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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157화 (157/194)

157화. 제자 삼고 싶을 지경인데?

씨이익.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베르티엘의 시선에 내게 팍 꽂혔다.

'저게......대천사라고?'

보통 대천사라는 말과 함께 떠오르는 이미지라면, 역시 가우리엘의 느낌이 가장 어울렸다.

조금 더 고지식한 느낌이 추가되면 아마 딱 내가 상상했던 대천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러나 베르티엘은 전혀 달랐다.

무게감이나 위엄 따위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것이라고는 오로지......광기.

그뿐이었다.

그래서일까?

내 눈에 비치는 베르티엘은 대천사라기보다는 오히려......

'악마 놈들이 떠오르는데?'

아무렇게나 뻗친 긴 머리에.

속내를 전혀 읽을 수 없는 애매한 눈동자.

그리고 대체 무엇을 하다가 온 것인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 왼손에 잔뜩 묻은 피.

내 머릿속 이미지의 대천사와는 판이하게 다른 베르티엘의 모습에.

쉽사리 적응이 되지 않았다.

저게 어딜 봐서 대천사란 말인가.

실제로 악마에게서나 느꼈던 그 증오심까지도 얼핏 흘러나오는 기분이 들 정도였으니 말해 무엇 하겠나.

그것은 나 이외에도 모두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앤드류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천사가 아니라 악마라고 소개했으면, 당장 튀어 나가서 벨 뻔했겠는데요?"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표현이었다.

나라도 대천사라는 설명을 듣지 못했었더라면, 앤드류와 다르지 않았을 것 같았으니까.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자, 혹여나 불상사가 일어나기 전.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선 것은 가우리엘이었다.

"베르티엘!"

"어머나, 이게 누구 신가. 혼자 정의로운 척은 다 하는, 우리 가우리엘 아냐?"

그러나 가우리엘을 보는 베르티엘의 태도는, 반가움과는 거리가 꽤 멀어 보였다.

내 눈에는 오히려 서로를 마주한 이 상황을 기분 나빠하고 있는 것처럼 비추어졌다.

저들 사이에도, 다른 이들은 모르는 모종의 일들이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먼저 강하게 나간 것은, 가우리엘이었다.

"불만이 있다는 건 알겠지만. 지금 그걸 너무 표출했다간, 우리도 여기서 돌아갈 수밖에 없다."

"......"

가우리엘이 이렇게 나올 것이란 건 예상치 못했는지.

베르티엘은 잠시 입을 다물고 고민을 하는듯했다.

이대로 우리를 보내기에는 아쉬움이 남아있는 듯 하였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이내 한발 물러서서는, 돌아서서 뒤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따라와."

휙.

베르티엘은, 더 깊은 숲의 안쪽으로 몸을 날렸다.

* * *

그렇게 미로아 섬의 화산구까지 올라간 우리들은.

베르티엘의 거처에 도착을 하였다.

"들어 와."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열어둔 채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나 누구도 쉽사리 베르티엘을 따라 들어가지는 못하였다.

그녀의 본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리라.

모두가 내 눈치만 살피자.

나는 결단을 내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오라고 하는데. 사양할 것 있나? 들어가야지."

물론 베르티엘이 위험해 보이는 건 사실이었으나.

'지금 내 감각들은......아직은 걱정할 시기는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으니까.'

제3의 눈은 내게 그 어떤 위험 신호도 알리지 않았다.

나는 그 감각을 믿어보기로 하며.

그 어두컴컴한 거처 안으로 발을 밀어 넣었다.

저벅.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짙은 암흑 속, 불을 밝히고 있는 촛불들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며 날이 어두워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 내부는 유달리 더 어두웠다.

촛불이 없으면 코앞의 손바닥조차 볼 수 없을 정도로.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저 안쪽에서 베르티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법이야. 시각을 일그러뜨리는 마법. 촛불 역시 특별한 마법이 걸려 있는 상태라 시야를 만들어주는 거지. 보통의 불빛은, 이 안에서는 아무런 힘도 낼 수 없어. 재미있지? 후후."

하나도 재미없었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더 걸어나갔다.

저벅, 저벅.

그리고 거실을 넘어서서, 목소리가 들린 방으로 들어서자.

화아악!

다시 빛이 돌아오며, 지금 시각에 알맞은 밝기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그제서야 마법이라는 말이 정말로 실감이 확 되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나를 따라 걸어 들어온 이들 모두, 이 갑작스러운 변화에는 적응을 못한 듯 보였으니까.

"무슨......이런 마법이 다 있냐?"

"그 촛불도 없이 만약 싸웠더라면......꼼짝없이 당하겠는데요, 형님?"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자고."

"......예."

가우리엘조차 놀란 표정을 금치 못하는걸 보니.

"......또 이상한 걸 만들어내었군. 베르티엘."

확실히 대단한 마법이긴 했다.

정작 그 모든 마법을 펼친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의자에 가뿐히 앉아, 우리들에게도 자리를 권했다.

"할 이야기가 있어서 온 거 아냐? 내 마법 구경하러 온 게 아니라."

그에 가우리엘도 털썩 빈 의자에 앉으며.

베르티엘을 직시하였다.

"혈석. 네가 만들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혈석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베르티엘의 시선이 나와 오르헬, 리치몬드를 차례로 훑었다.

"그렇지. 그 물건이야말로 내 인생의 걸작이었지."

기분 나쁘도록 음흉한 미소와 함께.

나는 자리에 앉지 않고 팔짱을 낀 채.

가만히 베르티엘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베르티엘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내게 눈동자를 고정시키고는 말을 이었다.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면서.

"그런데 그 걸작품이......가까이에 있는 것 같네?"

이미 내 안에 있는, 악신 그룬트의 기운을 느낀 것일까?

나름 잘 억누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저쪽도 보통 예민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묻기로 했다.

"그럼 이 그룬트의 광기를 제어하고 있는 이 신성력의 설계도......당신이 한 게 맞나?"

그러자, 베르티엘의 눈에 호기심이 어렸다.

"오. 그걸 알아챘어? 제법인데.....그런 걸 감지하는 건, 타고나는 센스가 있어야 하는데 말이지......제자 삼고 싶을 지경인데?"

* * *

그녀는 여전히 입꼬리를 올린 채 말을 이었다.

"맞아. 내가 설계한 거야. 그거 만드느라 고생깨나 했지. 어때? 쓸만한가? 직접 체감해보고 있는 입장의 의견은 들어 본 적 없어서 말이지."

"지금 상태로는 모자라다. 더 많은 신성력을 이용해 그룬트의 광기를 제어할 필요가 있다. 지금 상태로는 현황을 유지할 정도일 뿐. 진정한 그룬트의 힘을 끌어낼 수는 없겠더군."

"그럴 수밖에. 당시 내가 시행한 작업은 아직 테스트의 영역이었어. 본격적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순 없었지."

"지금도 불가한가?"

"글쎄......네가 직접 실험체가 되겠다면, 가능할지도?"

계속해서 장난스러운 말투를 이어나가는 베르티엘에게.

결국 가우리엘이 언짢음을 표출했다.

"농담할 상황이 아니다."

"농담할 상황이 아니면 뭐?"

"거신족 놈들이 다시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 와서 내게 도와달라? 하하. 어이가 없네, 진짜?"

베르티엘은 미간을 찌푸리며 코웃음을 쳤다.

"내가 누누이 말할 땐 뒷등으로도 듣지 않았지, 다들. 그런데 지금은 뭐? 내 도움이 필요하니, 바로 또 도와 달라고? 염치도 없나?"

"네 방식에 불만이 있는 건 여전히 마찬가지다. 너는 선을 넘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

"수단? 방법? 그게 뭐가 중요하지? 선을 넘었다고? 그건 누가 정하는데? 웃기지 마. 나야말로 가장 격하게 천상계와 중간계를 지키려고 노력한 자야. 다들 그저 제 손 더럽히기 싫어서 방관만 하는 동안, 나만 전력을 다하지 않았던가?"

베르티엘의 그 당돌한 태도에.

결국 가우리엘의 얼굴 역시도 일그러지고 있었다.

"네가 벌인 일들을 포장할 생각일랑 집어치워라. 그건 어떤 말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다만 네가 할 수 있는 건 그때의 잘못을 인정하고, 지금에라도 참회하며 만회하는 것뿐이다. 지금이 그 기회이고."

"잘 모르겠는데? 내가 뭘 참회해야 하지?"

"거신족과 악마를 막겠답시고, 수만에 달하는 생명을 실험체로 쓰다가 죽인 것! 그걸 참회할 생각이 없다고?"

"그게 뭐 어때서? 몇 명의 희생으로 나머지 전부가 발 뻗고 잘 수 있는데. 그 정도는 감내해야 하는 거 아니야?"

"몇 명? 몇 명이라 칭할 숫자도 아닐뿐더러! 네가 뭔데 죽을 생명과 살릴 생명을 정한단 말이더냐?"

가우리엘의 호통에도.

베르티엘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내가 정한 게 아냐. 자기 운이지 그것도."

"그리고 애초에, 네 명분에 진정성이 있었나? 아니, 전혀. 너는 그냥 네 지적 호기심을 채울 용도로 실험을 했을 뿐이었다. 언제나 그러했지. 모든 것은 너의 흥미와 호기심을 풀기 위한 일들. 모르고 있었다 생각했나? 심지어는 악마 놈들을 일부러 끌어들이기까지 한 것도......다 알고 있었다. 그때도 수없이 많은 생명이 희생되었지."

베르티엘은 어깨를 으쓱이며 미소 지었다.

"악마를 끌어들인 것......은 모를 줄 알았는데. 하하. 꽤 머리가 좋네? 다시 봤어. 가우리엘?"

그녀의 눈빛은 한결같았다.

자기 자신 외에는 전부 내리깔아보는.

하찮은 것들을 굽어보는 그런 눈이었다.

"그래도 덕분에 내 마법이 악마 놈들에게 강력한 효과가 있다는 건 증명 되었지. 안 그래? 실제로 지금 천계의 천사들도 많이들 쓰는 걸로 아는데?"

"정녕 너는......!"

둘의 대화는 그저 평행선을 달릴 뿐이었다.

누구 하나도 물러서지를 않았으니.

'만만치 않은 성격이군.'

해서 이번에는 다시 내가 그들의 사이로 끼어들었다.

가우리엘과는 조금 다른 전략으로.

"기회 아닌가?"

"......뭐?"

"그룬트의 힘을 제어하기 위해 네가 만든 그 방법......제대로 된 효과가 있는지 확인해 볼 기회가 아니냐는 말이다. 그 악신의 힘을 가진 내가, 제 발로 찾아왔는데. 이대로 확인도 해보지 않을 생각인가?"

나의 물음에.

베르티엘은 씨익 웃었다.

"둘 다 똑같은 속셈인 건 보이는데......말은 네 쪽이 훨씬 재미있게 하는 걸? 후후후. 역시 재미가 있어야 할 맛이 나지?"

"더 재미있게 해줄까?"

"......?"

나는 그녀의 눈동자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 순간, 가우리엘이 당황한 듯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 설마! 로한 경! 멈추게! 그건 아직 그녀에게 알려선 안 될 말이라......"

그러나 나는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입을 떼었으니.

"아직 그룬트의 정신체가 남아있다. 그걸 네게 넘겨주도록 하지. 악신의 정신체......딱 들어도 써먹을 데가 많은 것 같지 않나?"

베르티엘의 눈동자에, 광기가 살며시 서렸다.

"하, 하하......이거......굉장한 놈이 나타났네? 진짜 마음에 쏙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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