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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163화 (163/194)

163화. 거짓말했네?

화아아아악!

그룬트를 억제하기 위한 베르티엘의 마법이, 그렌델의 활약으로 완성되자.

순간 내 머리는 박하를 들이부은 듯,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더니.

'......개운해졌다.'

확실히 그룬트를 제압하는 데에 효과가 있는 듯.

요 며칠 간 내내 나를 괴롭히던 두통이 말끔히 사라지는 기분을 느꼈다.

컨디션이 최고조에 달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그룬트가 날뛰는 연기 중이었으니까.'

털썩.

나는 그 마법 때문에 정신을 잃은 열연을 펼쳤다.

마치 실 떨어진 인형처럼.

과감하게 쓰러졌다.

나의 완벽한 연기에 베르티엘 역시 넘어갔는지.

털썩.

그녀 역시 바닥에 널브러졌다.

"빌어먹을 그룬트 놈......부활의 기미를 일부러 숨기고 있다가, 갑자기 바깥으로 뛰어나올 기회만 노렸던 건가? 교활하다니까, 하여간."

베르티엘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의 옆으로 리치몬드가 다가가 물었다.

"이제 그룬트가 다시 나올 일은 없는 건가?"

"그럴 리가. 그렇게 쉽게 없어질 그룬트였으면, 고생도 안 했어."

"그럼......또 이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건가?"

"가능은, 하겠지. 그룬트 놈. 이미 로한 저 녀석도 모르게 이미 꽤나 회복을 한 모양인데. 지금은 제어 마법 때문에 잠시 잠든 거일 거고. 젠장."

리치몬드는 이마를 부여잡으며.

시선을 돌렸다.

"일단 나는 우리 측 부상자들부터 수습하겠다."

"......그러던가."

사실 부상자는 없었다.

골렘인 트레이톤이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은 것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금방 회복할 수 있었다.

오르헬이나 앤드류도 다친 척만 하고 누워 있는 것이고.

다만 어두컴컴한 밤의 암흑이, 그것을 숨겨주고 있었다.

아직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베르티엘은, 내가 기절했다고 생각했는지.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렇게 다급하게 진행할 생각은 없었는데......"

나는 계속 기절한 척하며 귀를 쫑긋 세웠다.

"지금의 상태라면, 내일 저 녀석이 깨어나도 그룬트일지, 로한일지 알 수가 없단 말이지. 아무래도 당장 그룬트를 제압하고 저 녀석의 육신을 뺏어야겠어. 그러려면 일단은 그룬트의 정신체부터 별개의 영역으로 끌어내야 하는데......"

베르티엘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하지만 나 혼자서 그 마법진을 가동시키기엔, 아직 준비가 덜 되었는데......도움을 줄 수 있을 정도의 마법사가......"

한 마디 해주고 싶었다.

그렌델이라는 마법사가 바로 옆에 있지 않냐고.

그러라고 내가 그렌델을 옆에 놔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그 말을 할 수는 없으니.

베르티엘의 생각이 그쪽으로 넘어가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가슴 졸이는 잠시의 침묵이 이어지고.

그녀는 고뇌를 하는듯하더니.

"아! 오르테미스의 딸! 저 아이라면......방법만 알려준다면 금방 배울지도......?"

이내 내가 깔아둔 미끼를 꽉 물었다.

그래, 바로 그거라고.

방법만 그렌델에게 전수해준다면.......

나는 입꼬리가 올라갈 뻔한 것을 겨우 참았다.

* * *

"어이!"

베르티엘의 추진력은 꽤나 빠른 편이었다.

그녀는 곧장, 누워있는 내 곁의 그렌델을 향해 움직였다.

그렌델은 내 상태가 괜찮은지 살펴보는 척을 하다가.

베르티엘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입니까. 우리 사이에 볼 일은 이제 끝난 것 같은데."

"끝나기는. 이제부터 시작인데."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당신과 더 할 말, 없습니다."

"그자, 로한을 살리는 일인데도?"

베르티엘은 그렌델을 끌어들이기 위해 거짓말을 던졌다.

물론 나도, 그렌델도 알고 있었다.

저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걸.

그러나 그렌델은 모른 척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이미 그룬트는 제압되었......"

"잠깐이야."

"......?"

"잠깐 잠든 것뿐이라고. 로한이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때도 그룬트가 재차 깨어난다면, 그때는 완전히 육신의 주도권을 그룬트에게 빼앗겼다는 뜻이다."

그렌델은 제법 연기 실력이 출중했다.

한 마디도 내뱉지 않고, 놀란 느낌을 잘 살리며 온몸이 얼어붙은 모습을 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내 몸을 살피던 손의 근육에 뻣뻣하게 굳는 것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리얼하네......'

이 정도라면 아마 나도 속으리라.

그만큼 그렌델의 실력은 제법이었다.

덕분에 베르티엘도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는 중이었다.

"지금 손을 써서, 그룬트의 정신체를 그의 몸에서 빼내지 않는다면......다음은 없어."

베르티엘은 상대로 하여금 선택권을 제약해나가는 공략법을 이용했다.

굉장히 효율적인 전략이긴 했다.

그 거짓말을 들키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렌델이야 당연히 저 수작을 꿰뚫고 있었지만.

"협박하는 겁니까? 내가 당신을 어떻게 믿습니까?"

"믿음? 그딴 거 필요 없어. 협박도 아니야. 그냥 고를 기회를 주는 거라고, 네가 직접. 그룬트에게 그자를 잃을 건지, 아니면 다른 길을 찾아볼 것인지."

"......"

그렌델은 순간 고민을 하는 척하다가......이내 그 수작에 넘어가 주었다.

그게 우리가 원하는 방향이었으니까.

"들어는 보고 싶습니다만."

아무것도 모르는 베르티엘은,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잘 생각했어. 어려운 건 아니야. 로한의 제안으로 나는 내 거처 안에, 그룬트의 정신체를 강제로 분리해 끄집어낼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벌써?"

"뭐. 그의 제안이 솔깃했으니까? 다만, 혼자서 아직 마법을 컨트롤 할 정도로 다듬어지지는 않았어."

"......설마."

"그래. 지금 생각하는 그 설마가 맞을 거다. 네가 손을 좀 빌려줘야겠어."

"내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내 마법 실력은 결코 그 정도는......"

"아니. 충분하다."

베르티엘은 확신을 가지고 말을 이었다.

"섬 전체를 아우르는 이 마법. 내가 분명히 침묵 마법만 쓸 수 있으면 제어할 수 있다고 하기는 했지만......이 정도 규모의 마법진에 침묵 마법을 보태는 거. 그거 쉬운 거 아니거든. 넌 분명히 오르테미스의 피를 물려받았어. 그리고 그 힘을 가지고 있고."

"정말......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예 처음 보는 마법을 내가 돕는다는 게?"

"솔직히 말해. 너, 이미 이 섬에 내가 만들어놓은 거대 마법진의 구조. 다 이해했지?"

이건 나도 몰랐던 부분이었다.

설마 그렌델이 그 정도 영역에 벌써 발을 들였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그렌델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는 했다. 그리 어려운 마법진이 아니니까."

진짜로 해냈다니......

놀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베르티엘 역시 어렵지 않다는 말은 예상 못 한 모양이었다.

"이게 어렵지 않다고? 어이가 없네. 이봐, 꼬맹이. 이 마법진은 내가 수백 년을 공들인 마법진이야. 절대로 어렵지 않을 리가 없어."

"단순해서 깔끔한 느낌이던데. 아닌가?"

그 당돌한 대답에 베르티엘이 피식 웃었다.

"오르테미스때도 느꼈지만......정말 역겨울 정도의 재능이네."

* * *

그렌델은 속으로 적지 않게 놀라고 있었다.

'잘도 이런 공간을 숨겨두고 있었네.'

염력 마법으로 로한을 들어 올린 베르티엘은.

자신을 이끌고 거처의 지하실로 내려가고 있었다.

저번에 방문했을 땐 보이지 않았던 공간이었다.

이곳을 내려가고 있는 건, 그렌델 자신과 베르티엘 그리고 로한 셋뿐이었다.

베르티엘의 기준으로는 그렌델과 그녀 본인, 둘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베르티엘이 움직일 경우, 절대로 자신 혼자만 보내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일부러 다른 곳에 신경이 쏠린 척 관심을 두지 않았다.

로한이 기절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한편 그 사실을 모르는 베르티엘은 나름 자신을 잘 빼 왔다고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콧노래가 어렴풋이 들리는 걸 보면.

그렇게 꽤나 깊은 곳까지 내려가자.

거대한 공간이 나타났다.

그렌델의 입장에서는 눈이 돌아갈 만했다.

각종 마법 도구들과 재료들.

개중에서도 가장 부러운 것은......

'끝도 없어.'

도대체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마법 서적들이었다.

저 안의 마법을 다 배운다면.

'나도,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와 한 걸음 가까워질 수 있는 걸까?'

그렌델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는 동안, 베르티엘은 재단으로 보이는 석판 위에 로한을 올려두고는.

마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그룬트를 빼낼 마법진이다."

그 말에, 그렌델은 로한 주변으로 미리 그려져 있던 마법진을 유심히 살폈다.

그녀는 분명하게 알아보았다.

'이럴 줄 알았다만......막상 당하니 기분이 좋지는 않네.'

로한이 예상했던 대로.

베르티엘은 그룬트의 정신체를 꺼내는 마법진을 준비하지 않았었다.

이것은 육신을 교환하는 마법이었다.

한 번 본 마법진을 잊을 그녀가 아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마법진은 하나가 아니었다.

내부의 마법진 바로 바깥으로, 하나의 마법진이 더 그려진 이중 마법진이었던 것이다.

그렌델은 그 마법진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무슨 마법이지?"

"아, 별거 아니야. 그냥 혹시나 모를 불상사를 대비한 보호막 정도?"

베르티엘이 말을 얼버무리자.

그렌델의 눈이 빛났다.

저것이 정신체만 빼내는 마법이 아닐까 하는 직감이 든 까닭이었다.

'분명히 로한 경이 말했지. 베르티엘은 몸을 빼앗기 전에 먼저 그룬트의 정신체를 꺼낼 거라고.'

그녀는 찬찬히 바깥의 마법진을 살폈다.

'저 문양은......제압을 담당하는 부분이고. 그리고 저 문양은 추출 마법. 저쪽은 절단 마법.'

바로 저것인 것 같았다.

진짜 그룬트를 제압할 수 있는, 숨겨진 마법진이.

그렌델은 슬쩍 베르티엘을 떠보았다.

"이 마법진. 하나가 아닌 것 같은데? 이중으로 준비된 것 같단 말이지."

"당연히 상대가 그 악신 그룬트인데. 철저하게 준비해야지."

"맞는 말이지. 그런데......이 바깥쪽의 마법진과 안쪽의 마법진은, 방향성이 다른데?"

"......뭐?"

그렌델은 외부의 마법진을 매만지며 입을 떼었다.

"바깥쪽의 마법진은 제압, 추출, 절단. 안쪽의 마법진은 흡수, 융합, 결합. 너무 다르단 말이지."

그에 베르티엘의 표정이 살벌하게 변하였다.

"마법진을 보기만 하고도......안의 마법이 보인다고?"

"다들 볼 수 있잖아?"

"아니. 나조차도 마법진을 보는 것만으로는 알 수가 없는데?"

"......뭐?"

순식간에 베르티엘의 분위기는 직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그딴 건! 네년......어디서 무슨 말을 주워들은 것이냐? 어떻게 저 마법진을 알고 있는 것이지?"

"말했잖아. 방금 보고 알았다고."

그때.

베르티엘의 팔이 기괴하게 쭈욱 늘어나더니, 그렌델의 목을 콱 움켜쥐었다.

"이 쥐새끼 같은 것......알고도 모르는 척한 건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냐? 지금 털어놔. 그럼 목숨 만은 살려주마."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렌델은 피식 웃었다.

"......같은데?"

"뭐라고?"

"목숨 만은 살려달라고 빌어야 하는 건, 네 쪽 같은데?"

그렌델에게 신경이 쏠린 베르티엘은.

그제서야 자신의 옆으로 나타난 인기척을 알아챘다.

베르티엘은, 온몸에 식은땀이 주륵 흘려내리는 것을 느끼며.

겁에 질린 눈동자를 옆으로 슬금슬금 움직였다.

그러자, 보였다.

시뻘건 눈동자를 부라리며.

자신의 머리 바로 옆에 붙어 소름 돋는 미소를 짓고 있는 로한이.

분명 기절한 체였어야 할 그가.

섬뜩한 얼굴로 입을 떼었다.

"거짓말했네?"

씨이익.

"허, 허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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