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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162화 (162/194)

162화. 사자는 독니가 필요 없는 법

모든 것은 계획대로였다.

[그렌델만 제외하고, 다른 인원들은 전부 나를 상대하는 척하고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그 계획에 다들 의아한 얼굴을 했었다.

그에 나는 명확하게 이번 작전의 목표를 전파하였다.

[베르티엘은 그렌델이 오르테미스의 딸이라는 걸 크게 의식하고 있다. 마법적 재능이 특출 나다고. 우리는 그 점을 이용할 것이다.]

그렌델을 돌아다 보며 나는, 마지막 말을 이었다.

[이번 작전의 핵심은, 그렌델이다.]

실제로 그렌델의 마법적 재능은 굉장하다고 크뢰이튼 역시 인정을 했었다.

다만 과거 오르테미스는 지혜의 대천사인 베르티엘의 눈에도 들 정도의 힘을 가진 존재였다.

반면 그렌델은 그저 그런 마법사 정도였고.

내가 본 그 둘의 차이점은 단 하나였다.

'금지된 마법을 익혔느냐, 혹은 흔한 보통의 마법만 익혔느냐.'

그렌델은 누구에게나 허락된 보편적인 마법만을 사용할 줄 아는 수준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명성을 날리지 못했던 것이고.

단지 그것뿐.

반대로 말하자면.

그렌델에게도 강력한 마법을 익힐 기회만 있다면......충분히 오르테미스의 경지에 까지도 오를 수 있다는 의미였다.

나의 그런 생각을 그렌델에게 처음 말했을 땐.

그렌델은 인정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었다.

[저는......로한 경이 생각하는 그런 대단한 마법사가 아닙니다.]

그리고 내가 세운 작전을 수행해낼 자신이 없다고, 목소리를 흐렸다.

하나 나는 결코 그리 생각지 않았다.

[단지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그 재능을 펼칠 기회가.]

오히려 내가 확신을 가지고 설득을 하자.

점차 그녀의 눈빛도 바뀌어 갔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그렌델은 충분히 큰 가능성을 지닌 마법사였다.

베르티엘이 섬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마법진의 사용법을 알려주자마자.

바로 익혀내어 이렇게 가동 시키고 있었으니 말이다.

베르티엘의 마법진이 움직이는 걸 확인한 나는.

마지막으로 크게 날뛰었다.

베르티엘에게 정신 차릴 틈도 주지 않기 위해.

"이 놈드으으으을! 네놈들의 온 사방에 피를 흩뿌려주마!"

최대한 그룬트의 말투까지도 살려서, 혼신의 연기를 펼쳐보았다.

다행스럽게도 베르티엘의 표정을 보아하니.

꽤나 잘 먹혀든 것 같았다.

'어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베르티엘의 힘......한 번 시험해 볼까?'

나는 슬쩍 베르티엘이 선 방향을 돌아다 보았다.

물론 이대로 그룬트의 정신체를 제어하는 그녀의 마법을 확인하는 게 가장 내가 원하는 방향이긴 했다만.

또 편하게 그리 놔둔다면......저쪽에서도 의심을 할 가능성도 있었다.

의심도 해소할 겸.

그리고 지금의 내 경지도 확인해 볼 겸.

* * *

사실 지금까지 나는 내 안의 힘을 온전히 끌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이 힘을 다 끌어내었다가는......그룬트와 다를 바 없이 광기의 화신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었고.

두 번째는.

'내가 뭘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는 거지.'

말 그대로.

나는 그룬트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물어보기로 했다.

어차피 매일 밤마다 놈과 마주치게 된 거.

차라리 궁금한 거라도 알아내어 보자.

그리고 얼마 전.

어느 정도 그룬트가 선명해진 후, 나는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지금 넘쳐흐르는 이 힘. 이걸로 내가 뭘 할 수 있지?"

"끌끌끌. 드디어 힘이 탐이 나는가?"

"뭘 어떻게 쓰는지 알아야 탐을 내든 말든 하지."

"뭐......?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가 되지 않는 건 내 쪽인데 말이다.

"알아야 할 게 뭐가 있어?"

"......"

내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그룬트는 오히려 당황을 하였다.

"아니. 그냥 강하잖아? 다른 게 뭐가 필요해?"

"그냥 강하다고?"

"그래. 누구도 막지 못할 만큼 강하다고. 거기다가 예민한 감각까지. 네 녀석은 그 거신족의 세 번째 심안까지 가지고 있지 않나? 그 두 감각을 엮어 사용한다면, 상상 이상의 결과도 낼 수 있을 텐데?"

"그래도 뭔가 특별한 능력 같은 게 더 있지 않나?"

"이봐. 사자는 독니가 필요 없는 법일세."

내 의문을 한 방에 박살 내는 대답이었다.

사자는 독니가 필요 없다니.

그룬트는 검지손가락을 척 세우며, 방점을 찍었다.

"그 자체로 강하다면, 잔기술 따위는 필요가 없다고."

그렇구나.

그냥 센 게 능력이구나......

단순하긴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본다면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했다.

그 자체로서 이미 강하다면, 다른 건 의미가 없을 터.

그룬트는 그런 존재였던 모양이었다.

아, 물론.

그래도.

"사자에 독니까지 달려 있으면 더 좋지 않나?"

"......거 맞는 소리긴 한데......"

잠시 고민을 하던 그룬트는.

내게 잔기술도 살짝 전수를 해주었다.

* * *

꿈속에서 봤던 그 기억을 되새기며.

나는 베르티엘을 향해 첫 번째 선공을 날려 보았다.

일단 다른 능력들은 감추어둔 채.

오롯이 그룬트의 힘만으로.

스스로 강한 육체를 가졌다는 걸 인지하고 나니.

움직임 자체가 달라진 것 같았다.

파아아앗!

초월적인 각력을 이용해.

순간적으로 베르티엘을 향해 쏘아진 나는.

일부러 송곳니를 드러내며, 그녀의 심기를 건드렸다.

내가 급속도로 접근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베르티엘은 마법진을 만지던 손을 당장 멈추고는.

"망할 그룬트!"

험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여섯 장의 날개를 전부 펼쳐내었으니.

펄럭!

어두웠던 밤이, 일순간 낮처럼 환하게 변하였다.

그러나 그 정도 야광 반짝이로는 날 막을 수 없었다.

나는 베르티엘의 광명 안으로 몸을 날렸다.

눈을 번뜩이며.

그룬트의 말을 되뇌었다.

[강한 힘이 있는데, 잔재주가 무에 필요한가?]

그대로 겁 없이 밀고 들어가자.

강렬한 빛 때문에 위아래조차 제대로 분간이 어려운 영역에 도달하였다.

나는 마지막으로 봤던 베르티엘의 위치를 향해 손톱을 세워 휘둘렀다.

화아악!

살벌하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오고.

마침내 타격점에 도달했으나.

휘익.

내 손은 그저 허공을 갈랐다.

물론 예상하고 있었다.

어쨌든 나는 지금 그룬트인 척을 하는 것이지.

진짜로 베르티엘을 죽일 수는 없었으니까.

그녀의 마법을 그렌델이 카피해내기 전까지는.

한편, 베르티엘은 내 공격에서 살기를 느꼈는지.

긴장감이 서린 호흡을 내뱉으며 반격을 해내었다.

아래에서 내 턱을 향해 올려치는 무릎 공격이 가장 먼저 날아들었다.

빠아아악!

가까스로 손바닥을 턱 아래에 집어넣어 직격은 피했다.

그러나 머리에 데미지가 들어오는 걸 전부 막지는 못하였다.

'생각보다......묵직하네.'

놀라웠다.

모든 날개를 그대로 가진 대천사의 힘이 이 정도였다니.

그것도 근접전에 특화된 것도 아닌, 마법에 특화된 지혜의 대천사인데 말이다.

반응속도 역시 나쁘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공격을 막은 걸 바로 간파하고, 거리를 벌렸다.

하나 나도 그냥 도망치게 놔두지는 않았다.

곧바로 따라붙자.

"칫!"

베르티엘이 혀를 차며, 방어를 위한 공격을 펼쳐왔다.

베르티엘의 공격은 그 속성이 굉장히 기묘하였다.

"빛의 날개여!"

날개로부터는 신성력이 가득 담긴 깃털들이 쏟아지면서도.

동시에 손에는 시커먼 기운을 가득 담아 바닥을 내리치는 게 아닌가.

굳이 몸으로 맞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악마의 기운이다......!

베르티엘이 내리친 바닥에서는.

그림자로 이루어져 눈만 시뻘건 수십 마리의 뱀들이 갈라진 땅바닥을 꿈틀대며 내게로 몰려들었다.

"놈을 마비시켜라!"

위로는 신성력이.

바닥에서는 악마의 마귀들이.

그녀는 이렇듯, 동시에 두 가지 상반된 힘을 다루고 있었다.

굉장히 위험할 수도 있는 힘이었다.

천사가 악마의 힘을 다룬다니.

그말인 즉,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는 게 아닌가.

악마가 신성력을 다루는 것 말이다.

정말이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군.'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 * *

파파파팟! 스르륵......꽈아아악!

눈 깜짝할 사이.

빛의 깃털이 내 몸에 박히고.

검은 뱀들이 다리를 타고 올라오며 조여왔다.

그러나 나는 피하지 않았다.

이전의 몸뚱이였다면, 분명 데미지를 입고 불사조의 회복력이 발동되었을 정도였지만.

그룬트의 힘을 어느 정도 받아들인 지금은 달랐던 것이다.

깃털은 깊게 박히지 못하고 후두둑 떨어졌고.

다리를 감싼 뱀들은.

쿠우웅!

바닥을 강하게 내려치는 발 구름 한 번에 우수수 추락하였다.

씨이익.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랐다.

압도적인 힘.

전부가 아닌 일부만 맛보았음에도, 가슴에 퍼지는 희열은 남달랐다.

'그룬트가 왜 그렇게 힘에 혈안이 되었는지......약간은 이해가 가네.'

돈 따위와는 달랐다.

억만금을 쥐여준다고 해도, 지금 이 초월적인 존재에 다가선 기분에는 비할 바가 되지 못하리라.

눈앞에 선 베르티엘의 표정이 썩어들어가는 것만 봐도, 지금 내 경지가 얼마나 높은 것인지 단박에 깨달을 수 있었다.

하나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도 문다 하지 않았던가.

죽음의 위협을 느낀 베르티엘은 생각도 못 한 무기를 꺼내어 들었다.

베르티엘의 날개에서 깃털들이 쉼 없이 그녀의 손으로 몰려들더니.

한 손에 빛의 깃털로 이루어진 창이 생겨났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반대편 손에는 바닥에 널브러진 그림자 뱀들이 다시 돌아가서는.

검은 뱀들로 이루어진 창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 창을, 가우리엘이 알아보았다.

"그, 그건 마신의 창?"

"평소 같으면 알아본 그 눈썰미에 감탄을 해주겠지만, 지금은 내가 좀 바쁘거든!"

베르티엘은 이어 말도 안 되는 행위를 저질렀다.

양 손의 그 두 창을, 하나로 합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두 힘은 상극이기에 거센 반발을 일으켰지만.

파직! 파지지직!

베르티엘이 입으로 마법 주문을 읊자.

"이, 이럴 수가......!"

가우리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결국 베르티엘은, 그 두 자루의 창을 하나로 합쳐버린 것이었다.

나 역시 놀라움을 겨우 감추었다.

그것은 기본적인 세상의 이치마저 어기는 마법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더할 나위 없이 위험해 보였다.

'저건......직격 당하면, 지금의 나도 죽을 수 있겠는데?......'

저 또한 금지된 마법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나는 이 전투로 한 가지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결코 베르티엘을 오래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

분명 언젠가는 큰 화를 불러올 인물이었다.

* * *

"후욱......후욱......!"

자연의 섭리를 파괴한 베르티엘은, 거친 호흡을 몰아쉬었다.

'다른 이들이 보는 앞에서 지금 꺼낼 생각은 없었는데......하필 그룬트가 이렇게 예상도 못 한 순간에 부활하려 들다니. 운도 없네.'

그녀는 인상을 찌푸려 뜨라며 창을 겨냥하였다.

직격탄을 날릴 생각은 없었다.

중상 정도?

숨 정도만 붙여 놓는다면 육신을 뺏는 데에는 지장이 없으리라.

베르티엘은 가지고 있던 온 힘을 짜내어, 창을 쥔 손에 쏟아부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들고 있는 것조차 힘들었으니.

'이걸로 남은 수명 절반은 줄었네......! 그래도 어차피 저 로한이라는 놈의 몸이 곧 내 것이 될 테니까!'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 판단한 베르티엘은.

로한을 향해 창을 던졌다.

쫘아아악!

너무나 방대한 힘에, 공간마저 왜곡시키며.

상식을 넘어선 속도로 로한에게 날아든 그 창은.

촤악!

결국 로한의 육신에서 피를 뿜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상처는 생각한 것보다 너무 옅었다.

초월적인 움직임으로 쏘아진 창이었으나.

로한도 초월적인 감각으로 피해버린 것이었다.

그의 왼팔을 절반쯤은 날려버렸지만.

오히려 로한의 눈은 더 희번득하게 변해버렸으니......

화악!

어느 순간 눈앞에 도달한 로한의 시뻘건 동공.

그에 베르티엘은 진정으로 공포가 무엇인지 느꼈다.

"허, 허억......!"

로한은 오른팔을 뻗어, 베르티엘의 목을 틀어쥐고는.

그녀를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말도 안 되는 악력이.

순식간에 목을 조여오니, 정신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케, 케헥!"

이렇게......죽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던 그때.

그렌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법이 준비되었다! 베르티엘!"

한 줄기 희망을 본 베르티엘의 눈동자가 다시 광채를 띠었다.

"빨리도 왔네!"

베르티엘은 남은 모든 신성력을 짜내어.

일시적으로나마 그룬트를 잠재울 마법을, 가동 시켰다.

구우우우우우웅......!

그러자 섬 전체가 흔들리며.

엄청난 압력이 로한을 짓누르기 시작하였다.

"으, 으윽......! 이, 이놈. 베르티에에엘......!"

핏대 선 눈으로 베르티엘을 노려보던 로한은.

몇 초도 지나지 않아.

털썩.

바닥에 쓰러졌다.

"쿨럭, 쿨럭!"

그에 겨우 풀려난 베르티엘은, 조금 전까지 졸리던 자신의 목을 쓰다듬었다.

"후우......그룬트, 이 지독한 새끼. 넌 이제 끝났어."

미소를 지으며.

그러나 베르티엘도 알지 못한 게 있었으니.

그녀의 바로 뒤에서 입꼬리를 말아 올린 그렌델이었다.

'끝난 건......너야. 그룬트를 제어할 수 있는 네 마법, 전부 간파했거든.'

로한의 말대로, 그렌델은 생각보다 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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