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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164화 (164/194)

164화. 좁다니까?

"거짓말했네?"

"허, 허어억!"

내 목소리에 베르티엘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그렌델에게 집중을 한 까닭인지, 내가 일어나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굴을 바로 옆까지 들이미는 것도.

이미 거기서 승패는 어느 정도 기울었다.

나는 손톱을 길게 늘려 그렌델의 목을 틀어쥔 베르티엘의 팔을 베고.

서걱!

그녀의 남은 왼팔과 몸통을 다리로 붙잡은 후.

양 팔로 목을 휘감았다.

꽈아아아아악......!

이제, 숨통을 조여지는 건 그렌델이 아니라 베르티엘이 되었다.

그렌델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목을 쓰다듬었다.

"콜록, 콜록!"

반면에 베르티엘은.

"케엑! 케엑!"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내었다.

나는 그대로 작게 속삭였다.

"히드라도 이렇게 하니까 죽던데......넌 언제까지 버티려나?"

"크윽......!"

베르티엘은 금지된 마법까지 익힌 존재답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잘린 오른팔에서.

촤아악!

마치 도마뱀의 꼬리처럼 새로운 팔이 돋아나는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새로 자라난 팔은, 일반적인 팔이 아니라.

뱀의 머리가 달린 모습이었으니.

베르티엘의 손은, 살아 움직이며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샤아아아아!"

그러나 나는 굳이 움직이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그냥 강하면 저 정도는 무시해도 되니까.

콰득!

그러는 사이, 뱀의 머리는 내 팔뚝을 깨물었고.

베르티엘의 입가에 잠시 미소가 걸렸다.

"크크크! 그룬트! 네놈이 수백 년을 산 만티코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한은 제아무리 네놈이라도 끔찍한 고통에 영원히 발버둥치리라! 불멸의 존재들조차 독의 고통에 불멸을 포기하는, 메두사의 맹독이다!"

"그래? 이게 바로 메두사의 독인가?"

"하하하! 어떠냐? 부활하자마자 죽음보다 괴로운 고통에 당하는 기분이! 이제 너는......"

거기까지 말을 하던 베르티엘은.

그제서야 이상함을 느끼고는 입을 다물었다.

"왜? 할 말 벌써 끝났나?"

"어, 어째서......! 진작에 독의 고통에 바닥을 뒹굴어야 하는데......"

"내가 웬만한 만티코어보다 독에 강한가 본데?"

그럴 수밖에.

나는 만티코어의 내단을 이미 완전히 흡수한 상태였으니까.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는 베르티엘은 혼란스러운 얼굴을 했다.

하지만 나름 베르티엘도 백전노장이기에.

금세 정신을 차리고는, 다른 방향으로 공략을 나섰다.

그것은 바로.

촤라라라라락!

그렌델을 향해 공격을 감행하는 것이었다.

그에 나는 조르던 베르티엘의 목을 놓고는, 목덜미를 콱 움켜쥐고 뒤로 던져버렸다.

덕분에 그렌델을 향해 쏘아지던 그 뱀은.

턱.

중간에서 일순간 멈췄다가, 베르티엘과 함께 뒤로 날아갔다.

쿠당탕탕!

거칠게 벽에 부딪혔다가, 쏟아지는 서책들에 파묻힌 베르티엘.

다행히 덕분에 그렌델은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그렌델의 상태를 잠깐 살폈다.

그렌델은 별다른 문제가 없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베르티엘의 방향으로 시선을 움직였다.

당연히 고작 그 정도로 죽을 그녀는 아니었기에.

후두두둑.

엄청난 두께의 책 무덤 속에서 다시 베르티엘이 일어섰다.

베르티엘은 살벌한 눈동자로 나를 노려보았다.

"저거 하나 살리겠다고 이렇게까지 한다? 그룬트가 그리 다정한 놈이었나?"

나는 그 눈동자를 정면으로 맞받아쳤다.

"글쎄. 그것까진 모르겠고. 넌 만난 적도 없어."

"뭘......"

"그룬트를, 넌 만난 적이 없다는 뜻이다."

"......!"

그제서야 베르티엘은 이 상황이 파악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서, 설마 그렇다면......지금까지......!"

* * *

"어쩐지......아무런 전조 증상도 없이 갑자기 그룬트가 부활하다니. 거기서부터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이 간악한......!"

"어차피 피차 마찬가지 아닌가?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잖아?"

"크으윽......!"

"속이려면 잘 속이던가. 나처럼."

내가 웃으며 한발 다가서자.

베르티엘은 주춤 물러서려 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등 뒤는 이미 벽.

더 물러날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베르티엘은.

공격할 태세를 취하며, 이를 갈았다.

"날 죽이려고? 날 죽이면, 과연 네놈이 그룬트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룬트의 정신체가 잠들어 있다는 것까지는 거짓이 아니라는 거, 나도 알고 있거든."

베르티엘은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하나 그 정도 협박에 물러설 일은 없었다.

그룬트의 대처법을 간파해내기 위해 지금껏 연극을 펼친 것이었으니까.

"거짓은 아니지. 그룬트의 정신체는 지금도 시시각각 나를 집어삼키려고 빈틈만 찾고 있으니까."

내가 긍정을 하자.

베르티엘의 얼굴이 살짝 펴졌다.

"그래! 그런데도 날 죽이겠다고? 어림없는 소리......제아무리 네놈이라도 그럴 배짱이 있을까?"

"후후......"

틀린 계산은 아니었다.

적어도 조금 전까지는.

그 어림 없는 협박에 피식 터진 나를 보며.

베르티엘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나는 젠틀하게 그 의문을 해소시켜 주었다.

"맞는 말이지. 우리가 저 위에서 열연을 펼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고. 그런데 네가 우리, 아니, 그렌델을 이곳에 데려다 준 순간. 저 마법진을 보인 순간. 이제 필요 없어졌거든."

"하하하! 뭐? 필요 없어졌다고? 내가? 어림도 없지. 고작 마법진을 하나 찾았다고, 마법을 쓸 수 있는 줄 아나?"

베르티엘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법은! 특히 나 같은 고등한 존재가 직접 창조해낸 저런 마법은, 네놈들 같은 하등한 것들이 쓸 수가 없단 말이다. 마력 운용 방법까지 친히 알려준다고 해도, 불가능하다고."

어느새 베르티엘의 얼굴에는 여유가 스며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렌델을 믿고 있었고.

그렌델 역시 그 기대에 응하였으니.

"그렌델. 마법 사용 가능한가?"

"예. 충분히 가능합니다."

자신만만한 그렌델의 그 대답에.

베르티엘은 코웃음을 쳤다.

"가능하다고? 이것들이 제정신인가?......"

그 순간.

그렌델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팔을 들어 올렸고.

그 손에 마력이 실리자.

화아아악......!

베르티엘의 마법진이 반응을 하기 시작하였다!

당연히 이 상황에 가장 놀란 것은, 베르티엘이었다.

"마, 말도 안 돼! 내 마법진이 어떻게......저딴 것에게 반응을......"

그렌델은 담담하게 대답하였다.

"직접 만든 마법일수록. 그 창조자의 특징이 심하게 남는다. 특히 그쪽처럼 자만이 강한 자들은, 지문처럼 정확하게 흔적이 새겨지거든. 한 번만 그 특징을 느껴본다면......외우는 건 일도 아니지. 그리고 조금 전 바깥에서 섬을 아우르는 거대한 마법진에서, 그쪽이 내게 특징을 알려주었고."

"그, 그 정도로 남의 마법진을 마음대로 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있어. 있으니까, 방금 됐잖아?"

"그, 그럼 마법진을 파괴해버리겠다!"

"마법진도 이미 다 외웠다."

나는 둘 사이를 끼어들며.

베르티엘을 쳐다보았다.

"그렇다는데? 또 다른 숨겨둔 패가 있나? 없으면 지금 죽을 텐데?"

"그럴, 리가 없어......저 마법을 위해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데......"

베르티엘은 죽음의 공포보다, 오랜 세월 이룩한 연구를 한순간에 빼앗겼다는 것에 더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충격은.

결국 분노로 변질되었으니.

"존재해선 안 돼......세상에 존재하면 안 된다고! 그래서 기껏 오르테미스도 없앴는데......그런데, 또! 나보다 마법에 더 재능을 가진 놈은! 용납할 수가 없단 말이다!"

비명 같은 괴성을 지른 베르티엘의 머리카락이 위로 뻗치며 꿈틀대는가 싶더니.

이내 뱀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그 모습은 꼭 내가 알고 있는 신화 속 메두사의 형상이었다.

곧이어 베르티엘의 눈동자가 시퍼런 빛을 품었고.

불길한 예감이 든 나는, 그렌델의 앞으로 서며.

다급히 외쳤다.

"눈을 감아!"

"예? 예!"

그 직후.

베르티엘이 입을 쩌억 벌리며 다시 소리를 질렀다.

"석상이 되어라!"

* * *

뱀의 소리와 비슷한 느낌의 그 괴성은.

소름 돋을 정도로 기분이 나빴으나.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녀석과 눈을 마주친다면.

진짜 석상이 되리라고.

내가 알고 있던 그 신화와 같이 말이다.

팔로 눈을 가린 나와, 그렌델에게.

베르티엘은 감탄을 했다.

마법을 써서, 위치를 파악할 수 없는 목소리로.

"그 찰나에 내 새로운 마법의 효과를 간파하다니. 정말 기분 나쁜 놈들이로군......아무래도 너희는 이곳을 빠져나갈 운명이 아닌 모양이야."

그러나 그건 내가 할 말이었다.

마법으로 목소리의 방향을 숨겼다고는 하지만.

모래 먼지를 밟는 등, 미세한 소음들까지 모조리 변형시키지는 못하였다.

내가 제3의 눈을 가진 것을 파악하지 못한 베르티엘의 실책이었다.

"글쎄. 운명이 어떨지, 아직 판단하긴 이를 텐데?"

나의 비아냥에.

아직 자신의 위치가 발각되지 않았다고 생각한 베르티엘이 다시 말을 이었다.

"눈을 감은 그 센스는 인정하지. 하지만, 계속 눈을 감은 채로 나를 상대하겠다고? 넌 나를 스치지도 못할 것이......!"

채 그 말이 다 끝나기도 전.

나는 발을 굴러, 거리를 좁히고는.

베르티엘의 턱을 향해 스트레이트 펀치 한 방을 날렸으니.

쩌어어억!

"커헉!"

어차피 그룬트를 제압할 방법을 찾아낸 지금.

더 이상 나는 힘을 제한할 필요가 없었던 까닭이었다.

베르티엘은 첫 공격을 어찌어찌 막아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압도적인 힘의 격차에.

덜덜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지는 못했다.

"어, 어떻게......"

나는 눈을 감은 채로.

정확하게 베르티엘이 있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스으윽, 돌렸다.

그리고 입꼬리를 올렸다.

"지하가 좁아서 그런가. 대충 휘둘러도 닿는군."

"여, 여기를 어떻게 좁다고......!"

파밧!

다시 베르티엘의 앞에 선 나는.

씨익.

"이거 봐. 좁다니까?"

빠아아아아악!

두 번째 공격을 날렸다.

"푸헉!"

* * *

"그웨에에에엑......!"

주먹 찜질을 제대로 당한 베르티엘은.

바닥을 설설기며, 도망을 치려 하고 있었다.

물론 나야 보내줄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그 발목을 콱 밟아버렸다.

"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

격이 다른 경지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룬트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네.'

확실히 잔재주는 그다지 필요도 없었다.

그냥 가서 패고.

도망가면 쫓아가서 패고.

저 메두사를 닮은 타락 천사를 제압하는 데에 주먹 말고 다른 것은 쓰지도 않았다.

단순하면서도 가장 확실한 화력.

그것이 내 주먹이었다.

'이제 이 괴물을 처리하고. 그룬트를 제거하면......이 지긋지긋한 섬도 끝이다!'

이곳을 탈출하기 위한 마지막 일격을 펼치려던 그 순간.

콰아아아아앙!

무언가가 천장을 뚫고.

단 한 번에 우리들의 앞에 나타났다.

지금의 경지에 도달했기에 나는 알 수 있었다.

'엄청난......힘이다......!'

대체 누가 이런 괴력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가장 먼저 뇌리를 스친 생각은, 상위 거신족이었다.

하지만 거신이라 하기엔 뭔가 물리적 크기는 작은 것 같은데......

나는 손을 뻗어, 베르티엘의 뱀 머리카락을 움켜쥐고는.

콰앙!

그 머리를 바닥에 박아버렸다.

눈을 뜨기 위해서.

베르티엘을 제압하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앞에는 한 여인이 서 있었으니.

이어 지하로 뛰어 내려온 가우리엘이.

깜짝 놀란 얼굴로 무릎을 꿇으며, 그녀가 누구인지 알려주었다.

"아를렘을 뵙습니다!"

이건......예상치 못한 존재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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