓치지 않고 밟아 죽이려 들었으니.
그것을 본 오르헬과 가우리엘이 눈을 부릅떴다.
"젠장!"
"이런......!"
녀석의 거대한 발이 그들 셋을 덮치던 그 순간.
"나오오오오올!"
나올이 튀어나와 그 발을 온몸으로 붙잡았다.
그러나 하위 거신족과 상위 거신은 그 덩치부터가 달랐다.
안테이오스의 덩치는, 나올의 두 배 가까이 되었기에.
"거신족의 배신자여! 네놈도 찌그러뜨려 주마!"
안테이오스는 나올까지 포함해 모조리 밟아 죽일 작정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나올은 점점 짓눌려 갔고.
"끄아아아아아악!"
그 밑에 있던 디아즈, 그렌델, 앤드류도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아아아악!"
"끄으으으으......!"
"이거 위험한데!"
콰득! 콰드드드득!
나올이 억지로 버티자.
바닥이 점점 무너지듯 내려앉기 시작하였다.
"크하하하하하!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가우리엘과 오르헬이 다급히 다시 몸을 추스르며 일어섰다.
그러나.
휘청.
둘 모두 이미 축적된 데미지가 적지는 않았는지.
동시에 중심을 잃고 다시 쓰러졌다.
하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재차 몸을 일으켰다.
저대로 두었다가는, 전부 죽을 것이 뻔했기에.
"으으으으윽! 일어나자고! 가우리엘!"
"지금 노력 중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안테이오스의 발은, 다른 인원들을 짜부라뜨리고 있었으니.
콰득! 콰득! 콰드드득!
'큰일이다......!
이제 나올의 모습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던 그때.
화아아아아악!
느닷없이 안테이오스의 발아래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으음!"
안테이오스조차 잠시 놀라 주춤하는 게 아닌가.
그가 내리 짓밟던 발이 서서히 올라가고 있던 까닭이었다.
의문의 빛은, 결국 안테이오스의 몸무게를 이기고 위로 솟구치더니.
공중을 한 바퀴 빙글 날았다.
그것은, 엄청난 크기의 새처럼 보였다.
그 존재는,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안테이오스에게 화염 덩어리를 무지막지하게 날려대기 시작했다.
"감히......! 내 주인을 건드린 죄! 그리고 나를 보듬어 준 디아즈를 괴롭힌 죄!"
순식간에 하늘 전체가 화염이 뒤덮인듯한 착각을 일게 만든 그 존재를.
오르헬이 알아보았다.
"피코?......"
작은 불사조, 피코였다.
피코는 이전의 그 병아리 같은 모습은 찾아볼 수도 없이.
웅장한 불사조가 되어 있었으니.
그 호통이 사방으로 울렸다.
"그 죄! 가벼이 넘어갈 생각은 말아라!"
화르르르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